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곡예사 - 황금알 시인선 270

서투른 곡예사 - 황금알 시인선 270

$11.05
Description
김병택 시인은 대체로 소소한 일상에서 시의 제재를 얻고 있다. 일상에서 마주친 작은 울림을 시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고 상투적인 풍경묘사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일상적 대상과 현실을 새롭고 신선한 의미로 재탄생시켜 새로운 감동을 들려준다. 그의 이러한 시적 역량은 미세한 관찰과 섬세한 묘사로 구축해내는 이미지 형상 능력 덕분이다.
또한, 시 창작의 에너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강한 동일성의 상실감에서 유발된다는 사실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동일성의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자아탐색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바로 김병택 시인의 그러한 회복에의 열망을 담아낸 시작품을 통해 엿들으면서 공감하고 감동하며 치유받는 것이다. 그의 시가 하는 말이나 시적화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 즉 ‘시를 왜 읽는가?’에 대한 어렴풋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백운복(문학평론가)
저자

김병택

제주시에서태어나1978년7월호현대문학에서문학평론이천료되어문단에데뷔하면서글쓰기를시작했다.1986년에는동국대대학원에서「한국초기근대시론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고,이를계기로김수영·김춘수등의시와시론에많은관심을기울였다.30여년동안시인론·시론·작가론·비평론·지역문학론·지역문학사·지역예술사·비교문학등의분야를천착했다.저서로『바벨탑의언어』『한국근대시론연구』『한국현대시론의탐색과비평』『한국문학과풍토』『한국현대시인의현실인식』『제주현대문학사』『제주예술의사회사』(상,하)『현대시의예술수용』『시의타자수용과비평』등이있다.다시,2016년『심상』(시)으로등단하여시집으로『꿈의내력』『초원을지나며』『떠도는바람』『벌목장에서』등이있다.

목차


1부

달·12
멀구슬나무의희망·14
밤의달맞이꽃·16
녹나무가지·18
마주하기드문아침·19
조팝나무꽃잎의내력·20
아침에내리는비·22
작은섬·24
후박나무의바람·26
흩어지는저녁·28
엎드린자세로가을이·30
우리의단풍놀이·31
두가을을다붙잡았다·32
밤바다물결은·34
겨울수목원·36

2부

독경소리·40
등산소묘·41
시간에대한혼잣말·42
색다른안경·43
이런운명론·44
날마다침묵한다·46
다시집으로·47
마음의안개·48
이사하는날·50
오름을오르내리며·52
관습이라는굴레·54
내가열중하는작업·56
안구건조증·57
새안경을쓰면서부터·58

3부

만나지못한얼굴·62
소풍전후·64
오일장·66
유년의잦은출몰·67
어둠앞에서·68
깨어나는집·70
사월,기억들·72
귀가이후·74
하찮은기억의항아리·76
오래전이야기·78
은밀한고백―­추사김정희·79
삼신인의목소리―제주박물관에서·80
입소기―로빈슨크루스에빗대어·82
백중날밤·84
닻을내리면·86
옛날을찾아가다·88

4부

대장장이의망치질·90
소멸의확인1·91
소멸의확인2·92
산계곡의출렁이는물결·94
사막을걸으며·96
용의자관찰·98
하얀웃음·100
‘사랑한다’는말·101
퇴원이전·102
낯익은그림·104
무대막이내릴때·105
겨울부두·106
극장객석에홀로남아·108
타이태닉호·110
투시―찰리채플린·112
서투른곡예사·114
줄광대1·116
줄광대2·118
시든꽃잎하나·120
바람,풍경·121

해설|백운복_섬세한이미지들의아름다운합주合奏·122

출판사 서평

미세한관찰과섬세한묘사로구축해낸이미지형상

‘일상에서마주친작은울림의풍경화’에이어김병택시인의시편들이보여주는몇가지특징중하나가‘미세한관찰과섬세한묘사로구축해낸이미지형상’이다.한편의시작품을그시의구조전체로밝힐때,시를구성하는가장중요한요소가되는것은이미지다.시를‘말로써이루어진그림’이라든지,심상(心象)이라는한자어번역처럼‘마음속에그리는언어에의한그림’이라고말하는것은곧이미지를지칭하는것이다.관념적이고추상적인것이시작품속에서개성적이고구체적인것으로밝혀지고,그작품속에서만의독특한의미를지니게되는것은바로이미지를통해서가능해진다.그만큼관념의구체화로서의이미지는대상과서정의시적조응을통해시작품에표상된시인의미적경험이다.독자는바로이시인의미적경험이응축된시어나이미지와소통하면서공감하고감동하게되는것이다.

김병택시인은이미지가담당하는이러한특질과작품속에서의기능을너무나잘이해하고있을뿐만아니라,이미지가그려내는의미조형을자신만의개성적이고창의적인구사력으로시작품속에구축해내고있다.그것은무엇보다미세한관찰과섬세한묘사에대한열중과역량에서온다.그결과물을다음의부분들을통해확인해보자.

한떼의바람이수채화가득한
가을하늘을가로지른다
작은새들도부리에아침을문채
아슬하게비끼며날아간다
―「흩어지는저녁」부분

엎드린자세로가을이다가왔다
천천히마음을가다듬는이시간에

여름의흔적을지우는풀벌레소리
긴바람이일으키는물결소리가
꿈속의노래처럼아득하게들렸다

공중으로높이솟아올라흔들리는
여린가지의나뭇잎들사이로
미끌어지듯날아가는작은새들의
몸짓을오랫동안바라보았다
―「엎드린자세로가을이」부분

바다에누운섬이하얗게바뀌었다
바람이불때마다조금씩흔들렸고
파도의진폭은억울한사람의생애처럼
고비마다,마디마다자주달랐다
좌초한영혼이숨을쉬고있는듯했다
―「작은섬」부분

「흩어지는저녁」에서만날수있는‘수채화가득한’가을하늘과‘부리에아침을문’작은새들은묘사자체로도매우신선하고이채롭다.여기에두대상의절묘한상호조응,즉바람이가로지른가을하늘을작은새들이“아슬하게비끼며날아간다”라는표현은미세한관찰과섬세한교직(交織)의시적역량을잘보여준다.

「엎드린자세로가을이」에서도,“엎드린자세로가을이다가왔다”라는표현이라든지“여름의흔적을지우는풀벌레소리”등에서느낄수있는감정을이입한수식어구들은그자체로김병택시인의독창적인수사기법을여실하게잘보여주는예라고할수있다.아울러‘풀벌레소리→물결소리→꿈속의노래’로이어지는과정은물론,‘흔들리는여린가지의나뭇잎들’과‘날아가는작은새들의몸짓’으로이어지는접속은이미지들의상호조응과흐름까지를상징적으로형상화하고있다.

이어서「작은섬」에서는또다른모습의이미지조형을보여준다.바람이불때마다작은섬에부딪히는‘파도의진폭’을‘바다에누운섬을하얗게바꾸고’→‘억울한사람의생애처럼고비마다자주달랐으며’→마침내는‘좌초한영혼이숨을쉬고있는듯했다’라고표현함으로써‘섬→생애→영혼’으로넓고깊게펼쳐나가고있다.이는원관념인‘파도의진폭’에대한보조관념의확산이며,의미의풍요로움을더하는이미지가그려내는의미조형이다.지금까지살펴본작품이외에도김병택시인이미세한관찰과섬세한묘사로구축해낸이미지형상들을그의작품도처에서얼마든지확인해볼수있다.그만큼개성적이미지조형이시의구성에서얼마나중요한요소인가를시인자신이너무나잘알고있다는증거일것이다.

그러나우리가시에서이미지를주목하는것은신선하고창의적인이미지형상자체에있는것은결코아니다.이미지의진정한가치는시의전체적문맥과구조를통해서만파악될수있다.아무리새롭고참신한이미지구사가이루어졌다고하더라도,그것이시의구조속에서이미지로서의기능을제대로수행할수있어야만비로소그가치를얻는다.다시말해서의미융합을통한의미론적변용이나새롭게구축된의미망을이루어내지못한다면결코시적이미지라고할수없다.

시인의말

시집『벌목장에서』를발간한이후부터최근까지여러매체에발표한시들과틈틈이써서서랍에넣어둔시들을꺼내한데모았다.세상의어느시집에서도완벽한시를읽을수는없었다.다만그런시를쓰려는시인의노력이숨쉬고있을뿐이었다.

2023년유월
김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