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 작가기획시선

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 작가기획시선

$10.28
Description
서정의 詩바다에 다다른 ‘길의 정령’
- 신정일 시집, 『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가 펴낸 새 시집
가장 많이 걷는 이 시대의 인문학자, ‘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일 시인이 두 번째 신작 시집 『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을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했다.
시인은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 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 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뒤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2010년 9월에는 관광의 날을 맞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저서로 자전적 이야기인 『느리게 걷는 사람』을 비롯하여 시집 『꽃의 자술서』 , 『왕릉 가는 길』 .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10권),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 답사기』 등 100권이 넘는 저서를 펴냈다.

4부로 나뉘어져 총 62편의 시를 수록한 신정일 시인의 『아직도를 사랑하는 까닭은』에는 시인이 걷고 또 걷는 이유에 대한 문답이 시편으로 오롯이 담겨있다.
시인은 삶의 목적이 길 위에 있는 것처럼 걷는다. 신정일의 사유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몸으로 쓰는 원고지인 셈이다. 그는 오늘도 걷고 있을 것이며, 길에 대한 원고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걷는다’는 행위와 ‘쓴다’는 행위는 그에게 ‘왜 사는가’와 같은 실존의 물음과 같다. 이처럼 ‘아직도’라는 단어는 신정일 시인이 육필로 쓰는 시의 문법인 셈이다.

책에서 책으로, 길에서 길로 이어진 생활,
그 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몇 사람들과
단조롭기도 하고,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길 위의 사람’이다.
그렇게 길에서 보낸 나날이 많았고,
살만큼 살았는데도
가끔씩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이 나의 길인가 싶어서 안도하면서 잠시 걷다가 보면
그 평온하던 길이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악전고투의 시절이 돌아온다.
눈앞이 캄캄한 고난 속에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는 느낌이 올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가 나온다.
- 「시인의 말」 부분

시인은 “시는 곤궁한 다음에야 나온다.(詩窮而後工)”는 구양수의 말을 실감하며, “길은 잃을수록 좋”고 “더 많이 길을 잃고 헤매야 하는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말한다. 시집의 제목을 ‘아직도’라는 단어로 시작한 것도 ‘걷는 인류’의 숙명을 이어받은 종족의 후예임을 자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대륙의 칼라하리 사막을 떠나 약 6만 년 전부터 걸어왔다. 걷는 행위는 인류사의 기원인 셈이다. 정착지를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 걸어간 이는 누구였을까? 시인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까지 걸어온 그들의 후예인 셈이다. 현생 인류가 정착지를 떠나 걸어간 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손민호 중앙일보 레저팀장은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길’과 ‘글’은 모음 하나 차이라는 걸 배웠다. 길을 걷다 보면, 걷는다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어정거리며 해찰하면서 살다가 보면, 길이 글이 되는 이치를 휘적휘적 앞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알았다. 글에도 스승이 있듯이 길에도 어른이 계시다. 내 책장에 또 한 권의 길을 모신다.”고 말한다.
저자

신정일

저자:신정일

사단법인‘우리땅걷기’이사장으로우리나라에걷기열풍을가져온도보답사의선구자다.1980년대중반‘황토현문화연구소’를설립하여동학과동학농민혁명을재조명하기위한여러사업을펼쳤다.1989년부터문화유산답사프로그램을만들어현재까지‘길위의인문학’을진행하고있다.또한한국10대강도보답사를기획하여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5대강과압록강·두만강·대동강기슭을걸었고,우리나라옛길인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등을도보로답사했으며,400여곳의산을올랐다.부산에서통일전망대까지동해바닷길을걸은뒤문화체육관광부에최장거리도보답사길을제안하여‘해파랑길’이라는이름으로개발되었다.2010년9월에는관광의날을맞아소백산자락길,변산마실길,전주천년고도옛길등을만든공로로대통령표창을받았다.그의저서로자전적이야기인『느리게걷는사람』『모든것은지나가고또지나간다』와『가슴설레는걷기여행』『천재허균』『길을걷다가문득떠오른것들』『왕릉가는길』『홀로서서길게통곡하니』『조선천재열전』『섬진강따라걷기』『대동여지도로사라진옛고을을가다』(전3권)『낙동강』『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조선의천재들이벌인참혹한전쟁』『시집,꽃의자술서시집』『시선집,그곳에자꾸만가고싶다』『신정일의신택리지』(전10권)『신정일의동학농민혁명답사기』등100권이넘는저서를펴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꽃잎13
아직도를사랑하는까닭은14
흰종이위에쓴말16
갈대17
바다18
갈매기에묻다20
몸살21
순식간에22
저것봐,저것봐23
밤손님께24
파도26
호박꽃27
이잡는남자28
소리29
지리산이말하지않으면서말을했다30

제2부
문닫힌점방33
길35
입도없냐?36
능소화37
키릴로프38
우체국에가면40
구절초42
어디있어요?43
반딧불켜진밤에44
강은흐른다46
시퍼렇게살아48
국숫집에서49
여한이없다50
이윽고그림자하나가52
광기의시대53
어디를그렇게바삐가세요?54

제3부
부안솔섬에서57
추암의새벽59
비인오층석탑에서60
김포장릉의재실62
생일도生日島64
차이66
미륵사지67
어청도68
슬픔처럼70
왜이제야왔어?71
물위에서사는사람들72
왕궁리오층석탑74
하루에도열두번씩변하는76
태항산78
내사랑소나무79
북미륵암가는길80
사람들이나에게82

제4부
두승산하斗升山河85
개암사겨울비88
안이쁜이라는여자90
눈물93
고사부리성에서오사五死를생각하다94
김일손96
나는신랑얼굴도몰라98
신화가되고역사가된사람101
竹島를죽도록사랑했던한남자104
위리안치圍籬安置106
여강驪江에서목은이색李穡110
그대에게사랑한다말할때112
봄눈113
내그리움은114

해설
서정의바다에다다른산의서사_박태건(시인·문학박사)116

출판사 서평

‘아직도’라는섬은시적화자의이상향
신정일시인은역사의현장을걷는자신의모습에서역사적인물의고뇌를발견한다.그래서인가.이시집에서는‘아슬아슬’하다는말이자주등장한다.시인은가파른절벽의잔도를걷듯‘아슬아슬하게’걸어왔다.시인이길에서보낸시간의사유가이번시집『아직도를사랑하는까닭은』에서는부정에서긍정을찾는희망의어법으로표현된다.이번시집의표제시는길의시인이자신의다른모습을찾아가던실존의기록이라고도할수있다.

내가‘아직도’라는말을
사랑하는까닭은
내마음속에
이해할수없는,설명할수없는
수많은그리움이
파도처럼넘실거리기때문이다.
(중략)
내가‘아직도’라는말을
사랑하는까닭은
아직도그섬이
어딘가에서푸른빛단장을하고
내게들려줄절절한이야기를간직한채
여전히나를기다릴것만같기때문이다.
-「아직도를사랑하는까닭은」부분

‘아직도’라는섬은시적화자의이상향이다.‘아직도’는과거의특정한공간이자미래의가상의공간이자,시인의정신적지향을말놀이를통해장소성으로구현한것이다.그것은‘오늘도’라는구체적시간과‘어딘가’라는불확정적장소와만난다.‘아직도’의사전적정의를살펴보면어떤일이나상태가완성되기까지시간이더지속되어야함을나타낸다.
따라서이시를문맥적으로살펴보면시인이‘사랑하는까닭은’시인의목적이완성되지못하고있음을의미한다.‘아직도’는시인의역사적시공간과소통하고자하는삶의문법일것이다.그러나과거의모든순간의모든시도가완성되지못했지만,여전히그것에도달하기위해현재의상태를유지하겠다는다짐이다.
그리하여‘아직도’라는삶의자세를통해시인은길을걷고역사와질문한다.그것은‘아직도’가자신을‘기다릴것만같다’는낭만적희망에기인한것이다.한번도가지못했으나여전히‘아직도’라는섬을찾는그의자세는부조리극의대가인사뮈엘베케트의「고도를기다리며」를떠올리게한다.부정의부정은강한긍정을낳는다.아직오지않은미래까지시인의삶의자세는유지될것이다.베케트의소설에서앙상한나무아래,오지않는고도를기다리는블라디미르와에스트라공에게시인은스스로고도가되어찾아간다.아직오지않았다고그렇다고결코오지않지는않을것이라는부정의부정을통해시인은부조리한세계를넘어서려한다.
아마도시인이‘아직도’를찾게되는날은시인이평생추구했던길에대한사랑이완성되는시점일것이다.‘아직도’는경험하지못한상상의장소이기때문이다.그래서시인은길을걸으며‘아직도’에가까운이상향의형태를과거의한순간에서찾으려한다.시집에등장하는색채적이미지가흐릿하고희미한것은그때문이다.시인의길찾기는‘아직도’지속되어야하는것이다.


추억의한장면으로그려진시인의유년시절

반딧불이지천이던시절
한밤중에반딧불서너마리를잡아
꽃속에넣고꽃을오무리면
등불이되어
깜빡거리던호박꽃!

내유년을쓰라리게밝히는꽃
─「호박꽃」전문

시인의유년시절이추억의한장면처럼서정적이미저리로그려진다.시인은반딧불이지천이던시절호박꽃속에반딧불이를넣어‘호박꽃초롱’을밝히던시절에서지금까지이어온시간을반추한다.이는첫시집에서사실적으로드러난가난의풍경과시적자아가화해하고있음을의미한다.시인은호박꽃송이를오므리던유년의기억을회상하며고향집으로찾아간다.과거의기억은시간이지날수록호박꽃에서깜박이던반딧불이처럼‘유년을쓰라리게밝힌다.’시인이떠올린낭만의충동으로닿은곳은‘고향’이라는단어일것이다.떠도는자에게고향은영원히가닿을수없는상실된장소다.시인은돌아갈수없는고향의이상향을찾아이곳에서저곳으로끝없이걷는다.
시적화자는그문너머에기척이없음을예감하고있으면서도혹시나하는마음에문고리에손을얹는다.아무도없음을알면서도혹시나기대하는마음의기원은낭만적충동에서비롯된다.그러나이러한기대는‘아직도’가주는불확실성에근거하고있음으로선명하지못하고흐릿하게묘사된다.“어둠너머보이는희미한불빛”(「소리」),“흐릿한호롱불아래물레가돌아가고”(「이잡는남자」),“저문을열면/무엇이보일까/고향집토방이보일까//문을닫고추녀를보니/이집처럼텅텅빈/몇개의벌집”(「문닫힌점방」)과거는흐릿하고희미하다.


구도의행위,실존을확인하는길
신정일시인에게길을걷는것은‘구도(求道)’의행위다.시인은길위에서“차고넘칠만큼방황했고,/충분히고통스런삶을살았고./충분히고독했다/세상에수많은길들을걸으면서/세상의많은사람,/수많은사람을만났다/충분히많은책을읽었으며,/충분히슬펐고쓸쓸했다”(「여한이없다」)‘여한이없다’는말은부정의부정이다.시인이그동안걸었던길은선인들이걸었던길.그가다시걸었던길은“굶어죽고,얼어죽고./병들어죽고,매맞아죽고./그리고성쌓다가깔려서죽고.”(「고사부리성에서오사(五死)를생각하다」)역사의뒤안길로쓸쓸히패배한민중의길이다.“시누대가겨울바람에떨고/나무들이바람에우수수눈을떨구는”(「북미륵암가는길」)길을걸어도착한곳은미륵암이기도하고항구이기도하고,또다른길의끝이기도하다.시인은역사가된길을다시걸으며‘산다는것은길을걷다가죽는일’이라는것을문득깨닫는다.고희의나이에‘아직도’길에서사유하고길에서쓰는그를‘길의사제’라고불러도좋으리라.
이번시집에서등장하는밤과관련된시어는자신을돌아보는상념의시간을의미한다.밤은고독이오롯이시인을둘러싸는시간이다.“밤이어느순간내려왔습니다./살며시내려앉은밤의한가운데서/나는창문을활짝열지않고/반쯤만열어둡니다/오는꿈도가는꿈도/여미가있어야할것이니까요/(중략)/저혼자서슬픔에잠겼다가/새벽녘에서야깨어날것입니다”(「반딧불켜진밤에」),“지금은깊은밤/문을다열어놓았습니다”(「밤손님께」)등의시편이그렇다.밤은슬픔과회한이밀려오는홀로된시간이며,고독을확인하는시간이다.존재의고독을견디는자가새벽을기다리는것은깨달음의시간을희구하기때문이다.

또한신정일시인에게‘걷는다’는행위는실존을확인하는길이다.시인은“거리를걸어가다가/눈에띈국숫집에들어가/국수한그릇을시키고/거울에비친”(「국숫집에서」)자신의낯선모습을물끄러미보며‘그가나인가,내가그인가?’라고자문한다.먼저걸었던이들의발자국을따라옛길을다시걷는다는것은죽은이의타협하지않는정신을상기하는것.“길이너무아름다워서발걸음을떼지못하고/머뭇머뭇멈칫멈칫/주위를맴돌기만할때”(「김일손」)시인이발견한역사적시공간은치열하게현현한다.과거의인물과함께걸으며시적화자는정서적황홀감에빠진다.김일손은세조의찬위를풍자한김종직의‘조의제문’을사초에적었던연산군때의사관이다.당대권력자들에게강직했던그의모습을떠올리면서자신의모습을비춰본다.걷는행위는자신이살아있다는것을실감하는시간이기때문이다.“누더기못벗은세월을살게하는/먼듯가까운듯/그대발걸음소리”(「소리」)를따라가는행위다.발걸음소리는걷는행위가계속될때만이지속된다.그리하여소리를따라걷는그의걸음은멈출수없다.길道을찾아걷는사람은구도자라부른다.지금은사라진보이지않는세계를찾아걷는신정일시인을길의구도자라불러도좋을것이다.


꽃은서사가서정으로변환될때새로운서사의가능성으로개화

산은깎아지른벼랑에
구절초싸리꽃을피워놓고
아슬아슬한잔도棧道까지만들어놓고
지나가는사람과소곤거린다
─「태항산」부분

시인은천길낭떠러지의협곡사이로아슬하게난잔도를걸으며역사적인물과상상속에서소곤거린다.깎아지른절벽에피워낸꽃을‘아직도’잊지못하기에시인은‘아직도’걷기를지속하는것이다.
시인이싸우는벽의존재는2019년발간한첫시집(『꽃들의자술서』)에서도등장한다.“눈뜨면벽/차디찬벽이있고/가까스로/밀어뜨리면/다시벽이있다/밀면벽/다시밀면벽/무너뜨려도/무너뜨려도/쏜살같이나타나/태산처럼나를압도한다(「벽」전문).첫시집에서언급된벽은시인을가로막는현실적한계를의미했다.그런데이번시집에서시인은벽과싸우는대신절벽에꽃을피워낸다.이꽃은시인이견지한고독한정신의고갱이를의미한다.꽃은‘벼랑에홀로’핀다.벼랑에꽃을아슬아슬하게피워내는정신이시인이현실을견디게한삶의자세다.

김미옥문예평론가는“길에서쓴시를가슴으로읽는다.길위의사유와길가의풍경이‘걷는사람’의시가되었다.문득뿌리내려담장오르는능소화앞에발길이멈출때유목과정주의먼기원을생각하며떠나는자의그림자는시를닮았다.”고평한다.-

신정일시집에등장하는꽃은서사가서정으로변환될때새로운서사의가능성으로개화한다.‘꽃’은시적화자가감각적으로느끼는바람이라는실제계를만나촉매작용으로개화된다.시인이벽(벼랑)에꽃을피워낼수있었던것은‘백척간두에선절박함’때문이었을것이다.시인은이제‘한집안의소망이그려진희디흰벽’(「흰종이위에쓴말」)에꽃을피워내는힘을갖게되었다.그것은세계의끝에서새로운길을발견하듯이막막함에서꽃을상상하는반전의시학이다.이와같은예는다른시에서도확인할수있다.‘지나가는바람결에/그향기뿜어내면서/한시절을살다갈/능소화여’(「능소화」),‘저빨간양배추꽃’(「저것봐,저것봐」),‘희망과기쁨의꽃은/피어났을까?/그를쓰러뜨린총소리는/푸르른하늘이되고/들꽃이되고’(「키릴로프」)등이그것이다.호박꽃은‘유년을쓰라리게밝히는꽃’(「호박꽃」)이며,달개비꽃은‘서러움도모른채피고지’며(「강은흐른다」),해당화는‘파도가밀려오고밀려가며저녁이내리는소리’(「부안솔섬에서」)와함께핀다.시인은‘조선의새악시같은/탑옆에살구꽃피고’(「비인오층석탑에서」),‘고마리풀이늪가에가득/그잎위에떨어진꽃잎한송이’(「김포장릉의재실」)가피었다지는순간을‘시간이감기는소리’로듣는다.


역사에‘꽃’이된선인들의흔적을찾아서
이번시집에등장하는역사적인물은당대의시대정신으로시대의벽과싸웠던이들이며현실에서는실패했으나그것으로역사에‘꽃’이된이들이다.시인은역사적장소를답사하면서시대의벽과싸웠던선인들의흔적을찾아간다.시인은백제무왕의꿈을익산에서「비인오층석탑에서」,「미륵사지」,「왕궁리오층석탑」을찾고,폐망한백제의부흥을왕자풍의흔적찾아부안의산사에서만난다.(「개암사겨울비」)진도에서는대동세상을꿈꿨던정여립(「죽도를죽도록사랑했던한남자」)을생각하고,노정객송시열이유배길에서만난지명들을하나씩호명한다.(「위리안치」)무오사화로희생된김일손(「김일손」)과고려말개혁을꿈꿨던이색(「여강에서목은이색」)과풍찬노숙하던독립군안중근(「안중근」)등시집에등장한이들은‘고도’를기다리지않고전생애를바쳐당대의‘고도’를찾았던인물이다.하여,시인은삼한시대에서근대시절동학(「고사부리성에서오사를생각하다」)에이르기까지벽과싸웠던투쟁의장소이며패배할줄알면서도당대의강고한벽에도전하던인물들의꿈을찾아‘아직도’를구체화한다.

그의무너지고쓰러지는슬픔을보다못한그사람,
여기저기수소문하여
사람들을모으고,그사람들과함께
벽절이라고불리는신륵사앞,여강으로갔다
그리고그를위한뱃놀이에나섰다.
누군가그를위해술한병을보내왔고,
뱃놀이시작에앞서술한잔을따라서
그에게주었다.
그런데그만,그술한잔을마시자마자
그자리에서피토하고그가세상을등졌다
─「여강(驪江)에서목은이색(李穡)」부분

시인은신륵사에서고려삼은(高麗三隱)이라불렸던이색의죽음을떠올리며한국현대사를반추한다.시대에저항하는의인들의죽음은반복되는것.시인은강물을보며“지금까지도그죽음은그냥의문사로남아있다/고금이지금이되는지난한세월속에서”(「여강(驪江)에서목은이색(李穡)」)현대사의비극을품고흐르는역사적시간을발견한다.시에서신륵사의별칭이‘벽절’이라고밝힌것은‘벽절’이이정표라는뜻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벽절의유래를찾아보면뱃사공들이멀리서도보이는신륵사의탑을등대처럼이정표로삼아서‘벽절’이라고불렸다한다.한때비극은역사가되고시련이벽이되는것.시인은서산대사의유명한시“눈덮인들판을걸어갈때이리저리함부로걷지마라.오늘내가걸어간발자국은뒷사람의이정표가되리니.”(「답설야(踏雪野)」)를떠올린다.그리고한때자신의한계였던벽이세월의흐름에따라이정표가되는역사적현실을목도한다.
시인은점으로존재했던사건들에거리를두고관조하는여유를갖게되었다.그리고삼한시대에서근현대사의수많은사건들을살펴보건대역사는강물처럼흘러왔음을깨닫는다.이강물이흘러바다가되는것처럼의도하지않아도“잘못살아온생도/잘살아온생도/이제생각해보니/흔들리는물결”(「갈매기에묻다」)이라는것을깨닫는다.시인은그토록찾아헤맸던‘아직도’가‘구름’이흘러가는것처럼순간의시학에서발견하게됨을발견한것이다.이제시인은구름과벗하며살기로한다.“신념에찼던그의목소리가/구름이되고/그를쓰러뜨린총소리는/푸르른하늘이되고/들꽃이되고,”(「키릴로프」),“이승에서저승으로가는짧은길/문득바람이불고/잔잔하던물살이술렁이면서/한오리구름이피어오른다”(「이윽고그림자하나가」),“기다리고또기다리면/그날이온다고/바람과구름과새들도말하네”(「미륵사지」),“왕궁리오층석탑이/낮은구름아래서있다”(「왕궁리오층석탑」),“어허,무심타!/대구의하늘은검은구름이가득”(「위리안치」),“하늘을흐르는구름도/시간도멈출것같은순간을”(「김일손」)구름은자유의지가아닌바람의의지로흘러가는것.바람이신이보여주는기척이라면바람을받아들이기로한것이다.

사람들이나에게묻네
어쩌면그렇게힘도들이지않고
휘적휘적잘걷느냐고
나는그들에게말하네
걷는다는생각도하지않고
여기저기두리번거리고,어정거리며
해찰하면서
바람과구름하고벗하며
걸어가는것뿐이라고
그렇게살다가보니
여기에이른것이라고
─「사람들이나에게」전문

시인은이제‘걷는다는생각도하지않’는단계에이르렀다.목적지에도달하려는것도잃고걷는것자체가목적인경지다.그는오히려‘두리번거리고,어정거리며해찰’할때보이는것에대해이야기한다.목적을내려놓았을때‘바람과구름하고벗’할수있다는것.그리하여‘아직도걸어가는것’을견지하는것이삶의자세라는것을깨닫는다.이제시인은‘걷는다’는행위자체를의식하지않는구도의경지에다다른것이다.이러한깨달음을갖게된것은자신의생을돌아보게된여유에서비롯된다.시인은“지상에서떠나야할시간은/누구에게나/순식간에찾아온다//봄눈이녹듯/바람이귓가를스치고지나가듯”(「순식간에」)지난했던생도돌이켜보면순식간에끝나갔음을깨닫는다.

박태건시인은해설에서“시인의첫시집(『꽃들의자술서』)이산의서사라면이번시집『아직도를사랑하는까닭은』에는바다의서정이담겼다.바다는산골짜기에서시작한물줄기가바위에부딪치고수많은부침을겪어도닿게되는곳이라는점에서화쟁의장소”라고평한다.

“바다는파랗고하얗게들끓고있었다/세상의한복판이싸움터라는걸/아는것처럼”(「추암의새벽」),“그리움이눈물의강이바다에이르면/모두가꿈꾸는/미륵의세상이환하게열릴것이라고”(「미륵사지」).신정일이몸으로기록한인문지리학이도달한장소가화쟁의바다라는점은시사하는점이크다.그가이정표를삼아아슬아슬지나온산들의이야기가강물로흘러바다에닿기까지유장한서정의문법이‘아직도’인것이다.
신정일시인은‘아직도’를견지하는사랑의힘으로역사의강물이유장히바다로흘러갈것을믿는다.미래의어느시간에도신정일시인은‘아직도’를찾아걷고있을것이다.그는머무는자가아니라걷는자이고,(길을)사랑하는사람이기때문이다.걷는것은현재를확인하는행위이자자신의진짜모습을찾아가는행위이기때문이다.독자들이여,신정일시인의아름다운서정의문법을,시의행간을따라걸으며진짜나의모습을한번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