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라는 말들 - 황금알 시인선 293 (양장)

저녁이라는 말들 - 황금알 시인선 293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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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육수

저자:김육수
김육수시인은강원도고성에서태어나2023년『문학청춘』으로등단했다.강릉대학교경영정책대학원법률정책학과석사과정을수료했다.강릉대학교생명과학대학행정실장등을역임하고,현재청하유통을운영중이다.

목차


1부
나를찾아서·12
새벽길·13
상처의길·14
행복·15
오일장·16
동태·18
중앙시장·19
햇살비치다·20
귀가·22
걸어온길·23
나팔꽃·24
도시의일상·25
아침숲속길·26

2부
동해,골목길·28
콩나물국밥집·30
저무는하루·31
언덕을오르다·32
부둣가선술집·33
막차·34
떠나는길·35
강가에서·36
안개·37
지난날·38
채무자·39
시간의길목·40

3부
포장마차·42
지금은·43
인력시장·44
우리건어물공장에는·45
시작·46
부둣가·47
서울행·48
방랑자·50
두나무·51
돌고도는길·52
나만의기억방식·53
거미氏·54
간이포차·55
비상구·56

4부
길을묻는다·58
떡장수할매·59
여로다방·60
나약한힘·61
경계·62
경포호·63
수산시장회센터·64
연인과자전거·65
오래된집·66
이별·67
촛불·68
한여름도로·69

5부
동해,겨울바다·72
안쪽의분위기·73
바닷가를걷는다·74
간난이할아버지·75
화진포호수에서·76
오늘의운세·77
오월에·78
숯불구이·80
가을그림자·81
안목항·82
그늘진기억·83
수평선·84
저녁이라는말들·86

해설|김영탁_일상의서정과방랑자의시세계·88

출판사 서평

진경(眞境)에들어서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주필)

김육수는외롭고쓸쓸한발걸음을가진방랑자이면서,아무도없는혼자만의아득한공간에주목한다.그공간에서대상들의존재나추억을소환하는노래를부르면서,공간은다시태어나작동한다.그러니까생명을가진그공간은진경(眞境)으로자리매김하는것이다.그노래들과진경(眞境)들은무정물과유정물이상호교감하면서전통적인서정시의태도를보여준다.이부분은실재계의잔영위에단순하게재현되는것이아니라,대상의융합을통해재구성됨으로써언어들은새생명을얻어서살아서움직이고있을터이다.김육수가구현하는뭇생명들은전통적인서정의심상으로쓸쓸함과고독에서,오히려시의감흥을점층적으로고조하고야만다.이는공자(孔子)가주장했던“관저의시는즐거우면서도음란하지않고,슬프면서도마음을상하지는않는다(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논어·팔일(八佾)』;『시경』의「관저(關雎)」편에대해붙인논평)라는말과연대하고있다.

숲속에걸친빛들은물러가고
어둠이채워지는산길로
저녁이라는말들이길게드리운다

산모퉁이에자그마한집굴뚝에서
뭉게뭉게피어오르는연기는
환했던낮과저녁사이에태어난말들,
그수련한말들은허공의빈의자를찾아간다

산그림자가지워진저녁하늘
풀벌레울음소리가
오두막에쉬고있는
한낮의말들을지우고
저녁이라는말들이울고있다

어깨를다독이는달빛을품고
소로小路로가는상처난영혼들
걷는발걸음소리조차부담스러워
바람길따라침묵속에간다

아직은밤이라고말할수없는
물렁물렁한저녁의말들이
허공의빈의자를채우고있다
-「저녁이라는말들」전문

시「저녁이라는말들」은동양시론에서언급하는시화일률詩畵一律을소환한다.이시를보면,저녁의정취와심상을노래하고있는데,시는소리있는그림이되고그림은소리없는시가되는걸경험한다.
“숲속에걸친빛들은물러가고”라는평이한진술을통해해가저물며어둠이깔리는순간을자연스럽게그린다.이때“저녁이라는말들이길게드리운다”라는표현은저녁이라는실체의기의를넘어서,‘저녁이라는말’자체의기표를만나면서,길게드리운다는말이,그러한말들이저녁의감정과분위기를연출한다.시각적인형상화를통해,하루의끝자락에서느껴지는감정의길이를강조하고있다는것이다.

두번째연에서는산모퉁이에있는작은집의모습을묘사하는데,굴뚝에서피어오르는연기는‘저녁이라는말들’에관한화답의형태를띠고있다.즉,낮과저녁사이의과도기적순간을상징하지만,“환했던낮과저녁사이에태어난말들”은기의와기표의간극에서발현하는,저녁이라는말들의감정과심상을드러내는장치이다.그리하여정제된언어들의수련한말들이“허공의빈의자를찾아간다”라는진술은낮이라는현실적인공간에서저녁이라는환상성으로이동하면서,완전한저녁으로의자리를잡는태도이다.
현실에서벗어나환상의공간으로진입한말들은어디론가사라질듯한,불안감을빈의자를찾아가는행위로말미암아허공에서충분히머물수있다는걸암시한다.그러므로정제된수련한말들은초월적존재로서,저녁이주는시간들의고요함과무의미의의미를찾아가는탈속적인면모를보여준다.

세번째연에서는저녁하늘과자연의소리가어울리며,인간이활동하는낮이라는개념을희석시킨다.“산그림자가지워진저녁하늘”은새롭게태어나는저녁하늘을산그림자를대체하여저녁을그리고있을것이다.“풀벌레울음소리”는인간의소리를지우고저녁다운자연의소리를강조하고있다.그러므로이소리는오두막에잔류하고있는“한낮의말들을지”움으로써,인간은저녁에휴식을취하고잠을잘수있을터이다.인간이잠자고자연의소리만존재하는저녁에“저녁의말들이울고있”는풍경은시적인중의와재미를더한다.한편저녁을표상하는말들이울고있다,라는건일견고요함과쓸쓸함을배경으로깔고있지만,‘저녁이라는말들이운다’라고할때,말들〔馬〕이우는모습과울음섞인말들〔言語〕이비처럼내리는장면을연출한다.
한편으로는저녁이라는말들이밤을향하여달리는말처럼고요한역동성을표방하기도한다.그러니까,저녁을관통하여깊고깊은밤의정점을향한덧없는시간들의흐름이,저녁이라는말들이,언어의기표로서거부할수없는시간의무차별한흐름을,저녁하늘과오두막이라는공간에서유감없이보여주고있다는뜻이다.

네번째연은저녁의달빛으로위로받은화자는다시,상처난영혼들에게은근하게위로함으로써,자기겸손과위로의선순환이작동하고있다.“어깨를다독이는달빛을품고”라는진술에서는화자와상처난영혼들이동일시되지만,일차적으로달빛이영혼들을위로하듯감싸는모습을드러낸다.“소로小路로가는상처난영혼들”은다사다난한현실의삶에서벗어나저녁을맞이하여,작은길을따라가는상처입은사람들을묘사하고있다.그들이안식처를향하여가는여정에화자는“걷는발걸음소리조차부담스러워”하며타자에대한배려를하고있다.이어서“바람길따라침묵속에간다”라는진술로미루어볼때,상처난영혼들과화자는소로를행진하는그대열속에함께하고있다는걸알수있다.침묵속에서낮동안뜨거웠던일상의소용돌이가정제되면서,조용히길을따라가며,고요한밤의사원으로귀환할채비를한다.

마지막연에서는화자는저녁으로귀환을앞두면서중간계에머물고있다.“아직은밤이라고말할수없”다고진술하는걸보면,저녁이지만아직완전한밤이아닌과도기적인상태를드러내고있다.“물렁물렁한저녁의말들”은저녁의부드럽고애매한감정을상징하는데,“허공의빈의자를채우고있다”라는진술에서확연하게오는건황홀감이다.화자는이애매하고물렁물렁한심상으로고요한밤의사원으로귀환을미루면서,저녁의말들이허공의빈의자를찾아가는진경을목도하는황홀경에몰입하고있는것이다.이때저녁의말들은탈속한휘발성을획득하며,아주가벼운상승의기운으로자유롭게비상하는시인의시어일수도있고,미지의태어나지않은그무엇,그러니까언어넘어언어의지위를얻으면서황홀경에도달한다.

시「저녁이라는말들」은저녁이라는시간대를공간성(굴뚝,오두막,빈의자)과상호교환하면서,허공이라는또다른공간을창출한다.그공간들은자연의변화와화자의심상을통하여,언어의황홀경에도달하는여정을그리고있다.낮동안의생산된익명의말들을정제하는과정을감성적으로섬세하게묘사함으로써,저녁으로자연스럽게진입한다.
김육수는저녁이주는고요함과쓸쓸함,그리고하루의끝자락에서느껴지는심상들을시각적,청각적이미지를통해새로운공간을건축한다.허공에떠있는셀수없는빈의자들의미지의언어들을목도하며,황홀경에도달하는진경을도출한다.
궁극엔화자가도달할종착점은밤의사원일것이다.이사원은죽음과도유사한가사상태假死狀態라고볼수도있겠다.가사라는자연섭리의죽음을통해서다시아침을맞이하여,되살아나는게인간의삶일터이다.인간이라면거부할수없는순리일터이지만,화자는중간계에머물면서유보적인상태에서진경을그리고있다는것이다.그리하여삶이쓸쓸하고외로울지라도,저녁의말들은허공의빈의자를채우며,황홀한진경을연출하고있다.

시인의말

마음에남아있는허전함과그리움을
글로남기고싶었습니다.
한글자한글자
한편의시로엮어완성되면
아침에핀나팔꽃처럼
얼굴에감사의웃음꽃피어납니다.
시를읽는분들의얼굴에
웃음빛이복사꽃처럼피어나기를기원합니다.

2024.4.
야심한시간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