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잎을 키웠다 - 문학수첩 시인선 117 (양장)

안개가 잎을 키웠다 - 문학수첩 시인선 117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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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예술의 내부도 밤과 낮처럼 명징했으면 좋겠다”
‘예술’이라는 안갯속에서 시를 불러일으키며
흐릿한 순간들이 번쩍일 때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다
2011년 계간 《시안》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유지인의 시집 《안개가 잎을 키웠다》가 117번째 문학수첩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유지인의 이번 시집은 시인이 등단한 지 12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다. 시인이자 동시에 문학치유 강사 또 플로리스트로 활동해 온 시인의 10여 년간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시와 한판 겨루기 같았던/그 밤의 힘”(〈시인의 말〉)들을 쏟아 내면서 예술의 본질을 유심히 관찰한다. 예술이 가진 의미는 제한이 없으며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한계 없이 열려 있다. 유지인은 이러한 예술의 본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말하면서, ‘바람’의 이미지를 통해 이를 형상화해 낸다. 꽃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가위로 잎을 쳐 내는 플로리스트처럼, 시를 형용해 내고자 무수한 낱말의 가지를 꺾어 내 선보이는 59편의 시를 통해 언제나 비의에 가려져 있는, 그렇기에 손을 뻗고 싶은 예술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유지인

1964년전북정읍에서태어났다.2011년〈너무나가벼운,담론〉외4편으로계간《시안》신인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한국방송통신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으며,문학치유강사로일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5

1부│예술의눈초리에매달린속눈썹처럼
아트페어·13
입속의사계·15
착시·17
안개가잎을키웠다·19
침묵에눌린건반의입술·21
천년달빛의조연을기리다·23
바람미술관·25
달의빈집·27
꽃의우화·29
무엇으로지은집이기에·31
빨간첼로소녀·32
오로라,색의카덴차·34
푸른시의연인들·36
목련나무교실·38
피죽새·40

2부│발톱은눈속에튀어든기억으로웃자란다
마두금·45
너무나가벼운,담론·47
블루,만져지지않는·49
나비잠·51
연들은다어디로갔을까·53
나신裸身·55
코피노·57
양서류의피는빨갛다·59
혹성,혹은어떤일·61
바다는썰물중·63
개기월식·65
생크림케익·67
데인다는말을몰랐다·69
햇볕정원·71
3부│아직물고기의아가미는선홍색이다
젖은빵말리기·75
롤러블레이드·77
카테리니,카테리니·79
춤의화법·81
맛별돋는밤·83
나비날개에스치다·85
보라에스키스·86
거울보기·88
하얀지문·90
견고한마디·92
인화되지않는웃음·94
만인옹기상·96
초록물고기·98
디지털상상력·100
가로등이수상하다·102
반달로뜬추석·104
긴통화는암호다·106

4부│달에간널보려고시를읽었다
조등弔登·111
밥나무·112
장미와미라·114
검정의페르소나·116
시바를만나다·118
비밀·120
남겨진말은무럭무럭자란다·122
카레엔인도가없다·124
셀룰러메모리·126
소실점·128
단단한집·130
설익은예감·132
이별아닌이별·134

해설|김수이(문학평론가)
바람과안개의‘내부’를투시하는이중의심미안·137

출판사 서평

“한생애가저리투명할수있다면봄은다시오지않겠냐”
모호한세계에서의미를건져올리는일

안개속에서무수히타종되었던바람의문장은
궂은날눈만홀리다금세사라지는여우별이거나
의식의창을가린검은조각의매지구름이거나
깨어나메모장찾다다시든그루잠속에서
번개처럼잡아챈시의나비날개다

안개장마당에서도시의눈속임을하는
야바위꾼을만날수있다절벽은어디에나있다
그럴땐감각의집어등을밝히고허밍,
몰입으로숨죽인뱃고동소리가더멀리간다
아사시한안개스토리가이어지는곳에서
안개를먹고자라난사물아이의눈은
웅숭그레깊어져있다
―〈안개가잎을키웠다〉부분

유지인의시들은독자를희뿌연새벽안개의중심으로끌어들인다.안개는불투명한몸피로세계를가리면서실상을파악하기어렵게만든다.시인은모든것을희미하게,비가시적으로만드는안개의그러한특성이삶의전모를감추어어쩌면빈약하고얄팍할수있는세계에깊이를부여하고있다는걸보여준다.그리고유지인에게이러한안개속을헤쳐나가는과정은예술의다른이름이자동시에삶의방법론이다.한치앞도알수없는안개속에서“절벽은어디에나있”지만,“그럴땐감각의집어등을밝히고허밍”을하듯이,안개속에가려진희끄무레한대상을바라보는시인의눈은“웅숭그레깊”다.

여름은호흡으로너무꽉잡으려하면목울대를타고도망쳐버린다튀어나가려는여를부드러운‘ㄹ’이끌어당기고‘ㅡ’가어르고구슬려‘ㅁ’으로주저앉게해야한다안팎의열기를눌러앉히고사이좋게공존케하는여름―하고발음하다보면단전밑이서늘해지고치솟는마음이제자리를찾는다
―〈입속의사계〉부분

안개속에서예술의본질을더듬어나가는일은난해하다.모호한말들은제자리에내버려두고예술에조응하는말들만을건져올리는과정은수많은비교와고민의과정이따른다.따라서시인은언제나마음을대신할단어를찾아애를태우면서시가되지않는문장들과씨름하다지친다.하지만유지인의화자는절망하지않는다.오히려피로와어려움조차시의양식이라는듯,마지막의마지막까지시가될수있을단어를한번더발음한다.이러한풍경을지켜보고있노라면시를읽는우리들속에도있던,언젠가꿈꿨던열망이다시꿈틀거리는것을느낄수있다.

무엇이든오래품으면몸의일부가되기도한다지
밤마다받아마신겹눈을깨우는이슬의문장
듣지않아도저절로들리는말이있다고
우두커니있을때에도하늘의창은열려있어
통점의마디를딛고생겨나는마디들
“우리기억에불을붙이자”
거침없는보폭에허공도저만치물러서고
바람의측량이시작되었다
―〈견고한마디〉부분

시집의해설을맡은김수이문학평론가는유지인이마치“음악의선율이흐르듯유려”하게단어가“우리의몸과마음에”어떻게“내면화하는가를정교하고아름다운분석을통해묘사”한다고말한다.그렇게유지인은사물을치밀하게묘사하지만어렵지않게,대상을정교하게분석하나이해보다감응에가깝게,말로그림을그리듯시를전달한다.시인의화자를따라가다보면“듣지않아도저절로”시의노래가들리는순간을,창을통해들어오는햇볕처럼“우두커니있을때에도”몸에맞닿는예술의빛깔을마주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