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를 팬데믹(Pandemic)으로 공식 선포하였다. 만 2년 만에 WHO 사무총장은 “팬데믹의 끝이 보인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후 사회 곳곳에서 팬데믹에 대한 공포와 절망 대신, 일상 회복을 위한 기대감과 희망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마냥 팬데믹 종식에 따른 낙관적인 전망만을 다룰 수가 없다. 그 사이 전염병이 끼쳤던 영향은 실로 간단하지 않았으며 팬데믹 상황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 단결된 시민 의식을 보여주며 빠르게 안정을 모색했지만, 이 과정에서 집단 간 갈등과 대립, 그로 인한 공동체 균열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부조리한 환경과 불평등의 심화, 공적 책무 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일부 지도층의 모습 등은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의식에는 어느 순간부터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체념적·분노적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팬데믹이 돌아온다면 공동체의 연대를 도모하기보다, 각자의 생존 배낭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연대 의식의 부재는 인간이 어렵게 지켜온 선한 심성을 왜곡시키고 종국에는 인류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담론만 떠들어대는 상황은 인간의 자율적 판단과 선한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인간으로서의 윤리적·사회적 도의와 책무에 대해 논의하는 담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이 잦은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챙겨야 하는 도덕적 의식과 실천을 버리지 않은 채 유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시도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유교 지식인에 해당했던 14명의 조선시대 선비들을 다룬다. 선비는 유학을 공부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삶의 목표로 여긴 자이다. 이 중 ‘관료 지식인’은 과거에 입격하여 출사를 통해 공부의 이상을 실천했던 이들을 일컫는다. 본서에서는 유학에 뜻을 두고 개인의 인격 수양뿐만 아니라 공공의 문제 해결에도 노력했던 이들 모두를 ‘유교 지식인’이라 총칭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배움·공부는 실천이 동반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에, 곧 삶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이들의 노력을 미화하는 식의 서술은 피하고자 필자의 주관적 의견은 최소한으로 기술하였다. 다만 현세적이고 도학적인 유학을 추구했던 지식인들이 극한의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처신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특별히 인간적인 면모와 애환을 기록하는 까닭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조선시대 당시의 혼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병(疫病)으로 길가에 즐비한 시체는 조선시대의 일상적 모습 중 하나였다. 역병의 사전적 의미는 ‘대체로 급성이며 전신(全身) 증상을 나타내어 집단적으로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전통사회에서 돌림병을 뜻하는 역병은 악병(惡病), 여역(癘疫), 역려(疫癘), 역질(疫疾), 온역(瘟疫), 장역(瘴疫), 질역(疾疫)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전염병의 원인과 실체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기에 역병을 지칭하는 그것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평균 1년에 2.8건의 전염병이 발생할정도로 역병이 끊이지 않았다. 이성계가 요동정벌 불가의 원인으로 장마철이라 군사들이 역병에 걸릴 위험이 있음을 언급했듯, 조선시대에서 역병은 정치·군사·사회적으로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역병은 한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기도 했으나 나라 전체에 유행하기도 했다. 전쟁과 가뭄, 홍수, 지진 등의 잦은 재난 상황은 기근과 전염병을 연쇄적으로 수반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을 빈번하게 위협하였다. 정체불명의 전염병과 맞서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일은, 누구라도 예외가 없었다. 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문집을 구성하는 시와 편지에는 역병으로 인한 서글픔, 안타까움, 괴로움 등의 감정 표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유교 지식인들 대부분은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협에도 견디고 버티며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팬데믹의 불가항력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귀(尊貴)를 지키며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꿔나가고자 나름의 노력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지식인들이 팬데믹의 진공상태에서 ‘존귀’한 삶을 지켜냈던 것이 아니라, 절망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주목하였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와 공부의 노력 등을 짚어보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어갈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도생’이 아닌,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호혜를 전제로 하는 ‘공존’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팬데믹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팬데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19), 뉴 노멀의 시대에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의식에는 어느 순간부터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체념적·분노적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팬데믹이 돌아온다면 공동체의 연대를 도모하기보다, 각자의 생존 배낭에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다. 연대 의식의 부재는 인간이 어렵게 지켜온 선한 심성을 왜곡시키고 종국에는 인류의 자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둘러싼 불확실한 담론만 떠들어대는 상황은 인간의 자율적 판단과 선한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인간으로서의 윤리적·사회적 도의와 책무에 대해 논의하는 담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이 잦은 팬데믹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챙겨야 하는 도덕적 의식과 실천을 버리지 않은 채 유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시도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유교 지식인에 해당했던 14명의 조선시대 선비들을 다룬다. 선비는 유학을 공부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삶의 목표로 여긴 자이다. 이 중 ‘관료 지식인’은 과거에 입격하여 출사를 통해 공부의 이상을 실천했던 이들을 일컫는다. 본서에서는 유학에 뜻을 두고 개인의 인격 수양뿐만 아니라 공공의 문제 해결에도 노력했던 이들 모두를 ‘유교 지식인’이라 총칭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배움·공부는 실천이 동반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에, 곧 삶 그 자체였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이들의 노력을 미화하는 식의 서술은 피하고자 필자의 주관적 의견은 최소한으로 기술하였다. 다만 현세적이고 도학적인 유학을 추구했던 지식인들이 극한의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처신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특별히 인간적인 면모와 애환을 기록하는 까닭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조선시대 당시의 혼란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병(疫病)으로 길가에 즐비한 시체는 조선시대의 일상적 모습 중 하나였다. 역병의 사전적 의미는 ‘대체로 급성이며 전신(全身) 증상을 나타내어 집단적으로 생기는 전염병’을 뜻한다. 전통사회에서 돌림병을 뜻하는 역병은 악병(惡病), 여역(癘疫), 역려(疫癘), 역질(疫疾), 온역(瘟疫), 장역(瘴疫), 질역(疾疫)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전염병의 원인과 실체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기에 역병을 지칭하는 그것 또한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평균 1년에 2.8건의 전염병이 발생할정도로 역병이 끊이지 않았다. 이성계가 요동정벌 불가의 원인으로 장마철이라 군사들이 역병에 걸릴 위험이 있음을 언급했듯, 조선시대에서 역병은 정치·군사·사회적으로 중요한 변수 중 하나였다. 역병은 한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기도 했으나 나라 전체에 유행하기도 했다. 전쟁과 가뭄, 홍수, 지진 등의 잦은 재난 상황은 기근과 전염병을 연쇄적으로 수반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을 빈번하게 위협하였다. 정체불명의 전염병과 맞서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일은, 누구라도 예외가 없었다. 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문집을 구성하는 시와 편지에는 역병으로 인한 서글픔, 안타까움, 괴로움 등의 감정 표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유교 지식인들 대부분은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위협에도 견디고 버티며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팬데믹의 불가항력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귀(尊貴)를 지키며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꿔나가고자 나름의 노력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본서는 조선시대 유교지식인들이 팬데믹의 진공상태에서 ‘존귀’한 삶을 지켜냈던 것이 아니라, 절망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주목하였다. 이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와 공부의 노력 등을 짚어보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어갈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도생’이 아닌, 타인에 대한 공감과 호혜를 전제로 하는 ‘공존’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팬데믹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팬데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19), 뉴 노멀의 시대에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역병의 시대, 조선 지식인의 삶과 공부 - 경북대학교 인문교양총서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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