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암시민 살아진다 -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312

살암시민 살아진다 -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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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2년 계간 《시와문화》 여름호 시인 추천 신인상과 202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안시표 시인이 2024년 제주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하여
《실천문학》에서 첫 시집 「살암시민 살아진다」를 출간했다. 이 시집은 4부로서 총 54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제주도 애월읍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주에서 성장한 시인답게 대부분의 시편들은 제주도인으로서의 토속적인 삶과 역사와 자연 풍광을 그리고 있다. 「수잠에 저물어 가는 집」, 「아버지의 방」, 「풍경, 「물은 물길을 안다」, 「속슴허라」, 「양, 양!」, 「산지 등대」, 「민들레 오름」, 「다락빌레의 소로 간 소」, 「할아버지의 바다」, 「서쪽」 등 1부에서 3부에 실려 있는 시편들이 그 대표적인 시들이다. 또 「안마도」, 「밀봉된 사직서」, 「현장 실정 보고」, 「7월의 착수계」 등의 시편은 현재 근무 중인 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 항만 현장에서의 체험을 잘 살린 시들로써 4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들 속에는 시인의 가족사와 더불어 시인의 자아의식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 한 편의 시집으로 아우르면서 웅숭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또한, 시적 언어를 다루는 기교도 ‘보따리 항만 기술자’이자 늦깎이 ‘초짜 시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 수려하다.

저자

안시표

저자:안시표
제주도애월읍고내리에서태어나조선대학교를졸업했다.2022년계간《시와문화》여름호시인추천신인상과2023년《무등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4년제주문화재단예술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현재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항만현장에서근무중이다.

목차

제1부
개오리나무
산골나비
붉은담쟁이
아기밴돌
바다를우렸더니파랑
맨드라미당신
자리물회
햇무리
나무혼자
슬픔의밀착
낯선식사
빗소리를듣는가을
어머니의입동
나카스강에흰눈이녹는다

제2부
화포해변에서
섣달그믐
첫눈
겨울나무
속슴허라
붉은안부
물오름에안개가
능소화
압록에서
바람꽃
문득발목
무인도
나팔꽃
문어

제3부
너는나다
수잠에저물어가는집
아버지의방
풍경
물은물길을안다
등불을켜는시간
양,양!
산지등대
민들레오름
다락빌레의소로간소
서쪽
고사리장마
할아버지의바다

제4부
안마도
다시안마도
갯벌을말리며
파동은물결처럼사라진다
해당화
소리의정원
버텀애쉬1
버텀애쉬2
순환골재
밀봉된사직서
현장실정보고
최차장
7월의착수계

발문조성국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초짜‘제주시인’이자보따리‘항만기술자’의첫시집-『살암시민살아진다』

1.
안시표시인은지금뭍(율촌앞마다)으로나와살지만,섬나라탐라사람이자타고난시인이다.그는문학을전공하지도않은토목공학도(토목기사1급)로서평생을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서항만현장에서살아왔고지금도근무중이다.그‘보따리항만기술자’가지천명도한참지난‘어느날고향한줄우연히펼쳐놓고신춘시인이란’‘초짜시인타이틀을얻’어시인이되었다.그런데이시집의시를보면시인의말은겸손으로보인다.어찌보면시인자신은겸손의예로서말하는것이아니라진정으로‘나는시에대해서배운것도없고아는것도없는데우연히고향얘기한줄풀어놓았는데신춘시인이란타이틀을얻었다’고말하는지모르겠지만독자의입장에서보면이말은분명거짓말로들린다.

뭍으로나와있는나는제주사람

어느날고향한줄우연히펼쳐놓고
신춘시인이란타이틀을얻었다

어떻게하면시가올까요

제주작가회의가입원서를내고
외조부님4·3유족보상금신청을하고
나는시간에쫓겨공항으로간다

공항에도착하자마자걸려온전화한통
선생님뭍으로가지마시고제주로직장을옮기면안되나요?

순간순간지나온모든기억이
여기율촌앞바다뻘밭으로자꾸만빠진다
당장버려지는것같은그런순간순간이
원하던대화에서찾아오는웃음뒤의여백은
종이한장묻어있을선잠뿐인데
오늘이과거를부정하는의미로
잠의실체를찾고있다면
나는거짓이다

(중략)
-「물은물길을안다」부분

(중략)

나는보따리항만기술자인데요
왜산으로뒤뚱뒤뚱걸어왔을까요
바다를버리고작은솔방울을버리고
버릴게하나더있나주변을살펴봤어요

어!하나있네요
엊그제초짜시인타이틀을얻었는데요
천만다행입니다
개미등에올라저먼곳을바라보는개오리나무
헐벗은갈색을오래감추고변명하는사기꾼같아좋았어요

(중략)-「개오리나무」부분

왜시인의말이거짓말인지살펴보기로하자.
‘말랑말랑한연둣빛허공을움켜쥔바다~’,‘한뭉텅이맨드라미빛비명~’,‘쓸쓸해진다는건고요가부풀어진다는것’,‘풀려버린입술을식탁에올려놓고’,‘석양의온기에바람을올려놓고’,‘겨울심장에둥지를튼텃새처럼붉은부리로하늘을쪼아대는기억’,‘차분해진다는건옷을벗고맨살을만져보는것~’,‘산은이미숲을체념한듯색을내려놓고싸늘히식어간다’,‘문열면불빛에매달린고독에떠밀려’,‘내안에고이는바람이나만지작거리다가~’,‘숨이찬해변은파도를뱉어내고’,‘남은생을당신으로앓아누워도되겠는지요?’,‘~새벽을묶는다’등의표현은20대젊은감수성의시인이라고착각할정도로시적언어를다루는기교가현란수려하다.또한,시인은한국어의장점인의성어나의태어를잘살려써서시의수준을한층끌어올리고있다.다음의‘울음이말랑말랑해질때까지’,‘자박자박들린다’.‘사각사각베어물다’,‘잘근잘근대는소리를씹으며’,‘삐걱삐걱거룻배기지개켜는아침~’등을읽으면어찌이시인을이제껏문학과동떨어진‘보따리항만기술자’이자늦깎이‘초짜시인’이라고하겠는가?시인의말대로특별한시창작공부나습작없이그냥한번써봤더니이런시가탄생했다고한다면타고난시인이라고아니할수없다.시인은시가은유의언어예술이란것을태생적으로알고있었단말이니까.물론좋은시가현란한기교만으로창작되는것은아니다.그러나시문학이언어예술인이상언어를다루는뛰어난기교는시인으로서큰자산임이분명하리라본다.
이밖에시인의개인사나자아의식들이군데군데녹아들어있는시편들로는「나무혼자」,「슬픔의밀착」,「빗소리를듣는가을」,「화포해변에서」,「첫눈」,「능소화」,「문득바람」,「너는나다」이있다.또이시집의각부마다시인은자신의가족들을그리는시를형상화하고있다.「어머니의입동」,「아버지의방」,「할아버지의바다」,「소리의정원」(아내)이그대표적인시편들이다.

2.
시인은고내봉(172.8m)때문에한라산이가려진제주서쪽마을(고내리)토박이시인답게제주의풍광과제주인의삶을독자들에게조곤조곤들려주고있다.그런대표시로이시집에서편집부가가장눈여겨본시편이「다락빌레의소沼로간소牛」이다.시인의뜻을좇아평범한교훈투의약간애매하게다가오는『살암시민살아진다』로이시집의제목을최종양보했지만,편집부에서는이시의제목을이시집의제목으로추천하기도했었다.이유는제주도의과거와현재를잘표현하고있는시의내용(다락빌레벼랑과소沼,송아지,큰어머니,벼랑파도,수초,진흙물뱀,장수풍뎅이,황소의발굽소리,버들막대,신작로,다락쉼터표지석)뿐만아니라제목자체에도제주도의토속어와함께음은같지만,뜻은다른(同音異義)한자인소(沼)와순우리말인소(牛)를언어유희적으로구사해재치도돋보였기때문에제주시인의정체성과호기심을동시에독자들에게주는데부족함이없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7080세대들이라면제주도가아닌뭍에서도소를먹이다가낭떠러지에서굴러죽은소의사연하나정도는간직하고있을것이다.또동구밖으슥하고굽이진산기슭의도깨비불이날아다닌다는애장터로소먹이소를찾으러갔거나나무를하러갔을때의오싹했던기억들또한간직하고있을것이다.물론그곳은지금도그대로방치되어있거나아니면제주도처럼개발된곳은신작로가깔려아스팔트위로불빛을밝힌자동차바퀴가지나갈것이다.그러나시인은신작로가들어선지금도비가오는밤에교통사고가나서안전띠를맨아이들만숨이멎었다며,현재와이어져있음을민담을전하듯「아기밴돌」에서들려주고있다.

섬노을이바다를펼치면다락빌레벼랑속으로
거친숨결하나,하늘로간소沼에소가있었지

도시의아파트한채처럼송아지를분양받은큰어머니
차양넓은햇살이작은어깨에내려앉아
들판의하루가감투로숨차오를때
다락빌레한가운데소沼의잘근잘근대는소리에잠시쉬어가고는했지

하양떠밀려오는벼랑파도소리가
무성한파동을이끌고수초의혼을빼놓을때
개구리숨죽이며알낳은소리,공기방울로터져나오고
진흙물뱀꼬리는바람의온기를감추며저물어갔지
어디선가장수풍뎅이물가에지문찍듯소沼지천을쿵쿵울리며
소의발굽소리다가올적,겁없이손에쥐어진버들막대하나
물가에비친늙은호박같은엉덩짝을찰싹내리치고는했어

목을축이는소의울음곁,하얀목덜미를씻는큰어머니의환한하루가

이렇듯흘러가는어진눈매에
느려도천리를가는황소의콧김으로
점점소沼와뜨겁게맞닿던어느여름날이었어

꿈결소沼에비친낮달을사각사각베어물다
생이가래속으로툭떨어진이빨을찾으려손을집어넣던딸애
간질대는물뱀에울면서깨어난다락빌레엔
종일비가내렸고
웃자란풀을쫓다벼랑아래로큰어머니의황소는별안간떨어졌지

바다는굵어지는빗소리에큰어머니상혼喪魂의궁핍을남기고
그해,무른콜타르감정이다락빌레소沼를자르니
쭈욱뻗어나간신작로에소금핀마른눈물만번져갔어

서쪽돌염전따라빌레의명치끝을밟으면다락쉼터표지석을만날수있어
바람부는날이곳에서면수평선너머로간큰어머니의황소가
아직도소沼의잘근잘근대는소리를씹으며
바다로터져나간신음을삼키는것같아먹먹해지고는해
-「다락빌레의소沼로간소」전문

제주서쪽굽이진자리에고내리마을이정표가있지요소낭밭동쪽어구한길이잘려나간귀퉁이에요옛날옛적마을사람들은도채비불이자주날아다닌다고했는데여기가그곳인가봐요지금은자동차불빛만굽이굽이흘러가는데요가끔딱딱한울음소리때문에아스팔트불빛은자주미끄러지고혹여비가오는밤이면소리들이모여앉아달리던바퀴들을급제동시켜요어느해이곳에서큰사고가났는데안전벨트를맨아이들만숨이멎었대요(중략)
-「아기밴돌」부분

3.
이시집에서그리고있는소재중의하나가제주도의역사성이다.지금제주도의역사라고하면저고대의탐라국이나삼성혈의전설보다는근세사인4.3이가장먼저떠오른다.역시시인은섬사람들은대놓고안부를묻지않고,잃어버린계절을견디어낸민들레안부가저희들끼리피어난목숨이고,살아남은민들레자손임을알고그렇게제주의4월을「양,양!」,「민들레오름」,「고사리장마」,「속슴허라」등에서안개를풀어비를내리듯비유로시화하고있어독자들의가슴에은은히젖어들게한다..

남도섬사람들은말이참짧아서누군가를부를때면양,양!하고부른다말을할때마다멈칫멈칫하는게낯선사람을보고뭘숨기는것같기도하고봐봐길을걷다지명을물으면나이지긋한이들도위아래를찬찬히훑어보며한참뜸을들인다아무리생각해봐도알수없어서어머니께여쭤보니속슴허래그냥그렇게살래히어뜩이헌소리할거면갯갓디나가보라고파도가왜돌멩이를그렇게때리는지그래도소란없이잠잠해지는바당을보라고섬에서부는바람은안다고그렇게삭풍은어머니가슴을붙잡고우는거래누가묻더라도쉬이대답하지말고되도록짧게,짧게말하라고
바깥의소란을거부하는환해장성의외로움을당신은아느냐고?숨막힌4.3세월이끝난거냐고?

되려묻다가,묻다가사월살바람붙잡고양,양!

서릿바람에동백꽃곱게피어도양,양!
-「양,양!」전문

(중략)섬사람들은대놓고안부를묻지않는다왜민둥오름마다민들레가터를잡았는지달빛을품을수만있다면오름분화구마다조각달을채워놓고어둠에퉁퉁부어오른달빛으로틈과틈을맞댄산담의비애를긁어내는지밤마다돌빛에흘린지아비눈물과눈물을머금은지어미무덤에도잃어버린계절을견디어낸민들레안부가저희들끼리피어난목숨인것을안다바닷바람에게뭍의소식을전해듣는섬에서는사월이면어지럼증에몸살을앓고오름꼭지마다부푼달빛을찾아가는나는살아남은민들레자손이다
(중략)민들레오름은민들레로꽃피어다시일어선다
-「민들레오름」

다랑쉬들녘에비가내린다

산줄기에매달린오름과오름마다
4월은안개를풀어비는내린다

(중략)

누가볼까봐
땅속깊이박힌푸석한무음無音들
돌아오지않는인기척을기다리며

제주의봄은빛보다먼저휘휘했던소문처럼
대지를훔치며내린다

아무도모르게,알아도모른척,

고사리손으로다랑쉬오름머리채를곱게빗겨내며
가만가만고여있는눈물
사라진월랑동돌기까지닦아내린다

안개가걷히는순간
제주의4월은
가시덤불속외고사리표정으로젖는다
-「고사리장마」부분

4.
편집부에서는제주도의시만모아한편의시집을출간하고섬밖뭍을소재로한시는제2시집으로엮기를바랬지만시가부족해서4부는뭍의시로엮어약간의아쉬움이있었다.그런데,출간직후시인으로부터<해양과문학>에공모한"버텀애쉬"시편이장려상을수상했다는소식을전해왔다.상복이많은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