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자연의 몸’을 받아쓰는 필경사
우리 시대의 뛰어난 서정시인이자 운율의 연금술사라 일컬어지는 고두현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가 출간되었다. 시인수첩 시인선 85번째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의 몸’을 받아쓰는 필경사로서의 문장을 새롭게 잇고 있다. 특히, ‘운율과 말맛’이라는 시의 본연을 복원하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으로 그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시인은 낭송의 전통을 유려하게 펼친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저음으로서 형상된 이 목소리의 시학은 나이테처럼 둥글게 뭉쳐지며 우리의 귓속으로 스며든다. 사물을 정확히 구분하고 분별하는 높은 소리와는 다르게, 시인의 바리톤은 침묵의 자리에서 청각의 무도(舞蹈)를 수행하면서 “사물 세계와 일상의 말을 더 잘 받아쓰기 위한 경청의 자세”를 완성한다.
확실히 시인이 계승하고 창안한 목소리의 짙은 농도와 흐름 들은 구술문화의 흔적이며, 우리의 현대시가 잃어버린 ‘시’와 ‘노래’의 대칭이다. “장진주사 마지막 구에서/ 악보 덮고 먼 산을 보네”와 같은 문장이 함의하는 것처럼, 적어도 시인에게 시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음악적 보고가 아닐까. 때문에 고두현 시인의 문장은 지금-여기에서 당대의 시선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히 먼 과거와 미래를 향한다. 이른바 부재의 긍정이자 그 민감한 형식이다.
손택수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고두현 시의 부재는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는데 그 양상은 ‘고대’와 ‘고향’과 ‘고전’의 복원에 집중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렬히 결속된 이 트라이앵글은, 놀라운 속도전과 파괴력, 그리고 물신(物神)의 정형화된 이율배반으로 점철된 현대 도시 문명의 대척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대와 고향, 고전이 응시하는 세계는 주체와 타자, 사물이 섬세하게 얽히고 스며들어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용서와 화해, 평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두현 시인의 탁월한 서정은 사태를 좀 더 확장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요컨대, 시인은 이 삼각형의 윤활(潤滑)을 음악을 통해 이끌어낸다. 특히나 시인은 첫 시집 『늦게 온 소포』에서부터 이미 시가(詩歌)의 숭고한 목소리에 집중했으며, 두 번째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와 세 번째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에서 완성에 가까운 성취를 보인다. “슬픔의 밑둥에선 어떤 소리가 나는지/ 숨 닫고 말문 막힌 땅 끝에선/ 어떤 웅얼거림이 울려오는지/ 마침내 빈 몸으로 귀 맑게 듣기 위”(「발해 금(琴)」)한 첫 시집의 방향 설정은 “유약 바르지 않은/ 다갈색 질그릇 빛”(「발해 자기」)의 공간을 축성하고, 또한 “그리움 깊은 밤엔/ 해금을 듣습니다./ 바다 먼 물소리에/ 천근의 추를 달아/ 끝없이 출렁이는 슬픔의 깊이/ 재고 또 잽니다.”(「해금(海琴)에 기대어」)라는 첨예한 정서를 끊임없이 예각한다.
아울러 두 번째 시집에서는 “적막강산 짊어지고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바다로 가는 그대」)는 선언을 통해 “아아 누가 이 밤에/ 돌을 깎는 소리/ 캄캄한 빛을 쪼아/ 칠흑 하늘에 박는가”(「저 별을 잊지 마라」)라는 연금술적 고행이 그의 시업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시인이 집중했던 신화적 적막강산을 한 채의 고적한 사원으로, 그러나 외따로 떨어진 고고하고 자기 만족적인 고립된 성채가 아니라 누구나 기대고 염원하고 축원하는 개방된 성소로 밀어올린다. “흙에서 와 흙으로 가는/ 물처럼 바람처럼 강처럼 바다처럼/ 스스로 길이 되어 흐르는 사람들”(「정포리 우물마을」)이 생활하는 공간인 것이다. 과연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껴안고/ 거룩한 몸이 되어 반짝이는 땅// 봄마다 다시 돋는 쑥뿌리 밑으로/ 우렁우렁 물이 되어 함께 흐르며/ 연초록 풀빛으로 피어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을까.
이에 대한 시인의 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네 번째 시집의 첫 장을 펼쳐야 한다. 시인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그의 문장은 혀로 궁굴리는 ‘입말 퇴고’의 직접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시인의 여정을 함께 걸어간 ‘길 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풀고 있다. 속삭이는 듯한, 혹은 같이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서 그는 시의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삶에 오롯이 묻어나오는 현장성마저 농염하다. “빛바랜 신발 자국 맨발을 맞대보다 백고무신 옆구리에 비친 옛집 처마의 푸른 그늘을 만져 보다”(「신발이 지나간 자리-정병욱의 이력(履歷)」)라는 염결성은, 주관적 회고나 혹은 섣부른 감상, 동정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시인의 작업을 명징하게 받아들이고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는 그 생활과 실존의 유려한 악보일 것이다.
우선 시인은 낭송의 전통을 유려하게 펼친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저음으로서 형상된 이 목소리의 시학은 나이테처럼 둥글게 뭉쳐지며 우리의 귓속으로 스며든다. 사물을 정확히 구분하고 분별하는 높은 소리와는 다르게, 시인의 바리톤은 침묵의 자리에서 청각의 무도(舞蹈)를 수행하면서 “사물 세계와 일상의 말을 더 잘 받아쓰기 위한 경청의 자세”를 완성한다.
확실히 시인이 계승하고 창안한 목소리의 짙은 농도와 흐름 들은 구술문화의 흔적이며, 우리의 현대시가 잃어버린 ‘시’와 ‘노래’의 대칭이다. “장진주사 마지막 구에서/ 악보 덮고 먼 산을 보네”와 같은 문장이 함의하는 것처럼, 적어도 시인에게 시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음악적 보고가 아닐까. 때문에 고두현 시인의 문장은 지금-여기에서 당대의 시선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히 먼 과거와 미래를 향한다. 이른바 부재의 긍정이자 그 민감한 형식이다.
손택수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고두현 시의 부재는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는데 그 양상은 ‘고대’와 ‘고향’과 ‘고전’의 복원에 집중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렬히 결속된 이 트라이앵글은, 놀라운 속도전과 파괴력, 그리고 물신(物神)의 정형화된 이율배반으로 점철된 현대 도시 문명의 대척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대와 고향, 고전이 응시하는 세계는 주체와 타자, 사물이 섬세하게 얽히고 스며들어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용서와 화해, 평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두현 시인의 탁월한 서정은 사태를 좀 더 확장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요컨대, 시인은 이 삼각형의 윤활(潤滑)을 음악을 통해 이끌어낸다. 특히나 시인은 첫 시집 『늦게 온 소포』에서부터 이미 시가(詩歌)의 숭고한 목소리에 집중했으며, 두 번째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와 세 번째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에서 완성에 가까운 성취를 보인다. “슬픔의 밑둥에선 어떤 소리가 나는지/ 숨 닫고 말문 막힌 땅 끝에선/ 어떤 웅얼거림이 울려오는지/ 마침내 빈 몸으로 귀 맑게 듣기 위”(「발해 금(琴)」)한 첫 시집의 방향 설정은 “유약 바르지 않은/ 다갈색 질그릇 빛”(「발해 자기」)의 공간을 축성하고, 또한 “그리움 깊은 밤엔/ 해금을 듣습니다./ 바다 먼 물소리에/ 천근의 추를 달아/ 끝없이 출렁이는 슬픔의 깊이/ 재고 또 잽니다.”(「해금(海琴)에 기대어」)라는 첨예한 정서를 끊임없이 예각한다.
아울러 두 번째 시집에서는 “적막강산 짊어지고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바다로 가는 그대」)는 선언을 통해 “아아 누가 이 밤에/ 돌을 깎는 소리/ 캄캄한 빛을 쪼아/ 칠흑 하늘에 박는가”(「저 별을 잊지 마라」)라는 연금술적 고행이 그의 시업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는 시인이 집중했던 신화적 적막강산을 한 채의 고적한 사원으로, 그러나 외따로 떨어진 고고하고 자기 만족적인 고립된 성채가 아니라 누구나 기대고 염원하고 축원하는 개방된 성소로 밀어올린다. “흙에서 와 흙으로 가는/ 물처럼 바람처럼 강처럼 바다처럼/ 스스로 길이 되어 흐르는 사람들”(「정포리 우물마을」)이 생활하는 공간인 것이다. 과연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껴안고/ 거룩한 몸이 되어 반짝이는 땅// 봄마다 다시 돋는 쑥뿌리 밑으로/ 우렁우렁 물이 되어 함께 흐르며/ 연초록 풀빛으로 피어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을까.
이에 대한 시인의 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네 번째 시집의 첫 장을 펼쳐야 한다. 시인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그의 문장은 혀로 궁굴리는 ‘입말 퇴고’의 직접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시인의 여정을 함께 걸어간 ‘길 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풀고 있다. 속삭이는 듯한, 혹은 같이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서 그는 시의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삶에 오롯이 묻어나오는 현장성마저 농염하다. “빛바랜 신발 자국 맨발을 맞대보다 백고무신 옆구리에 비친 옛집 처마의 푸른 그늘을 만져 보다”(「신발이 지나간 자리-정병욱의 이력(履歷)」)라는 염결성은, 주관적 회고나 혹은 섣부른 감상, 동정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시인의 작업을 명징하게 받아들이고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는 그 생활과 실존의 유려한 악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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