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41호 : 빛과 색

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41호 : 빛과 색

$17.00
Description
나에게만 나타나는 빛과
나에게만 다가오는 색들
어떤 사진가들은 예민한 눈으로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빛’을 기어코 사진 안에 투영하고, 그 반짝임에 따라 변화하는 어떤 ‘색’을 프레임 안에 주사한다. 이번호는 그런 ‘빛과 색’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사진을 불러 모으고, 글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통해 나에게만 나타나는, 또 나에게만 다가오는 ‘빛과 색’을 놓치지 않은 이미지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 ‘빛과 색’으로 연결되는 어떤 기억과 의미를 탐색하는 이옥토, 서이제, 안희연, 이훤, 김병규, 김리윤의 에세이도 만날 수 있다. 이번호에서 카메라를 처음 들고 내가 좋아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몸짓을, 또 나에게만 반짝이는 빛을 숨죽여 기다리는 눈짓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

보스토크프레스편집부

저자:보스토크프레스편집부

목차

특집|빛과색

001Daily_RintaroKanemoto
014Creamy&Blurry_KinCoedel
024BeyondReality_AmandaSellem
036PlayingwithLightandShadows_DelfinaCarmona
064AdamandAdam_EllaBats
074Framing,Focusing,Lighting_LaurenBamford
086UnusualFragment_TobiasNicolai
096CurrentStudy/ExplodedViewSjoerd_Knibbeler
108이퀘이션_서동신
120도시관람_최지원
130얇은빛_이옥토
135움직이는빛_서이제
140시를쓸때만발생하는빛과색에대하여_안희연
146개인적이고특수한빛의이름들_이훤
152검은옷의추방자들_김병규
158[연재:일시정지]풍경과이미지:다시풍경론을생각한다_서동진
166OrbisTerrarum/Innergarden_MarikoOhya
176YOHA_TakaMayumi
188Interlude_YukiKumagai
200라피_정멜멜
212라이트파우더_이옥토

출판사 서평

더근사한‘빛과색’을숨죽여
기다리는눈짓과몸짓들

“제가좋아하는코코예요.”(이게강아지라고?)“제가좋아하는푸예요.”(이게곰인형이라고?)대여섯살의아이들이찍은사진은알아보기어려워도,카메라를든아이들의마음은쉽게알아챌수있다.처음카메라를들고자기가좋아하는것을향해달려가는모습이너무나선명하게그려지기때문이다.아이들은저마다각양각색으로알아보기힘든사진을찍어왔지만,그모든것은아이들이좋아하는대상이라는사실로통했다.

사실,어른들도아이들과크게다르지않다.좋아해야바라보고싶고,좋아해야간직하고싶기때문이다.자기가좋아하지도않는걸바라보고,또자기가좋아하지도않는걸간직하는일이꽤곤욕스럽다는점에서어른들도아이들과마찬가지로대개자기가좋아하는걸사진찍는다.다만어른들은아이처럼꾸밈없이솔직하게무언가를좋아한다고내색하는것이겸연쩍어점잖은이유나그럴듯한의미를두곤한다.하지만아이들의사진에서나어른들의사진에서나촬영자의눈길과마음이향하는곳은꽤투명하게드러난다.

그렇게좋아하는것들을계속찍다보면조금씩빛에눈을뜨게된다.메커니즘측면에서사진이라는이미지가생성되는데빛의요소가필수적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내가좋아하는것을사진으로근사하게보여주려면절대적으로양질의빛이필요하다는사실을여러시행착오를겪으면서피부로느끼기때문이다.내가좋아하는것을프레이밍하고,반짝이는빛이깃드는타이밍을놓치지않고셔터를누르면제법근사하게‘예쁜사진’을남들에게보여줄수있다.

어떤이들은그런사진은그저예쁜껍데기일뿐이니무의미하다고,그런사진을찍는건중요하지않다고엄하게꾸짖기도한다.왜그렇게‘예쁜사진’을경계하는지그의중을전혀모르는것은아니다.‘예쁜사진’에만몰두하다보면자신도모르게내가좋아하는것보다모두에게좋아보이는것에,나에게만반짝이는빛보다모두에게반짝여보이는빛에집착하게된다.그럴때클리셰가쏟아져나올가능성이커진다.그렇기에공식처럼짜여진‘예쁜사진’의클리셰를비난하는것은당연하지만,그런비난을하는이들이간혹쉽게놓치는것이있다.반대로‘안예쁜사진’의클리셰도있다는사실말이다.

사진을계속찍다보면클리셰를피해가는일이현실적으로녹록지않다는걸깨닫게된다.이를감안해같은클리셰라면‘안예쁜사진’보다는‘예쁜사진’쪽의손을들어주고싶다.자신이좋아하는걸좀더근사하게보여주겠다는의지와실천에는야무진정성이필요하니까.더욱이‘클리셰의함정’에빠져나와기어이자신만의‘예쁜사진’을성취하는작업자들이있다.그들은예민한눈으로남들이쉽게알아채지못하는어떤‘빛’을기어코사진안에투영하고,그반짝임에따라변화하는어떤‘색’을프레임안에주사한다.

책속에서

“지나간어떤순간이나잃어버린무언가를기억하려고할때,대개흐릿한이미지가떠올라요.그때느꼈던감정이분명한데도말이죠.그건순간포착으로도선명하게담을수없을것같아요.그렇게희미하지만여전히제게남아있는느낌을사진에담아보려고해요.”
---「킨코어델,작가의말」중에서

얼마간의가정으로마무리되었지만,며칠이나마빛을잃을지도모를미래를생각했던것은그전과후를나눌수있을정도로내게큰영향을끼쳤다.전에는지나쳤던빛의알갱이들을하나하나곱씹으며눈길을내어주게되는행위도,기호를떠나내게반사되는그어떤색에도먼저감사를보내게되는마음도,눈부심과캄캄함사이의세세한스펙트럼을헤아리는감각도그시절에빚을졌다.빛은내게고이지않고나를통과해사진으로수록된다.나라는투과체가무엇으로이루어져있는지,어떤질감인지,무슨시간을보냈는지를지금도빛은그려내는중이다.그그림을탁본하며얇은빛의기록이쌓여간다.내가없을날짜에도남겨질조용한이야기들이.
---p.134이옥토「얇은빛」중에서

극장에서영화를볼때면,이따금하늘을보듯고개를들어본다.위올려다본다.뒤를돌아본다.영사실에서뿜어져나오는빛을본다.관객머리위로지나가는빛을본다.스크린에부딪친빛을본다.끊임없이움직이는빛을보는건언제나즐거운일이다.여전히영화가좋다고생각한다.나는이미오래전손으로만질수도없고끌어안을수도없는존재에매혹되었다.
---p.138서이제「움직이는빛」중에서

시를쓰려고책상에앉으면왜이두이미지가어김없이떠오르는지모르겠다.나의시쓰기를지탱하는두개의근원적뿌리라는생각도든다.폭죽공장사장은빛에관여하고흰방에서덧칠하는사람은색에관여하는인물이라는차이는있으나내안에서둘은사실한사람이다.그들은때로는폭죽공장사장으로때로는덧칠하는사람으로동전의앞뒷면처럼뒤집히며나의쓰기를추동한다.
---p.142안희연「시를쓸때만발생하는빛과색에대하여」중에서

모든것이그리명료하게요약가능하다면사는게조금더수월했을지도모른다.라이트룸안에서빛을만지며생각한다.라이트룸은사진을정리하고보정하는프로그램이다.이름도‘빛의방’아닌가.거기서빛은다섯단계로나뉜다.…그러다어느날생각한다.빛을이리간략하게만인지하며살아도괜찮을까.오래된이감각을대체하고싶었다.뉴런처럼각인된다섯이름의빛을개인적이고특수한장면으로바꾸고싶었다.정보값이상으로빛을다시감각하고싶었다.
---p.147이훤「개인적이고특수한빛의이름들」중에서

로베르브레송의짧은단상과경구를모은저서『시네마토그래프에대한노트』에는“유성영화가발명한것은침묵”이라는언급이나온다.무성영화에서유성영화로전환되면서영화가획득한것은영상의기본적인조건으로주어지는소리가아니라,침묵이라는고유한표현이다.필름에소리가입혀지면서역설적으로영화는모든소리로부터독립된침묵의순간을발명하게된다.영화적사운드에관한브레송의날카로운통찰을이미지의차원에이식해본다면,우리는“컬러영화가발명한것은검은색”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
---p.153김병규「검은옷의추방자들」중에서

관광이라는현대의특유한장소경험은장소를경험한다는것을풍경을시각적으로소비하는것으로환원한다는이야기에익숙할것이다.이는여행을곧장풍경을보러가는것과동일시하는우리의태도를가리킨다.그런관광여행이어쩐지부박하고상투적인것처럼보여체험으로서의여행을장려하든‘다크투어’를선호하든,어쨌든여행지는풍경이라는명소들로가득찬곳을관람하려는이들을맹렬히꼬드긴다.멸균처리된것같은풍경을인공적으로조성한정원이나공원을앞세운쇼핑몰들이인스타그램의‘인생샷’을위한배경을제공하며방문객들을동원한다는것도그리놀랄일은아니다.그러나인간이바라보는위치로부터달아난채오직외부세계의공간을보기좋은시각적오브젝트로축소조정하는추세는,우리를더욱심란하게한다.
---p.160서동진「풍경과이미지:다시풍경론을생각한다」중에서

지난겨울에는흰털을가진개연두와처음으로눈이쌓인길을산책했다.간밤에쌓인눈이풍경의모서리를온통둥글게무너뜨리고있었고개는깨끗한눈위를조심스레지나며눈속에파묻힌냄새를궁금해했다.아침햇빛아래에서거의빛을발하는것처럼보일정도로흰,눈의빛위에서연두는흰털과갈색털이두루섞인개가아니라연미색털과갈색털이두루섞인개였다.눈의빛깔을흰색이라고부른다면연두의털은흰색이라고부를수없을것같았다.새하얗다는말은나눠가질수없어서,새하얀눈위에서는새하얗다는말보다는덜흰것,눈과구별되는흰색을가진것을부를다른말을찾아야했다.
---p.203김리윤「Lappi·Abookoflight&snow」중에서

어둠을머금은이빛깔은깊이를알수없는심해에뿌리를내리고피어난다.이를깨닫게되면깊은바닷속의먹먹한어둠이사진밖으로서서히번져온다.점점어두워지는푸른목소리로부르는단조의노래가사진밖으로천천히흘러온다.제숨을다하는듯한빛깔과소리가내주위를감싸고나서야문득외로운물음들이아프게돋아난다.얼마나오랫동안어둠을바라보고있었던것일까,얼마나오랫동안어둠속에있었던것일까.얼마나오래있어야어둠과어둠사이에서미세하게달라지는어둠의표정까지읽을수있을까.얼마나오래있어야어둠과어둠의경계에서희미하게반짝이는빛의먼지들을알아챌수있을까.
---p.223박지수「이옥토,라이트파우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