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시대, 조선 지식인의 삶과 공부 - 경북대학교 인문교양총서 60

역병의 시대, 조선 지식인의 삶과 공부 - 경북대학교 인문교양총서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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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를 팬데믹(Pandemic)으로 공식 선포하였다. 만 2년 만에 WHO 사무총장은 “팬데믹의 끝이 보인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후 사회 곳곳에서 팬데믹에 대한 공포와 절망 대신, 일상 회복을 위한 기대감과 희망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마냥 팬데믹 종식에 따른 낙관적인 전망만을 다룰 수가 없다. 그 사이 전염병이 끼쳤던 영향은 실로 간단하지 않았으며 팬데믹 상황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 단결된 시민 의식을 보여주며 빠르게 안정을 모색했지만, 이 과정에서 집단 간 갈등과 대립, 그로 인한 공동체 균열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부조리한 환경과 불평등의 심화, 공적 책무 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일부 지도층의 모습 등은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의식에는 어느 순간부터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체념적·분노적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팬데믹이 돌아온다면 공동체의 연대를 도모하기보다, 각자의 생존 배낭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연대 의식의 부재는 인간이 어렵게 지켜온 선한 심성을 왜곡시키고 종국에는 인류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담론만 떠들어대는 상황은 인간의 자율적 판단과 선한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인간으로서의 윤리적·사회적 도의와 책무에 대해 논의하는 담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이 잦은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챙겨야 하는 도덕적 의식과 실천을 버리지 않은 채 유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시도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유교 지식인에 해당했던 14명의 조선시대 선비들을 다룬다. 선비는 유학을 공부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삶의 목표로 여긴 자이다. 이 중 ‘관료 지식인’은 과거에 입격하여 출사를 통해 공부의 이상을 실천했던 이들을 일컫는다. 본서에서는 유학에 뜻을 두고 개인의 인격 수양뿐만 아니라 공공의 문제 해결에도 노력했던 이들 모두를 ‘유교 지식인’이라 총칭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배움·공부는 실천이 동반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에, 곧 삶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이들의 노력을 미화하는 식의 서술은 피하고자 필자의 주관적 의견은 최소한으로 기술하였다. 다만 현세적이고 도학적인 유학을 추구했던 지식인들이 극한의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처신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특별히 인간적인 면모와 애환을 기록하는 까닭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조선시대 당시의 혼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병(疫病)으로 길가에 즐비한 시체는 조선시대의 일상적 모습 중 하나였다. 역병의 사전적 의미는 ‘대체로 급성이며 전신(全身) 증상을 나타내어 집단적으로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전통사회에서 돌림병을 뜻하는 역병은 악병(惡病), 여역(癘疫), 역려(疫癘), 역질(疫疾), 온역(瘟疫), 장역(瘴疫), 질역(疾疫)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전염병의 원인과 실체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기에 역병을 지칭하는 그것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평균 1년에 2.8건의 전염병이 발생할정도로 역병이 끊이지 않았다. 이성계가 요동정벌 불가의 원인으로 장마철이라 군사들이 역병에 걸릴 위험이 있음을 언급했듯, 조선시대에서 역병은 정치·군사·사회적으로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역병은 한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기도 했으나 나라 전체에 유행하기도 했다. 전쟁과 가뭄, 홍수, 지진 등의 잦은 재난 상황은 기근과 전염병을 연쇄적으로 수반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을 빈번하게 위협하였다. 정체불명의 전염병과 맞서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일은, 누구라도 예외가 없었다. 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문집을 구성하는 시와 편지에는 역병으로 인한 서글픔, 안타까움, 괴로움 등의 감정 표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유교 지식인들 대부분은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협에도 견디고 버티며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팬데믹의 불가항력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귀(尊貴)를 지키며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꿔나가고자 나름의 노력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지식인들이 팬데믹의 진공상태에서 ‘존귀’한 삶을 지켜냈던 것이 아니라, 절망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주목하였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와 공부의 노력 등을 짚어보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어갈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도생’이 아닌,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호혜를 전제로 하는 ‘공존’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팬데믹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팬데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19), 뉴 노멀의 시대에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저자

송수진

저자:송수진
경북대학교인문학술원연구원
경북대학교사범대학을비롯한여러대학에서교직과목을강의해왔다.현재는경북대학교인문학술원에서연구원으로재직하며한국연구재단과제(조선시대‘부형(父兄)’의교육적책무와권한연구)를수행하고있다.저서로는[교사의권위에대한역사적전개와전망](공저),[교육사교육철학입문](공저)등이있으며,논문으로는ThecontextofSongdok:TwopurposesoftraditionalKoreaneducation,<조선전기부형(父兄)의위상과교육적책무>,<조선전기태조-중종대‘존사(尊師)’:유교이념과현실사이에서>,<한국전통교육에서‘학우(學友)’개념검토:유가(儒家)교유관을중심으로>,<늙음의교육적성찰:[논어]를중심으로>,<최남선의[산수격몽요결]검토:입지(立志)가아닌입지전(立志傳)을위한공부>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제1부역병의원인을어떻게이해했는가

1.권근,유교식인정(仁政)으로무사귀인을위로하라
2.이언적,군주의성학(聖}學)으로하늘을감응시켜라
3.이익,무식(無識)한태도는어리석을뿐

제2부역병도이겨내는효심,지극한효의실천

1.정여창,전염병도막지못한효심
2.오희문,자잘하고자잘한유리(流離)하는자의노모부양
3.성혼,너는고기를먹어생명을온전히하라

제3부역병에도포기할수없는공부,그도전과과정

1.권상일,미역자(未疫者)수험생의처신
2.류의목,통과의례속어른으로의입문
3.최흥원,혼란속효·제를가르치다

제4부관료지식인,백성을적극구휼하다

1.김계휘,머리와수염이하얗게변했던까닭
2.김육,제인(濟人)의마음으로전염병상황을구제하다
3.박제가,관념을버리고실리를추구하다

제5부역질,유학의초심으로돌아가라
1.정약용,청렴하지않은정치에대한비판
2.홍길주,비영리복지를꿈꾸다

맺음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2020년세계보건기구(WHO)는코로나19를팬데믹(Pandemic)으로공식선포하였다.만2년만에WHO사무총장은“팬데믹의끝이보인다”라는긍정적인메시지를발표했다.이후사회곳곳에서팬데믹에대한공포와절망대신,일상회복을위한기대감과희망이논의되었다.하지만마냥팬데믹종식에따른낙관적인전망만을다룰수가없다.그사이전염병이끼쳤던영향은실로간단하지않았으며팬데믹상황은한국사회의민낯을드러내는계기가되었기때문이다.위기앞에단결된시민의식을보여주며빠르게안정을모색했지만,이과정에서집단간갈등과대립,그로인한공동체균열이심상치않았다.특히사회적약자를둘러싼부조리한환경과불평등의심화,공적책무의식을찾아보기어려운일부지도층의모습등은공동체에대한낙관적전망과신뢰를기대하기어렵게만들었다.
이런상황에서개인의의식에는어느순간부터‘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체념적·분노적키워드가자리잡고있다.다시팬데믹이돌아온다면공동체의연대를도모하기보다,각자의생존배낭에몸을맡겨야한다는생각이짙어지고있다.연대의식의부재는인간이어렵게지켜온선한심성을왜곡시키고종국에는인류의자멸로이어질수있음을오랜역사적경험을통해알고있지만,어쩔수없다는반응이다.시장자본주의체제를둘러싼불확실한담론만떠들어대는상황은인간의자율적판단과선한의지를나약하게만들수있음을상기해야한다.이제인간으로서의윤리적·사회적도의와책무에대해논의하는담론이절실하게필요한시기이다.
본서는조선시대유교지식인들이잦은팬데믹의위협속에서도인간이라면마땅히챙겨야하는도덕적의식과실천을버리지않은채유학적이상을실현하기위해어떠한노력을시도했는지를살펴본다.이를위해유교지식인에해당했던14명의조선시대선비들을다룬다.선비는유학을공부하여수기치인(修己治人)을삶의목표로여긴자이다.이중‘관료지식인’은과거에입격하여출사를통해공부의이상을실천했던이들을일컫는다.본서에서는유학에뜻을두고개인의인격수양뿐만아니라공공의문제해결에도노력했던이들모두를‘유교지식인’이라총칭하고자한다.
이들에게배움·공부는실천이동반됨으로써완성되기때문에,곧삶그자체였다.이과정에서단순히이들의노력을미화하는식의서술은피하고자필자의주관적의견은최소한으로기술하였다.다만현세적이고도학적인유학을추구했던지식인들이극한의두려움과불안에직면했을때보여준,있는그대로의상황과처신을보여주고자하였다.특별히인간적인면모와애환을기록하는까닭은,인간에대한연민과애정어린시선이계속이어졌으면하는바람때문이다.
현대인들은조선시대당시의혼란에대해실감하지못하는경우가많다.역병(疫病)으로길가에즐비한시체는조선시대의일상적모습중하나였다.역병의사전적의미는‘대체로급성이며전신(全身)증상을나타내어집단적으로생기는전염병’을뜻한다.전통사회에서돌림병을뜻하는역병은악병(惡病),여역,역려,역질(疫疾),온역(瘟疫),장역,질역(疾疫)등다양한이름으로불렸다.전염병의원인과실체를정확히알아낼수없었기에역병을지칭하는그것또한한두가지가아니었다.<조선왕조실록>에따르면조선시대는평균1년에2.8건의전염병이발생할정도로역병이끊이지않았다.이성계가요동정벌불가의원인으로장마철이라군사들이역병에걸릴위험이있음을언급했듯,조선시대에서역병은정치·군사·사회적으로중요한변수중하나였다.역병은한지역에서국지적으로발생하기도했으나나라전체에유행하기도했다.전쟁과가뭄,홍수,지진등의잦은재난상황은기근과전염병을연쇄적으로수반하여개인과공동체의일상을빈번하게위협하였다.정체불명의전염병과맞서싸워살아남아야하는일은,누구라도예외가없었다.유학자들도마찬가지였다.이들의문집을구성하는시와편지에는역병으로인한서글픔,안타까움,괴로움등의감정표출을쉽게찾아볼수있다.이처럼조선시대의유교지식인들대부분은삶에대한불확실성과위협에도견디고버티며살아남아야했던이들이었음을상기할필요가있다.본서에서다루는인물들의삶의궤적은달랐지만,팬데믹의불가항력상황에서도인간으로서의존귀(尊貴)를지키며문화인으로서의정체성을가꿔나가고자나름의노력을모색했다는공통점이있다.
이에본서는조선시대유교지식인들이팬데믹의진공상태에서‘존귀’한삶을지켜냈던것이아니라,절망과두려움을마주하는가운데자신들이추구하는가치를실현하고자했음을주목하였다.이들이보여주는삶에대한태도와공부의노력등을짚어보면서한국사회가직면한여러문제들을풀어갈대안을모색할수도있을것이다.더중요한것은‘각자도생’이아닌,타인에대한공감과호혜를전제로하는‘공존’의중요성을자각할수있어야할것이다.많은이들이코로나이후의세상은팬데믹이전으로결코돌아갈수없다는점에서‘새로운일상(NewNormal)’이라는점에동의한다.팬데믹은언제든반복될수있기때문이다.이제는포스트코로나(Post-COVID19),뉴노멀의시대에서어떻게일상을살아갈것인지를논의해야할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