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 걷는사람 시인선 79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 걷는사람 시인선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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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출간

“툭하면 다시 내려가자는 말 서울은
한밤에도 베개 밑으로 수도꼭지가 돌았다”
이 세상의 가장 한심한 것들이 모여
슬프게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순간-
생활밀착형 시(詩)가 터뜨리는 탄산수 같은 삶의 장면들


걷는사람 시인선 79번째 작품으로 최명진 시인의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가 출간되었다. 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2006년 《리토피아》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후 오랜 기간 공백을 거쳐 온 시인은 더 단단하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다만, “아름다운 동화를 도저히 쓸 수 없는 일그러진 시대에서의 부조리한 삶의 단면을 냉정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포착”(《리토피아》 심사평)하는 근력을 간직한 채로. 먹먹한 슬픔을 담백하면서도 유쾌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기량을 가진 최명진 시인의 풍부한 시편이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라는 첫 번째 이름으로 묶였다.
시인이 그려내는 세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대해 생각”하는 인물들로 가득하지만, 시인은 삶과 예술이 아름답고 반짝이는 순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우− 그것도 노래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우− 이것도 노래이니(「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그려내는 존재들을 정말 “아무것도 아니(「괜히 나온 산책」)”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하 1층은 하늘 다방이 자리하고 있(「엄마손 제과」)”는 슬프고도 아이러니한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곳에는 “할머니를 도와 먼 버스정류장까지(「사람 마음」)” 무거운 짐을 선뜻 옮겨 드리는 이가 있고,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사람에게 “통 크게 만 원 한 장 넣어 주(「그는 거기 서 있다」)”고도 마음이 개운치 않은 이가 있고, “무엇이 왜 그들 스스로를 버리게 하는지(「초특급삼류액션블록버스터」)”를 끊임없이 곱씹는 이가 있다. 삶을 “살아내야만(「엄마의 삶이란」)” 하는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적 화자들은 “나는 살 수 있다(「신들린 손」)” 다짐하며 타인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일상적인 풍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목소리는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변주되어 매 시편이 새로이 느껴진다. 그 노래를 들은 우리가 시인을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인지도 모른다.
해설을 쓴 이병일 시인은 최명진의 시집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환각을 주의 깊게 포착해내고 있”다고 진단하며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를 읽는 순간, ‘일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한다’와 ‘몸 자체가 세계의 한 풍경이다’라는 문장을 동시에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또한, “이 세상의 가장 한심한 것들이 시를 이루게 하는 힘임을 최명진은 알고 있다. 시의 묘미는 현실의 얼굴에 있”다고 덧붙이며 최명진의 첫 시집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 시집을 추천한 길상호 시인은 최명진의 시집이 “어느 순간 읊조리던 소리는 “샤우팅”으로 바뀌고 한없이 깊은 묵음으로 다시 이어지기도” 함을 강조하며 시인이 변주해내는 노래에 찬사를 보낸다. 또한 “그가 믿는 노래의 힘은 아름답게 지어낸 멜로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 지극한 마음에 있”다고 분석하며 “시인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고 격찬한다. 이 시집을 펼친다면 도무지 “아무것도 아니(「괜히 나온 산책」)”라고 말할 수 없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에 흠뻑 빠지게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최명진

전북전주에서태어나2006년《리토피아》시부문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거짓말이늘지않았다면
첫눈
괜히나온산책
삼겹살
비닐봉지
뒤끝
외식
통장
명분
내자취는
아내와선인장
엄마손제과

마흔살
마스크팩의여유

2부각자의바닥에누워
파출이모
닥터스트레인지
대상포진이지나간자리
테트리스
사직
사람마음
그는거기서있다
새사람
절친
신들린손
바다낚시
먼지하나에주머니하나
한심한것들
울기직전

3부저는벌레가됐습니다
꽃의장례
물기
물고기
덧버선
돈세탁
쌀벌레
태권브이
딸깍!
야옹
슬픔은매번이렇게
최씨는머리가아프다
절반식구
개미안
초특급삼류액션블록버스터
별이빛나는밤에
비빔밥

4부쓰다만노트
낯설기도하지
북아현
수상한천장
거미부부는어디로갔을까
나는가로등
잠든자를위한기도
그게얼마나한다고
식은꽃등심
그녀가오지않는밤
고창
제사
엄마의삶이란
저기지는노을바라보면
병원놀이
무게

해설
저공비행으로본삶의얼굴들
―이병일(시인)

출판사 서평

걷는사람시인선79번째작품으로최명진시인의『슬픔의불을꺼야하네』가출간되었다.전주에서태어난시인은2006년《리토피아》시부문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등단후오랜기간공백을거쳐온시인은더단단하고성숙해진모습으로우리곁에돌아왔다.다만,“아름다운동화를도저히쓸수없는일그러진시대에서의부조리한삶의단면을냉정한카메라의시선으로포착”(《리토피아》심사평)하는근력을간직한채로.먹먹한슬픔을담백하면서도유쾌하게,때로는열정적으로그려낼줄아는기량을가진최명진시인의풍부한시편이『슬픔의불을꺼야하네』라는첫번째이름으로묶였다.
시인이그려내는세계는“아무것도아닌것”과“아무것도아닌것에/대해생각”하는인물들로가득하지만,시인은삶과예술이아름답고반짝이는순간만으로이뤄지지않는다는사실을이미알고있다.그러니“우?그것도노래라고”말하는이들에게“우?이것도노래이니(「별이빛나는밤에」)”라고선언할수있는것이다.그렇다면시인이그려내는존재들을정말“아무것도아니(「괜히나온산책」)”라고단언할수있을까.

시인의눈에비친세상은“지하1층은하늘다방이자리하고있(「엄마손제과」)”는슬프고도아이러니한풍경과크게다르지않다.그런데도이곳에는“할머니를도와먼버스정류장까지(「사람마음」)”무거운짐을선뜻옮겨드리는이가있고,바구니를들고서있는사람에게“통크게만원한장넣어주(「그는거기서있다」)”고도마음이개운치않은이가있고,“무엇이왜그들스스로를버리게하는지(「초특급삼류액션블록버스터」)”를끊임없이곱씹는이가있다.삶을“살아내야만(「엄마의삶이란」)”하는일에대해골똘히생각하는시적화자들은“나는살수있다(「신들린손」)”다짐하며타인의마음을외면하지않기위해분투한다.일상적인풍경으로부터시작되는이들의목소리는때로는유쾌하게,때로는열정적으로변주되어매시편이새로이느껴진다.그노래를들은우리가시인을따라흥얼거리게되는것은당연한순서인지도모른다.

해설을쓴이병일시인은최명진의시집이“현실이라는거대한환각을주의깊게포착해내고있”다고진단하며“『슬픔의불을꺼야하네』를읽는순간,‘일상을있는그대로지각한다’와‘몸자체가세계의한풍경이다’라는문장을동시에떠올렸다”고고백한다.또한,“이세상의가장한심한것들이시를이루게하는힘임을최명진은알고있다.시의묘미는현실의얼굴에있”다고덧붙이며최명진의첫시집에아낌없는박수를보낸다.

이시집을추천한길상호시인은최명진의시집이“어느순간읊조리던소리는“샤우팅”으로바뀌고한없이깊은묵음으로다시이어지기도”함을강조하며시인이변주해내는노래에찬사를보낸다.또한“그가믿는노래의힘은아름답게지어낸멜로디에있는것이아니라대상을향한지극한마음에있”다고분석하며“시인이부르는노래를따라부르”게된다고격찬한다.이시집을펼친다면도무지“아무것도아니(「괜히나온산책」)”라고말할수없는슬프고도아름다운노래에흠뻑빠지게되는순간을경험할수있을것이다.

시인의말

엮고보니엄마의
예쁜모습이한줄도없다

다정한아내를많이담지못해
미안할따름이다

좁은생각들전부보듬어
책을허락한두분께감사하다

또한내겐누이같은장모와처남
새아버지와이복동생들

친구같은막냇삼촌그리고
이모가셋이나있다

살뜰한분들이지만
담긴글이없어여기밝혀둔다

2023년1월
최명진

책속에서

아내몰래오십만원드렸다부러몰래는아니었는데드리다보니처가엔서운할일같아주저리단속하고밖을나왔다마침첫눈이내리고있었고아내가점찍어둔신상겨울점퍼가생각났다

아내몰래낮술홀짝이며싱숭생숭앉아있자니눈발이점점성해지고있었다자기도첫눈보고있다고전화해온아내다첫생각에지금당장만날까말꼬릴올리는데,아내여미안하다
---「첫눈」중에서

힘들면내무릎에좀누워
배기고불편해

임신한아내가
마땅히쉴곳이없다

아내는서운한것이다
산책문제는아니다

아무것도아니라니깐,
아무것도아닌것이다

벤치에앉아
아무것도아닌

아무것도아닌것에
대해생각했다

내가아무생각안하는것같지만
정말골똘히생각하고있는것이다

그건꽤중요하다
---「괜히나온산책」중에서

주인집은수도세를매번
바가지씌운다
자기네는물쓸일없다고
혼자자취하는내게반을떠넘긴다

담근김치도갖다준다
오다가다만나면
아저씨는정정하시고
막내아들은예의바르고
아주머닌뭐뜯어먹을거없나
궁리하듯나를본다

아이스크림이라도하나건네면
호호날씨덥지?하면서
오물세가또어쩌고
자식같으니까하면서
그럴땐내가이집장남인것이다
---「절반식구」중에서

짐이무거운할머니를도와먼버스정류장까지기왕에옮겨드린건데할머니안색이좋지않다시간에쫓겨빨라진내걸음도있었지만자꾸달아나는자신의짐을손쳐내듯도로가져가시는데내심서운함에빈웃음으로발길을돌렸다할머니비로소안도했을까지나보니미안했을까나혼자그렇다두고두고생각하는것이다없던사람이생겨나마음을흔든다없던마음이생겨나사람을흔든다길바닥에통째흘려버린아이스크림이녹자발동동구르는아이는이제못먹을건알지만예쁜모양그대로남아주길바란다이건어쩔수없다고안되는거라고얘기는하지만
---「사람마음」중에서

그는내가출퇴근하는그시간에바구닐들고서있다나는지나칠때마치그를없는사람처럼외면하곤했는데한번은통크게만원한장넣어주니고맙다고연거푸고개를숙인다내가당황한것이다왜그런진모르지만잘못된건아니라고생각했다그후그앞을지나다눈마주치면그가반가운얼굴로웃는다나는눈을피했다그가왜그런진알지만다음에멀리돌아서가기로했다간혹그가없는날도있을거였다장마가왔을때그가자릴피했을까슬쩍보면담벼락에몸을붙인그가거기서있다낙담할일은아니지만고개숙일일도아니다매번그를지나칠때뒤통수간질거리는것이다
---「그는거기서있다」중에서

도무지길이안보인다고해요길이란게다그래그래서제가누굽니까네첫걸음전문가제가늘전하는말씀입니다처음은다헛걸음같아요헛발질헛수고헛소리첫걸음이이렇게나얼굴이다달라그럼어떡해신은공평하지않은데그래서여러분이절만난게천만다행이다행운이다아시겠죠(중략)신은말씀하셨습니다허리는뭐다다시일으켜세운다첫걸음이또낭떠러지라는사람들꼭있죠있어요그건순전히틀렸다엉터리야저를못믿겠다누가그러죠의심해좋다이거예요저는다압니다저는절대강요안해요제가애걸합니까요구한적있나요어디손한번들어봅시다제가여러분입니까제가여러분입니다따라합시다나는살수있다나는살수있다그래서제오른손이소개할이게뭐냐,네신입니다신
---「신들린손」중에서

이런이런어쩜좋아,어서가서슬픔의불을꺼야하네슬픔의냄비는까맣게타버렸을것이네슬픔의집엔아무도없으니서둘러가야하네슬픔의시동을켜고슬픔의엘리베이터를올라슬픔의현관문을열면슬픔의탁한기침이콜록콜록슬픔의코를막고슬픔을환기시켜야하네이런이런나는왜이리슬픈정신머린지내슬픔의일상은이렇다네

사실오늘아침나는슬픔을절반밖에먹질못했다슬픔이상할까남긴슬픔을끓는냄비에부었다슬픔의전화가울려와슬픔의전등이꺼지고슬픔의카페에서당신슬픔과내슬픔이만나슬픔을야기할때슬픔은슬프지않았다당신슬픔의주인공은누구죠?나는예고없는슬픔을공개했다눈물을나눈다면그반을당신께드릴게요우리는슬픔이각별했다
---「슬픔은매번이렇게」중에서

하늘이무너졌네요

털썩주저앉지않습니다
저는로커니까요

로커에게그리헤비한
사연은아니지만하늘이

왜언더그라운드에있느냐고
엄마는샤우팅하시네요

기타리프를튕겨봅니다
별이빛나는밤에

아니면땅이꺼진걸까요
언플러그드된골방에누워

손하나
까딱하지만

손에잡히질않네요
저도딸린식구니까요

엄마보세요
하늘은잘무너집니다

보세요엄마
솟아날구멍이어딘가

우─그것도노래라고
우─이것도노래이니
---「별이빛나는밤에」중에서

등돌린할아버지옆집과싸우고윗집과싸우고서울에선쓸모없는할아버지스스로를멱살잡아밖에내다버린고약한할아버지어린나를벌벌떨게한할아버지가돌아가셨습니다

외양간들어내고까치소리만심심히듣던할아버지나무지게위에나를올려산길걷던할아버지채송화심고박하잎닦고저녁내작은방에서새끼줄꼬던할아버지가돌아가셨습니다

잔칫날기어이술상을엎더니할아버지미쳤다고서둘러보낸요양원에서얌전해진할아버지면회로담배한보루건네주면눈물만글썽이던할아버지가돌아가셨습니다

그때주문이밀려못갔습니다배달오토바이함부로돌리지못했습니다살다가전속력으로멀어진할아버지치킨보다못한할아버지가돌아가셨습니다

이제큰절하는삼촌은구부정하고보릿자루만해진할머니와흰머리더러난제가있습니다어린딸은영정앞에서삐쭉빼쭉히프춤을춥니다
---「제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