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 민음의 시 294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 민음의 시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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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가장 아득한 곳을 담아내는 표면,
탈피하고 부수어지는 몸의 시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층 더 높아진 기대 속에서 진행된 김수영 문학상 심사는 예상과 달리 빠른 속도로 결론에 이르렀다. 이견을 허락하지 않은 독보적인 한 작품 때문이었다. 이번 심사에 논쟁이 있었다면 작품과 작품 사이가 아니라 최재원이 품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었을 정도로, 당선작에 대한 심사위원 (이수명, 조강석, 허연)의 지지는 확고했다.

2019년 데뷔한 최재원은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신예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에너지만큼은 신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최재원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거침없이 펼쳐지거나 접혀지는 형식이다. 3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부터 원고지 50매 분량에 달하는 산문시까지, 그동안 쌓아올려진 시적인 것들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면서도 시의 핵심으로 돌진하는 에너지는 소용돌이와도 같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들로 이룬 독창적인 시어의 세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론과 추상을 담아내는 형이상학적인 언어들뿐만 아니라 욕설, 사투리, 온라인 대화 메시지 등 그가 건져 올린 언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형식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표현 방식은 다양한 도시를 경유하며 살아온 시인의 생의 이력과도 닮아 있다. 경상도와 강원도, 뉴욕과 서울 등 많은 도시에서 거주하며 여러 언어 속에서 시차를 경험한 시인은 물리학과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언어라는 모험을 감행해 왔다. 현재 최재원은 미술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미술 비평과 번역을 병행하는 중이다.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는 한 편 한 편마다 시인에 의해 독창적으로 설계된 언어와 형식 위에서 이 세계의 표면과 깊이를 동시에, 그리고 풍부하게 담아낸다. 언어와 언어 사이를 떠돌며 무수한 가능성을 경험하던 중 우리 앞에 도래한 ‘최재원’이라는 이름, 그 낯선 열기와 광채로 가득 찬 매혹적인 세계가 활짝 열렸다.
저자

최재원

저자:최재원
거제도,창원,횡성,뉴욕그리고서울에서자랐다.프린스턴대학교에서물리학과시각예술을,럿거스대학교메이슨그로스예술학교에서그림을공부했다.2018년Hyperallergic을통해미술비평활동을시작했다.한영·영한번역과감수를하고있다.시집『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로제40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해마다모른다
모조13
걷기14
차15
신선16
때17
고장18
소리19
날기20
올해21
복식24
거절25
침묵26
FULLVOLUME27
가장아름다운소년28
유리눈알32

2부밤의숫자놀이
밤의숫자놀이37
자장가38
자장가40
자장가41
저녁시소42
이런게0이다44
삭는육각형48
묵사발이될줄알아50
적자상속52
시케이다소나타54
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55
안녕.잘지냈어?60
거품목욕68
신호등을건너면보라색별이있다71
종로3가에서의죽음76

3부연착
순간이동81
자수82
나는너의목소리로말한다84
저글링88
산책90
배양91
가위바위보92
사우나93
가시와뿔96
퇴근길98
공복100
호주머니속에굴러다니는것들104
꿈뿔106
너를생각하면내가108
그녀가가져온케이크에촛농이흘러넘치도록나는사족을다한다110
시114
너에게가는길은115
신사역사거리실라리움성형외과118

4부구멍을찾을수없는나사
시속40킬로미터의소리123
성실127
거울이있어야할곳에130
냉131
소리132
본드136
흰자만자꾸나온다138
물고기와아이와개의시간140
나사가자꾸자꾸떨어진다142
나사를버리지못하는사람144
날파리랩소디145
곡146
너의뒤에너의뒤에너의뒤에너148
점멸151
새하얗게걸린나의가죽152

5부이동중
목격하는집155
히포맨158
원뿔161
아무도들어주지않는직선162
외마디164
은색그물인달166
참수170
강남이무너진날172
미아174
엽서에담긴파리에서탈출하는방법175
말은어디서와서어디로가는가179
너는시197
너는상198
너는아름다운미라가될거야자기야200
무제,1966,김환기202
백야203
그대여206

작품해설213
비규정을향한탈피의시_소유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일상과세속에직접육박해들어가는과감함에서단연독보적이다.”─이수명(시인·문학평론가)

★★“사유의시계에포착된바를놓치지않고끝까지밀고가는힘과그사유의리듬을과감하게변주하는이미지들의조화가돋보인다.”─조강석(문학평론가)

★★“때로는능청스럽게,때로는냉정하게,때로는수줍은듯상황을미학적으로환기시키는능력이탁월하다.”─허연(시인)

■형식의역동성

최재원의시를읽는순간독자들이받는신선한충격은형식에대한강박으로부터무한한자유로움일것이다.『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실린80편의작품은시로보여줄수있는모든형식을구현하려는듯하이쿠처럼아주짧고강렬한시,익숙하게보아온운율의시부터특유의리드미컬한흐름을끌고가는장시,압도적인분량안에서쉼없이변주되는운율의산문시를아우른다.그러나이러한형식실험은단순히실험에그치지않는다.조강석평론가에따르면시인의실험은“동시대의삶의부면을열심히응시하면서도이를자신의주관안에서자신있게다루는능숙함”으로보인다.시인이구현한형식의새로움은시인이들여다보는삶의예측불가능한가변성과역동성에서비롯된다.우리가살아가는삶의역동적이고뜨거운호흡이최재원의시에녹아들어있다.

■깊이를담는표면

시인은세상을채우고있는소음들뿐만아니라날것의언어를시에끌어들이는데두려움이없다.『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서눈에띄는또다른매력은버스기사와승객이경상도사투리로실랑이하는대화,문방구에자수하러간화자의귀에들려오는아이들의말들은유치하면서도같이따라하게되는노래들이다.최재원에게일상적인대화는그자체로코러스를곁들인노래이자한편의쇼가된다.곳곳에서눈에띄는물리학의기호들도인상적이다.밤늦은번화가에서술에취한사람들을태우고떠나는택시가사방으로흩어지는모습을보며액체혹은기체의입자들이보이는불규칙한운동인브라우니언모션을생각하거나,손가락하나없이물을잡으려는몸짓을말하며“if(surface_tension>weight)”라는공식을,첫눈에반한신비로운사람을보고는위치를특정할수없는속도로원자주변을맴도는전자에빗대어표현하는것도흥미롭다.일상을깊숙이들여다보면서도어느순간세상과거리를둔건조한눈길로바라보는시인.표제작「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서“가장표면에있는것들이너의가장아득한곳을담을수있”기를바란화자처럼,시인은표면에있는것들을거침없이훑으면서가장깊은곳에가닿으려한다.

■탈피하는몸

『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서인물들의신체는끝없이변한다.변할뿐만아니라몸에서몸으로이동한다.곰팡이나비늘이돋아나기도하고,하나의정체성으로여러몸을,여러정체성으로하나의몸을공유하기도한다.최재원에게몸은태어나는동시에사라지는중인것이기도하고,내것이자네것으로공유될수있는것이기도하다.화자는소년과소녀의정체성을오가고,이미밟혀죽었을매미의몸과화자의몸이뒤바뀌기도한다.이렇듯최재원의시에서등장하는인물들은신체와이름,정체성을허물처럼벗으며다른존재로자유롭게건너간다.해설을쓴소유정평론가는최재원시에서의‘몸으로부터의이사’는시인이들여다본작은존재인매미의탈피와닮아있다고짚는다.매미에게탈피는곧성장이다.그러므로시인의탈피로버려진허물이자신체는존재의지워짐이아니다.스스로찾아나아간자유로움의흔적이다.버려진몸은그자체로나의선택과의지,기억이자정체성의증거가된다.

■해체와탄생

시집말미에만나게되는시는「백야」다.「백야」에서새해의빛은다만‘밝’지않고,“밝,발,밖,박”는다.소리나는그대로단어를해체하는표현그자체로만보면,얼핏‘밝음’이라는의미의해체나소멸로보일수있지만다양한형식의실험을거쳐일상적일뿐만아니라세속적인것을두려워하지않는시어의사용,끝없이변하며하나의정체성으로특정할수없는신체를지나여기에도달한최재원의시에서이러한‘밝음’은다만해체로여겨지지않는다.시인에의해‘밝음’은발음될수있는모든소리로부수어진다.그러나의미는소멸되지않는다.오히려발음될수있는모든단어로새로태어나며더욱크게밝아진다.‘밝음’은불꽃놀이가되어사방으로빛을비춘다.그렇게우리는다시1부에서의제목들을되짚어본다.하나의견고한의미인단어를한글자씩떼어놓은제목의형태를.우리가여기서발견하게되는것은의미의소멸이아니라새로운의미의탄생이다.얼굴을낯설게바꾸며익숙한의미의망을빠져나가며새로운의미를요구하는언어의탄생이다.

발아래시체가가득하다
땅만보고걷지않았으면
알아챌일도없을텐데
―「걷기」

차마번역하지못한시큼한단어들이
긴손톱을끌며칠판위를거니는밤

내몸속에는백명의아이가
시끄럽게떠들고있는데
나는단한명분도
살아내지못하고발가벗긴침묵중
―「저글링」에서

너와먹고싶지도자고싶지도않다.나는너를박제하고싶다.약품처리된,내장이없는,까맣게구슬이되어버린눈동자,그런박제말고너의가장,가장표면에있는것들이너의가장아득한곳을담을수있도록,가장표면에있는것들을하나도남김없이,숨도,생명도,심지어내장이라할지라도.너만은시간의흐름에서구해주고싶다.그것은박제와가깝지만박제는아니다.그것은어떤흔들림의보장,니가하루종일거울앞에서있을자유,니가끝없이스스로에게빠져들자유,끝없이자신을소모할수있을힘.
―「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에서

색이없어진다는것이주는만족감.명도와질감으로만된세상.그것은조금덜혼란스러울것이분명했다.이거야.색을없애는것.이것이내가찾던,몸으로부터이사할수있는방법이었다.그것이야말로완전한소멸이자새로운탄생이될것이다.한번여기에생각이미치자모든것이아다리가맞았다.나는몸을태우고,색을없애고,완전히소멸할것이다.나는그것이끝이아니라몸밖으로의완전한이사를뜻한다고확신했다.이것이야말로어떤궁극적인이사가될것이다.
―「말은어디서와서어디로가는가」에서

소년도소녀도아닌
오차도찰나도아닌
이름을불러주세요
이름을부르지마세요
안은여러개지만밖은
하나예요이제같은길은
없어요

뾰족한모래위몸둘곳없어정처없이없었던집을헤매는발디딜데없는얕고짙은물자국속뒤섞인발자국겹쳐진




그위로
성난파도
―「백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