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지칭되는 전후 1세대(1950년대 출생자)는 그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성장소설이다. 그들은 적수공권으로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생산적인 삶을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꽤 많은 성취를 이룬 명실상부한 ‘성장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의 삶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소설은 없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볼 만한 성장소설은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그들의 부모나 형 세대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념 불화 중심의 소설들이 우리 작단을 대표하고 있다. 그만큼 역사의 굴곡이 심했고 아직도 역사적, 현실적 차원의 만족할 만한 보상과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황 논리를 떠나 비판적으로 보자면, 베이비붐 세대는 일정한 자기동일성이 없는 부표(浮漂)와 같은 삶을 살아온 불운한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도 그들은 경제적 인간과 정치적 인간의 두 편으로 정확하게 갈라져서 서로 보기를 원수같이 하면서 살아온 불운한 분단 세대이다. 『레드빈 케이크』는 그들 베이비붐 세대의 한 자화상이다.
연작소설 『레드빈 케이크』는 한 개인과 한 가족의 미시사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베이비붐 세대의 자기동일성을 그려내기를 희망한다. 무기력한 실향민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가족을 만들고 사회적 존재로 성장해나가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면서 그 그림이 한국 근대사의 밑그림이 되기를 원한다. 자식은 부모 없이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부모와의 관계를 추억해내고(「취하는 것」, 「빈대떡」), 최초의 사회적 관계를 가르치고 만드는 가족 내적 관계망을 살피고(「대동강」, 「궤도반」), 주인공의 뿌리가 된, 어쩔 수 없이 체제 일탈자가 되어 역사의 중심에서 탈락한 한 경계인의 삶을 조망하고(「서북인」, 「노루몰이꾼」), 자라나면서 본격적으로 자기동일성을 구축하게 될 때 우호적인 조력자가 되는 문화적인 제반 요소와 요건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적산가옥들」, 「토성 사람들」, 「레드빈 케이크」).
「삼랑진 가는 길」을 포함한 이후의 여섯 편은 본격적인 자기 성장의 편력을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극적(劇的)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최대한 화자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삼랑진 가는 길」에서는 첫사랑 이야기를, 「광장의 저편」에서는 대학 시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주모자 없는 대형 데모 사건’의 전말을, 「은화 1불의 여왕」에서는 광주의 5·18을 만나고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경험을, 「혈지도」에서는 사회생활의 이모저모와 작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스타벅스와 그라디바」와 「특곰탕」은 작가의 현재적 삶을 다룬다. 앞선 이야기들의 사건과 공간들이 이 소설들에서 재해석되고 그 현재적 의미가 확정된다.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대해 말할 의무가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면 “그래서 지금 너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스타벅스와 그라디바」와 「특곰탕」은 그런 ‘작가의 의무’를 수행하려는 작품들이다.
『레드빈 케이크』의 표현 형식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전반부는 중심 상징어의 상징적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화법을 쓰고(제목이 거의 다 그런 것들이다) 후반부는 동일한 주제의 소설들을 적극 인용하고 활용하는 지식인 소설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함축된 저자인 화자가 자기 이야기를 널리 알려진 다른 소설에 의탁해서 의미화하는 것은 ‘서술의 자유’가 지나치게 허용된 것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드빈 케이크』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기동일성 탐색 방법으로 ‘서술의 자유’를 활용한다. 마지막 작품 「특곰탕」에서는 연작소설 『레드빈 케이크』의 열다섯 개 이야기가 결국은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보여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이야기는 회고이므로 마지막 이야기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특곰탕」은 『레드빈 케이크』의 결구이면서 출발점이다.
연작소설 『레드빈 케이크』는 한 개인과 한 가족의 미시사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베이비붐 세대의 자기동일성을 그려내기를 희망한다. 무기력한 실향민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가족을 만들고 사회적 존재로 성장해나가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면서 그 그림이 한국 근대사의 밑그림이 되기를 원한다. 자식은 부모 없이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부모와의 관계를 추억해내고(「취하는 것」, 「빈대떡」), 최초의 사회적 관계를 가르치고 만드는 가족 내적 관계망을 살피고(「대동강」, 「궤도반」), 주인공의 뿌리가 된, 어쩔 수 없이 체제 일탈자가 되어 역사의 중심에서 탈락한 한 경계인의 삶을 조망하고(「서북인」, 「노루몰이꾼」), 자라나면서 본격적으로 자기동일성을 구축하게 될 때 우호적인 조력자가 되는 문화적인 제반 요소와 요건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적산가옥들」, 「토성 사람들」, 「레드빈 케이크」).
「삼랑진 가는 길」을 포함한 이후의 여섯 편은 본격적인 자기 성장의 편력을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극적(劇的)으로 보여준다. 소설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최대한 화자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삼랑진 가는 길」에서는 첫사랑 이야기를, 「광장의 저편」에서는 대학 시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주모자 없는 대형 데모 사건’의 전말을, 「은화 1불의 여왕」에서는 광주의 5·18을 만나고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경험을, 「혈지도」에서는 사회생활의 이모저모와 작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스타벅스와 그라디바」와 「특곰탕」은 작가의 현재적 삶을 다룬다. 앞선 이야기들의 사건과 공간들이 이 소설들에서 재해석되고 그 현재적 의미가 확정된다.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대해 말할 의무가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면 “그래서 지금 너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스타벅스와 그라디바」와 「특곰탕」은 그런 ‘작가의 의무’를 수행하려는 작품들이다.
『레드빈 케이크』의 표현 형식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전반부는 중심 상징어의 상징적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화법을 쓰고(제목이 거의 다 그런 것들이다) 후반부는 동일한 주제의 소설들을 적극 인용하고 활용하는 지식인 소설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함축된 저자인 화자가 자기 이야기를 널리 알려진 다른 소설에 의탁해서 의미화하는 것은 ‘서술의 자유’가 지나치게 허용된 것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드빈 케이크』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자기동일성 탐색 방법으로 ‘서술의 자유’를 활용한다. 마지막 작품 「특곰탕」에서는 연작소설 『레드빈 케이크』의 열다섯 개 이야기가 결국은 우로보로스(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보여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든 이야기는 회고이므로 마지막 이야기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특곰탕」은 『레드빈 케이크』의 결구이면서 출발점이다.
레드빈 케이크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