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하게 - 작가기획시선

제라하게 - 작가기획시선

$10.72
저자

김양희

저자:김양희

제주한림출생.

2019년경기대예술대학원독서지도학과졸업.

2016년《시조시학》등단

2018년《푸른동시놀이터》동시조추천완료.

2019년제1회정음시조문학상수상.

2021년중앙시조신인상수상.

2020년첫시조집「넌무작정온다」.

2020년『넌무작정온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학나눔선정.

2023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간지원)선정.



목차


시인의말

1부
앞발로뒷발은15
지금이속도가좋다16
여운형17
부추꽃만한자리18
무빙19
우리앞에머무는시각20
말끈이나마21
유리구두22
왈23
혜화동벽1번지24
박수기정관점25
그겨울의뿔26

2부
세렝게티29
따라비오름30
비둘기낭폭포31
울음스위치32
이빈33
코닥필름이찍은섦34
일어서는법35
알뜨르비행장36
고집의끝37
만두를빚으며38
첫매화39
지원불가를받았다40

3부
줄43
가족사진44
혜윰을걸어두고45
산에서산이46
사람이라고똑같지않아47
이질량으로충분하다48
징검등49
원담조약50
롬바드스트리트51
바람낭떠러지숲52
아홉사리재53
제라하게54

4부
묘미57
나는드로잉이제격이다58
작약59
반복60
가회동꽃집골목61
달랑게62
붉은지붕63
(주)광장토스트64
가로수65
느리고가장긴노래66
닿는길67
소리의옆모습68

5부
시간을흘리고71
요세미티공원72
풀어음73
호국사74
이상의집75
건축학개론76
전상누각77
신운사곤줄박이78
턱시도고양이79
디스크탈출80
가상분리대81
껍데기특수부위82

해설
구부러짐의시학_신상조(문학평론가)85

출판사 서평

사라져가는존재자들을옹호하는귀한마음
-구부러짐의시학,김양희새시조집『제라하게』

제1회정음시조문학상,2021년중앙시조신인상을수상한김양희시인의새시조집『제라하게』가도서출판작가기획시집으로출간되었다.
저자김양희시인은제주한림에서태어나경기대예술대학원독서지도학과를졸업했다.2016년《시조시학》등단과2018년《푸른동시놀이터》동시조추천완료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0년첫시조집『넌무작정온다』는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학나눔에선정되었으며,이번에펴내는두번째시조집『제라하게』는2023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간지원)에선정되어출간하였다.

5부로나뉘어총60편의시조들을수록한이번시조집『제라하게』에서김양희의시는삶을통해진실을추구하는방식이일상적삶에더욱밀착된형태로드러난다.
자신의근원적기억과주변사물들을동시에꿰뚫던시선으로꾸려졌던첫번째시조집『넌무작정온다』(2020,고요아침)에이어,이번시조집에서시인은산다는의미를“구부러진터널은끝을보여주지않는다.”(「시인의말」)라는말로대신한다.“동시대타자들의가파른삶을관찰하고묘사하면서,시조양식에대한섬세한자의식을드러”내던그의시가이번시조집에서는‘구부러짐’의미학으로삶의본질에한층접근한셈이다.

시인은서정시의통과의례와도같은회상과기억이라는시의질료에서벗어나이제창작의궤도에본격적으로올라선것으로보인다.어린시절의기억은어른의시간에흔적을남긴다.그리고어떤어른은그것을길고지루하게이야기하지않고다른세계로건너가말과표현을달리한다.
이처럼김양희의시는우리를둘러싼사물과상황을사유함으로써삶의의미를추구한다.시인은일찍이타자의고통에대한호혜적연민의시선과오도된욕망을하나씩허묾으로써보다나은공존의원리를모색해나간바있다.타자의고통을연민하는시선은단순한수사가될수없다.혹자의지적처럼,어둠은그냥어두운것이아니다.캄캄한것과컴컴한것이다르고,깜깜한것과껌껌한것이“모두”다르다.하지만고통과부정은‘권능화(empowering)’이며,여기엔의지에기인한강력한힘이존재한다고말한이는브라이언마수미다.마수미에게고통과희망은본질적으로유사하며고통이희망보다더발전적일수있다.왜냐하면부정적순간,즉고통을벗어나기위해노력하는것이대책없는희망감에빠진무력한상태보다나아서이다.「세렝게티」를읽어보자.

새끼잃은누떼가느린바람으로간다

이따금응시하는젖은눈망울언뜻

부시다
휜보복너머
대자연을켜는빛
-「세렝게티」전문,본문29쪽

이시에서우리가확인할수있는건‘부정적삶에의순응’,즉상실의고통을벗어날새도없이이동해야하는누떼의힘겨움이다.새끼를잃은고통을뒤로한채나아가야만하는누떼의느린걸음에는우리가흔히‘자연의일부’라치부하는‘의지에기인한강력한힘’이존재한다.그힘이눈이부시도록“휜보복”에해당한다는시인의사유는웅숭깊다.여기에는새끼를잃은누떼를향한단순한연민과동정심을넘어이들의고통에전심으로동참하는마음의깊이가존재한다.‘휜’은구부러짐을의미하고,누떼의구부러진행진은고통으로부터삶을돌이키려는의지가빚어내는구부림이기때문이다.그런즉지금누떼는삶의지속이‘복수’에다름아닌처절함으로캄캄한터널을통과하는중이다.자연을가로지르는누떼의모습이“대자연을켜는빛”이라는인식에는이들의고통을바라보며기도하듯경건하게그고통의승화를예찬하는시인의마음이담겨있다.
시「아홉사리재」에서도고갯길은높고험하고구부러져있다.시는“별들이밤마다내려와쓸쓸,을구부린다”라며마무리된다.손님이들지않는한적한카페의쓸쓸함을풍경으로만받아들이는이는생계의고달픔을모른다.시인이퇴직한사람을빌미로희망을함부로발설하지않는이유란,시적대상이지나는중인터널이끝을보여주지않아서다.세상이라는소금언덕에맨발을디뎌도아프지않은사람은상처없는발을가진이뿐이다.세상에그런사람이있는가?

이처럼김양희시의미덕은희망을맹목적으로찬양하지않는데있다.그의시는고통과절망을외면하지않는가운데과연삶이란무엇인가를아프게질문한다.질문뒤에얻은깨달음은고통과희망은본질적으로유사하다는사실이다.해서그의시는쉽게희망을약속하지않는만큼,쉽게절망하지도않는다.
예컨대김양희의시에서“손톱밑쓰라려도뽀얗게까놔야제”(「부추꽃만한자리」)라며종일알토란껍질을까고통마늘껍질을벗기는나주댁의바지런한태도는백마디의말보다독자들의가슴을뭉클하게만든다.또한“벼와벼기둥되어”서“된바람을넘”(「일어서는법」)기고,“한무리산양이절벽을건너”뛸때“늙은등징검다리”삼아“도약”하는광경은‘나’의삶과‘너’의삶이무관하지않고,늙은당신의‘등’이지금껏‘나’를버티게해준힘이었음을느끼게하기에충분하다.미끄러운유리창에“앞발로길을내고뒷발은길닫으며/유소유허허벌판을무소유뿔세우고”가는“노린재”(「앞발로뒷발은」)나,“뒤집힌/뻘밭을차고/일어서는달랑게”(「달랑게」)역시자연이우리에게들려주는삶의아포리즘이다.

이러한김양희의시에서세상과자신을관찰하고질문하며,깨달음을얻어가는과정의형식을드러내는시가「코닥필름이찍은섦」이라면,그내면적바탕이무엇인지를짐작게하는시는「사람이라고똑같지않아」다.「코닥필름이찍은섦」은열여덟의어린나이에물질을시작했던어머니를노래하는작품이다.어머니의삶을“코닥필름이찍”음은청각을시각으로전이하는방식이다.감각의전이와어소(語素)를활용한개인적방언등은제주의풍경에존재적삶의비의를겹쳐놓는김양희시의한형식이라할것이다.그리고이러한시적외면의내면이라고할시인의식은,「사람이라고똑같지않아」에서짐승을설득하는“캐나다인디언윈다트부족사내들”의의식과일치한다.이들은사냥감인짐승에게자신들이고기가필요한이유를간곡히설득하면그들이“목숨을너그럽게내놓을걸믿고있”다.시인은아예“나오늘이대목접어마음에꽂아두겠어”라고고백함으로써‘말’에대한전적인신뢰를드러낸다.더불어「제라하게」에서언어는앞선“해녀노젓는소리”와마찬가지로생생한구음(‘목소리’)과입말의형태로드러난다.

어머니오늘도책하영읽었수광

오게우리딸시집도읽고성경책도읽었쪄니네키우멍덮어놨던책보젠허난눈도아프곡머리도지끈거리곡오죽곱곱헌말이가경허여도읽엄시난재미정소리내멍읽엄쪄소리내영읽다보민나말고꼭누게이신거닮아당신목소리에당신이기대어사시는구나,책읽으멍하영배왐쪄게남헌티더잘허여사켜엉턱도부리지말곡이나이에무신부릴엉턱이나이시냐마는

책보멍제라하게좋은건시간이어떵감신지몰람쪄
-「제라하게」전문,본문54쪽

“당신목소리에당신이기대어”산다는의미는존재자를존재케만드는궁극의조건으로서의언어를가리킨다.읽다보면재미나고,재미나서소리내어읽다보면‘나말고꼭누군가곁에있어’읽어주는것같다고어머니는말한다.어머니의말을받아쓰기한시는시인삶의경험적깊이와무관하지않다.시조집제목인‘제라하게’는‘최고로’,‘제대로’라는뜻의제주방언이다.시인은이제야말로고향의방언을최고로,혹은제대로형상화할수있다는자신이생긴거다.과연시에서의방언은제주특유의삶의감각을빚어내는동시에,어머니의일상을심화된형태로빼어나게형상화한다.
소리내책을읽는걸로위로받는어머니(「제라하게」),“남은말로도살기에충분하다”(「이질량으로충분하다」)며만족해하는화자,“참새와도말”을트고,독일어한자도모르지만“전세계아줌마들”과“다통”(「왈」)한다며언어에기대사는“베를린미용실”의‘나’의삶은행복이삶의조건과무관하다는점에서레바논의‘레체드레’에서살아가는사람들을닮았다.이곳은수도사들보다훨씬더엄격하게생활하는은수자(隱修者)들이거주하는곳이다.레체드레입구에는아랍어로이곳에들어왔던사람들의이름과사망일이기록되어있는데,사망일은은수자들이레체드레에들어온날을기록한것이라고한다.그들은레체드레이전의삶에사망을선언함으로써새로운생명으로거듭나기를선택한다.그런은수자들은‘행복은상태가아니라태도다’란격언을선택한사람들이다.그리고김양희시의인물들역시그러하다.

눈도코도입도귀도없는아이와
눈도코도혀도귀도없는파랑새

이래도
우린괜찮아
알아볼수있잖아
갈아엎은활주로밟고핀무꽃무리
전장에스러져간평화를세우면서

그래도
우린괜찮아
이세상에서있잖아
-「알뜨르비행장」전문,본문36쪽

4·3유적지광장을찾으면나오는알뜨르비행장은서귀포시대정읍상모리일대에위치한옛비행장으로,현지지명을따서모슬포비행장이라고도불린다.근현대사속제주의비극을한눈에조망할수있는이곳은,‘아래쪽’을뜻하는제주방언‘알’과‘넓은들판’을뜻하는제주방언‘드르’가합쳐져제주도아래쪽에있는넓은들판이라는뜻을가졌다.원래알뜨르비행장은일본이중국을침략하기위해만들었던군용비행장이다.건설당시모슬포는물론제주전역에서강제로동원된약15만명에달하는조선인들의피가10여년에걸쳐뿌려진곳이기도하다.시인은이알뜨르비행장을배경으로“눈도코도입도귀도없는아이와/눈도코도혀도귀도없는파랑새”를일제에강제동원되어희생되었거나4·3때학살당한제주도민들의표상으로세운다.아이와파랑새는눈,코,입,귀,혀까지모조리허물어져있다.이들은아무리봐도육신을가진존재가아니라이승을떠도는혼백의모습이다.과연“갈아엎은활주로”위에핀흰무꽃무더기가망자들의넋인마냥흔들리고있는모습은아프도록처연하다.시를쓰는일이상상력을매개로사물을새롭게인식하는일이라면,김양희시에서의저흰무꽃무더기는역사의수레바퀴아래짓이겨진제주의수많은원혼이다.

유성호(한양대학교인문대학장)문학평론가는“김양희시조에는부족방언으로서의제주어가지금-여기를역설적으로밝혀주면서‘시인김양희’의발생론과궁극적존재론을함께부각시키는역할을하고있다.이처럼그녀의시조는,언어가가지는비표준화의창조력과함께,제주어의현재형을앞으로도선명하게알려줄것이다.그점에서그녀의시조는사라져가는존재자들을옹호하는귀한마음으로도오래도록기억될것”이라고평한다.

신상조문학평론가는시집해설에서김양희의시를“구부러짐의시학”으로해석한다.“‘구부러짐’은양가적(兩價的)이다.‘구부러진터널’의입구쪽에서있는사람은터널의출구가보이지않는다.”며,“힘겹게길을걸어온사람의눈에환한빛으로가득한출구(‘끝’)가”보이고,“그는구부러진터널의모퉁이를돌아이제막,새로운국면에접어든것”이라고평한다.그리고이는“김양희의시를예감케하는증거”가아닐까?라고질문한다.

독자들이여,“느리고가장긴노래”를통해“햇살이밀어올려다시내는구불길”을펼쳐가는김양희시인의“힘찬존재론적도약“이보이는가.“물질은바다보다깊은숨”이라는그녀의시조에는정말“새숨이솟구쳐올라고비를벗은비경”이넘쳐나고있다.“대자연을켜는빛”을충일하게선사하고있는김양희시조의“구부러짐”의행간속으로아름다운시조여행을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