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시장 참기름 집 - 삶창시선 83

순창시장 참기름 집 - 삶창시선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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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진엽

저자:오진엽
1969년전북전주에서태어났다.2006년제14회전태일문학상을수상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일과시’동인이며현재지하철1호선전동열차승무원으로일하고있다.펴낸시집으로『아내의시』(갈무리)가있다.

목차


시인의말4

1부

바지랑대·13
기적·14
안부·15
집게·16
거짓말·17
목줄·18
1973년팔복동·19
우리성아·20
품·22
인력시장에서·24
까치·25
상갓집에서·26
역곡역·27
아침퇴근길·28
야구장에가면·29
빨래집게의꿈·30

2부

환생·33
아내에게·34
신촌역에서·35
가을하늘·36
내가빗방울이라면·37
추잉껌·38
매미·39
보름달·40
한여름밤의소나타·41
밥·42
싸움의고수·43
나를데리고사는여자·44
엄마가있는집·46

3부

해돋이·49
동백꽃·50
곡우·51
텃밭에서·52
윤중로에서·53
부추꽃·54
초승달·55
개심사·56
코스모스·57
석류·58
홍시·59
양떼구름·60
고운사에서·61
11월·62
서리내린날·63
입동·64
동짓날·65
눈오는밤·66
크리스마스선물·67

4부

깜장고무신·71
장날·72
순창시장참기름집·73
동창회·74
비오는날아침·75
그려빠스야·76
감꽃·78
그림자·79
흥정·80
추석보름달을보며·81
공세리성당·82
이한주시인·83
경청·84
야구공·85

5부

옛이야기1―장모님·89
옛이야기2―아버지·90
옛이야기3―교련선생님·91
옛이야기5―고모부·92
옛이야기―솔아솔찬이에게·93

발문
‘엄마가있는집’같은사회재구성을위해(오철수)·95

출판사 서평

아버지의가난은사회적인것

오진엽시인의시집에는신산했던가족사가앞부분에드러나있다.일단아버지의노쇠화와엄마에대한상실의식이그것이다.시인의기억으로아버지는“새벽부터밤늦게까지손이갈퀴가되도록논밭에서뒹굴어도가난의굴레를벗어나지못했던무능한”(‘시인의말’)사람이지만여기서‘무능’은결과적으로가난했기때문에불리는사회적규정일뿐이다.시인도말하고있지만아버지는분명“새벽부터밤늦게까지손이갈퀴가되도록”일한사람이었다.그렇게일했는데도무능하다고낙인찍힌것은아버지의가난이곧사회적가난인것이다.사회든개인이든자기책임을남에게떠넘기려는방어기제는상대를‘무능’하다고손쉽게규정하곤한다.
시집의1부는그런아버지에대한시적화자의간곡한마음으로꾸려져있다.드디어쓰러지고만아버지는“없이살아도남앞에평생굽실거리지않았던”(‘시인의말’)사람이지만결국형과나의학업을위해자신을버린채“벽돌공장일용직”으로“하루도빠지지않고/네모반듯하게/일당만원을찍어내”(「기적」)며살았던것이다.그런데자식들이장성해도그아버지는일을손에서놓지않는다.

아들딸손자들다자랐어도
여든을넘긴아버지
밭두렁에매여있다
_「목줄」부분

이런억척스러운아버지상(像)이아주드문것은아니지만,시인의내밀한삶의세계로들어가면아주특별한존재가된다.그것은‘엄마의부재’때문인데,네살때떠난엄마를찾아“꿈에서엄마찾아삼만리를헤매느라혼곤”(「품」)한날이적잖았다.그러니까시적화자의엄마가떠난뒤“홀로된아버지/다섯살철부지데리고/공단언저리에둥지틀었”(「1973년팔복동」)던것이다.여기서독자들은엄마의떠남이아버지의경제적무능때문임을알아챌수있다.신파같기도하지만,이신파가지난날‘조국근대화’의와중에서벌어진이산의문제라고한다면어쩔수없이역사적의미가새겨진다.시적화자의정서가엄마에대한그리움과아버지에대한연민이묘하게교차해서형성된것임도읽어내기어렵지않다.
하지만이제그엄마는이세상에있지않고병든아버지만남았다.하지만「성아」라는시에서보듯,시적화자가엄마를만난사실도또엄마의부재도한동안형에게알리지도않았다.형에게는열살때떠난엄마이기에형이더큰상처를가졌을거라생각됐기때문이다.이번시집에서아버지에대한연민보다엄마의부재가더크게다가오는것은,아무래도우리역사가아버지의세상이었기때문일수도있다.장모님과아내의관계에대해쓰면서제목을‘엄마가있는집’으로한것에서보듯시인에게엄마란존재는단지혈육의차원을넘어선것처럼읽힌다.그래서이작품에서시인의무의식을이루고있는엄마의현현을순간읽는것은자연스럽다.

‘엄마의세상’을만든시

가난한‘아버지’가이뤄놓은뼈대위에서‘엄마’의부재를산것은비단오진엽시인만은아닐것이다.이서사는우리의근대사의비상한상징이기도한데,오직아버지의근면성실만부각되면서아버지의근면성실이엄마로표상되는어머니성(性)을은폐한것도엄연한사실이다.시인이이두존재를대립적으로세우지않은채아버지가이뤄놓은뼈대를부정하지않으면서엄마의세계를은연중에구축하는장면도눈여겨볼만하다.발문을쓴오철수시인이“‘엄마가있는집’같은사회재구성을위하여”라고말한것은이를정확하게꿰뚫어본것이다.

북한산도통일되면국싼잉겨
쩌기새댁들보랑께
여기산꼴짝은사람도절반은
물건너온외제랑께

땅에서낫쓰면다똑가튼겨
_「순창시장참기름집」부분

그려빠스야
니도사람태우고
하루죙일뛰댕기느라용썼응게
어쩟끄냐
요럴때라도숨좀돌리고쉬그랴
_「그려빠스야」부분

「순창시장참기름집」은이번시집의표제작인데,아무물정모르는도시인들이시골장에가서국산이네중국산이네따질때시골할머니의일갈을옮겨온것이다.「그려빠스야」는시골버스기사가밥먹고온다고홀연버스를멈춰세운것에대해탑승한할머니가중얼거리는장면을묘사한작품이다.어쩌면이런덕(德)의세계를그동안부재했던‘엄마’라는존재가만든역설일것이다.시인이아버지에게는연민을엄마에게는깊은그리움을갖게된것은개인사때문이나,위두작품및다른시들에서보여주는정경은시인의무의식적인지향점이어디인지자신도모르게드러낸다.
도시인들이시골장에가서농산물을두고국산이니중국산이니나눌때,참기름집할머니는“땅에서낫쓰면다똑가튼겨”라고그구별법을허물어버린다.자신과또는자기가족만의안녕을꾀하는소시민적인것―어쩌면아버지의근면성실이만들어놓았을지도모를―을여성인어머니가허물고있는모양새다.이미“산꼴짝은사람도절반은/물건너온외제”인농촌현실에서중요한것은이것은좋고저것은안좋다는편협한분별심이아니다.“땅에서낫쓰면다똑가튼겨”같은인식은만물을낳고기르는어머니대지의마음이아니고는도달하지못하는경지다.
「그려빠스야」도결국같은마음의소산이다.비록그대상은기계덩어리인버스이지만,사람의삶과함께존속하는사물에대해“요럴때라도숨좀돌리고쉬그랴”같은할머니의말은버스도사람의삶과진배없다는마음자리에서나온것이다.할머니의이말을버스도알아듣고“네발달린순한짐승/꾸벅꾸벅쪽잠을”자는풍경은,시인이엄마의부재를통해엄마의세계가무엇인지도달한경우에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