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너머 - 삶창시선 81

너머의 너머 - 삶창시선 81

$10.00
Description
여기가 저기다
우리가 사는 ‘여기’ 말고 더 좋은 곳, 행복한 곳, 이상적인 곳을 ‘저기’라 부르는 언어와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여기’가 주는 고통, 불안, 모순, 불합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끊임없이 ‘저기’와 비교 당하고 또 ‘저기’는 ‘여기’를 그동안 지도해 왔다. 즉 ‘저기’는 ‘여기’의 목적으로 군림해 왔다.
이강문 시인은 이런 인식에 균열을 내며 “여기가 저기다”고 말한다. 그동안 “저기가 저 멀리 높은 곳에 모셔져 있”었던 것은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저기가 여기 너머 따로 있는 게” 된다. 그래서 ‘저기’는 숭배되고 ‘여기’는 폄하된다. 하지만 이강문 시인에게 ‘저기’는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이상 「너머의 너머」) 세계다. ‘너머의 너머’는, 즉 ‘저기’ 너머 ‘여기’라는 뜻이다. ‘여기’와 ‘저기’를 버리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함께 앉힌 ‘자리’는 여기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 사이다.
저자

이강문

저자:이강문
1959년서울에서태어나서울대국문학과를졸업했다.삼양사홍보실에서17년간근무한후학원운영,자영업등을거쳐왔다.삶창에서펴내는이번시집을통해처음으로작품을세상에내보낸다.

목차

시인의말ㆍ5

1부길

달과달팽이·12
굽은나무·14
거울부자·16
찰칵,·18
자기울음을품은새·20
상처·22
하늘의정면·23
너머의너머·26
사다리의충고·28
겹·30
이하늘,낙화유수·32
어떤용기를변명함·34
그림자·36
교차로사막·38
하늘바다1·40
하늘바다2·41
빈집의기억·42
어두운중심·44


2부겨울숲에는그리움이있다

맨발·46
바깥의깊이·48
발자국암자·50
한눈팔기·52
나침반·54
처음과하루·55
한사람·56
바·라·보·네·58
처음의끝·60
하늘광부·62
하나의한번·64
불편한신비·66
등대·68
노을은부른다·70
초혼·72
발바닥·74
연꽃미로·76
주인찾기·78


3부집

최초의거울·80
공명·82
세상의생일·84
꽃다발·86
봄눈·87
눈사람성자·88
놀라운일·90
배꼽·92
베껴야산다·94
눈맞춤·97
주저흔·98
역사(力士)·100
빗방울망원경·102
민들레대합실·104
걸음마·106
풍선인간·108
메아리·110
마른물소리맛·112
추파·114
비갠후·115


해설

아침마다눈뜨면우렁우렁도착하는‘저기’(황규관)·117

출판사 서평

올해의꽃과내년의꽃사이,
지금이꽃과다른저꽃사이,
이토록환한너머의너머
-여기가저기다
_「너머의너머」부분

이런인식은「빈집의기억」에와서조금더구체적인이미지를얻으며심화된다.“기다리는두아이들의손과발에자물쇠를”달아야했던건엄마와아빠가“돈벌러나간”상황과연결돼있는데,“수상한밖이안전한안으로들어오지말라고/사랑스러운안이위험한밖으로나가지말라고”그랬던것이다.하지만아이들은“성냥불에재가”되고말았다.이비극적인사건을통해시인은여전히변하지않은우리의현실을말하고있거니와아직도우리는“잿더미가된안쪽을지키고있”다.「너머의너머」와「빈집의기억」은공히여기와저기,안과밖을노래하고있지만그것을떠받쳐주는시적정황은사뭇다르다.하지만「빈집의기억」의상황은“여기가저기다”는「너머의너머」의인식이현실화되지않은바탕에서벌어진일이기도하다.즉‘저기’는“아침마다눈뜨면우렁우렁도착하는”것이라는진실에우리는아직도달하지못했으며,도리어“잿더미가된”세계를여전히지키고있는삶을살고있다는비극적인식이바탕에깔려있는것이다.
그런데이강문의시는사실적인현실로좀처럼나아가지않는다.그연유를명징하게알기는어렵지만,아무래도부조리한사실세계에영혼을던지기보다는자신의인식과자리를부지런히경작하는것을소임으로삼은듯보인다.「사다리의충고」에서보이는것처럼시인은분명“폐업철거중인점포의내부”를통해“등뼈훤히드러날정도의안간힘”을알고있지만,현실에대한상투적인비판보다는그것을내면의주름으로삼는다.즉,현실의아래심급으로내려가서내면의눈을맑게닦으려는쪽으로들어선것이다.그내면의경작은결국“내가지닌것가운데에그림자가그중옳다”는인식에까지도달하게되며‘그림자’를통해“그늘을향한깊고끈질긴사랑만이/내안의그림자를부화할수있다”(이상「그림자」)는깨달음을얻기도한다.


긍정과고독은같은편!

이런내면의여정이어린아이의긍정으로귀결되는것도흥미로운일이다.「공명」에서보이는아이들에게는“지엽말단”이나“지지부진”이없다는맑고청랑한목소리는시의정황상아이들을바라보면서뱉는탄성이지만,시인이내면의주름을늘리고깊게하는간단치않은과정을통해얻게된득의의광채이기도하다.

과거와미래는,놀이의배턴을주고받는순간일뿐
찬란한현재와협연하는도중일뿐
나자신과나자신의릴레이를지속할뿐
아이들에게덧없는시간이란
온몸에지은오두막성당의종소리
놀이의빛나는신전-손과발,눈,코,입,귀
몸에서몸으로이어지는
영원한공명(共鳴)일뿐
_「공명」부분

이대긍정의순간은이시집에서명시적으로드러나지는않았으나암암리에추정가능한,지난한밥벌이로서의삶을안으로안으로새겨넣으며도달한경지일것이다.어쩌면주어진삶을감내하고살면서도그비루를남에게전가하지않고도달한자기긍지의순간일지도모르고.단순히아이들에대한혈연적사랑을넘어선환희의기운이넘치는것을독자들은느낄수있기때문이다.이것을증명해줄작품은더있는데,「세상의꽃다발」「생일」「봄눈」등등이다.
누군가에게또는어떤순간에게들키지않으려는마음은아마두가지일것이다.하나는자신의자존심,또하나는삶의짐을타인에게떠넘기지않으려는책임감.이둘사이에얼마나차이가있는지는잘모르겠지만시인이부조리한현실을빤히알려면서도섣불리‘밖으로’뛰쳐나가지않고그동안안으로뭔가를쟁여넣은것은,그러면서시를쓸수밖에없었던것은,자신에게주어진실존의조건을냉철하게인식하고있었기때문이고동시에그것에만머물지않는수련을나름닦아왔기때문일것이다.최소한이시집에실린작품을통해서는그렇다.(이강문시인은통상적인등단절차를거치지않고이시집한권으로세상에이름을처음알리고있다!)하지만니체적의미의어린아이같은마음은낙타와사자를지나온지평이라기보다는낙타와사자와‘함께’사는마음에가까울것이다.그럴때만이어린아이의울음은떼가아니게된다.왜냐면그마음에는커다란고독도들어있기때문이다.본래긍정과고독은같은편이다!

해와달과별의메아리안으로침입한한사내
처음과끝을함께자기에게출산한한사내
노란집빈방의자에홀로앉아있네
_「하늘광부-고흐생각」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