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을가늠하며
나는구멍을바라보다하마터면그안으로들어갈뻔했는데,
요즘은자주네가떠오른다난널다시만난적도없는데
아니네가죽지않았다면,만나지않을수있었을텐데
-「오늘따라」에서
허주영의시에서도드라지는감각중하나는보이지않는존재의실루엣을더듬는손의촉각이다.일상의시선에는보이지않을“정오”에도“커다랗게”구멍이뚫린것을발견하고,“언젠가”의“계절”에수많은‘나’들사이의간격,모르는‘나’와알것같은‘너’의간격,알았던‘너’와알지못하게되어버린‘너’사이의간격이“만져질”것이라예측한다.보이지않는간격을더듬어‘나’혹은‘너’와만나려는허주영의“측량”에는세상의온갖것이도구가되고단위가된다.“여름의드릴소리”,해가지면생기는그림자,“발자국”,“맥박의울림”등이그것이다.이러한시인의감각은민첩하고성실하게작동한다.나와너의세계에서,혹은여러개로겹쳐진나의세계에서존재들이가까워지고멀어지는간격을탐색한다.시인의“손바닥”으로느껴지는,눈에보이지않는그간격은엄연히존재해서세계를채운다.허주영의시가하는일은그런것이다.여백으로존재를발견하는일.시인은텅빈것처럼보이는세계의부분을본다.그것이내가있는자리와네가있던자리를보존하며채워져있는것이라믿는다.
주인이자손님으로
주인은나,손님은나.외각에서안으로다시젓가락에서포크로차례를지키며질문과대답을오갔다.
-「손님과주인」에서
허주영은자리바꾸기에도능하다.그의시에서변하지않은채로가만히있는듯보여도가장자주바뀌는것은주인과손님의자리다.시속‘나’들은집주인의집을임대한,누군가의죽음이있는곳에꽃을두는,낯선마을의골목에서편의점을발견하는,내가태어나지않았던시대의사진을인화하는손님이된다.어떤자리는결코주인의역할을맡을수없음을깨닫게해분노하기도하지만,또다른자리에서는주인과손님의역할이흐릿하여언제든이쪽에서저쪽으로건너갈수있음을확인한다.그기준이자경계는역시‘나’다.집이나도시같은‘나’바깥의자리에서인물들은“짧은여백”의“세입자”(「저에게더잘해주세요」)로,“여기서살아남을수있을지”(「미래의집」)가늠한다.그러나‘나’의안쪽,‘나’의역사에서이자리바꾸기는더자유롭고빈번하다.‘나’는‘나’의탄생과죽음을체험하는동시에구경하고,소문의주인이되는동시에소문의청자가된다.주로공간의손님이지만시간의주인으로,‘나’는‘나’를기록하며살아간다.
책속에서
내문장이아름다운건비어있기때문이라고
나의탄생은전적으로당신의기록에의지한다
어린나는지금의나만큼물질이라서
나와당신의사이는,나와나의시간이된다
---「돌잡이의비디오」중에서
공놀이를하자고해놓고
그애는배드민턴을들고온다
나는축구화를신고서있는데
발등위로쏟아내는라켓
휘두르면죄다다른소리가났다
---「수축과이완」중에서
한번에한명씩나는나를낳는다
나를낳느라엄마를낳지못한다
태어나고싶어우는엄마
날낳았다고우기는엄마주장하는엄마발을구르는엄마
엄마는나를낳는나를목격한다
그렇게도작은웅크림들
---「수소문」중에서
다들모였다고하지만내가없잖아
촛불을모두켜기도전에케이크모서리를한움큼쥐었다몇개의어금니자국이버터크림위에미끄덩맴돌았다넘어가겠지기념이그랬던것처럼먹자꾸나,그래도생일이잖아잠깐의어둠과심지의냄새를기억한다
---「숨바꼭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