없는 층의 하이쎈스

없는 층의 하이쎈스

$15.51
저자

김멜라

1983년서울에서태어났다.2014년[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을통해소설을발표하기시작했다.소설집『적어도두번』,『공공연한고양이』등이있다.『소설보다:봄2021』을함께썼다.『2021제12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그리기좋은아세로라
봄,는개·동거인·동거란뭘까·겨우살이·남산의가물치·도끼연습·츱츱이·다한증수배자·피의뿌리·분노의뿌리·생명의뿌리·아픔의뿌리·집이불타면·죄인들·서울로·빌리지의개들·빌리지의웃음많은고양이들·그여자·톱질하는여자·얼굴이시드는기분

2부사귀자의하이쎈스
화장의쎈스·이름의쎈스·쎈스는빌어먹을·오케바리,나이스바리·소시지를부치는쎈스·하숙방을돌며·양봉과음봉의혈자리·부아덩어리들·오란씨한병,루주하나·남대문의뭉칫돈·남산으로·사귀자의뿌리·농담의뿌리·그런말씀마셔요·하숙집의별·너럭바위·꽃핀날·꽃진날·꽃이야피거나말거나·끝내자고,다시살자고·살궁리·죽으라는소리·원수와손잡고

3부없는층의간첩훈련
빌리지의오후·은신처,아니무덤,아니……·선글라스끼고,판탈롱·하이쎈스의수칙·눈동자안쪽부터·새벽꿈·옥상정원에서·정보수집과동향파악·탕탕탕의맛·말통작전직전·말통작전·토바올치시간·간첩해고통보·왜자꾸남산으로·사나운말년운·도끼작전직전·엔진톱의시동을걸어라·점밖으로·점안에서,점을돌며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처음부터그랬어.주소는못만들었어.”
남산빌리지상가건물의비밀스러운교습소

부모가횡령사건에휘말리며가족모두가흩어지게된상황,아세로라는부모를떠나할머니사귀자의‘명필교습소’에머물게된다.허름한남산빌리지상가건물의201호에는사귀자,202호에는아세로라가살게된다.할머니사귀자는온두라스음식을좋아하고늘곱게화장을하며봉긋한머리볼륨을유지한다.말다툼을할때도언성을높이는법이없고누구에게나‘슨생님’하고꼬박꼬박존칭한다.교습소소파에누워나초먹는것을좋아하고‘할머니’라는말에는질색하는사귀자는어쩌다해마다겨울이면빌리지에서흘러온‘똥물’이동파되는낡은상가에서,제대로된주소도없이살게된걸까.

한편손녀아세로라는동생칭퉁이를잃었다.칭퉁이는희귀면역질환을앓았는데,아이들이좋아할법한온갖과자는물론고기나정제곡물도먹을수없었고때로는햇볕에도피부가짓물렀다.빛과물과음식들은칭퉁이몸에반점을만들고가렵게했다.아픈것보다치사한것이싫다는칭퉁이는누나아세로라에게몰래먹지만말아달라고,초콜릿을먹는다면자기앞에서먹어달라고부탁한다.어느날부모는돼지갈비를몰래먹고돌아와방향제를뿌리고서비스로받은요구르트를숨겨둔다.아세로라는칭퉁이를배신한부모를사랑할수없다.칭퉁이를보내고자신이여전히‘살아있다는것’에괴로워하던아세로라는자기자신도사랑할수없다.바닥에머리를박고스스로배를때리고물건들을헤집어놓아도고통은사라지지않는다.그렇게교습소물건들을헤집던어느날,아세로라는‘노란종이’한장을발견한다.종이에는‘하이쎈스’라고불리던간첩사씨가소시지부침등으로하숙생들을꾀어냈다는내용이담겨있었다.하이쎈스는할머니의필명.그날이후아세로라는할머니를간첩이라고믿고그동안내뱉던반말도거둔채사귀자의행적을살핀다.

젊은시절남산아래서남편과함께‘큰별하숙’을운영하던사귀자는비싼소시지부침을노릇하게구워반찬으로내놓는가하면손끝이야무져하숙생들에게인기가좋았다.하숙생들은사귀자를‘하이쎈스’라고불렀다.‘하이’의의미는잘몰라도센스가좋다는칭찬에사귀자는입이벌어지곤했다.하숙생들중에서는순영학생이가장예뻤다.부탁을해도맨입으로하는법이없고하숙비를밀리지도않고,꼬박꼬박‘여사님’이라고부르는데다명문대를다니는순영학생.사귀자는자신의딸샛별이도순영학생처럼크면좋겠다고생각한다.순영학생은사귀자에게‘명필’이라며종종글씨를써달라는부탁을한다.기계로쓴것보다도잘쓴다고추켜세우며고급루주를쥐여주며해오는부탁에,사귀자는몇번인가글씨를써주게된다.까막눈사귀자는그저그림그리듯순영학생이보여주는글씨를따라썼을뿐이었다.그런데그중에‘김일성만세’라는말이있었다니……

계속궁금해하고계속아파하면서살아가기

등기부에등록되지않은건물에살면서행여나누군가에게들킬까숨을죽이고빛이새어나갈까커튼을치는사람들,아픔을호소해도그아픔을설명할수있는말이없다는이유로외면당한사람들,인간으로서누려야할자유와권리를말하다소리없이사라진사람들까지.소설은세상에의해‘없는존재’가되어지워져간사람들의이야기를특유의명랑함으로풀어낸다.숨어살지언정자신만의스타일은멋지게뽐낼수있고,사랑하는사람을잃고스스로를고통속으로몰아넣더라도또다시새로운사랑에가슴이뛰기도한다.그러면서소설은말한다.계속궁금해하고계속아파하는것이살아있는자들의몫이라고.왜누군가는없는존재가되어살수밖에없고어째서누군가는영영없는존재가되어야만했는지,계속해서묻고아파하는일이살아있음을증명한다고.이곳에남은존재들은또한기억하고기록하는일을통해자신앞에놓인삶의이유를찾을수도있겠다고.

“없는사람”은“다른사람과손을맞잡을수없”고이미떠나간존재들은다시돌아올수없겠지만,아세로라는그들을기억하며춤을추고사귀자는그들을위해글씨를쓴다.위태로운존재들을더이상잃지않기위해‘없는층’주변의인물들은손에손을잡고노래를부르고원을그리며,원주변으로더많은사람들을불러모은다.그리고끝내우리에게도손을내민다.지금가장주목받는작가김멜라가당신앞에더없이유쾌하고따듯한동시에한없이먹먹해,오래도록기억에남을소설을선사한다.

작가의말

이소설은말로다전할수없는누군가의기억이자이제는무너져흔적도없이사라진제외갓집에관한이야기입니다.추석이면옥상에올라남산에뜬보름달을보고,성탄절밤이면타워옆으로불꽃놀이의폭죽이터져오르던기억을떠올리며남산언저리에살던사람들의이야기를썼습니다.소설에이런군말을덧붙이는것은이글이제가온전히담아내지못한많은분의삶에빚지고있기때문입니다.(…)없다고여겨지는존재들이살아있는저를움직여글을쓰게합니다.그렇게있음과없음을넘나드는질서와힘에의지해하이센스,높은감각을느껴봅니다.다떨구었다가새봄에다시싹을틔우는산위의나무들을바라봅니다.

2023년초여름
김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