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빛 :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세 개의 빛 :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15.00
Description
개인적·사회적 비극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추는 작지만 따스한 불빛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제주4.3평화문학상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왔다. 2023년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저녁 빛으로》는 2007년에 벌어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배경으로 디아스포라와 죄책감의 문제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 드러낸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울려 퍼진 총성이 영원히 바꿔놓은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노아 해리슨과 미국으로 이민을 온 미셸 은영 송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한 친밀하고 다정한 연인 관계이다. 그러나 은영의 연인, 노아는 TV를 통해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이후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은영은 연인을 잃은 슬픔 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두려움과 알 수 없는 반발심,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이민자로서의 삶에 공감하는 마음과 거기서 오는 죄책감까지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혼란스러워한다. 혼란을 추스르기 위해 상담사의 권고에 따라 노아와의 일을 기록하던 은영은 노아에게 자신이 모르던 또 다른 이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소설은 사회적, 개인적 비극 이후 남겨진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혼란과 애도의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이제야 뭔가 다 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내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도 같’다는 문장이 암시하듯, 소설은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고 슬픔에서 온전히 벗어난 상황을 그리기 위해 허겁지겁 내달리지 않는다. 인간이 비극 속에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이고 모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슬픔의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존재를 천천히 그리고 치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들여다본 어둠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온기를 가진 빛을 발견해낸다. 소설은 수많은 비극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도 그 빛을 건넨다. 마침내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된 평화’를 독자의 손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저자

임재희

소설을쓰며번역일을한다.둘사이가멀지않은일이다.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사회복지학을공부했고,중앙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소설을배웠다.2013년세계문학상우수상수상작《당신의파라다이스》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비늘》,소설집《어디에도속하지않은폴의하루》가있으며,《라이프리스트》《블라인드라이터》《예루살렘해변》《모호한상실》등을우리말로옮겼다.2023년제11회4·3평화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6일의시간7
남자아이-157
동그라미찾기67
여름숲107
이름,이름들146
남산에서183
저녁빛으로207
에필로그217

심사평229
작가의말232

출판사 서평

“가끔총소리가들린다.들린다고생각한다.
그리고그순간노아의얼굴이떠오르다희미해진다.”

연인인두사람,한국계미국인이자입양인인노아해리슨과미국으로이민온미셸은영송은2007년4월16일,한국계미국인이가해자인버지니아공대총기난사사건에대한보도를보게된다.입양과파양,그리고양아버지가총으로양어머니를살해한사건을겪었던노아는그뉴스를본뒤깊은우울에빠졌다가끝내자살하고,가장가까운관계이자한국인의정체성을가진은영은연인을잃은슬픔과자신이좋은지지자가되지못했다는죄책감에혼란스러워한다.거기에더해총격사건의가해자와같은국적을가진사람으로서백인사회에가지게되는두려움과반발심,그리고가해자의이민자로서의삶을상상하고공감하게되는마음과거기서오는죄책감까지다양한감정에휩싸이게된다.상담사로부터여행을떠나보라는이야기를들은은영은노아와함께한국에가보고자했던기억을떠올리지만쉽게엄두를내지못하다가,한국에두고온어린시절친구현진을떠올리고용기를내한국으로향한다.

환한대낮이었고한참을달리던버스는어두운터널로진입했다.다음에내릴까?나는어딘지알수없는먼곳으로가는불안한마음에물었다.고개를끄덕이던현진이갑자기손가락으로앞을가리켰다.저기봐,은영아.어두운터널끝에서작고환한빛의동그라미가점점커지며우리에게다가오고있었다.앞으로다가올시간이그렇게힘들거나어둡지않을거라는축복같았다.나는두려움이조금가시는걸느낄수있었다.미국이아무리멀어도잘갈수있을것처럼.
은영아,어서와.이곳이조금이라도네맘을편하게한다면,언제든환영.
오래망설이다한국행계획을현진에게알렸을때짧은답이왔다.오래전터널끝빛의동그라미를보았던장면이그렇게다시떠올랐다.
―본문83~84쪽

한국땅을밟은은영은현진의집에머물면서한국어딘가에남아있을지도모르는노아의기록을찾기로한다.미국에입양될때‘남자아이-1’이라는이름으로입양되었다는것을알게된은영은현진의도움으로노아의입양시기와비슷한시기에운영된입양기관을찾아가게된다.은영은그곳에서검은피부를가진흑인과아시아인의혼혈로미국백인중산층가정에입양된리사를만나게되고그에게노아의이야기를털어놓으며위로를받지만,노아에대한유의미한기록을찾지는못한다.

“친근한이름이네요.제연인은‘남자아이-1’이라는이름으로입양되었다고들었어요.”
리사가바로이해하지못하고고개를갸우뚱하더니이내눈을질끈감았다뜨며끄덕였다.나는따로긴설명은하지않았다.리사가충분히상상할수있는상황일것만같았다.
“혹시그가스쳐갔던곳이여기가아닐까싶어서,여기오면그를만나는기분이라도느낄것같아서이렇게무작정내려왔어요.”
오늘처음만난사람에게힘든마음을고백하듯말했다.이토록쉽게입이열리다니.평소의나답지않았다.만약에내가노아를만나지않았다면,노아가그런결정을내리지않았다면,그리고리사가입양아라고먼저고백하지않았다면일어나지않을일일수도있었다.어떤상처나고백은그자체로타인의마음을무장해제시키는힘도숨기고있는것만같았다.
“그런이름이었다면,아기였을때입양되었겠군요.”
리사가그시절한국의입양환경에대해잘알고있다는듯담담하게말했다.한국에서태어났지만한국에기록을남기지않았거나,실수로기록이삭제되었거나,영문으로번역되는과정에서벌어진오류였거나,누군가에의해의도적으로버려진아이거나,혹은의도적으로출생자체가은폐된채보내진아이일가능성도있다고.너무도다양한노아의‘가능한불행’에대해듣고있자니망연할따름이었다.
―본문116~117쪽

현진의집으로돌아온은영은한통의메일을보게된다.노아가죽은후구글링을하다알게된한불교수련원으로부터온메일이었다.한국으로오기전은영은노아가불교수련원에서수련을했던것을알게되고,자신이노아의연인이며노아가죽었다는사실을알리면서수련원에서의노아의기록을알고싶다고메일을보낸적이있었다.늦게도착한답장에서수련원담당자는이곳에서수련했던것이노아가맞다는것,그리고노아에게스님이붙여준‘동아’라는이름이있다는것을알려준다.은영은자신이알지못하던노아의기록한조각을얻은것에복합적인감정을느끼게된다.그리고노아의죽음이후자신에게온노아의이름들을따라마침내올바른애도의여정을시작하게된다.

노아에게이토록아름다운한국이름이있었다니!
나는탄식에가까운숨을토해냈다.
왜나는노아에대해더알려고하지않았을까.무엇이두려웠을까.어두운그의표정을볼때마다나는지레겁부터집어먹고피했다.지나간얘기는하지마.미래만생각할수있는지금의현실에감사하자고말했다.친절한회피였다.과거에서출발하지않은미래는없다는걸나는정녕몰랐을까.
나는용서를빌듯중얼거리며거실을서성거렸다.
메일함을열고그스님에대한정보를알수있을까묻는짧은메일을보냈다.그리고다시헬레나가보낸메일을천천히읽어내려가고있었을때,헬레나가바로답을보냈다.기다리던내용이아니었다.
―본문157~158쪽

“평화는그냥주어지지않는다
이렇게문학에서추구하고성취되는것이다”

작가의말에서소설가는2014년4월16일세월호침몰이보도되었을때,2007년4월16일에있었던버지니아공대총격사건을떠올렸다고말한다.미디어가세상을훨씬더가깝게,그리고보다생생하게연결하는지금,비극이후에남겨진존재로서은영은사회적,개인적비극이후를살고있는우리모두의모습이기도하다.비극속에서인간은다양한감정을감각한다.한인간을구성하는경험과정체성에따라분노와슬픔,우울에서부터일견비윤리적이거나비합리적으로보이는감정까지,두서없는혼란이한존재를사로잡는다.소설은이민자,입양인,여성,흑인등다양한배경을가진사람들이해석할수없는비극앞에서겪는다양한감정의결을천천히공을들여보여준다.함부로판단하거나재단하지않고그대로보여주는것,소설의방식을통해고통은천천히정화-카타르시스를향해나아간다.

하지만소설은고통을재현하는데에서그치지는않는다.재현이정화의한축이라면,또다른축에는애도의가능성이있다.소중한사람을잃은은영은자신이겪은일을이해하기위해연인의과거에관심을갖게되고,그의뿌리를찾기위해한국으로돌아온다.그과정에서은영에게는노아의또다른이름이마치아리아드네의실타래처럼주어진다.한치앞을모르는미궁속을고작얇은실하나를붙들고들어가는마음으로은영은그의연인을애도하는여정을떠난다.그렇게도달한한국에서은영의세계는넓어지며더많은존재들과연결된다.더많은고통을이해하게되고,더많은용기를알게된다.충분한애도조차어려운현대에소설은소설적순간을통해애도의가능성을제시한다.문학평론가허희는이렇게말한다.“이소설은세개의어둠에서‘비폭력,공감,애도’라는세개의빛이어떻게생겨나서로투영될수있는지를끝내증명해낸다.이와같은빛은국경을비롯하여구획된경계를넘나든인물들이같이발견하고반사한결과물이다.평화는그냥주어지지않는다.이렇게문학에서추구하고성취되는것이다.”

심사평

적진을향해달려가는단기필마라고할까.정체성을찾기위해집요하게파고든덕에폭력과공포의무늬가분명하고확실하게피어나고있었다.출혈의시작점을끝내찾아내고말았다고나할까.거기에디아스포라의질곡을깊이경험한자만이만들어낼수있는생생한언어들이그집요함을감싸고있는게작가의의도를전달하는통로로기능을하고있었다.
_심사위원공선옥(소설가),공지영(소설가),한창훈(소설가)

작가의말

나를움직인것은폭력이휩쓸고간뒤남겨진사람들이보여준성숙한‘행동’이었다,버지니아공대총격사건의희생자는서른두명이었는데,추모석과꽃과검은리본은모두서른세개로꾸며진추모식이열렸다.희생자가족들과친구들은스물세살그청년을‘폭력’과‘죽음’이라는이름아래동등한‘희생자’로품은것이다.그들이고통의시간속에서분노보다슬픔을택했다는사실이놀라웠고어쩌면분노보다슬픔이희생자들을기억하는힘이될수도있을것만같아서오래그마음에고개숙였다.하루의마지막빛을끌어모으는마음으로이소설을썼다.작은빛이라도마음에품고오늘을건너가는사람들의이야기로기억해줬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