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 인간의 가치를 실현한 아사카와 다쿠미를 기리며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 인간의 가치를 실현한 아사카와 다쿠미를 기리며

$22.00
Description
일본 출신의 인물이 한국의 문화와 자연 보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탐구하는 이 책은 다쿠미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아사카와 다쿠미(朝川 巧, 1891-1931)는 1920년대 한국에 이주하여 많은 시간 동안 한국의 도자기, 민속 문화, 자연 보존에 기여했다. 다쿠미의 생애에 대한 탐구는 일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는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무척 존경받는 인물로서 그의 삶은 한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와 협력의 가교로 여겨진다.

아사카와는 조선 시대의 도자기와 민속 문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그 가치를 후세에 전달하려 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지적 탐구를 넘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이 담겨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그 공통점을 찾고자 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문화 간 이해와 협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은 아사카와 다쿠미의 삶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 속에서도 개인의 신념과 헌신이 어떻게 양국간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쿠미의 이야기는 단순한 평전이 아닌, 우리에게 주는 깊은 교훈과 영감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헌신이 어떻게 국가와 문화를 넘어선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사카와 다쿠미의 생애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묘역은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했다. 이 책은 그런 다쿠미의 삶을 조명하며,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

백조종,정종배

엮음:백조종
서울시청국제교류과에근무했고,서울시공무원교육원의일본어교관을지냈다.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도쿄사무소에서도근무했으며,일본호쿠토시명예시민으로서경기도포천시와야마나시현호쿠토시의자매결연을성사시켰다.중앙대건설산업기술연구소객원연구원,한국지방의회발전연구원객원연구원,한국해외연수센터사무국장,한국공동주택관리실무전문교육원장,범아관광학원일본어학감,베세토민제공사사장,韓中합자중경상림기계화공정유한공사부동사장,동남건설주식회사대표이사를역임했다.
논문:국제법기원과주권론,도시자치정부의장기계획수립과정에관한비교연구,서울시공공서비스의민간화방안에관한연구
역서:『민간합동개발(제3섹타)』(중앙대건설대학원장황영주교수와공역)

엮음:정종배
시인,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가톨릭문인협회회원,삼균학회이사,(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운영위원,최학송묘지관리인및기념사업회사무국장,아사카와노리타카다쿠미형제추모회이사,망우역사문화공원자문위원및해설사,중랑문화원중랑인문학글쓰기강사등으로활동하고있음,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숙장대행,서울초중등문학교육연구회,서울교원문학회회장등을역임함.
시집:『산에는작은꽃도』(시문학사,1999),『안개속에소리가자란다』(한국문연,2005),『그림자흔들기』(한국문연,2008),『숫눈길』(한국문연,2010),『봄동』(한국문연,2014),『해찰』(문학의문학,2016),인문학서:『망우리공원인물열전』(지노,2021)외다수

목차

인간의가치를실현한아사카와다쿠미
한국의흙이된일본인아사카와다쿠미
이해와감사친선을위한아름다운기록
망우역사문화공원에영면한두식물학자
문화예술인아사카와다쿠미
「아사카와학」에서배우는행복
디아스포라아사카와다쿠미선생

제1장
아사카와다쿠미80주기추모집『한국을사랑한일본인』
발간사
머리말
축사(한국측
축사(일본측)
축사포천시
축사호쿠토시
한국을사랑한일본인
작은거인
김성진그로부터
자료관건립과정
성지순례
인간의가치
순결한영혼
교토의귀무덤및망우리다쿠미묘
한일공동제작및흥행
사색의길에핀성스러운한송이꽃
영화<백자의사람>포스터
맺는말
편집후기
아사카와다쿠미80주기추모집『한국을사랑한일본인』목차

제2장
아사카와다쿠미90주기추모집『한국의흙이된일본인』
신불신을선택하지말고정불정도선택하지말아라
개정증보판출간을축하드립니다
영화<길~백자의사람~>상영을진행하는모임
증보판의간행에즈음하여
아버지가지어준이름다쿠미
아사카와다쿠미와시인윤동주
조선의흙이된아름다운영혼의소유자-아사카와다쿠미
디아스포라와아사카와다쿠미선생
사월이오면
잣나무와아사카와다쿠미
잊지말아야할형제,다쿠미와노리타카
인간의가치를실현한아사카와다쿠미
아사카와다쿠미를만나러가는길
조선백자를사랑한일본인,아사카와다쿠미[淺川巧]공덕(公德)
영화<길-백자의사람>이보여준것들
아사카와다쿠미선생을품고
아사카와노리타카·다쿠미형제자료관을다녀와서
관동대지진조선인대학살100년과한국문학및망우역사문화공원
1923년관동대지진조선인대학살관련아사카와다쿠미일기
국회토론회/[제2주제발제]
국회토론회/[제2주제토론문]

제3장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수림문화재단,2016)
김희수이사장의생각‘인간도처유청산’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개교식인사말씀
아사카와다쿠미
폴러쉬(PaulRusch)
동교(東喬)김희수(金熙秀)선생
동강(東江)하정웅(河正雄)선생
청리은하숙(淸里銀河塾)과하정웅(河正雄)
단단한씨앗아사카와다쿠미선생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의개교를앞두고
양심적인일본인과일본법이한국에미친영향
조선백자의세계
대입학생부전형합격전략어떻게준비할까?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_개교프로그램평가및프로그램계획안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개교식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개교식을열다
행복한사람들즐거운배움의길
홍림원(洪林園)다쿠미(巧)소나무아래에서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1기일본연수를다녀와서
청리은하숙세계시민학교가나에게주는의미
나와다쿠미의백자
조선과아사카와다쿠미
Icecream,Iscream
역사를마주하고
백자,순백의깊이
청리와망우리사이
진실속에나를찾다
날마다일보전진의마음
일어淸수
비밀의묘지공원
그마음이닿기를

제4장
중랑인문학글쓰기반(중랑문화원,2023)
아사카와다쿠미영화<백자의사람>
망우역사문화공원은대한민국호국의산실이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잠드신아사카와다쿠미
진흙속에서피어난한송이연꽃아사카와다쿠미
아사카와다쿠미디아스포라
조선의흙이된아사카와다쿠미
1905년을사생할머니의손녀와아사카와다쿠미
아사카와다쿠미를생각하다
광릉수목원과아사카와다쿠미
중랑인문학글쓰기반공부의즐거움
가르치며배운아사카와다쿠미
아사카와다쿠미40년찬란한인생기록
친절한다쿠미씨
아사카와다쿠미연보
맺은말
편집후기

출판사 서평

[리뷰]
1913년한국도자기의신이라일컫는아사카와노리타카의동생아사카와다쿠미는1914년5월에서1931년4월2일까지17년동안한국임업시험소고원과기수로서국립산림과학원과국립수목원의이사,설계,식재,관리등에뛰어난능력을발휘했다.
대한민국인공림의37%를차지한잣나무를씨앗틔운'노천매장법'을발명하고,쓰면쓸수록조형미,실용성,예술성등이빛나는한국의소반에대하여<조선의밥상>이라는책도펴냈다(1929년)
조선의도요지700여곳을답사하고도자기명칭,용기등을그림으로남기고이름을적은유작<조선의도자명고>(1932년)를발간하여도자기업계으중시조로여겨진다.
1920년대달항아리백자대호의예술성을야나기무네요시와두형제가밝히어영국왕실에서인도무역상을통해사들여전시했다.
야나기무네요시는한국의미를'이별의미','한의미'라하였으나,두형제는도요지를돌면서굿,연희등을통해한국의미는'멋,흥취,가락'이라말했다.
1924년지금의중앙국립박물관민속박물관전신인<조선민족미술관>을경복궁집경당에건립했다.
조선인보다더조선인으로살다가식목일준비과로급성폐렴으로40세에생을마쳤다.
그의생애가<인간의가치>라는제목으로일본중학교교과서에15년실렸고,그의고향야마나시현호쿠토시초등학교교재로일대기만화가교재로작년부터활용되고있다

[출판사서평]
일제시대일본사람으로서,헐벗고굶주리는조선사람들을동정하여때로는문필로,때로는법정변론으로조선사람을도우려다가대세에밀려왕따가된사람들은더러알고있다.
그러나다쿠미처럼스스로조선사람이되어조선사람과애환을같이하다가이나라흙이된사람은몇이나될까.
다쿠미가3,000미터에가까운야쓰가다께산록에자리잡은야마나시현카부또마을에서유복자로태어난것이1891년,산림기사가되어조선에건너온것은한일합병직후인1914년,나이23살의새파란청년이었다.
당시조선에서산이라하면으레녹색은거의볼수가없고,돌무더기만노출되어있는적갈색(다쿠미의표현에따르면적다색赤茶色)의민둥산이었던모양이다.그럴수밖에없었던것이,수백년에걸친부패한정치와끊임없는외침에다가,당시까지만해도임야에대한지적공부도,소유권도확립되지못해,대부분의산은이른바“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기때문이다.
이처참한산색깔에마음이아픈그는이산들을다시녹색으로바꾸는데자신의잎평생을바치겠다고다짐한다.
이렇게해서전국의산들을두루돌아보고,각그산들에맞는수종을고르고,그잣나무씨를채집하여노천발아에성공함으로써(그노천발아에대한그의논문은세계임업잡지에게재되어,지금도미국에서는그방식을따르고있다고함)그의생전에이나라산들은어느정도녹색을회복했던것같다.
이렇게다쿠미는이나라산천을사랑하다보니,이나라전통문화에대한관심이깊어지고,그문화유물인도자기에대한관심이깊어져,당시까지만해도일본귀족들의수집취미를만족시키기위한청자는알아도(당시까지조선에는도자기수집취미가없었던듯)백자는도자기취급도안했던시절에백자의그담백하면서도따뜻한자태에매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