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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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하

저자:김영하
1995년계간『리뷰』에「거울에대한명상」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살인자의기억법』『너의목소리가들려』『퀴즈쇼』『빛의제국』『검은꽃』『아랑은왜』『나는나를파괴할권리가있다』,소설집『오직두사람』『무슨일이일어났는지는아무도』『오빠가돌아왔다』『엘리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호출』,산문집삼부작『보다』『말하다』『읽다』등이있다.F.스콧피츠제럴드의『위대한개츠비』를번역했다.문학동네작가상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만해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김유정문학상오영수문학상등을수상했다.그의작품들은현재미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네덜란드터키등해외각국에서활발하게번역출간되고있다.

목차

추방과멀미
상처를몽땅흡수한물건들로부터달아나기
오직현재
여행하는인간,호모비아토르
알아두면쓸데없는신비한여행
그림자를판사나이
아폴로8호에서보내온사진
노바디의여행
여행으로돌아가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요즘은함께사는개나고양이를‘반려동물’이라고부른다.예전엔‘애완동물’이라고했다.사전은‘애완愛玩’을‘동물이나물품따위를좋아하여가까이두고귀여워하거나즐김’이라고풀이하고있다.‘반려伴侶’는동반자를의미한다.반伴자는짝을뜻하고려侶는벗을뜻한다.지금은반려라는말을많이쓰지만관계는사람마다좀다를것이다.누군가는‘가까이두고귀여워하거나즐’길것이고,누군가는생의동반자로여길것이다.나는두단어다쓰지않는편이다.애완은조금경박하게느껴지고,반려는너무무겁게다가온다.
우리가족이처음기른개는셰퍼드로이름은꾀돌이였다.아버지가전방대대장시절애지중지하던꾀돌이는대대장지프가관사에서수백미터떨어진위병소에접근하기만해도그소리를알아듣고마중을나갈정도로영리했다.그러던꾀돌이는어느날갑자기사라졌다.부대는비상이걸렸고며칠에걸친대대적인수색에도종적이묘연했다.아버지는크게상심했다.세월이흘러아버지는제대를하고서울의한은행에취직을했다.그러던어느날당시부대에서사병으로복무했다는이가우리집을찾아왔다.그의의도를알수없어아버지는조금긴장한것같았다.뭘팔러왔겠지.우리는그렇게생각했던것같다.장교도아닌사병출신이아버지를찾아오는일은매우드물었기때문이다.
왕년의대대장과사병은양주를나누어마셨다.술이몇순배돌자손님이드디어용건을꺼냈다.
“대대장님,죄송합니다.꾀돌이는11중대에서잡아먹었습니다.”
오랜미스터리가풀리고있었다.
“용서해주십시오.저는말렸지만그때는다들배가너무고팠습니다.언젠가꼭말씀드리고싶었습니다.그렇게애타게찾으실줄몰랐습니다.”
서울로올라와서부터는내내아파트에살았기때문에셰퍼드같은대형견은다시키우기어려웠다.대신우리가족은새미라는이름의말티즈암컷을길렀다.애초에개를키우자고한것은동생이었지만아버지가제일예뻐했다.새미는딱한번새끼를보았는데,출산때는내가탯줄을잘랐다.우리는이슬이라는암컷만남기고다른강아지들은주변에분양해주었다.몇년후,암에걸려일어서지도못하던새미를아버지와내가동물병원에데려갔는데,아버지는병원문턱을넘지못하고발길을돌렸다.
“난못들어가겠다.”
내가모든과정을마치고나오자병원밖에서기다리던아버지는새미가잘갔느냐고물었다.
“참못할짓이다.이제이런일,더는못할것같다.”
새미가죽은후이슬이는꽤오래살았다.이슬이까지떠난후,아버지는집이너무휑하다며누군가동물병원에버리고간강아지를입양했다.이번에도말티즈였다.녀석을들인지얼마지나지않아이번에는아버지가먼저세상을등졌다.
결혼한뒤에나도길냥이두마리를집에들였다.방울이는아홉살에죽었다.깐돌이는아직건강하지만열다섯살을넘겼으니오래지않아방울이뒤를따를것이다.인간보다수명이훨씬짧은개와고양이를반려라고생각하면너무애닲다.무슨반려들이이토록자주,먼저떠나는가.
나에게녀석들은반려가아니라여행자에가깝다.새미와이슬이도,방울이와깐돌이도잠시우리집에왔다가떠났거나떠날것이다.긴여행을하다보면짧은구간들을함께하는동행이생긴다.며칠동안함께움직이다가어떤이는먼저떠나고,어떤이는방향이달라다른길로간다.때로는내가먼저귀국하기도한다.그렇게헤어져영영안만나게되는이도있다.인간이든동물이든그렇게모두여행자라고생각하면떠나보내는마음이덜괴롭다.나름대로최선을다해환대했다면,그리고그들로부터신뢰를받았다면그것으로충분하다.
꽤오래전부터여행에대해쓰고싶었다.여행은나에게무엇이었나,무엇이었기에그렇게꾸준히다녔던것인가,인간들은왜여행을하는가,같은질문들을스스로에게던지고답을구하고싶었다.지나온삶을돌아보면,그러니까내가들인시간과노력을기준으로보면,나는그무엇보다우선작가였고,그다음으로는역시여행자였다.글쓰기와여행을가장많이,열심히해왔기때문이다.글쓰기에대해서는쓸기회가많았지만여행은그렇지를못했다.가벼운마음으로시작했는데쓰다보니정말많은것들이기억깊은곳에서딸려올라왔다.
‘여행의이유’를캐다보니삶과글쓰기,타자에대한생각들로이어졌다.여행이내인생이었고,인생이곧여행이었다.우리는모두여행자이며,타인의신뢰와환대를절실히필요로한다.여행에서뿐아니라‘지금,여기’의삶도많은이들의도움덕분에굴러간다.낯선곳에도착한이들을반기고,그들이와있는동안편안하고즐겁게지내다가도록안내하는것,그것이이지구에잠깐머물다떠나는여행자들이서로에게해왔으며앞으로도계속될일이다.
이책에도움을준고마운이름들은일일이열거할수없다.여행에서내가만난모든이들,돈을받았든받지않았든간에,재워주고먹여주고태워준무수한타인들이아니었다면이책을쓰지못했을것이다.그래도특별히고마움을전하고싶은이들은있다.바로긴여행길에서나를참아준동행들이다.가끔은별것아닌일로다투기도하고,날선말로감정을다치기도했지만,그래도함께어딘가를향해걸어가고,아름다운풍경앞에서느낌을공유하고,맛있는음식을나누었던이들,이들이없었더라면여행은그저지루한고역에불과했을것이다.눈을감으면그들의얼굴이하나하나떠오른다.지구에서의남은여정이모두의미있고복되기를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