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 테면 쏘아 봐라 - 삶창시선 77

쏠 테면 쏘아 봐라 - 삶창시선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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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국가보안법에 묶여 웃는 시

“1948년 국가보안법이 생겨 1년 만에 11만 명”을 가두었던 올가미가 어느 날 한 노동자 시인을 덮쳤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인 양기창 시인이 바로 그다. 시인은 얼마 전 보석으로 출소하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분단 정권을 유지하는 데 그 밑거름이 된 국가보안법의 올가미 안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시인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옥중에서 쓴 시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여전히 기개가 꺾이지 않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양기창 시인이 가진 시야와 가슴이 지금 당장의 노동 현실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 이는 여느 노동자 시인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양기창 시인의 영혼은 우리 역사의 깊은 상처에도 닿아 있는바, 분단체제를 숙주로 삼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눈에 이것이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쾌활한 유머가 있고 앞선 혁명 열사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살아 있다.

일단 발라보자 참기름!
차도가 있나 몰라
한 시간도 안 되어 한 번 더 찍어 발라
그렇게 몇 번 더, 고소하다 했더니
헉, 아침 거울에 비친
더욱 보도 사도 못 해버린 내 얼굴
퉁퉁 부어올라
_「참기름」 부분

“법무부 자비 물품 신청서 식품란/ 3,970원짜리에 눈이 번쩍 뜨여” 바른 참기름에 얼굴에 피부병을 얻었는데, 처방 받은 항생제를 복용하면서 “참기름 발랐다는 사실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구치소 안에서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의 진술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시는 양기창 시인의 쾌활함을 잘 보여주며 이 쾌활함은 시집에 실린 전체 작품을 건강하게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딸아이로부터 세 번째 인터넷 서신을” 받고 “가고 싶다/ 보고 싶다/ 가족들과 꽃 피우는 우리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꽃동산-독방 회상 2」)고 하지만 그것은 얕은 감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다. 그래서 “녹차 나무가 그리워”지기도 하고(「녹차 나무-독방 회상 3」), 음식의 고장 광주 사람을 주눅들게 한 엄 부위원장 부인이 만들어준 ‘미더덕 젓갈’이 먹고 싶다고도 한다.(「미더덕 젓갈-독방 회상 7」)
그렇다고 인신을 구속한 감옥에서 바깥 세계만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수 선생에게 시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백풍암(白風庵)), “법무부 마크가 찍힌 모포 뒤집어쓰고서” 자신이 겪었던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기도 하며(「솜이불 덮으며」), “오빠들 뒷바라지하느라 문맹아였지만 맹문이는” 아닌(「금강경」) 어머니의 삶도 다시 생각해본다. 결국 국가보안법 덕분에 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한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는 역사를 다시 산 셈이다. 그렇다고 독방에 갇히면서 벼락처럼 다가온 깨달음인 것은 아니고 시인이 투신했던 운동의 연장이지만 고요 속에서 내면에 깊이 아로새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음의 시가 그것의 증거다.

여기 흰 바람벽이 있어 여기 수원에도 내린다
내 눈 내 코 내 입 내 귀로, 나의 모든 감각기관으로
심지어는 심장에 남은 기억으로도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용이 승천하는 적벽에
청태(靑苔)와 부처손을 품은 흰 바람벽에 투영되는
비가 내리는 풍경이다
_「비 내리는 풍경」 부분


소박하지만, 크나큰 마음

발문을 쓴 조성국 시인에 의하면 “국가정보원이 구속영장을 들어대는 증거의 하나”였던 시 「쏠 테면 쏘아 봐라」는 이 시집의 표제작이다. 이 시는 “빨치산 혁명 전사”들에게 바친 작품인데, 다시 조성국 시인의 발문에 기대 보면 “추모식에 참석한 눈빛 형형한 백발의 빨치산들이 뒤로 자지러졌다”고 한다. 이 시는 양기창 시인의 기개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감히 거스를 수 없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차고 넘친다.(이상, 「쏠 테면 쏘아 봐라」)
양기창 시인의 ‘세계관’에서 호쾌함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작품을 굳이 들자면 「오키나와」와 「사북, 봄날의 교향곡」이 있다. 「오키나와」는 전체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은 시의 화자가 일본과 오키나와를 여행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순한 관광은 아니다. “도쿄 서점을 나오면서”로 시작되는 「오키나와」는 “가토 상”이 들려준 일본에 대한 이야기와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로 넘어가는 여정,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만난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오키나와 민중의 구김살 없는 묘사로 이어진다. 다음을 보라.

도쿄와 오키나와는 달랐다
인심이 후했고
아와모리 술이 있었다
오키나와 술집에서 만난
오키나와 여자는
인심이 후했지만, 독했다
일본주(日本酒)를 먹고 있었던 나는
그 여자와 대화하는 동안
아와모리를 다 마셔버렸다
미국과 일본 본토를 함께 성토하면서
_「오키나와」 13장 전문

산문적 진술에 가까우며 동시에 화자의 주관적 감정이 짙게 배어 있지만, “아와모리”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의 민중의 연대 장면으로도 충분히 읽힌다. 이 13장은 더 이상의 사족이 없이 마지막 14장으로 넘어간다. 즉 오키나와에서 단 “하룻밤이었지만” 시의 화자가 얄팍한 감상에 빠져 있다는 의심은 갖지 않아도 된다. 양기창 시인의 이번 시집은 창백한 미학에 사로잡히지 않고 시인 자신의 가슴과 정신을 가감 없이 펼쳤다는 점에서 요즘 만나기 힘든 매력을 품고 있다.
“이 소박한 형식을 21세기의 리얼리즘이라 부르자.”(김형수, ‘추천사’ 중)
저자

양기창

저자:양기창

2014년『작가』신인상으로작품활동시작.시집『불사조사랑』이있고,금속노조10기,11기부위원장을지냈다.전국현장조직추진위원회의장,기아자동차한길노동자회회원이다.현재한국작가회의회원이자광주전남작가회의자유실천위원장이다.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수원구치소에구속되었다가최근보석으로출소해서재판진행중이다.

목차

시인의말?5

1부
독방회상

눈내리는풍경·12
참기름·14
백풍암(白風庵)·16
출정·18
화전(花煎)놀이·20
솜이불덮으며·21
금강경·24
비내리는풍경·26
아버지와자전거·28
수갑과포승·32
서정시가어울리지않는시대·34
다윗의서신·36
폭력의독방·38
달과파도·40
이명·42
독방에서어화(漁火)둥둥·43
돌올하게·44
동명이인―독방회상1·45
꽃동산―독방회상2·46
녹차나무―독방회상3·48
삼투압―독방회상4·50
호박꽃생각―독방회상5·52
영천시장―독방회상6·54
미더덕젓갈―독방회상7·55

2부
한결같이

혼자술·58
한남동에서·60
한결같이·61
하루에두번불렀다·62
처연(凄然)교향곡·65
평양,개선문에서·66
평가·68
지리통박(智異通搏)·70
정동에서·72
장년식·74
존재와사유·76
오키나와·77
쏠테면쏘아봐라·92
세계관·95
사슬·96
또,사슬―동백꽃보다더진한,그대잘가라·98
소금꽃당신,노동자·101
사북,봄날의교향곡·102
부끄러워서·109
빗점골에서·110
별표를간직하며·112
낙숫물로댓돌을뚫는다―현대자동차전주비정규직지회이병훈동지에게·113
노치리에서·114
꽃기린·116
깃발이되어―합수윤한봉선생추모식에부쳐·117
1997년,소주먹기수월한곳에서·120
1989년,봉숭아·122

발문

무엇보다도시(詩)가동봉된옥중편지(조성국)·125

출판사 서평

일단발라보자참기름!
차도가있나몰라
한시간도안되어한번더찍어발라
그렇게몇번더,고소하다했더니
헉,아침거울에비친
더욱보도사도못해버린내얼굴
퉁퉁부어올라
_「참기름」부분

“법무부자비물품신청서식품란/3,970원짜리에눈이번쩍뜨여”바른참기름에얼굴에피부병을얻었는데,처방받은항생제를복용하면서“참기름발랐다는사실은/끝까지말하지”않았다.구치소안에서벌어진작은에피소드의진술에지나지않은것같지만이시는양기창시인의쾌활함을잘보여주며이쾌활함은시집에실린전체작품을건강하게받쳐주는역할을한다.비록“딸아이로부터세번째인터넷서신을”받고“가고싶다/보고싶다/가족들과꽃피우는우리집으로달려가고싶다”(「꽃동산―독방회상2」)고하지만그것은얕은감상이아니라자연스러운감정의표현이다.그래서“녹차나무가그리워”지기도하고(「녹차나무―독방회상3」),음식의고장광주사람을주눅들게한엄부위원장부인이만들어준‘미더덕젓갈’이먹고싶다고도한다.(「미더덕젓갈―독방회상7」)
그렇다고인신을구속한감옥에서바깥세계만그리워하는것은아니다.장기수선생에게시를써서보내기도하고(「백풍암(白風庵)),“법무부마크가찍힌모포뒤집어쓰고서”자신이겪었던1980년5월광주를떠올리기도하며(「솜이불덮으며」),“오빠들뒷바라지하느라문맹아였지만맹문이는”아닌(「금강경」)어머니의삶도다시생각해본다.결국국가보안법덕분에시인은아버지와어머니를포함한자신의존재근거가되는역사를다시산셈이다.그렇다고독방에갇히면서벼락처럼다가온깨달음인것은아니고시인이투신했던운동의연장이지만고요속에서내면에깊이아로새긴시간이었던것이다.다음의시가그것의증거다.

여기흰바람벽이있어여기수원에도내린다
내눈내코내입내귀로,나의모든감각기관으로
심지어는심장에남은기억으로도비가내린다

비가내린다,용이승천하는적벽에
청태(靑苔)와부처손을품은흰바람벽에투영되는
비가내리는풍경이다
_「비내리는풍경」부분


소박하지만,크나큰마음

발문을쓴조성국시인에의하면“국가정보원이구속영장을들어대는증거의하나”였던시「쏠테면쏘아봐라」는이시집의표제작이다.이시는“빨치산혁명전사”들에게바친작품인데,다시조성국시인의발문에기대보면“추모식에참석한눈빛형형한백발의빨치산들이뒤로자지러졌다”고한다.이시는양기창시인의기개를여지없이보여주는작품이다.제목에서부터“감히거스를수없는당당함과자신감”이차고넘친다.(이상,「쏠테면쏘아봐라」)
양기창시인의‘세계관’에서호쾌함을느끼게하는또다른작품을굳이들자면「오키나와」와「사북,봄날의교향곡」이있다.「오키나와」는전체14장으로구성되어있는데내용은시의화자가일본과오키나와를여행한이야기이다.하지만단순한관광은아니다.“도쿄서점을나오면서”로시작되는「오키나와」는“가토상”이들려준일본에대한이야기와비행기를타고오키나와로넘어가는여정,그리고오키나와에서만난평화운동가들,그리고오키나와민중의구김살없는묘사로이어진다.다음을보라.

도쿄와오키나와는달랐다
인심이후했고
아와모리술이있었다
오키나와술집에서만난
오키나와여자는
인심이후했지만,독했다
일본주(日本酒)를먹고있었던나는
그여자와대화하는동안
아와모리를다마셔버렸다
미국과일본본토를함께성토하면서
_「오키나와」13장전문

산문적진술에가까우며동시에화자의주관적감정이짙게배어있지만,“아와모리”를통해한국과오키나와의민중의연대장면으로도충분히읽힌다.이13장은더이상의사족이없이마지막14장으로넘어간다.즉오키나와에서단“하룻밤이었지만”시의화자가얄팍한감상에빠져있다는의심은갖지않아도된다.양기창시인의이번시집은창백한미학에사로잡히지않고시인자신의가슴과정신을가감없이펼쳤다는점에서요즘만나기힘든매력을품고있다.
“이소박한형식을21세기의리얼리즘이라부르자.”(김형수,‘추천사’중)

추천사

우리는오늘도신호등을건넌다.날마다세겹,네겹,수십겹씩중첩되는체제를통과하고있는것이다.그속에스며든권력과폭력의야만성을향하여양기창의시는한없이차분하지만통렬하게저항한다.수갑과포승을차면서도,이명에시달리면서도,독방에서편지를읽으면서도진솔하고순박하고부드럽다.그래서더욱가슴아프다.저순결한「눈내리는풍경」을보라.언제나자신의말투로디지털문명이강제하는무한경쟁의틈새를허물고불굴의인간과윤리를그려내는이소박한시형식을21세기의리얼리즘이라부르자.(김형수,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