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 새소설 15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 새소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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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피하고 싶은, 그러나 엄존하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소설가”(제9회 김현문학패 심사평) 김이설의 신작 소설이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 열다섯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김이설은 2006년 등단 이후 18년간 꾸준히 소설집, 경장편소설을 발표하며 명실상부한 한국문학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2009년 동인문학상 본심에 오른 『나쁜 피』를 비롯해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등의 작품을 통해 ‘여성’과 ‘가족’에 대해 질문해온 그가 이번에는 ‘난주’ ‘미경’ ‘정은’이라는 세 친구의 이야기로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 풀어놓는다.
누구에게나 있던 청춘, 이십대를 지나 ‘요실금과 고혈압과 탈모와 우울증’을 겪는 오십대가 된 ‘X세대’ ‘수능 0세대’의 이야기.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는 그들이 남겨온 발자취를 따라 그때의 나,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소회의 기록이다.

저자

김이설

저자:김이설
소설집『아무도말하지않는것들』『오늘처럼고요히』『누구도울지않는밤』,연작소설집『잃어버린이름에게』,경장편소설『나쁜피』『환영』『선화』『우리의정류장과필사의밤』을펴냈다.제1회황순원신진문학상,제3회젊은작가상,제9회김현문학패를수상했다.

목차

10월의밤
십진분류표
미경의강릉
정은의강릉
난주의강릉
밤바다
우리가안도하는사이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나이가한참늙느라바쁜나이래.”

우리를쌓아온한시절과
우리가쌓아갈한시절이마주하는사이

마흔아홉‘난주’‘미경’‘정은’은강릉으로여행을떠난다.갓스물넷이되어떠났던때로부터25년만이다.오랜만에본얼굴에낯선것도잠시,금세서로의얼굴을어루만지고안부를묻는다.비록지금은오십을코앞에둔,나이듦이익숙한마흔아홉이지만이들에게도눈부신청춘이있었다.X세대,신세대,수능0세대.한때이들을가리키던말은그런것이었다.싱그럽고통통튀고정의할수없는젊음,그자체로예쁘지만“그냥이십대인것만으로힘든”이십대.하지만25년이지난지금,이들은이제“요실금과고혈압과탈모와우울증”을겪는오십대를앞두고있다.
오랜친구지만자주보지는못했다.각자사느라,하루하루살아가는데최선을다했다.그러다보니25년이흘렀다.오랜만에만난친구들은그새변해있었다.살이찌고,나이가들었다.사는거리가먼만큼이나마음도멀어진때였다.매년가을만되면함께여행을가자는말이나왔다.어느해는미경이,어느해는정은이,또어느해는난주가말을꺼냈다.여행지도매년달랐다.제주도나남해,군산처럼관광지이기도했고서울에서호캉스를하자고도했다.올해는난주였다.늘그렇듯말만꺼내고가지못할게뻔했다.특히혼자노모를모시는미경은하루시간빼는것도쉽지않다.모두속으로는올해도여행은어려울거라생각하는데,불쑥미경이“가자!”하고말을꺼낸다.그렇게이들의여행이시작된다.

“미경이이번여행을주저했던건엄마때문이아니라강릉이어서였다.강릉은난주와정은에게말하지못한,미경의한시절이켜켜이쌓인곳이었다.미경은강릉이라는말에성희언니를떠올렸다.한때사랑했던사람.돌아오겠다고했지만결국다시남편에게가버린사람.강릉에살았던사람.얼마전에세상을떠난사람.”(42쪽)

미경에게강릉은자신의“한시절이켜켜이쌓인곳”이었다.미경은삼십대,사십대가될때는얼마간의기대가있었다.어서늙어버리고싶다는생각도했다.그러나오십대를앞두고는그런마음이들지않았다.자꾸지난생을되돌아보게됐다.아마도성희언니때문일지도모른다.성희언니에대해서는난주와정은에게도말하지못했다.미경보다네살이많으니까이제쉰세살이었다.미경이아직경험해보지못한나이,그래서미경은곧오십대가되는자신이상상되지않았다.

“정은이막연히떠올린오십대는모두등산복을입고있었다.아무데서나큰소리로떠들고,빈자리가나면어떻게든먼저앉으려고엉덩이부터들이밀고,화장실에들어가기전부터바지지퍼를내리는사람들.그들과똑닮아버린자신이새삼스럽게혐오스러웠다.쪽팔렸고울적했다.연륜과경력이쌓인,현명하고우아한시니어는영화속에서나볼수있는이미지였다.”(72쪽)

정은은가족의아침식사를차리고,낮에는학교급식실에서,밤에는이자카야에서설거지를한다.중간에집에와아이저녁을차려주기까지하면“죽고싶다는생각할틈”도없이바쁘다.그렇게일해도빚은계속쌓인다.난주가강릉에가자고했을때선뜻응했던건도망치고싶은마음때문이었는지도모른다.나이가든다는건늙는것과다른거라는사실을알아서,자신이나이가든게아니라늙었다는것을절감했기때문이었다.

“자기이름을부르는정은과미경의목소리를듣자그냥엉망이돼버리고싶었다.젖은발을말려원래의상태로되돌리는것보다차라리다망쳐버리는것이훨씬쉽기때문이었을까.발목을적시고,종아리와허벅지를차례대로바닷물에담그면서난주는묘한안도감이들었다.”(135쪽)

난주에게강릉은정은,미경과함께여행을떠난곳이기도했지만,도망친곳이기도했다.25년만에셋이함께온강릉에서난주는차가운강릉바닷속으로걸어들어갔다.끊임없이옛날이야기를하고미친듯이웃다가갑자기,말릴틈도없이,어느새벌어진일이었다.처음에는실수였다.그때만해도되돌릴수있었다.그런데“원래의상태로되돌리는것보다차라리다망쳐버리”고싶어졌다.


그러나오늘도살아가야한다는것

오로지진심으로발라낸안도의순간
찰나로영원할우리의이야기

‘난주’‘미경’‘정은’은소위말하는‘인스타감성’의펜션을잡고,잔뜩먹고마시며여행을즐긴다.강릉에서유명하다는순두부,장칼국수를먹고,허난설헌의생가도가고,커피도여섯잔씩시켜나눠마시고,무엇보다질리도록술을마신다.“또이렇게셋이모이는날이없을”거라는듯최선을다해즐긴다.
25년은짧은시간이아니다.그간다른삶을,각자의삶을살아왔기에부딪치는구석도많다.기혼인난주,정은과미혼인미경은서로이해할수있는부분에한계가있고,투잡을하며생활고에시달리는정은과상대적으로부유한삶을사는전업주부인난주는자주투덕거린다.이들이싸움을푸는방식은간단하다.기분좋게마시고,웃고,푼다.술한잔에이야기를털어놓고나누다보면당장해결되는것이없더라도괜찮다.이들의여행또한술한잔과같다.앞으로또똑같은삶이연속되더라도버틸수있는잠시의안도,찰나의틈이바로여행인것이다.

『우리가안도하는사이』는누구에게나있던청춘,이십대를지나‘요실금과고혈압과탈모와우울증’을겪는오십대가된‘X세대’‘수능0세대’의이야기다.지금에야먼과거의일처럼여기지만,그때의1975년생이란학생운동을하고,데이트를하다김일성이죽었다는호외를받고,IMF를온몸으로겪고,삼풍백화점붕괴사고로남자친구가가족을잃는것을지켜본바로그이십대였다.그런이들이오십대를앞두고강릉으로여행을떠난다.
서로는몰랐지만강릉은각자의추억이서린곳이었다.아팠고,행복했고,잊고싶었던기억위로이번여행이씌워진다.일생에비하면짧은삼사일의기억이지만때로는이런기억하나가앞으로살아가는힘이되어주기도한다.잠시의기억이,잠깐의웃음이평생을살게한다.
정은은오십대를“아무데서나큰소리로떠들고,빈자리가나면어떻게든먼저앉으려고엉덩이부터들이밀고,화장실에들어가기전에바지지퍼를내리는사람들”이라고,그리고자신을“그들과똑닮아버”렸다고하지만,오십대는그런나이가아니다.나이듦에익숙해지고늙어감을받아들이는나이,성숙을지나완숙에다다르는나이.『우리가안도하는사이』는그들이남겨온발자취를따라그때의나,지금의우리에게전하는소회의기록이다.

“미경은끝을내지못했던학생운동과이뤄질수없었던성희언니와의관계를,정은은일도연애도제대로해내지못하는자신이세상의패자가된기분에빠졌던나날을,난주는두아이를키우느라세상이어떻게돌아가는지모른채아줌마로전락해버렸던시절을떠올렸다.셋은제각기고개를끄덕였다.이상하게취하지않는밤이었다.”(197쪽)

‘새소설’은지금한국문학의가장참신하고첨예한
작가들의시선을담는소설시리즈입니다.
읽는즐거움을누릴수있는젊고새로운작품을소개합니다.

작가의말

난주와정은,미경의3박4일의여정에여러분들을초대합니다.
소설의배경은가을이지만,그계절이봄이어도,여름이어도,또한겨울이어도
기꺼운마음으로함께떠났으면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