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 소설, 잇다 4

기도를 위하여 - 소설, 잇다 4

$15.00
Description
“순수 귀신을 몰아내라”, 대중소설가를 선언한 김말봉
우리 문학의 독창적이고 ‘희귀한’ 자리, 박솔뫼
다른 시간,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가
접속하고, 깊이 연루되고, 함께 걸어나가다
‘소설, 잇다’의 네 번째 책, 김말봉과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소설, 잇다’는 이 시점에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백 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그 첫 번째로 백신애와 최진영이 어우러진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출간했다. 두 번째로 지하련과 임솔아가 함께한 『제법 엄숙한 얼굴』을, 세 번째로 이선희와 천희란의 『백룸』을 펴냈다. 네 번째 작품은 김말봉과 김말봉 소설을 입체화한 박솔뫼의 소설을 담은 『기도를 위하여』이다.

김말봉은 1930년대 식민지 시기 독보적인 스타일로 혜성같이 등장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돈 벌려고 쓴다’고 대답했던 그는 순수소설만을 인정하던 당시 문학계에서 스스로 ‘대중소설가’임을 당당히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흥미 본위의 통속소설에 함몰되기를 경계하고, 민족 해방과 여성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위한 운동에 앞장서고, 글을 통해서는 애정 문제의 기저에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독교적 박애정신을 담았다.
“전혀 새로운 눈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회적 모순과의 긴장을 잃지 않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으며(김형중 평론가), “희소하고 희박한, 보존되어야 할 어떤 삶과 가치를 일깨운다”(손정수 평론가)는 평가를 받은 박솔뫼는 『머리부터 천천히』부터 『미래 산책 연습』에 이르기까지 실험적 서사와 문체로 고유한 문학적 성취를 쌓아왔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공간의 구분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사라진 지점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감지되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기도를 위하여』에 실린 김말봉의 대표 단편 「망명녀」(1932), 「고행」(1935), 「편지」(1937)는 작가 특유의 통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기생, 운동가, 아내, 애인 등 여성 인물들은 때로 나라를 위해 투신하거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습의 폐단을 고발한다. 기생이었던 주인공 순애가 사회주의 운동가로 변모하거나(「망명녀」), 불륜을 저지른 남성은 벽장 안에 갇혀 ‘수치’와 ‘굴욕’을 겪는다.(「고행」) 남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단 한 통의 편지로 여지없이 깨어져버리기도 한다.(「편지」) 세 편의 소설은 대중, 즉 민중들의 삶을 담백하고 명쾌하게 그려내면서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는 김말봉의 데뷔작 「망명녀」의 뒷이야기를 이어 쓴 소설이다. 「기도를 위하여」는 「망명녀」의 최순애와 윤정섭(윤)이 옥중 혼례를 치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혼례 후 윤숙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순애는 머지않아 목숨을 거둔다. 그러나 순애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두 사람과 함께인 채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은 김말봉의 주 본거지인 부산의 구도심을 산책하는 1인칭 화자의 서술이다. 이렇게 소설은 두 이야기가 교차되는 구성을 취하는데, 이는 주인공 순애를 기억하는 동시에 작가 김말봉을 기억하는 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면서, 현재 우리가 발 붙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새로이 갱신”한다. 김말봉 작품을 통해 박솔뫼가 읽어낸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걷도록 만드는 동력”(박서양 평론가)이 된다.

소설은 또 하나의 지금 이 세상이다. ‘소설, 잇다’를 통해 근대와 현대의 여성 작가들이 무엇을 말하고 고뇌하며 삶을 탐구했는지, 또 백 년의 시간 동안 이들의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우리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근간은 과연 변화될 수 있을지를 곰곰이 돌이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말봉,박솔뫼

저자:김말봉

1901년경남밀양에서태어나서울정신여학교를거쳐일본도시샤대학영문과를졸업했다.1927년귀국한후《중외일보》기자로재직하였으며,1932년김보옥이라는필명으로《중앙일보》신춘문예에단편「망명녀」가당선되면서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이어단편「고행」「편지」등을발표하고1935년《동아일보》에첫장편『밀림』을연재했다.1937년《조선일보》에연재한장편『찔레꽃』이대중의인기를얻으며일약스타작가가되었다.공창폐지운동에앞장서고박애원을경영하는등사회활동에도적극적으로참여했다.1957년한국최초의여성장로가되었으며,대한민국예술원회원,한국문학가협회대표위원을지냈다.『화려한지옥』『푸른날개』『생명』『화관의계절』등많은장편소설을연재,발표했다.1961년2월폐암으로사망하였다.



저자:박솔뫼

2009년작품활동을시작한이후여러편의소설집과장편소설을출간했다.소설집『그럼무얼부르지』『겨울의눈빛』『우리의사람들』『믿음의개는시간을저버리지않으며』,장편소설『백행을쓰고싶다』『도시의시간』『머리부터천천히』『미래산책연습』등이있다.문지문학상,김승옥문학상,김현문학패,동리목월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김말봉
소설
「망명녀」
「고행」
「편지」

박솔뫼
소설
「기도를위하여」
에세이
「늘한번은지금이되니까」

해설
인간의탄생과소멸,그리고구원의서사_박서양(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김말봉>

문학은대중의것이어야한다고주장했던작가
김말봉의대표단편「망명녀」,「고행」,「편지」

김말봉의데뷔작「망명녀」에는“이때이다.이기회이다.나도사람이다”라고스스로의결심과의지를확인하는한여성이등장한다.명월관이라는요리점에서기생으로일하는산호주(최순애)는차라리‘미치고말았으면’하는생각이든다.그러다8년전여학교를다니던시절형제를맺었던‘허윤숙’이라는자가찾아와산호주의빚을갚아주고그를데리고떠난다.허윤숙은담배와모르핀에중독된산호주를예전의순애로되돌리려애쓰지만쉽지않다.막상순애를되돌린것은허윤숙이애인윤정섭과나누는대화다.반동분자,소비에트,남녀기회균등등호기심을끄는단어들에사회운동을향한동경을갖게되고,윤과순애는결혼까지약속하게된다.점차‘동지’로서,또‘사람’으로서인정을받으며순애는나라에목숨을바치기로한다.결혼식날,윤에게서소포가오는데어떤위험한물건을전해달라는내용이다.순애는자신이몰래그소포를전달하기로결심하고결혼식장을떠난다.

「고행」은불륜행위를성자의‘고행’으로신성시하는남성인물의모습을통해축첩의부도덕성을꼬집는다.‘나’(남편)는전에기생이던‘미자’와불륜관계를맺고있다.미자와그가불륜관계라는것을모르는아내는미자를딱한사연이있는친구의누이동생으로알고안쓰럽게생각하며형제처럼지낸다.하루는미자가집에찾아와눈치를주자그는결국아내와의나들이를취소하고미자를찾아갔는데,때마침아내도미자의집에심심하다며찾아온다.알몸으로벽장에숨어든그는사내의바람을정당화하다가도아내에대한죄책감에시달린다.무덥고갑갑한벽장안에서빈대와벼룩의공격에참을수없는요의마저더해지고시간은계속흐른다.육체적,정신적고통이한계에다다른순간아내가집으로가겠다고나서고,아내가자신을얼마나신뢰하는지알게된그는급히미자의집을떠난다.‘나’는결국아내에의해고행에서벗어나‘구원’을받는다.

「편지」는일부일처제라는근대적가족개념이확산하던시기에여성인물스스로에의해“낭만적사랑의판타지”(박서양평론가)가깨어져가는모습을보여준다.은희의집에‘인순’이라는이름으로된한통의편지가도착한다.지난번에보내주신돈은잘받았으나부족하며,부인과자식이있는당신에게이런짐을지우는게마음아프고,죄악을짓는듯하다고쓰여있다.하지만은희는남편에게따져물을수없다.남편은얼마전급성폐렴으로세상을떠났기때문이다.은희는편지를보내온여자의얼굴을상상하며회한과질투에휩싸였다가금비녀를팔아편지를보내온쪽에돈과함께보내며집으로들르라는말을전한다.며칠고대하고있던손님은여자가아닌어린남학생으로,남편은가난한학생을후원하고있던것이다.은희는인간이란얼마나천박한가생각하며눈물을흘린다.

그리고<박솔뫼>

“가보는것아무튼계속가보는것가보고걸어보는것”
산책또는기도,작가박솔뫼가김말봉을기억하는방식

박솔뫼의작품에서산자와죽은자의경계가흐려지는세계를만나는일은드물지않다.「기도를위하여」에서도죽은순애가산사람들의세계로‘건너온다’.순애는윤과옥중혼례를치른뒤윤숙의도움으로가까스로집으로돌아오지만몸이쇠약해져곧숨을거둔다.순애를묻고돌아와앓던윤숙은병석에서순애를다시만나고,머지않아윤도순애의존재를깨닫는다.그렇게세사람은재회의순간을맞지만,얼마지나지않아윤숙은여성들에대한교육계몽을실천하고자부산으로떠나기로결심한다.그리고시간이지나,순애의기일조차가물가물하던어느날윤숙은“순애의안녕과평안”을위해기도를한다.윤숙은생각한다.이기도는산자와죽은자를위한기도인동시에,“존재하는것을위한기도”라고.또한지금이“세상에필요한것”이바로이기도이기도하다고.
소설의또다른이야기축은부산의거리를산책하며김말봉의자취를좇아가는1인칭화자의서술이다.‘나’는김말봉이걸어온삶의이력에비추어「망명녀」속등장인물의실제모델을추측하고,교토의도시샤대학을중심으로김말봉과정지용,윤동주의만남을상상하며,그가부산에서나고자라학업을수학하고전쟁후에는부산으로피난해온문인들을물심양면으로도왔다는사실을떠올린다.

“시간은늘한번은지금이된다”(박솔뫼)
백년시간을넘나드는
두작가의소설을통해‘지금’을읽는다

순수/통속의잣대로문학을구분하던시대에과감히대중소설가의길을걸었던소설가.여성의지위신장과인권보호에앞장선운동가.그리고한국최초의여성장로,김말봉.김말봉은소신을지키고실천하는지식인이었음에도그의문학은충분히검토되지못했다.이번‘소설,잇다’작업을통해김말봉소설의뒷이야기를이어쓴박솔뫼는에세이에서“시간은늘한번은지금이된다”는사실을상기시켜준다.박솔뫼는을지로에서교토로부산으로,동대문흥인지문공원으로자유로이옮겨가면서김말봉이지나왔고겪었던것들,또는실제로겪지않았으나겪었을지도모를‘가능성’들을‘지금’의시간으로우리앞에펼쳐보인다.불규칙하고비선형적인방식으로,박솔뫼의시선을따라김말봉이살았던시공간을체험하면서우리는“여기누군가살았다는것”과“스쳐지나갔다는것”을깨닫는동시에,“이제일어나야할시간”임을인지한다.
다른시간,다른시대를살았던두사람을따라가는발걸음이어느순간발맞춰걷는하나의소리로들리는것은착각만은아닐것이다.박솔뫼는김말봉의소설에‘접혀있던시간’을펼쳐,우리가나아가고있는삶의한방향을선명하게가리켜보이고있다.

추천사

「기도를위하여」에등장하는부산은박솔뫼의여느부산과조금은다른결을갖는부산일것이다.그곳은작가가김말봉의삶의흔적을따라걸으면서생겨난부산이며,김말봉소설에등장한기독교적인모티프와조우하며확장된문학적세계로서의부산이기때문이다.익숙한거리에서낯선풍경을다시금발견하는일.그를통해세계에대한감각을새로이갱신하는데에산책의즐거움이있다면,바로여기김말봉과박솔뫼의세계를따라천천히오래걷는기쁨이도착해있다.
_박서양,「인간의탄생과소멸,그리고구원의서사」(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