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 문학동네 시인선 198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 문학동네 시인선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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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서봉

1971년서울출생.2005년『작가세계』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서봉氏의가방』,산문집『있는힘껏당신』이있다.

목차

1부닫히지않는골목
닫히지않는골목/닫히지않는골목―우울상점/닫히지않는골목―性가족공장/닫히지않는골목―모스크바의여름/닫히지않는골목―9/닫히지않는골목―한여름의카니발/닫히지않는골목―붉은집/닫히지않는골목―어린이집에서춤을/닫히지않는골목―O/닫히지않는골목―지도에없는나이/닫히지않는골목―T/닫히지않는골목―측백나무의집/닫히지않는골목―녹번동/닫히지않는골목―142번지/닫히지않는골목―Cul-de-sac/닫히지않는골목―근린분구의일요일

2부발목이없는사람
매일매일매미―돌아오지않을아이들에게/플라시보당신/발목이없는사람/후생들/과잉들/습관들/메모들/아가미/수목한계선/질서들/파한(破閑)/나무호텔/발산하는시/분홍을위한에스키스/생강혹은생각

3부목요일혹은고등어
나비운용법/2월/목요일혹은고등어/목요일혹은고등어,그후/곤(困)/후생들/부기우기(附記雨期)
감정의경제/경계들/결핍들/착각들/강박들/비무장지대/매독을앓는애인/사랑에관한짧은몸살/강점기(强占期)

4부무서운아이스크림
가정동/각성/K의부엌/무서운아이스크림/오후6시의담론/7월의복합/시네도키,詩/있는힘껏/장미/비커/공원학개론/문을위한에스키스/MassStudy/태피스트리/징후들/만일의방/감자먹는사람들

5부2인용식탁
몽공장―길만에게/2인용식탁

해설|팽창하는관념의골목과이형의울음들
이철주(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수요일까지우리가살아남은기적에대해,
그건거의마법에가까운일이었다고의뭉떨게”

수요일과금요일사이,사람과사랑사이
세상의모든낙오된이들에게보내는단단한헌사

긴기다림끝에도착한천서봉신작시집출간!

문학동네시인선198번으로천서봉시인의두번째시집『수요일은어리고금요일은너무늙어』를펴낸다.2005년『작가세계』를통해데뷔할당시“명주실처럼매우여리고섬세하면서도강한견인력”을지닌시적화법과“온유하면서도끈덕진감성의언어를통해입체적으로감각화”한의미를“적요한시적울림으로전하는능력”이돋보인다는극찬을받은시인은그에걸맞은완성도높은시를꾸준히발표하며첫시집『서봉氏의가방』을선보였다.‘가방’은‘당신’의부재로인한상실과그리움에지친시적화자가“영혼”을“재설계”(「납골당신축감리일지」)하기위해“갈비뼈같은도면”(「이상기후」)을넣고다니는물건으로,시인의분신과다름없는상징물이다.시인본인의이름을내건이채로운첫시집은그렇게“삶의자가발전”(문학평론가조강석,해설)을위해안간힘을내는목소리였다.

그로부터십이년,그간치열하게연마한시어로써내려간시예순다섯편을엮은이번시집에서시인은‘닫히지않는골목’연작시를펼쳐보인다.골목은“닫을수도열수도없는”“개방된공간”(문학평론가이철주,해설)으로,“없는것들이없어서있지말아야할것들로가득”한,“시와삶을구분할수없는”(「닫히지않는골목」)장소이다.시적화자의소유품인‘가방’에서‘골목’이라는열린공간으로확장된이러한시선과함께,건축설계사로도일하고있는시인만의건축적인상상력또한흥미롭게표현된다.유년의기억을길어올려그려낸골목에는“재미있는우울”을구하러다니는소녀가있고(「닫히지않는골목?우울상점」),죽은삼촌과이복동생이살며(「닫히지않는골목?性가족공장」),어린남자를집에들이면서동네에소문을만들어내는여자가존재하고(「닫히지않는골목?붉은집」),“고장나도좋을불행의춤을”추는아이들이노닌다(「닫히지않는골목?어린이집에서춤을」).

첫시집이주로‘당신’으로표상되는애인,아버지,어머니,또다른자아와화자‘나’의이자관계에서오는사랑과슬픔의정서를그렸다면,이번시집은이미죽었거나사라진존재인‘발목잃은자’들이여전히골목가어느한편에서살아숨쉬고있는모습을인상적으로형상화한다.

“골목은형이상학적비상을위해그가선택한편리한도구나방법이아니라,부재이후그가견뎌야할감각적삶의부정할수없는실재로서의심연일따름이다.이제자신에게남은일은골목의중력에이끌리는유령들을위해부서진말의파편과얼마쯤은일그러진음성을미온의담요로서가만히덮어주는것뿐이라는듯,천서봉의문장은이‘발목잃은자’들의안녕을향해바쳐진다.”_이철주,해설에서

영혼에관해말할때,우린자주발목을잃어버리곤했습니다
발목이사라져간자명한어제를이제상징이라부르겠습니다
어디선가물이끓는데,돌고도는목성의얼음띠같은영혼들
낯선곳에서잠을깨는일은소멸에가까워서아름다웠습니다
문턱을넘지못하는생각은무너지고나서도다시무너지겠죠
깊어지는모든것은철학이될테고자정은비밀과닮아갑니다
골목이소매와닮았습니다점점더소문에가까워지는우리들
알아보겠습니까,이제물은끓어오르다못해넘치고있습니다
당신을설득할생각이없는나는당신병이나함께앓았으면했습니다
_「발목이없는사람」전문

시집곳곳에등장하는‘발목잃은자’는“이별”(「아가미」)후에다가온상실의정서를담은이미지이면서,“시라는공동체가함께앓고기억하고긍정해야하는타자의존재형식”(해설)이다.이를테면이는“허기를배우고재난을익”(「매일매일매미?돌아오지않을아이들에게」)힌아이들이다.유년의기억속골목가의사람들에서또다른바깥풍경으로시선을돌리면보이는존재.이렇게시인은과거의기억에만정주하지않고시인의눈으로자신을둘러싼세상을바라본다.그럼으로써슬픔과회한,연민에잠식되지않고‘시(詩)란무엇인가,또한시를쓰는자의태도란어떠해야하는가를치열하게사유하는데까지나아간다.「과잉들」「습관들」「메모들」등의시에서이러한시인의의지를느낄수있다.

몸이되기를거부하는거대한결핍으로,당신이의식하지않는소소한배경으로천천히,나를소멸해가겠습니다_「과잉들」부분

나는가까스로내詩를변명한다.혹여직관이아닌습관으로지저귀고있지않는가반성한다._「습관들」부분

詩의이곽(耳郭)과가장유사한것은모래아닐까,

말로도강할수없는정념,재(災)의문장,그건유령인가?
_「메모들」부분

시인은“어떤사랑도아름답지않고어떤중독도마침내시들해”(「나비운용법」)져버린다는사실을끝내깨닫지만,그렇다고해서세상이무의미하고무가치하다고판단하지는않는다.오히려시인은“편견이없는연대의한마리나비”(「나비운용법」)가되고자한다.

수요일까지우리가살아남은기적에대해,그건거의마법에가까운일이었다고의뭉떨게
그렇게우리목요일쯤만납시다사랑이아니었거나혹은사람이아니었거나그러나
사랑이거나사람이어도괜찮을목요일에,마치월요일인것처럼,아니일요일의얼굴로
흘러내린표정이바닥에서말라가듯,유통기한이딱목요일인쓸쓸한통조림처럼우리,
_「목요일혹은고등어」부분

고된월요일과화요일을보내고맞이한수요일,생의한가운데라고도할수있는그“수요일”에“우리가살아남은기적”을시인은발견하고자한다.그리하여“사랑이거나사람이어도괜찮을목요일”에만나,주말의행복을강렬하게예비하는금요일로우리를데려가고자한다.슬픔과고통을지나,스러져간모든이들을향해연대의날갯짓을펼치는시인의마음.『수요일은어리고금요일은너무늙어』는“낙원을찾아헤매다이렇게늙어”가는,“수많은문을닫고문에서나”(「문을위한에스키스」)온우리에게건네는시인의뜨거운안부인사이다.

두렵지만두렵지않게,
가볍지않은마음으로가볍게,
부디목요일에우리다시만날수있기를.
_‘시인의말’에서

골목의체적이하루가다르게비대해져가는매운계절의끝에서당신없이도가장뜨겁게사랑하고이별하는의연한표정하나를배운다.그렇게당신을꼭닮은오래된병증이조금씩희미해져가고,이미지나간계절이여러번온힘을다해다시지나간다.
_이철주,해설에서

◎천서봉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안녕하세요,십이년만에두번째시집을출간하셨습니다.감회가남다르실것같습니다.
시를잊고살았던건아닌데세월이참빠릅니다.요즘다시시를쓰고싶어졌습니다.두번째시집을내면서그게동력이된것같아요.감사하게생각합니다.

Q2.‘수요일은어리고금요일은너무늙어’는독특하면서도울림있는제목입니다.어떻게짓게되었는지궁금합니다.
‘목요일혹은고등어’라는시에들어있는시구의일부입니다.절대적인시간성속에서결국은우리의선택에의해시간의상대성이발현된다고봅니다.역설적으로말하자면아름다운날을기다려만나기보다는우리가만나서아름다운날을만들어갈수있기를바라는마음입니다.

Q3.‘닫히지않는골목’연작시들이이시집의문을열고있습니다.회상과상상을통해그려낸골목의지도가무척인상적인데요,건축설계사로일하고있는시인님의이력도떠오릅니다.이시들은어떻게구상하게되었나요?
시간은과거로넘어가면서변형을일으킵니다.인간의기억도마찬가지인것같아요.지워지면서어떤풍크툼을남기죠.다지워지기전에그것들을남겨두고싶었습니다.모든건축가들은골목을좋아할거예요.(웃음)아마도요.

Q4.2부의주요한시들인「후생들」「과잉들」「습관들」「메모들」등의시를읽으면,시인님의치열한시적정신이느껴집니다.상실의정서를담고있는「발목이없는사람」도기억에남고요.이시들을쓸때어떤마음이었나요?
수많은타자속에서외롭거나괴롭던시절같네요.말씀하신대로결핍이나상실이나를증명해주곤하니까요.그래도무언가쓰거나뱉고나면슬며시다시희망같은것이찾아오기도합니다.

Q5.마지막으로,『수요일은어리고금요일은너무늙어』를읽을독자들에게인사를건네주세요.
안녕하세요.시와건축설계를병행하고있는천서봉입니다.늘목요일같은초록의햇살이당신과함께하기를빕니다.저는부끄럼많은분홍으로여기남아있겠습니다.

■시인의말

불행이기다릴까자주버스에서내리지못했다.
존재를증명해내는불행의기이함에끌린것도사실이지만
그가치는종종무의미했으며위로가되지못했다.

다시십여년의세월을보내고겨우두번째시집을낸다.

의미를두자니변명에가까웠고여백으로남기자니공허했다.
나의말들은웬만해선잘뭉쳐지지않았고그래서멀리던질수도없었다.
비틀거리며날아가는나비와,테이블앞에앉아있는고등어
또발목이사라져버린사람까지,
그유령같은이음동의어들을간신히한데모아두었다.
이제
가운데선을긋고오엑스로나누어지는게임,
그게임에서나는무리를버리고혼자그선을넘어온것만같다.

두렵지만두렵지않게,
가볍지않은마음으로가볍게,
부디목요일에우리다시만날수있기를.

나의생일다음날을골라떠나신어머니가보고싶다.

2023년여름
천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