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15.00
Description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
약을 팔기 전에 병을 먼저 팔라!
건강에 대한 강박 증세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자화상
북치기: 저녁 먹을 때 가끔 이 부분이 가렵습니다요. 간지럽히는 것도 같고, 아니 슬슬 긁는 것도 같고.
크노크: 혼동하지 마시오. 간지럽히는 것 같소, 슬슬 긁는 것 같소?
북치기: 긁습니다요. 아니, 간지럽히기도 합니다.
크노크: 흠! 식초 넣어 요리한 송아지 머리 고기를 먹고 나면 더 가렵지 않은가요?
북치기: 전 그거 안 먹습니다. 만일 그걸 먹었더라면 더 가려울 법도 했겠습니다만.

단순한 줄거리, 그러나 뚜렷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시사적 양면성. 몰리에르의 계보를 잇는, 의학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풍자. 10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이데올로기와 대중 선동의 영향력을 보다 심오한 방식으로 고발한 이 고전 희곡의 풍자에 오늘날 많은 독자가 틀림없이 크게 환호하며 공감할 것이다.

저자

쥘로맹

JulesRomains(1885-1972)
본명은루이파리굴LouisFarigoule.1902년한잡지에처음으로시를실으면서쥘로맹을사용하기시작했다.극작가이자시인,소설가이며철학자.프랑스의오트루아르지역에서출생하여교사인아버지를따라아주어릴때파리로이주해몽마르트르근처에서살았다.1904년첫시집『인간의영혼L‘âmedeshommes』에이어1908년『일체의삶Lavieunanime』을출간했고1906년파리고등사범학교입학,1909년철학교사자격증을땄다.1911년과1913년각각소설『누군가의죽음Mortdequelqu’un』,『동무들lescopains』을출간하였으며1차대전직전까지교사활동을하다가이후는문학에만전념,위나니미슴(일체주의)의창시자로서개인보다는사회집단의공통적인정신을문학적으로표현하는데심혈을기울였다.1923년에발표된희곡〈크노크〉는자크에베르토감독,루이주베연출로12월15일파리샹젤리제극장에서처음으로상연되었으며1924년갈리마르출판사에서『크노크,어쩌면의학의승리』가정식출간되었다.이후1932년부터1946년에걸쳐1차대전직후의프랑스사회를묘사한총27권의대하소설『선의의사람들Leshommesdebonnevolonté』을펴냈다.1946년에아카데미프랑세즈위원으로당선되었고1951년『달콤한인생Ladouceurdelavie』으로반세기최고소설중대상을수여했다.

목차

1막-1장,2막-1장/2장/3장/4장/5장/6장
3막-1장/2장/3장/4장/5장/6장/7장/8장/9장,역자후기

출판사 서평

“모든사람은잠재적환자다.”
개개인을선동할수있는사회,현대의학의승리?

1막무대는시골길위의낡은차안.전임의사부부와크노크가대화를나누고있다.크노크는권리금을분할해서지불하는조건으로닥터파르팔레를이어생모리스에새로부임하는의사다.크노크는거래가합당하지않다는것을알고실망하지만이내곧,이렇다할연구논문하나없이도이미성공적으로의학을실천할수있었다고밝히며앞으로더큰부자가될것이라공표한다.주인공크노크는이른바돌팔이의사.돈을벌기위해순진한마을사람들을겁주며개개인을의학의손아귀에넣으려는심산이다.계획을실현하기위해학교선생님과약사를설득하는데도별다른어려움이없다.다시말하지만크노크의목적은개개인을선동하는것이다.

우리가청중에게바라는것이바로그들의뼛속까지스며드는효과입니다.선생님도차츰익숙해지실겁니다.사람들은이제발뻗고잠들지못할겁니다!(베르나르에게로몸을기울이면서)질병이라는벼락을맞고서야깨어나는식으로,안전감각을완전히망각한채잠드는것이야말로그들의과오거든요.(p.67)

평화로운마을이의학에몰두하는전체주의사회로변모할수있었던것은개개인을선동하는인물이존재했기때문이다.평범한일상생활을누려왔던사람들이그들을나약하게만들고그들의자아를정복할줄아는인물과대면하자마자자기조절능력을잃고만다.쥘로맹은그렇게마을사람모두를환자로만들어고객을유치하는의사크노크를통해허울뿐인이데올로기에복종하는개개인의단면을보여준다.그결과나약하고쉽게조정당하는인간에대한비극적인그림이탄생했다.크노크의환자중하나인어느몰락한귀족부인의대사에서도드러나듯(“인간의본성이란참보잘것없는것같아요.더힘든일이생겨야이런일이별것아니게되니말입니다.”[p.89])쥘로맹은현대성에비관적시선을던진다.인간해방과동떨어지게현대성은위험천만한술수와허위의기술로유혹해인간을노예로만들위험이있음을경고한다.

의학숭배,정신과육체를조정하는전체주의

쥘로맹은현대과학이종교를대체한다고자부하며의학이제사장이나심지어신을대신한다고말한다.작품속등장인물들은중요한지식의소유자로간주되는의사에게전적인신뢰를보이며경외심을품는다.(“저를속이지는마세요,의사선생님.저는진실을알고싶습니다.”[p.93])그런가하면크노크는의학을숭배차원으로승격시키고‘의학의이익’만을고려하는인물이다.그에게있어서는의학자체가종교이며그것만이삶에의미를부여한다.그러면서건강한사람들에대한역설적증오를나타낸다.

그냥별다른생각이없는수천명의사람들이살고있는지역을선생님이제게넘기셨지요.제역할은그들에게의료적인생각을심어가면서의료적인존재로만드는것이지요.그들을침대로이끌어어떤결과를초래할수있는지보는겁니다.결핵,과민증세,동맥경화,뭐든좋은데,아이고맙소사!아무이상없이멀쩡한사람,건강한사람은도저히그냥잠잠히눈뜨고볼수가없지요.(p.127)

의학의승리를통해크노크는스스로를존경해마지않는다.자신이부임한생모리스마을전체가의료적분위기로가득차있는모습을뿌듯하게바라보며스스로를창조주라고까지일컫는다.그는모든사람이잠재적환자라고믿고있기때문에육체에대한어떠한진단이든정당화한다.(“저는이론도경험도풍부해서첫보균자를의심해볼권리는충분히있으니.”[p.68])또한근대프랑스의학사에서가장위대한생리학자로꼽히는클로드베르나르를언급하며“멀쩡해보이는사람들도자신이모르는병을앓고있다.”(p.29)라고말한다.결국크노크는사람들의정신까지통제하고마을전체를의학,아니오히려질병에전념하는거대한병원으로탈바꿈시킨다.크노크는끊임없이힘과통제에매료되고,이제닥터파르팔레마저그의논리에빠져들지않을수없다.

그250개의방에서사람들이제각기의학에고백을하는거지요.250개의침대,그침대에드러누워이제야삶의의미를,그러니까다시말해서제덕분에이제야의료적삶의의미를알게되었다고말이지요.밤이되면그들모두불까지밝히니더욱아름답지요.그조명하나하나,거의모든등불이제것이니까요.아프지않은사람들은칠흑속에서잠드는거지요.그들은삭제되는겁니다.대신환자들은작은등불이나램프라도켜놓지요.의술이닿지않는모든것을저렇듯밤의어둠이감추어버리는거지요.동시에저를부추기며한번해보겠는지도전장을던집니다.말하자면이지역은제가계속해서창조해가는,제가창조주인일종의창공이라고할까요.(p.130-131)

국내처음으로소개되는언어의연금술사,쥘로맹의화려한언변과유머

프티부르주아출신인쥘로맹은문학과철학,의학분야에서뛰어났으며젊은시절부터시와소설을출판하기시작했다.쥘로맹이초창기성공을이룬것은연극무대에서였는데1차세계대전이후쓰여무대에올려진<크노크>는프랑스사회가근대성에직면해겪은격변을대변하는작품으로1923년상연당시사회에크나큰반향을일으켰다.질병에대한두려움을이용하여사회를조직하고개개인을지휘하는돌팔이의사크노크는언변과과학의조작력을이용하여마을사람들을전체주의적의학개념에복종시킨다.그렇게쥘로맹은작품을통해해방과동시에소외의근원이기도한근대성의양면성을보여준다.크노크의언어는청중에게깊은인상을주기에충분히기교가넘친다.의학용어를동원하고의사처럼말하지만의료적상황을만들어내고처방을내리는모습이청중에게웃음을유발한다.그러나무지한마을사람들은돌팔이의사의가면을벗기기는커녕매료되고조정당한다.

크노크:(청진기로여인을진찰해보면서)머리를숙여보세요.숨을들이쉬세요.기침을해보세요.어릴때사다리에서떨어진적없습니까?
여인:그런기억없는데…….
크노크:(손으로짚어보고,등을두드려보고,갑자기신장쪽을눌러보기도하면서)곰곰이생각해보세요.꽤높은사다리였을겁니다.
여인:어쩌면그랬을수도.(중략)
크노크:[……]그러니까옛날에사다리에서떨어질때거꾸로떨어지는바람에흉추골이반대방향인상태로미끄러진거지요.(그방향을화살표로그려보인다)소수점이하밀리미터니별거아니라고하실지도모르겠네요.물론대단한숫자는아니지요.그런데문제는잘못연결이되었다는겁니다.그래서사방팔방으로계속욱신거리는거고요.(p.79-82)

위험한이데올로기와풍자적코미디의공존

돌팔이의사는연극에서만큼은승리하지만현실에선결국이데올로기의희생자로보인다.쥘로맹은크노크를가리켜‘중노동자’라고표현했는데이는진료실로탈바꿈한호텔에서바쁘게움직이고있는레미부인의대사에서도드러난다.(“그야말로중노동의삶을살고계시죠.기상하자마자진료방문하러온종일뛰어다니시니까.”[p.113])또한그는자신이축적한부를즐기지못하는듯하고오히려반대로의학에복종하는노예같다.(“명심해두시오.내가무엇보다도바라는건사람들이치료받는것이라는사실을.내가돈을바랐다면파리나뉴욕으로갔지여기서이러고있지는않았을테니.”[p.55])그리고연극이끝날무렵크노크는고백한다.사람들을보면저절로진단을하려들어서스스로거울을보는것조차피할수밖에없게되었다고.결국현대의학의이데올로기는자율적으로행동하여의학을실천하는사람들까지도통제하는것처럼보인다.다시말해서이작품은인간을소외시키고덫에빠뜨릴수있는현대성의위험을고발한것이다.

어쩌겠습니까!누군가를마주대하기만하면저도모르게그렇게되어버리는데.진단이술술나와쭉나열되는걸저자신도어떻게막을방법이없답니다.그럴필요가전혀없는장소에서도말입니다.(신중하게)그렇다보니얼마전부터는아예거울도보지않게되었습니다.(p.143)

단순한줄거리의짧은3막극으로구성된이의학풍자극은돌팔이의사로인해자신들이환자라고설득당하는시골마을사람들의믿음을희화화해일찍이몰리에르의희곡「상상병환자」의계보를잇는작품이라평가받아왔다.조연들은단순하고어리숙하며얼마든지예측가능하고우스꽝스러운꼭두각시같다.단짝처럼붙어다니는두명의사내가나오는장면에서는마치팬터마임을보는듯한분위기가연출되기도한다.언어유희에기초한코믹한단어도(“간지럽히는것같소,슬슬긁는것같소?”[p.57])크노크가사용하는의학신조어에의해그의미가무산되면서상황은심각해진다.작품말미크노크와닥터파르팔레의대화에서조롱섞인풍자와세련된언어가공존하며극은절정에달하고종교,전쟁,의학을접목한어휘를동원하여크노크는교묘한반박으로파르팔레에게압력을가한다.크노크는우스꽝스러운사기꾼이자뛰어난웅변가인동시에양면성과모순을강조하는인물이다.

[등장인물]
크노크(주인공.닥터파르팔레를이어생모리스에새로부임하는의사)/
닥터파르팔레/파르팔레부인/장(운전사)/북치기/베르나르(교사)/무스케(약사)/
검은색복장의여인/보라색복장의여인/사내1/사내2/레미부인(클레호텔주인)/
시피옹/하녀/무대뒤에서들려오는마리에트(크노크의비서)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