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생애가저리투명할수있다면봄은다시오지않겠냐”
모호한세계에서의미를건져올리는일
안개속에서무수히타종되었던바람의문장은
궂은날눈만홀리다금세사라지는여우별이거나
의식의창을가린검은조각의매지구름이거나
깨어나메모장찾다다시든그루잠속에서
번개처럼잡아챈시의나비날개다
안개장마당에서도시의눈속임을하는
야바위꾼을만날수있다절벽은어디에나있다
그럴땐감각의집어등을밝히고허밍,
몰입으로숨죽인뱃고동소리가더멀리간다
아사시한안개스토리가이어지는곳에서
안개를먹고자라난사물아이의눈은
웅숭그레깊어져있다
―〈안개가잎을키웠다〉부분
유지인의시들은독자를희뿌연새벽안개의중심으로끌어들인다.안개는불투명한몸피로세계를가리면서실상을파악하기어렵게만든다.시인은모든것을희미하게,비가시적으로만드는안개의그러한특성이삶의전모를감추어어쩌면빈약하고얄팍할수있는세계에깊이를부여하고있다는걸보여준다.그리고유지인에게이러한안개속을헤쳐나가는과정은예술의다른이름이자동시에삶의방법론이다.한치앞도알수없는안개속에서“절벽은어디에나있”지만,“그럴땐감각의집어등을밝히고허밍”을하듯이,안개속에가려진희끄무레한대상을바라보는시인의눈은“웅숭그레깊”다.
여름은호흡으로너무꽉잡으려하면목울대를타고도망쳐버린다튀어나가려는여를부드러운‘ㄹ’이끌어당기고‘ㅡ’가어르고구슬려‘ㅁ’으로주저앉게해야한다안팎의열기를눌러앉히고사이좋게공존케하는여름―하고발음하다보면단전밑이서늘해지고치솟는마음이제자리를찾는다
―〈입속의사계〉부분
안개속에서예술의본질을더듬어나가는일은난해하다.모호한말들은제자리에내버려두고예술에조응하는말들만을건져올리는과정은수많은비교와고민의과정이따른다.따라서시인은언제나마음을대신할단어를찾아애를태우면서시가되지않는문장들과씨름하다지친다.하지만유지인의화자는절망하지않는다.오히려피로와어려움조차시의양식이라는듯,마지막의마지막까지시가될수있을단어를한번더발음한다.이러한풍경을지켜보고있노라면시를읽는우리들속에도있던,언젠가꿈꿨던열망이다시꿈틀거리는것을느낄수있다.
무엇이든오래품으면몸의일부가되기도한다지
밤마다받아마신겹눈을깨우는이슬의문장
듣지않아도저절로들리는말이있다고
우두커니있을때에도하늘의창은열려있어
통점의마디를딛고생겨나는마디들
“우리기억에불을붙이자”
거침없는보폭에허공도저만치물러서고
바람의측량이시작되었다
―〈견고한마디〉부분
시집의해설을맡은김수이문학평론가는유지인이마치“음악의선율이흐르듯유려”하게단어가“우리의몸과마음에”어떻게“내면화하는가를정교하고아름다운분석을통해묘사”한다고말한다.그렇게유지인은사물을치밀하게묘사하지만어렵지않게,대상을정교하게분석하나이해보다감응에가깝게,말로그림을그리듯시를전달한다.시인의화자를따라가다보면“듣지않아도저절로”시의노래가들리는순간을,창을통해들어오는햇볕처럼“우두커니있을때에도”몸에맞닿는예술의빛깔을마주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