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심 씨의 인생 여행 : 너무 늦지 않게 엄마에게로 떠난 여행

길심 씨의 인생 여행 : 너무 늦지 않게 엄마에게로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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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엄마가 할머니 이야기를 썼습니다. (작가의 딸, 길심 씨의 손녀가 이야기합니다.)
전업주부로 살아오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책으로 낼 만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빨간 머리 앤〉을 유달리 아끼는 문학소녀 우리 엄마는 사실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 속에도 엄마는 언제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정말로 글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몇 년 전부터 엄마는 꾸준히 글을 써왔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글을 읽고 의견을 내놓는 것은 늘 제 몫이었는데... 어?! 엄마의 글,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무엇하려고 딸을 대학에 보내느냐’ 하던 그 시절, 할머니는 농사만 지어 두 딸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8남매 시가에서 유일하게 아들을 낳지 못했던 할머니는 때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가시로 무장했습니다. 엄마의 글 ‘그 놈의 아들이 뭐라고’ 에서처럼 말이죠. 저는 어렸을 적 일부러 날을 세워 말하는 할머니의 화법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듯 할머니의 삶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 내려간 엄마의 글을 통해 비로소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가시를 세우셨다는 것을요. 연세가 들어가며 할머니의 그 뾰족한 가시는 다 빠졌는데 이제는 허리가 굽으셨습니다.

할머니는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고, 음식은 그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목포 여행 중 숙박비 절약을 위해 친구들과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여행 후 저와 2명의 친구는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졌는데, 할머니가 남은 한 명의 친구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이나 딸 자랑에 온갖 시골 동네 이야기를 했답니다. 친구 할머니 이야기라 끊을 수도 없었던 제 친구는 온전히 그 수다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아마 다시는 안 와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할머니표 특제 찰밥을 먹은 친구는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본다며 다음에 또 먹으러 오고 싶다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졸음을 참아가며 친구 할머니의 수다를 들어야만 했던 고통을 잊어버릴 만큼 맛있었던 할머니표 특제 찰밥, 엄마는 그런 할머니의 맛을 기억하고 싶어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엄마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할머니와 함께 한 이야기라면 놓치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시골에 내려가 있으면서 저에겐 블로그에 글을 올렸으니 읽어 달라고 할 때만 연락을 했지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고, 읽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웅다웅 시골생활이 눈에 그려져 웃음이 났습니다. 엄마가 여름과 가을 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그 글들이 모여 지금 이렇게 책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엄마는 할머니의 인생을 깊이 여행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글은 나중에 할머니를 추억할 소중한 기록이 되겠지요. 엄마가 너무 늦지 않은 때에 할머니의 인생을 여행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자

전난희

농부의딸로태어나전남영암에서자랐다.도시에살지만시골을좋아해서늘귀촌을꿈꾸며산다.젊은시절엔공기업에다녔고,육아를위해퇴사하고전업주부로20여년을살았다.현재는책방의매니저로책을큐레이션하고,커피를내리고짜이를끓이고있다.네이버블로그와카카오브런치에서엄마음식과시골생활에대한향수가담긴시골일기를연재했으며,이외에도50대를지나는삶의이야기를블로그에꾸준히올리고있다.수필전문지인[선수필]에2020년「양면거울」로등단하면서수필가로도활동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며
하나,길심씨의인생여행
그놈의아들이뭐라고
시골두노인의별거아닌별거
그녀만의추석맞이
길심씨의퍼주기사랑법
아무도몰랐던그녀의꽃사랑
오지말라는거짓말
사랑을머리에이고
느그들도늙어봐라!
게미가있어야지!
내운은내가부른다
줄어들지않는장작벼늘
달님안녕하신가요?
양면거울
감정의물꼬
빚진자리
둘,길심씨의음식여행
요리랄것도없지만아무나할수없는요리
남아나지않는술
밥도둑보다더한도둑
잔칫상의주인공은누구?
세상에서가장맛있는밥,못밥
한여름날의달달국수
모든것이정성이제
가을바람찬바람이일때
찰밥한그릇에수다는세그릇
뱅뱅뱅굽은길을돌아나오는우렁이
나는오늘도숙성중이다
레시피도세월따라진화한다
엄마,오늘은뭐해드셨어?
추울때먹어야지맛이제
음식은누군가를기억하는방식이다
솥에묵이부글부글,엄마속도부글부글
인생도,음식도간간해야깊은맛이나는법
시장이반찬?나이가반찬?
셋,길심씨의시골여행?여름
빨래하고싶은날
가계부일기장
꽃들의전쟁
자고로사람은일을해야제
환골탈태
아침이벌써한나절
오리대(vs)장어,오리승
나이가깊이들어가는것은다시아이가되어가는것
시골살이하며좋은몇가지
성수씨의농사투혼
풀과의전쟁
길심씨의60년지기혼수품
밭고랑어록
붕어빵을냉장고에?
모든것에는다때가있다
미니멀리스트와맥시멀리스트의공생
고모네집을찾아서
이래도저래도아픈건마찬가지
일해준품삯이여!
넷,길심씨의시골여행?가을
가을,다시슬기로운시골생활
먹는재미보다잡는재미가더큰것이여
또다른탄생
벗이먼곳에서찾아오니또한즐겁지아니한가
가는길,오는길
지금내나이가참좋다
기다림
다이름이있다
천고아비(天高我肥)의계절
시골노인,성수씨의루틴
무슨농사든농사는다힘들어
도깨비장에가다
그러니까부모다
어따,성수씨이제속씨연하것다
길심씨의벼이삭줍기투혼
나오며

출판사 서평

엄마가할머니이야기를썼습니다.
-작가의딸,길심씨의손녀가이야기합니다.

전업주부로살아오던엄마가어느날부터글을쓰기시작하더니책으로낼만큼이되었습니다.지금도<빨간머리앤>을유달리아끼는문학소녀우리엄마는사실어렸을적부터작가가되고싶었다고합니다.제기억속에도엄마는언제나글쓰기에대한열망이있었는데어느날부터정말로글을쓰기시작하더군요.그렇게몇년전부터엄마는꾸준히글을써왔습니다.그리고엄마의글을읽고의견을내놓는것은늘제몫이었는데...어?!엄마의글,생각보다재밌습니다.

'무엇하려고딸을대학에보내느냐’하던그시절,할머니는농사만지어두딸을대학에보냈습니다.8남매시가에서유일하게아들을낳지못했던할머니는때때로자신을지키기위해온몸을가시로무장했습니다.엄마의글‘그놈의아들이뭐라고’에서처럼말이죠.저는어렸을적일부러날을세워말하는할머니의화법을이해하기어려웠습니다.그렇지만엉킨실타래를풀듯할머니의삶에대해하나하나풀어내려간엄마의글을통해비로소할머니를이해할수있게되었습니다.자신을지키기위해일부러가시를세우셨다는것을요.연세가들어가며할머니의그뾰족한가시는다빠졌는데이제는허리가굽으셨습니다.

할머니는말하기를정말좋아하고,음식은그보다도더좋아합니다.제가목포여행중숙박비절약을위해친구들과할머니댁에놀러간적이있습니다.여행후저와2명의친구는녹초가되어곯아떨어졌는데,할머니가남은한명의친구를붙잡고한시간동안이나딸자랑에온갖시골동네이야기를했답니다.친구할머니이야기라끊을수도없었던제친구는온전히그수다를견뎌야만했습니다.아마다시는안와야겠다고생각했을지도모릅니다.그런데다음날아침할머니표특제찰밥을먹은친구는세상에서이렇게맛있는밥은처음먹어본다며다음에또먹으러오고싶다고눈을동그랗게떴습니다.졸음을참아가며친구할머니의수다를들어야만했던고통을잊어버릴만큼맛있었던할머니표특제찰밥,엄마는그런할머니의맛을기억하고싶어할머니의음식에대한이야기를썼습니다.

지난해여름과가을,엄마는시골에서할머니와함께시간을보냈습니다.작은것이라도할머니와함께한이야기라면놓치지않고기록했습니다.거의한달가까이시골에내려가있으면서저에겐블로그에글을올렸으니읽어달라고할때만연락을했지요.시시콜콜한이야기였지만왠지모르게재미있었고,읽다보면할머니할아버지의아웅다웅시골생활이눈에그려져웃음이났습니다.엄마가여름과가을동안블로그에올렸던그글들이모여지금이렇게책이되었습니다.
글을쓰는동안엄마는할머니의인생을깊이여행하고온것같았습니다.엄마의글은나중에할머니를추억할소중한기록이되겠지요.엄마가너무늦지않은때에할머니의인생을여행할수있게되어다행입니다.

너무늦지않은때에엄마에게로떠난여행

이책은오십대의딸이팔십이넘은엄마,길심씨에게로떠난여행이야기이다.이여행에는길심씨의인생과음식,시골이야기가담겨있다.평생을흙과씨름하며살아온길심씨의인생을여행할때는울컥하여울음을삼킨적도있고,음식여행을할때는엄마음식이먹고싶어시골로바로달려가고싶은적도있었다고저자는고백한다.시골살이이야기에는부모님두분이건강하여같이농사지을수있어서함께하는행복감이묻어난다.과거와현재를넘나들며행간들에펼쳐진<길심씨의인생여행>에서누구라도서정적인시골향수를잔잔하게느낄수있을것이다.

애달픈삶도여행이라생각하고들여다보면꼭그리퍽퍽하지만은않다.여행은그런거니까.그래서엄마에게로떠난여행이라고부제를달았다.저자는인생여행에서본인을딸들과어머니의사이에끼인양면거울이라생각하며이쪽저쪽을보며매무새를가다듬는다.딸들을보고어머니의마음을헤아리고,어머니를보고딸들의대한저자의태도를비추어본다.그리하여<길심씨의인생여행>을마칠즈음에는부모님의마음을더많이이해할수있게된다.

저자가어머니를떠올리면그기억의8할은시골음식이다.어머니음식을택배로받아먹기도하고,직접가서먹기도하지만유년시절이후사라진음식도있다.엄마음식,시골음식의그리움을글로풀어남겼다.언제라도요리해먹을수있는‘설탕물국수’는추억으로남겼고,이제는먹을수없게된‘못밥’은기억으로남겨두었다.음식은추억으로도먹고기억으로도먹을수있으니까.

너무늦지않은때에어릴때처럼부모님품안의자식으로두계절잠깐살았던시골일기를담았다.시골에살때에는농사일이지긋지긋하여떠나고만싶었다는데...저자는어린시절그속에파묻혀살때,잠깐다니러갈때는보이지않던고향의아름다운풍경에빠졌다.잠깐이나마삼시세끼의부담에서놓여나“딸이밥해준께좋다.”를연발하는길심씨의환호성이책속에서들려오는듯하다.

책속에서

송동댁네는두딸이출가하고하나둘손주가늘어났다.식구가많지않아도어느덧손주들이다장성해명절때면집이북적거렸다.작은집이아닌데자식들은집이좁다고새집을짓자고자꾸만졸랐다.그럴때면송동양반은양미간을한껏찌푸리며말했다.
“내가아들도없는디,나죽으면이집은어쩔라고?느그들이내려와서살래?”
그러고는자전거를타고쌔앵집을나가버렸다.(...)
수년이흐르면서명절때면집짓자는이야기가으레나왔다.큰사위가총대를메고새집을짓자고서울에서빈번하게전화를해대며설득했다.큰사위의설득에송동댁은“알아서하소.”했지만송동양반은꿈쩍도하지않았다.결국딸도아닌사위의설득에송동양반이지금있는집은허물지않기로하고집짓기를허락했다.두딸사위는머리를맞대고이쁜집을지어보겠다고동분서주했다.드디어마당한편에있던헛간채를허물고땅을파고기둥을세우고황토집을짓기시작했다.(...)
새집을짓고나서부터두노인은별거아닌별거를하고있다.송동양반은헌집에서,송동댁은새집에서각자생활한다.송동양반이초저녁잠이많아저녁8시반만되면불을끄고잠을청하는바람에송동댁은좋아하는연속극도그동안은못보았더랬다.큰딸에게전화가오면이제야소원성취한듯목소리가밝았다.
“테레비도마음대로보고,아이고좋다.”
말은그렇게하지만송동댁도저녁9시를못넘기고TV는저혼자서만떠든다.
시골두노인은오늘도밥은헌집에서잠은각자따로따로잔다.송동양반은사람이안살면집이못쓰게된다고항상헌집에서생활한다.가끔저녁에내기화투라도칠양이면
새집에서티격태격,그러다가돈내기에질성부르면송동양반은얼른헌집으로내빼버린다.오늘도호동마을의두노인,성수씨와길심씨는한마당두집에서별거아닌별거를하고있다.별거가별거겠나.이런별거라면얼마든지해도좋을듯하다.
-[시골두노인의별거아닌별거]중에서

큰솥단지에초가을에는부드러운고구마줄거리(보통고구마순,줄기)를,깊은가을에는무를나박나박썰어깔고국물이자작자작하게지졌다.특별한양념이랄것도없이아궁이에불을지펴큰솥단지에지지면그만이었다.텃밭에서바로딴빨간고추를갈아넣고,국물도붓고,장독대에서가져온간장한사발붓고,길심씨말대로이것저것손가는대로찌클면(끼얹으면)맛이났다.남아있는양념장도찌클고,밥상에오르락내리락안먹는반찬도넣고반찬통도물에헹궈찌클었다.간은볼필요도없이신기하게딱맞았다.
길심씨손맛에,싱싱한물고기에,아궁이솥단지에지졌으니얼마나맛이있었겠는가.많던국물이자작자작해질때까지아궁이에서불이타올랐다.불이사그라들고잔불에뭉근하게맛이들어갔다.처음먹을때는아주빨갛지도않고적당히갈색빛이감도는국물이맛있었다.그다음불을지펴데워먹을땐간이쏙벤무가맛이있었고,그다음에는형체가사라진무와물고기를같이먹었다.마치진한갈색수프같았다.한솥단지지져서여러끼니를먹고또먹었다.그래도질리지않았다.이맛있는물천어탕을먹어본지가언제인지…가물가물하다.
-[가을바람찬바람이일때]중에서

누구나,무엇이나저마다제이름을가지고있다.모두이름이있거늘,하물며너른들판에이름이없겠는가.이곳호동마을들녘에도이름이있고그이름이마을사람들의입을통해오르내린다.시골생활에점점젖어가면서어릴적듣고는까맣게잊어버린들판이름이다시금새롭게들린다.
이른아침,운동겸자전거를타고온동네,온들판을한바퀴돌고온성수씨는,굽은허리때문에멀리가지못하는길심씨를위해들판상황을소상히보고한다.가만히듣고
있자니온들판이름이다나온다.
“등가래우리논에나락이점점더쓰러지고있데.”
“범굴샘○○네논은나락이깨끗하게잘되얏드만.”
“나들이,삿갓등,갓골,어리등을지나무내미우리논까
지빼앵돌아왔구만.”
“무내미우리논은오늘나락을빌라는가,갓을다둘러놨등만.”
(...)하루가다르게들녘의색깔이누렇게물들어가고있다.농로한쪽에무리지어서있는키큰억새는새초롬한옛날새색시처럼몸을꼬고바람에흔들리고있다.성수씨가벌써눈독을들이고있다.베어다가빗자루를만들모양이다.모쪼록들판도제이름을잘간직하고많이많이불렸으면좋겠다.
-[다이름이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