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 파란시선 137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 파란시선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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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멍은 사라지면서 진화한다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는 백연숙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평촌」, 「돌무지」,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등 42편의 시가 실려 있다.
백연숙 시인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를 썼다.

백연숙의 첫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에는 문장 가득 마음이 담겨 있다. 비가 내려 무너진 집을 복구하려는 개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음악이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바꾸어 적거나(「클라리넷」) 할머니의 병 때문에 한 집에 옹기종기 모이게 된 모녀 삼대를 “우리는 한때 소녀였다”라는 사랑스러운 문장으로 한데 모은 자리에서 발견되는 연민이나 애틋함 같은 것(「소녀시대」).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시 속의 이들이 처한 안타까운 사정을 잠시나마 잊은 채 그 따듯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게 된다. 세상에는 빈속을 든든히 채워 몸을 회복하기 위해 찾는 “죽집”도 있지만 어떤 허한 이들의 경우, 다른 이유로 방문하는 “죽집”도 있다. 이를테면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러” 가려는 “손님들”이 있는 「묵음(黙音)」의 가게와 같은 곳.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아까시나무”를 찾는지는 추정만이 가능하지만 어떤 흥미 본위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그곳에 “손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나무를 잘 길러 보기 위해 “휴일에도 물을 주러 나”가는 주인의 따듯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백연숙의 시집 [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를 찾아 읽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발길이 자주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은 그의 시가 새롭거나 화려한 수사들로 써졌기 때문이 아니라 저 다정한 주인처럼 우리의 텅 빈 곳을 채워 주려는 그의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곧 다시 허기질 것을 알고 어떻게든 우리의 빈 곳을 어루만져 이를 다른 것으로 채워 주려는 필사적인 다정함. 이것이 백연숙 시의 특별함이 아닐까. 그의 시를 읽으며 “다급한 허기”를 채운 후에야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여 본다(「모과가 한창」).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가장 낯설고 먼 하나의 이국”처럼 여겨졌던 가족의 허기 같은 것(「몽유도원도」). 세상에는 참 채워야 할 것들이 많다. (이상 송현지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저자

백연숙

저자:백연숙

충청남도보령에서태어났다.

1996년[문학사상]을통해시인으로등단했다.

시집[십분이면도착한다며봄이라며]를썼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평촌11
클라리넷12
의자는푸르다14
멍16
모과가한창18
돌무지20
워킹맘22
설계사24
질병분류기호26
분화구28
달빛감옥30

제2부
십분이면도착한다며봄이라며35
그고개36
소녀시대38
개밥바라기별40
귀뚜라미모녀142
불탄집44
매46
꽃샘47
입춘48
악착같이50
퇴근길52

제3부
생선꽃55
만추56
몽유도원도58
묵음(音)60
카풀62
택시안에서택시잡기64
MRI66
메모리얼가든68
연신내,가로등06-4로부터70
있다가없는밤72

제4부
바람부는날77
남태령78
도둑맞은자화상80
치욕은어떻게오는가82
주말의평화84
백야행86
귀뚜라미모녀288
동백꽃90
자궁의기억92
장항선94

해설송현지허기의자리95

출판사 서평

추천사

일찍이1996년에시인이되었으나이번이가까스로첫번째시집이다.따져보면이십팔년만에시집을내놓는셈이다.그함구와침묵과격절의시간에도시인은타자를유심히바라보는일만큼은내려놓지못한모양이다.타자의슬픔을바라보면누구에게나연민이발생하는데,그순간타자에게값싼동정을내비치는주체는속물로전락하고만다.그점을잘아는백연숙은타자를통해자신을들여다보거나타자와자신을동일시하는방식의전략을택한다.그러다보니‘여동생’과‘나’와‘엄마’와‘할머니’가할머니방에모이면모두“한자리에모인우리는상기된소녀들”이된다(소녀시대).미용실갔다가개미집을구경하고,동태찌개를먹거나세탁기앞에서‘엄마’를떠올리고,달빛을바라보다가거실창문에맺히고,반찬투정하는‘남편’앞에서동백꽃이되는일이모두그렇다.그것들은새초롬한듯하지만다예사롭지않고,무심한듯하지만살가운데가있다.간접인용형식의구문을활용한표제작십분이면도착한다며봄이라며가주는울림을읽어보라.사소하고무덤덤한전언이통증처럼아리게스며들것이다.또하나백연숙의시집에서유난히눈에띄는건‘여자’다.그‘여자’는지극히객관적이면서냉철한척하는‘여성’이아니라“보이지않지만들려오거나/해마다잊지않고찾아와통증으로열리는/몸의서랍들”을지닌‘여자’다(자궁의기억).우리는이시집의성과를‘여성’이라는말의메마른관념성을‘여자’라는몸의생생한구체성으로그려낸수확으로봐도좋을것이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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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말

버스정류장도지나고페르시안고양이도지나고
겨울지나겨울이오기전당신도지나고지나는김에나도지나가며
다지나왔다고생각했는데

웬걸,저만치서당신의오늘과내일이나를노크한다

쉼표하나지나자마자마침표를찍을까말까갸우뚱거린다
알수없는일이지만나는아직도비상등처럼깜빡이거나지직거리는
당신의그찬란한눈동자를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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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속의시세편

평촌

거미줄에걸려말라붙은나비를본다

바람불때마다파닥거리는나비
멀리쌍둥이빌딩이보인다

벌레먹은산딸나무잎사귀
거미줄위에매달린채흔들린다

줄을쳐놓고대체그는어디로사라진걸까

아무리둘러봐도보이지않지만
육천원짜리백반을먹기위해
식판을들고길게줄이섰다

거미줄이바람에흔들릴때마다
조금씩무거워지는허기,

요란하게지나가던배달오토바이경적소리도
거미줄에걸려있는가을장마끝이었다■

돌무지

돌이울어요
비가오면떠내려갈까봐
맨밑에깔린채
입밖으로빠져나가지못한단말마의비명을위해
돌들이개구리처럼떼거리로울어요

여덟명의아이들에게
먹을것이없다는걸감추기위해
케냐엄마는냄비에돌을넣고끓였지요
휘휘저으며맛도봤을거예요
쌀이나금이되느라돌들은잠못이루고
냄비가끓는동안아이들은헛배가불렀을거라고

돌들은잠시울음을그쳐요
눈이오면강아지꼬리가생기고
차곡차곡쌓인비명들입냄새처럼빠져나와
아아입을벌려눈을받아먹으며
오오,배부르다고하나같이입을모으지요

울음을그친돌들은
반달눈을하고깊은잠이들어요
얼굴에말라붙은눈물자국들
모래알처럼밤새반짝이지요■

십분이면도착한다며봄이라며

물들까봐근처도가지않았다며
쥐똥나무창공이라며친구라며
졸지도않았다며
꽃은피었지만나비는날지않았다며
사각지대는아니었다며
새가노래로울었다며
58년개띠열댓살짜리아이가있었다며
게이는아니지만스타킹이나왔다며
뒤로갈수도없었다며대포통장이었다며
아이와노모가타고있었다며
하필이면블랙박스가꺼져있었다며
애인이라며
월요일은일산수요일은목동
토요일은우리동네약수터
약물이나알코올중독자
운좋게발을뺐다며물까지타진않았다며
고향가는길이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