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40년》은미국루이지애나의악명높은앙골라교도소의독방에서삶의대부분을보낸앨버트우드폭스의이야기이다
1972년앙골라교도소의교도관인브렌트밀러가살해되는사건이벌어지자교도소당국은우드폭스와허만에게누명을씌웠고이때부터그들은40여년동안1,8*2.7미터크기의독방에서하루23시간을갇혀살아야했다.동료인킹또한한재소자를살해한누명을쓰고이후30년동안독방에갇혀지냈다.이같은국가폭력에의한누명씌우기는터무니없었지만이성적인대응이허용되지않았다.우드폭스는“나는더이상기대하지않았다.나는사법체제가결백이나정의에관심이없다는것을경험을통해알고있었다.죄없는사람이교수형을받을수있고,사법체제는단지어떤종류의로프를쓸것인가를결정하면됐다.이것이법률용어로‘정당한절차’로불리었다.위법행위를일삼으며직업적규칙을어기는검사들에게맞설수단이우리에겐없었다”고썼다.
폭력적이고임의적인교정체제도마찬가지였다.앙골라교도소에서만해마다수십명의재소자가학대로숨을거뒀지만미국의주와연방판사들은100년넘게수감자학대판결을거부했는데,미국수정헌법제13조에따라서법적으로수감자는주의노예들이기때문이었다.1865년노예제도를폐지한같은13조―“노예제도도강제노역도미국내에존재하지않는다”―는“적절한절차에따라유죄로선고된당사자의죄에대한처벌인경우는제외한다”는조항을포함하고있다.판사들은이조항을수감자학대를다루지않는변명으로사용했다.그들은그것에“기피원칙”이라는이름까지붙였다.
시간이흘러우드폭스와그의친구(앙골라3인)의끊임없는저항과결백은널리알려졌고,아니타로딕을비롯한인권운동가들은물론수많은일반시민의관심과지지를얻게되었다.그들은10년넘게‘앙골라3인’의결백을주장하고석방을요구했지만,연이은재심과청원에서아무런결과를얻지못했다.인종차별과기만으로얼룩진사법과검찰체제는더없이견고했다.2011년에는유엔도‘독방감금반대성명’을통해독방수감을‘고문’으로정의하면서우드폭스와허만을독방에서풀어줄것을요구했고,국제앰네스티는더나아가서그들의즉각적인석방을요구했다.
마침내앨버트우드폭스도2016년2월형량거래를통해석방되었다.그의무죄를가리키는많은증거에도불구하고결백을인정받지못한심정을그는이렇게표현했다.“나는내가하지않은일로거래를해야했다.나는이제내게모든것을의미했던내말의진실성보다자유를택해야한다.내말은내어머니의선물이었다.44년동안나는내말로살아남았다.내말은세상가장어두운곳에서도나를살아있게했으며나를제정신으로남게했으며나의인간성을지켜주었다.지금나는내말을지키지않으려하고있다.나는결백했다.허만도결백했다.나는내심장을한조각뜯어낸듯했다.”
그는미국의많은대학에서법학도들에게강연을했고,국제앰네스티와함께세계곳곳을여행하면서수감자들의인권보호활동을펼쳤다.“사람들은44년동안에미국이어떻게변했는지내게묻곤한다.물론나는많은변화를본다.하지만경찰과사법체계에서는대부분의변화가피상적일뿐이다…오늘날인종차별주의가44년전처럼노골적이지는않지만,여전히존재하며드러나지않게간접적으로자행된다.우리는하나의사회로서깊은변화를이루어야만한다.뿌리가없이는아무것도자라날수없다.그또는그녀의피부색이나머릿결,문화적유산,젠더,성적취향에근거한체계적증오는아무런가치없는짓이다.그것들은하찮은것들이다.우리는서로다른것보다같은것이더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