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16.80
Description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 정보라 신작 소설집!
“치열한 여자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들”
2022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정보라 작가의 신작 소설집. 호러 작품이 위주였던 《저주토끼》와 SF 작품을 모은 《그녀를 만나다》에 이어 이번 소설집 《여자들의 왕》은 작가가 그간 천착해 온 여성주의 판타지 작품들을 골라 엮었다.

“여자들도 상상의 주인공이자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는 정보라 작가는 “주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틀에 박힌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꿨다”면서, 전통적인 상상의 중심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 특유의 쓸쓸하고도 담백한 문체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수록작 중 ‘공주, 기사, 용’ 3부작은 《그녀를 만나다》 수록작들과 함께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 출간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저자

정보라

연세대학교인문학부를졸업하고예일대학교에서러시아동유럽지역학석사,인디애나대학교에서슬라브문학박사를취득했다.대학에서러시아와SF에대해강의하고있다.대학에서러시아어를전공하여한국에선아무도모르는작가들의괴상하기짝이없는소설들과사랑에빠졌다.예일대러시아동유럽지역학석사를거쳐인디애나대에서러시아문학과폴란드문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SF와환상문학을쓰기도하고번역...

목차

01_높은탑에공주와_7
02_달빛아래기사와_57
03_사랑하는그대와_93
04_사막의빛_135
05_여자들의왕_181
06_잃어버린시간의연대기_207
07_어두운입맞춤_239

작가의말_272

출판사 서평

치열한여자들의환상적인이야기들

《여자들의왕》은주로남성을주인공으로해서틀에박힌형태로전해내려오는이야기의주인공을여성으로바꾼작품들을모은책이다.책을여는작품으로수록된일명“공주,기사,용”3부작은“공주,기사,용”이라는단어들에서알수있듯이전형적인서양판타지의초점을공주와용으로바꾸었다.원래는그냥단순하게,칼들고건들건들하며“죽을래?”같은말을내뱉는공주를주인공으로이야기를쓰면재미있을것같다고생각했는데쓰다보니까왕비와기사와왕자도각자다사연이있을것같았다.그래서계속썼더니3부작이되었다.
서양영웅담에나오는악한용의기원은고대인도에서찾을수있다.본래인도에는커다란뱀혹은도마뱀이신화에등장하는경우가많았다고한다(그래서러시아어나폴란드어에서“용”이라는단어는(커다랗고신화적인)“뱀”을뜻하기도한다).그러다인도에서원시불교가발생하면서당시불교와경쟁했던조로아스터교에용신이있었기때문에,그리고조로아스터교는불을숭배하는종교였기때문에,‘불을뿜는악한용’이라는형상이생겨났다.원시불교의여러설화에따르면이불을뿜는악한용이석가모니의말씀을받아들여불교에귀의하면불법을지키고석가모니를보호하는선한호법용(護法龍)으로변하기도한다.
서양영웅담에서는용이종교에귀의하는부분이빠지고용감한기사가불을뿜는이교도의악한용을물리치는부분만남아있다.용이저지르는나쁜짓목록에는민간인을학살하거나공주를납치하는상황이반드시포함되고,특히서유럽영웅담에서는그래서용감하고기독교를수호하는선한기사가연약한공주를용에게서구출한다.용도사실은다자기나름대로생각이있고사연이있고,공주도사람이니까평생마냥저렇게연약하지만은않을것같아서천편일률적인구도를좀뒤집어보고싶었다.

〈사막의빛〉은우즈베키스탄을여행한뒤에쓴이야기이다.그때나지금이나종교와문화의충돌은여러가지갈등을낳고있으며이슬람교는무조건악하고폭력적인종교로매도되고있다.내가가서직접본중앙아시아는그렇지않았다.나중에공부하면서확실히알게된바,중앙아시아는이슬람교문화를바탕으로하면서도실크로드의후예들답게특유의융통성있고조금은유머감각있는사고방식과개방적이고포용적인태도를바탕으로건강하고도풍성한상인문화를일으킨지역이다.그래서이지역을배경으로전혀다른종교와문화를가진주인공이신비로운여행을하는이야기를쓰고싶었고,내가한국인이니까고려의용도하나쯤넣어주고싶었다.위에서말한서양의불뿜는용과반대로동양의용은물을다스리는데이런정반대의특징은중국을통해불교가한국과일본에전해지면서생겨났다고한다.한국,중국,일본모두쌀농사를중심으로하는농경민족이라날씨,특히비가얼마나오느냐가국가경제에아주중요한사안이었고그러므로농민들은비를지배하는토착신을이전부터믿고있었는데,중국에서불교가전해지면서이비를지배하는신에선한호법용의형상이합쳐져서물을지배하는용신으로정착되었다는것이다.용얘기는다재미있는데동서양의정반대되는형상부분이특히재미있다.

표제작〈여자들의왕〉은아주농염하고화끈한여자들의관능적권력투쟁을써보고싶어서시도했는데생각보다결과가괜찮아서만족한이야기이다.성경에나오는사울의아들요나단과다윗이야기는사실나는잘모르는데옛날에트위터에서누군가언급했던걸본적이있다.사울,요나단,다윗전부남자들이라서,마찬가지로주인공을전부여자로바꾸기로했다.이야기를쓰다보니까요나단과다윗보다는살로메와세례자요한에더가까운줄거리가되었다.처음에는화자인“나”만생각하고쓰기시작했는데다쓰고보니까“누이”가대단히위험하고음험하고그러면서도예쁘고그래서더위험한,일종의‘여자낚는팜므파탈’로묘사되어만족스럽다.

〈어두운입맞춤〉은흡혈귀이야기인데,나도향의〈벙어리삼룡이〉와브람스토커의《드라큘라》를내멋대로적당히섞어서만들었다.〈벙어리삼룡이〉에서주인공삼룡이는남성,삼룡이가사랑하는안방마님은여성,《드라큘라》에서도흡혈귀는남성이고흡혈귀의사랑의대상은여성인데이런구도를뒤집고싶었다.그런데〈벙어리삼룡이〉의구도속에서삼룡이는신분과외모로인해권력이없는취약한인물이고안방마님은가부장제하에서남편에게학대당해도저항할수없는성별권력적으로취약한인물이라서이두인물의취약성을바꾸거나없애서더좋은이야기를만들자신은없었다.그래서구도는그대로두고여성주인공을인간이아니도록바꾸어서권력을주었다.여성이귀신이나괴물이되어야만권력을가질수있다는것은슬프지만,그렇게할수밖에없었다.

마지막에서두번째에수록된〈잃어버린시간의연대기〉는대학원에서배운동슬라브원초연대기와외할머니장례식장에서보고들은집안의역사를바탕으로썼다.동슬라브원초연대기에는유일한여성군사령관올가공주가등장한다.남편이고리왕자가외적에게살해당하고올가공주본인은어린아들과둘만남은상태에서적군의지배자에게강제로시집갈위험에처한다.그러자올가공주는여러가지꾀를써서적들의군대를생매장하기도하고태워죽이기도하고나중에는적들의본진으로쳐들어가서완전히섬멸시킨다.그러나올가공주가유일하고도처음이자마지막여성군사지휘관이며이후동슬라브중세역사에이런진취적인여성은등장하지않는다.그게슬퍼서내상상속에서라도올가공주의대를이어주고싶었다.

이책은나오기도전부터“남자죽이는여자들이야기”라는오해를받게되었는데,치열하게살아가는여자들의이야기로읽어주시면좋겠다.여자들도상상의주인공이자중심이될권리가있다.그리고전통적인상상의중심을여성으로옮기면이야기가훨씬더재미있어진다.독자여러분께도재미있는경험이었으면좋겠다.

―2022년여름,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