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갔다 두 개의 - 시인의일요일시집 30

왔다갔다 두 개의 - 시인의일요일시집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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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제는 우리가 응원할 차례
아무튼 길상호가 돌아왔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남조, 김광규, 정호승 시인은 “한국의 서정시가 본궤도에 오른 느낌”을 받았다며 길상호 시인의 시에 대한 상찬으로 일관했다. 이후 그는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서사와 서정을 제대로 아우를 줄 아는, 시어의 마술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10남매의 마지막에 쌍둥이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고독의 가족사는 그를 일찌감치 시인으로 키워냈다. 시를 쓰면서 자아를 막무가내로 괴롭혔던 어린 소년은, 타인의 존재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 시를 쓰면서 시인이 되었고, 어느새 역량 있는 중견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작년 초순 면역체계가 흐트러지면서 길상호 시인은 반년 가까이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시달렸다. 머리가 자주 아팠고, 몸과 마음의 수평선이 기울어져, 건망증과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말이 어눌해졌고, 어눌해진 만큼 정반대로 온갖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은 부글거렸다. 매일 약을 먹어야 했고, 하루에 세 번 혈당수치를 재야 했다.
그런 심한 병증 가운데에서 길상호 시인은 자신의 아픔 몸을 시로 일으키려 노력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왔다갔다 두 개의』는 삶이 고달픈 어느 시인이 써 내려간 병적 징후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려는 한 시인의 고투이며 치열한 자기 존재 증명의 방편으로 읽힐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날개를 갖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에 시달리는 “어두운 사람” 길상호 시인을 응원해야 할 시간이다. 상처와 고통의 흔적 속에서 더욱 섬세해진 감성과 깊은 응시는, 우리 시의 또 다른 보석이 될 것이다.

저자

길상호

저자:길상호
충남논산에서태어나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
시집『오동나무안에잠들다』『오늘의이야기는끝이났어요,내일이야기는내일하기로해요』등,산문집『겨울가고나면따뜻한고양이』등이있다.
김종삼문학상,천상병시상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수증기극장
노래는저혼자두고/골목의주인/재개발/봄비를데리고잠을잤는데/방파제/수증기극장에앉아/쌍둥이/옥천버스/널어둔사람/혈당검사수첩/여름휴가/온기/낙찰/로션과스킨/흔한일/모처럼의통화는/아침부터/천일뒤에다시올게요

2부꽃도둑
양말/자살/진흙이입을벌릴때/그만해도돼/이거좋은거예요/쓸고쓸어도/무표정/노간주/투명물고기와양초/너의어눌/수평기/나비숲/꽃도둑/저집은불을켜고저집은불을껐다/고양이구름

3부인형
검은가방/호수에앉아/그집지하에는/살풀이/장마/누나는나무/2024년1월1일/이도저도아닌것들/노래는흐르고/새똥/꽃샘이심하다/그만,/냉담/한두송이오는눈은

4부다늦은저녁에
페인트/박하사탕/나이한살먹더니/가족모임/바람이많이불어요/홀리는새벽/양이있는곳/문체/추자/어디서봤더라/두루마리,두루치기/독서는금지

해설
우정의한기록2-K에게|이정현(문학기고가)

출판사 서평

아픈몸을가지고나는씁니다
당신의얼굴,나의응원

예고했듯앞서K가쓴시에기대,그의아픈몸을낱낱이‘해석’하고‘분석’했다.쓰면서나는깨달은듯하다.임상보고서인줄알았는데그가앓고난뒤쓴,저일련의시에빨려들어가전혀예상치않게그의새로운시적경향을엿본것같다.그가‘기후’와‘기분’의양극을오간끝에그연장선상에서약간은뜬금없게,나는처음에그것이억지스럽다고생각했다.‘로션과스킨’을호출한다.반복해보겠다.“무조건함께있는걸로주세요”.나는이말을오독했던것같다.앓고난후무너져내린자신의사고체계에대한시적표현이라생각했다.무/조/건/함/께/있/는걸/로주/세/요.그의요구에내대답은이랬다.“그러지말고이거쓰세요,로션과스킨이따로있어서그날상태에따라골라쓸수있어요,결혼식에갈땐로션을장례식엔스킨을조금발라주세요”(「로션과스킨」).이치와사리를가리는내주문에당신이내린최종답변이다.“사실장례와결혼은한몸이에요”(「화환」,『이야기』).그가쓴시에기대,병적징후에만골몰했던내게,급습하듯던진그의말을나는어떻게받아들여야하는가.에둘렀지만그는자신의아픈몸을재료삼아새로장착한시론을개진한것이다.어떤시론들은이렇게불현듯찾아온다.


자신마저알지못하는여러이유가있겠지만여기까지오게된건,누구의탓도아니다.그가“감염된심장으로통화를해요,당신은없는사람이래요,식은밥처럼조용히살고있어요”(「모처럼의통화는」),라고쓸때나는저문장을마음으로읽는다.그가내게한말들이시가된것이다.“아침부터”“진찰실에앉아”의사의“긴설명을들어야하는일”(「아침부터」)은얼마나난감한가.
……
그가“먹어치”운자신의“얼굴”을향해말한다.“대야에비친자신을사랑하세요,다른얼굴이보여도그냥주워사용하세요”(「이거좋은거예요」).이어그가쓴다.“그러니우리는그만제얼굴을찾는게좋겠어”(「그만해도돼」).이것은자문자답인가.여기까지쓰고“질문이많아미안해요,그냥헛소리라고생각하세요”(「반쯤있는그」,미발표시),라고그가혼잣말을할때나또한그를따라속삭이듯외친다.제발‘헛소리’여도좋으니K,당신이당신의얼굴을먹지말고되찾았으면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