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카타

토카타

$14.00
Description
팬데믹 시기에 쓰인 배삼식 신작 희곡
때로 위험한 것이자 가장 오래된 감각,
접촉에서 시작되는
극한의 고독과 생의 기운
극작가 배삼식의 신작 희곡집 『토카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각각 2023년, 2022년에 극을 올린 「토카타」와 「마디와 매듭」이 실렸다. ‘토카타’는 이탈리아어로 ‘손을 대다’, ‘접촉하다’라는 뜻을 지닌 ‘토카레(Toccare)’에서 유래한 단어다. 배삼식은 모든 접촉이 차단됐던 팬데믹의 어느 날 산책길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타인의 온기가 절실한 시기에 떠오른 “때로 위험한 것이자 가장 오래된 감각”으로서 접촉에 대한 이야기다. 『토카타』는 배우 손숙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손숙은 아름다운 젊은 날부터 남편과 키우던 개를 먼저 보내고 쓸쓸하게 혼자 남기까지,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는 노년의 여자 역할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연기했다.
홀로 남겨진 노년의 여자, 병에 걸린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토카타』는 고독하고 쓸쓸한 모두에게 가닿는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알게 되었듯 누구에게든 언제든 고독은 찾아온다. 연출을 맡은 손진책의 말대로 『토카타』는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상태, 누구도 나를 어루만져 주지 않는 상황의 고독”을 표현한다. 이 같은 극한의 고독을 연기한 배우 손숙이 정의하는 이 작품은 “쓸쓸하게 혼자 남은 마지막,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이야기”다. 『토카타』는 무대 장치를 최소화한 대신 밀도 있는 대사로 섬세하고 깊은 감정을 표현한다. 대사를 한 줄 한 줄 음미하다 보면 절절한 고독을, “생을 탁 꺼 버리고 싶은 순간”을 끝내 견뎌 내는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 완전히 혼자가 된 외로움
타인과의 만남이 어느 때보다 어려웠던 시기에 쓰인 『토카타』에서 여자와 남자가 갈망하는 것은 접촉, 한때 닿아 있었고 만질 수 있었던 이의 온기다. 여자와 남자는 홀로 남아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이를 그리워한다. 남편이 떠난 뒤 여자의 늙은 몸을 이제 누구도 만져 주지 않는다.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던, 작고 꼬물거리던 시절부터 나이 들고 병들 때까지 함께했던 개마저 떠났다. 헤어짐을 이겨 내는 일은 더디고, 빈집에서의 외로움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자의 이야기와 평행하게 흘러가는 또 다른 이야기의 화자는 코마 상태에 빠진 남자다. 사랑했던 여자를 처음 만난 순간에서 시작된 남자의 회상은 병든 여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던 순간까지, 병든 채로 홀로 남은 날까지 이어진다. 적막과 고독 속에서 남자는 이제 혼자서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 접촉의 기억에서 피어나는 생의 기운
접촉은 위험하면서도 급진적인 감각이다. 인연은 접촉으로 돌연히 시작되고, 접촉으로 나의 경계를 넘어설 만큼 깊어진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접촉의 기억과 함께 생생해진다. 처음 만나던 날, 남자는 눈앞에 있는 여자의 매끈한 머리카락을 자기도 모르게 만지고 만다. 뒤돌아본 여자는 펄쩍 뛰며 화를 내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더 자주, 더 깊게 서로와 접촉하기를 갈망한다. 자신을 잃어버릴 때까지 열렬하게 서로를 만지며 발견해 간다. 손녀가 데려온 강아지를 여자는 처음에 반기지 않지만, 강아지가 자신의 발 위에 턱을 기대고 그 보드라운 털을 느낄 때, 여자와 강아지는 헤어질 수 없게 된다. 서로 끝내 속을 알 수 없고 때로는 상처를 입힐지언정. 다른 존재와 접촉하고 사랑하고 그러면서 삶을 버텼던 여자와 남자는 이제 혼자서 숨 쉬는 법을 배워 간다. 삶을 홀로 견디는 법을 익혀 간다. 더 이상 맞닿을 살갗과 느낄 온기가 없다는 사실은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삶 쪽으로 한 발짝 두 발짝 느리지만 지긋하게 다가가는 발걸음을 지탱하는 건 이제는 없는 존재들이 손끝에, 온몸에 남겨 둔 온기와 감촉이다.

■ 되풀이되고 변주되는 삶
「토카타」는 4악장의 음악 같은 구조로 흘러간다. 자유로운 음형으로 흘러가면서도 다채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기악곡 토카타처럼,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흘러가다 이따금 겹쳐지며 독특한 화음을 만들어 낸다. 함께 실린 무용극 「마디와 매듭」 역시 리듬감 있는 음악처럼 흘러가며 이십사절기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코끝에서부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절기를 떠올린다. 찬바람 사이로 봄기운이 스며들 때, 앙상했던 가지 끝에 연두색 눈이 나기 시작할 때, 해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때. 「마디와 매듭」은 이렇게 느리지만 한결같은 속도로 흐르며 반복되는 절기를 기록한다. 이 절기의 노래는 자연의 리듬에 조응하는 몸 안의 감각을 일깨운다. 어느 계절에 우리의 삶을 마디 지었던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오르게 한다. 순환하는 절기와 함께 되풀이되고 또 변주되는 삶의 면면은 애틋하고 또 기특하다.
저자

배삼식

저자:배삼식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극작과전문사과정을마치고현재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교수로재직중이다.1998년「하얀동그라미」로데뷔했다.2003년극단미추의전속작가이자대표작가로활동하며「삼국지」,「마포황부자」,「쾌걸박씨」등의마당극과뮤지컬「정글이야기」(창작),「허삼관매혈기」(각색)를비롯해「최승희」(창작),「벽속의요정」(각색),「열하일기만보」(창작),「거트루드」(창작),「은세계」(창작)등다수의작품을만들었다.이후「하얀앵두」(창작),「피맛골연가」(창작),「3월의눈」(창작),「벌」(창작)등왕성한작품을선보이며우리시대를대표하는극작가로자리매김했다.2007년「열하일기만보」로대산문학상과동아연극상희곡상을,2008년「거트루드」로김상열연극상을,2009년「하얀앵두」로동아연극상희곡상을,2015년「먼데서오는여자」로차범석희곡상을,2017년「1945」로‘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올해의작품상을수상했다.저서로『배삼식희곡집』과『1945』,『화전가』,『3월의눈』이있다.

목차


토카타7
마디와매듭61
추천의글135

출판사 서평


극작가배삼식의신작희곡집『토카타』가민음사에서출간되었다.각각2023년,2022년에극을올린「토카타」와「마디와매듭」이실렸다.‘토카타’는이탈리아어로‘손을대다’,‘접촉하다’라는뜻을지닌‘토카레(Toccare)’에서유래한단어다.배삼식은모든접촉이차단됐던팬데믹의어느날산책길에서이작품을구상했다고한다.어느때보다타인의온기가절실한시기에떠오른“때로위험한것이자가장오래된감각”으로서접촉에대한이야기다.『토카타』는배우손숙의데뷔60주년을기념하는작품이기도하다.손숙은아름다운젊은날부터남편과키우던개를먼저보내고쓸쓸하게혼자남기까지,지나온인생을회고하는노년의여자역할을자기인생을돌아보며연기했다.
홀로남겨진노년의여자,병에걸린중년남자의이야기이지만『토카타』는고독하고쓸쓸한모두에게가닿는다.팬데믹시기를지나며알게되었듯누구에게든언제든고독은찾아온다.연출을맡은손진책의말대로『토카타』는“누구와도접촉할수없는상태,누구도나를어루만져주지않는상황의고독”을표현한다.이같은극한의고독을연기한배우손숙이정의하는이작품은“쓸쓸하게혼자남은마지막,그럼에도계속살아가는이야기”다.『토카타』는무대장치를최소화한대신밀도있는대사로섬세하고깊은감정을표현한다.대사를한줄한줄음미하다보면절절한고독을,“생을탁꺼버리고싶은순간”을끝내견뎌내는생의감각을느낄수있다.

완전히혼자가된외로움

타인과의만남이어느때보다어려웠던시기에쓰인『토카타』에서여자와남자가갈망하는것은접촉,한때닿아있었고만질수있었던이의온기다.여자와남자는홀로남아더이상닿을수없는이를그리워한다.남편이떠난뒤여자의늙은몸을이제누구도만져주지않는다.남편의빈자리를채워주었던,작고꼬물거리던시절부터나이들고병들때까지함께했던개마저떠났다.헤어짐을이겨내는일은더디고,빈집에서의외로움에는좀처럼익숙해지지않는다.여자의이야기와평행하게흘러가는또다른이야기의화자는코마상태에빠진남자다.사랑했던여자를처음만난순간에서시작된남자의회상은병든여자가마지막숨을거두던순간까지,병든채로홀로남은날까지이어진다.적막과고독속에서남자는이제혼자서숨쉬는법을배워야한다는사실을절절하게깨닫는다.

접촉의기억에서피어나는생의기운

접촉은위험하면서도급진적인감각이다.인연은접촉으로돌연히시작되고,접촉으로나의경계를넘어설만큼깊어진다.외로움과그리움은접촉의기억과함께생생해진다.처음만나던날,남자는눈앞에있는여자의매끈한머리카락을자기도모르게만지고만다.뒤돌아본여자는펄쩍뛰며화를내지만,두사람은어느새더자주,더깊게서로와접촉하기를갈망한다.자신을잃어버릴때까지열렬하게서로를만지며발견해간다.손녀가데려온강아지를여자는처음에반기지않지만,강아지가자신의발위에턱을기대고그보드라운털을느낄때,여자와강아지는헤어질수없게된다.서로끝내속을알수없고때로는상처를입힐지언정.다른존재와접촉하고사랑하고그러면서삶을버텼던여자와남자는이제혼자서숨쉬는법을배워간다.삶을홀로견디는법을익혀간다.더이상맞닿을살갗과느낄온기가없다는사실은그리움을증폭시킨다.하지만삶쪽으로한발짝두발짝느리지만지긋하게다가가는발걸음을지탱하는건이제는없는존재들이손끝에,온몸에남겨둔온기와감촉이다.

되풀이되고변주되는삶

「토카타」는4악장의음악같은구조로흘러간다.자유로운음형으로흘러가면서도다채로운화음을만들어내는기악곡토카타처럼,여자와남자의이야기가독립적으로흘러가다이따금겹쳐지며독특한화음을만들어낸다.함께실린무용극「마디와매듭」역시리듬감있는음악처럼흘러가며이십사절기의풍경을펼쳐놓는다.코끝에서부터계절의변화를느끼면서우리는자연스레절기를떠올린다.찬바람사이로봄기운이스며들때,앙상했던가지끝에연두색눈이나기시작할때,해가머무는시간이길어질때.「마디와매듭」은이렇게느리지만한결같은속도로흐르며반복되는절기를기록한다.이절기의노래는자연의리듬에조응하는몸안의감각을일깨운다.어느계절에우리의삶을마디지었던사람들의얼굴들을떠오르게한다.순환하는절기와함께되풀이되고또변주되는삶의면면은애틋하고또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