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 문학동네 시인선 111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 문학동네 시인선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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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랑일까 사랑이 일까”
마음에 묻어나는 투명한 얼룩들
문학동네시인선 111번째 시집으로 이현호 시인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를 펴낸다. 2007년 『현대시』로 등단, 2014년 첫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이후 사 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시집이다. 극도로 예민하고도 섬세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때로는 미어질 만큼 슬프고 때로는 아릴 만큼 달콤한 시를 선보여온 이현호. “너는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다”라는 그의 첫 시집 속 한 문장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고유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주요한 한 문장이자, 바로 이현호 시를 설명할 결정적인 한 문장이기도 하겠다.
이번 시집은 총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지난 시절의 아날로그를 떠올리게도 하는 ‘Side A’ 그리고 ‘Side B’라는 구성. 그래서일까? 이번에 선보이는 그의 신작 시집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LP의 음색처럼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또한 원하는 곡으로 바로바로 넘어갈 수 없는 카세트테이프처럼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해주길 바라는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하다. 총 60편의 시, 60개의 곡으로 구성된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는 지난날과 지날 날에 대한 궤적이 빼곡히 기록된(record) 하나의 음반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오늘은 슬픔과 놀아주어야겠다”(「말은 말에게 가려고」)는 구절에서, “슬프다는 한마디, 그 속에 벌써 우리가 산다”(「문장 강화」)는 말에서, “울음은 울음답고 사랑은 사랑답고 싶었는데/ 삶은 어느 날에도 삶적이었을 뿐”(「아무도 아무를 부르지 않았다」)이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시인 특유의 멜랑콜리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시편이 물기와 회한을 머금고 이어진다. 사랑과 사람과 삶에 대한 그리움, “분명 살아 있는데 자꾸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염리동 98-13번지」)곤 하는 갈망, 스쳐가거나 떨어져내리거나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자의 노스탤지어. 시인은 시로 쓰여진 노스탤지어 속에서 다시 한번 살고, 노스탤지어가 될 것만 같은 순간을 예감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지어 건넨다.

좁은 골목까지 들지 못하는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습관처럼 손을 잡고 걸었다. 삼천오백원어치만큼 하늘이 밝아 있었다. 슬픔을 화폐로 쓰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는 거기서 억만장자일 거야. 반지하방에서 옥탑방을 거쳐 볕이 고만고만 드는 이층집으로 옮겨 앉는 동안 당신도 슬픔에 대해 몇 마디 농담쯤은 할 수 있게 되었다.
_「만하(晩夏)」 부분

두 남녀가 손가락을 걸고 걷는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사랑에 대해 아무 말 못해요
당신이 없었으면 나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어요
그런데 당신을 말하려고 하면
손끝만 닿아도 스륵 풀려버릴 것 같은 매듭들
_「투명」 부분


비문(非文)에서 비문(碑文)으로
비문(悲文)에서 비문(秘文)까지

몇 번을 고쳐 써서 겨우 나의 마음을 표현한 문장이 문법에 어긋나는 비문의 형태로만 적힐 때, 그리하여 사랑하는 상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 그때의 절망과 비참을 어떤 이는 “나는 나를 생활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_김나영(문학평론가), 해설 「투명하게 얼룩진 말」에서

이현호의 시를 이야기할 때 비문을 빼고 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나를 생활했다”라거나 “나는 너를 좋아진다”(「말은 말에게 가려고」)와 같은 문장, “나는 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명화 극장」) 같은 비문들. “오래 들여다보아도 손댈 수 없는 비문만이 남을 때”(「나라는 시간」), “침묵이라는 비문(非文)과 침묵이라는 귀신들의 회화(會話)”(「눈[目]의 말」)와 같은 구절을 곰곰 되짚어보면, 시인에게 비문은 그저 수사의 한 방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삶의 태도이자 불가능한 글쓰기의 한 방식임을 알 수 있다.
“매 순간 새로 쓰는 유언”(「마음에 내리는 마음」), “서로의 눈동자 가만가만 들여다보며 거기 쓰인 비밀한 밤의 문장들”(「눈[目]의 말」)에 귀기울이며 시편을 읽어나가는 어느 순간, 비문(非文)으로밖에 쓰일 수 없는 문장은 시인이 남기고자 하는 단 하나의 문장일 비문(碑文)임을, 비문(悲文)으로밖에 쓰일 수밖에 없는 사랑의 기억은 시인의 극도로 내밀한 문장으로 출발했지만,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비문(秘文)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현호는, 이현호의 시는 우리가 읽을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 될 것이다.
저자

이현호

1983년충남전의에서태어났다.2007년[현대시]를통해등단했으며,시집『라이터좀빌립시다』,『아름다웠던사람의이름은혼자』등을펴냈다.대부분의시간을방에서고양이두마리와지낸다.누가누가더오래누워있나내기라도하는듯이.

목차

시인의말

SideA

양들의침묵
배교
말은말에게가려고
음악은당신을듣다가우는일이잦았다
너는나의나라
나라는시간
가정교육
분명
ㅁㅇ
폐문
수란

직유법
아무도아무도를부르지않았다
과일과
밤은거짓말처럼조용하고
나무그림자점
보통의표정
만하(晩夏)
명화극장
자취
모르는사람
문장강화
.
염리동98-13번지
확진
첫사랑에대한소고
마라톤
낙화유수(落花流水)
오늘밤이세상마지막이라도

SideB

청진(聽診)
캐치볼
반려
태풍속에서
동물소묘
졸업
살아있는무대
있다
필경사들
빈방있습니까
검은봉지의마음
꽃매미울적에
나의초상
괄호의나라
친구들
나의투쟁
개벚나무아래서
밤마음
국지성호우
저녁에
투명
악마인가슬픔인가
비포장도로
겨울학교
눈[目]의말
울게하소서,그리하여
아주조금의감정
마음에내리는마음
식물의꿈


해설|투명하게얼룩진말
|김나영(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비문(非文)에서비문(碑文)으로
비문(悲文)에서비문(秘文)까지

몇번을고쳐써서겨우나의마음을표현한문장이문법에어긋나는비문의형태로만적힐때,그리하여사랑하는상대뿐만아니라누구에게도그의미를명확하게전달하지못할때,그때의절망과비참을어떤이는“나는나를생활했다”라고표현하기도한다.
_김나영(문학평론가),해설「투명하게얼룩진말」에서

이현호의시를이야기할때비문을빼고말하기란불가능에가깝다.“나는나를생활했다”라거나“나는너를좋아진다”(「말은말에게가려고」)와같은문장,“나는미래를기억하고있었다”(「명화극장」)같은비문들.“오래들여다보아도손댈수없는비문만이남을때”(「나라는시간」),“침묵이라는비문(非文)과침묵이라는귀신들의회화(會話)”(「눈[目]의말」)와같은구절을곰곰되짚어보면,시인에게비문은그저수사의한방법으로그치는것이아닌삶의태도이자불가능한글쓰기의한방식임을알수있다.
“매순간새로쓰는유언”(「마음에내리는마음」),“서로의눈동자가만가만들여다보며거기쓰인비밀한밤의문장들”(「눈[目]의말」)에귀기울이며시편을읽어나가는어느순간,비문(非文)으로밖에쓰일수없는문장은시인이남기고자하는단하나의문장일비문(碑文)임을,비문(悲文)으로밖에쓰일수밖에없는사랑의기억은시인의극도로내밀한문장으로출발했지만,그가우리에게건네는비문(秘文)이었음을알게될것이다.이현호는,이현호의시는우리가읽을가장아름다운구절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