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 - 시인동네 시인선 222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 - 시인동네 시인선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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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처 없는 슬픔과 사랑에 기대어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한 이희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가 시인동네 시인선 222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1990년대 초까지 뜨겁게 주목받다가 돌연 사라져 버린 이희주 시인이 삼십여 년 만에 시인으로서의 귀환을 알리는 복귀작이자, 자신의 건재함을 세상에 알리는 시집이다. 삼십여 년이란 긴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이희주 시인의 시편들은 삶과 문학에서 진정성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될 것이다.
저자

이희주

저자:이희주

1962년충남보령에서태어나한양대학교국문학과를졸업했다.1989년《문학과비평》에시16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저녁바다로멀어지다』와地上同人시집『물에의지하는물방울』이있다.한국투자증권커뮤니케이션본부장을지냈으며,지금은글을쓰며한적한곳에머물고있다.

목차


제1부
봄날은간다13/어른김장하14/전어나우리나15/캔맥주를마시며16/우리동네갈빗집18/늦가을19/불온한산책20/유지에게22/정23/샹송을틀고24/봄의섭리26/젊음27/밝은암살28/저여인30/Boxer31/모독과슬픔32/조짐34

제2부
슬픈영화37/약한자의용서38/머리카락물들이며39/Brand40/따로산다는것42/돌아오는길43/이제는필요없는44/슬픈질문46/조약돌의슬픔47/내쓸쓸한오두막48/그집49/불타는동안50/감나무한그루51/단풍나무와어머니52/그시절그친구53/국밥집에서54/그녀는누구였을까55/한삽56

제3부
문득59/딸기라는이름으로60/은미61/사이62/그나무의자63/사랑이라는말64/구석67/벽68/몸69/오래되고낡은노래70/미야자키에서71/내가너에게있는이유72/가을비74/감꽃필무렵75/그리움하나만76/그대의품속77/근심의근심78

제4부
종점81/매82/전진83/밑바닥깊숙이84/가로등불빛아래86/저사람87/늦은나이88/질서89/아,하루90/발92/바람의세월93/나무294/하류(下流)95/침묵의형식96/나무397/너의새벽98

해설임지훈(문학평론가)95

출판사 서평

세상은어지럽다.우리의속도와는무관하게세상이흘러가기때문이다.꿈을이루기위해노력하던삶도정신을차려보면어느새살아남기급급했던지난날이되어있다.세상은모두미래를향해가는것만같은데,나만제자리인것같은기분.사실은제자리에머무는것조차도힘겨운마음.세상을사는방법을나만모르는것만같지만,딱히토로할사람도주변에남아있지않다.모두가나에게바라는것은하소연따위가아니라책임감이라는것을알고있기에,토로할사람없는기분은자꾸만마음속에쌓여만간다.

하지만그건나만의문제는아닐것이다.늦은밤반짝이는노포와포장마차에서혼자술잔을기울이는사람들,혹은보지도않으면서틀어놓은TV불빛을안주삼아홀로잔을들이키는사람들.도시의밤을수놓는혼자만의불빛과반짝이는술잔들.어쩌면도시의사람들은모두혼자라는사실을받아들이기위해오늘도술잔을들이키곤거친숨을토해내고있는지도모른다.이희주의시집『내가너에게있는이유』는그렇게반짝이는불빛을닮아있다.커다란도시의북적이는인파속에서혼자라는사실을곱씹으며서로다른시간을살아가는사람들처럼,이희주의시적화자는혼자라는사실을오래도록곱씹고있다.그속에는과거의후회도있고,현재의사실도있으며,미래가되길바라는희망도스며들어있다.

늦은밤공원운동기구에올라휙휙
발을휘젓고있는남자
어디론가멀리떠나고싶었는데
늘제자리에머물러있다
이따금서걱거리며사람들이지나가고
바람은나뭇잎을덮고잠든다
남자가발을저을때마다
수줍은그림자가큰대자로흔들린다
주어진시간에켜지고
주어진시간에꺼지는가로등
평생을한자리에서명멸해왔다
문득세상이적막한것은
밤하늘보이지않는은하수때문이라고
샹송같은가로등불빛때문이라고
남자는휙휙허공에발을저으며
깊은밤을혼자걷고있다
―「가로등불빛아래」전문

인용시에서화자는공원에서운동기구에올라발을휘젓고있는한남자를바라본다.화자는그를바라보며그의속내를조심스레풀어낸다.“어디론가멀리떠나고싶”었으나,끝내“늘제자리에머물”게된사내의주변으로사람들과나뭇잎이스쳐간다.화자는그런사내를오래도록바라보며그의밤이깊어가는것을지켜본다.마치그남자가자기자신이라도되는것처럼,그의심정을말하지않아도알수있다는것처럼.물론우리는그남자와시의화자가동일한인물이아니라는사실을알고있다.시에서나타나듯화자는그런그의모습을‘나’라고지칭하지않으며부러“남자”라고말하고있기때문이다.그럼에도화자인‘나’는그의심정을손에잡힐듯알고있다.그의발이앞뒤를오가면서도현재에머물러있는모습이화자에게는결코낯설지않기때문이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시인의말

본질이라는말,실존이라는말
그리고일자라는말과타자라는말에대하여
나는일종의쾌감을갖고있다.
그것은가령노을처럼저녁이되면번져오는
당신들에대한사랑과연민같은것이다.

그렇게나는고요하다.

2023년12월
이희주

시인의산문

하이데거는“언어는존재(存在)의집”이라고했다.그러니까시인은,시를통해한사람이하나의존재자가아니라존재그자체임을일깨워주는사람들이라하겠다.자본주의를살아가는우리는이미자산(資産)으로분류된지오래다.무엇이든돈으로환산하는이세상에서나는무엇인가?

그래서나는다시반항하기로했다.반항이라는말이좀낡은언어이지만,그래서시도그렇겠지만,그래도그게나에게는정직하니까,정직하게반항하기로했다.조직에서밀려나고사랑에배신당하고타자들에게소외되고고립된,한마디로슬프고쓸쓸한사람들을위해쓰기로했다.문학이꼭그러라고있는것은아니겠으나적어도나는그러려고한다.그것은복무가아니라자발적고독과도같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