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탄생200주년
세잔과졸라,30년우정의기록《교차된편지들1858-1887》출간
편지로이어진두거장의삶과우정,예술의동행기
“금빛으로된우리둘의이름은첫장에서하나되어반짝이고,형제애로뭉친천재들가운데후세에도늘함께전해지는것이지.”(세잔에게,파리,1860년3월25일)
지중해의땅,프로방스에서시작된인연
지역은행창업주의아들세잔,이탈리아이민자출신토목기사의아들졸라.두사람의우정은졸라가아버지의댐과수로건설사업으로엑상프로방스로오면서시작되었다.새침한파리지앵에다몽상가적기질의졸라를또래아이들이놀릴때,세잔이도움의손길을내밀며그들의우정이시작되었다고전해진다.이후두소년은바유라는친구와함께‘삼총사’를이루어,프로방스의자연을벗삼아문학과예술을토론하며순수한우정을나누었다.학교를마치면아르크강과들판에서수영과낚시를즐기고,생트빅투아르산을오르며사냥을했다.세잔은스케치북과물감상자를챙겨와그림을그렸고,졸라의망태자루에는시집과문학전집이담겨있었다.“태양과물과책,이세가지야말로젊은날의졸라와세잔을키운자양분이었다.”지중해의땅,프로방스에서함께한우정과형제애의기억은훗날세잔의화폭과졸라의문장속에서되살아난다.
1858-1887:편지로이어진우정과삶,예술의동행기
졸라는일곱살에아버지를여의고,1858년경제적궁핍속에서어머니와파리로이주한다.그러나두사람의우정은물리적거리를넘어편지로이어졌다.오스만의대개조가한창이던파리의외곽지,허름한옥탑방에서문학에대한열정을키우며당대를대표하는작가로성장해가는졸라.한편,권위적인아버지의뜻에따라시작한법학공부를포기하고파리와엑스를오가며인상주의자들과교류하며화가의길을가는세잔.신중하고세련된매너와필력으로파리의문학·예술계에서입지를다져가는졸라와는달리,세잔은단정치못한행색과거친매너로파리사람들의눈살을찌푸리게한다.부자아버지로부터의용돈이끊길까두려워동거녀와아들의존재를숨기고,연이은살롱전탈락과혹평속에서도세상과의괴리를견디며꿋꿋이그림을그리는세잔의모습은연민을자아낸다.
“삶과시대의다양한굴절에도지속되고교차된편지들은,작가이기이전한인간으로서그들의평범하고사적인일상과관계,심리의풍경을그려보인다.떠나간친구와떠나온고향을그리는마음을담은글들,재능과진로를확신하지못하는서로를격려하며작품의탄생을예비하는모습,취향과감각이자본화되는근대대도시를살아가는예술가의타자경험과연애와인간관계로인한감정의무게가담긴글들,나아가당대의주요예술과정치사안에대한단상들은그들의내면공간뿐만아니라혁명과반동으로점철된19세기프랑스라는외부공간까지넘나들게한다.“-옮긴이의말중에서
시간순교차편집으로생생하게되살아나는두거장의대화
-19세기후반파리를배경으로펼쳐지는모던아트와문화의현장
세잔과졸라의일부서신은국내에부분적으로소개된바있으나,현존하는편지를연대순으로총망라하여완역한것은이번이처음이다.이책은프랑스현대지성사를이끈갈리마르출판사의대표문학비평시리즈인‘블랑슈컬렉션(LaBlanche)’을번역대본으로삼아,편지원문전체를온전히번역하는데중점을두었다.
편집자이자졸라연구의권위자앙리미테랑은서신을총다섯시기로구분하고,이를시간순으로교차배열하였으며,각시기의주요전기적사실과역사적맥락에대한상세한해설을더했다.덕분에격동의19세기프랑스를배경으로,두거장이삶과예술전반에걸쳐서로를격려하고지지하며나눈대화를직접듣는듯한생생한경험을선사한다.
두사람의문장과편지가서로응답하며교차하는편집방식은,마치그들이함께직조해나가는한편의캔버스회화와소설작품을보는듯한인상과감동을준다.아카데미즘의권위와전통에저항하며새로운회화와문학을실험하며동행했던,두예술가의우정과삶이고스란히담긴이편지들은,이들의인간적초상과예술관뿐아니라,19세기프랑스예술사의결정적전환점을증언하는귀중한기록이다.
기존의통설을뒤집는2013년발견된세잔의마지막편지수록
특히이책에는2013년에새롭게발견된,다음만남을기약하는세잔의1887년11월28일자마지막편지가수록되어있다.세잔은여느때처럼“나의친애하는에밀(...)곧악수를건네기위해보러가겠네”라며,졸라가신간을보내준것에진심어린감사를전한다.이는두사람의관계가1886년졸라의소설《작품》속자살한비운의천재화가‘클로드랑티에’가자신을모델로한인물이라고여긴세잔이절교하였다는통설과는다르게,출간이후에도그들의관계가완전히단절되지않았었음을보여주는결정적단서이다.
”긴시간,한결같은예의와호의로소통하는두거장의편지들은(...)이들이굳건히자신과서로를지키며기품있게동행했음을드러내보이는어떤강력한증언이기도하다.또한그존재자체만으로도(...)두예술가의기다림과수행의시간,즉삶과영혼의교감으로빚어진아름다운텍스트들이다.-옮긴이의말중에서
서로다르기에,또함께있음에더욱빛나는,
200년전예술가들의삶과인연에동참하는기쁨
이책은인류역사의변혁기였던19세기프랑스에서,예술가들은실제무엇을보고듣고,어떤일상을살아갔는지를생생히보여준다는점에서서양근대예술과문화사의귀중한자료다.또한1870년대이후프랑스모더니즘예술의등장과전개과정에서,세잔과졸라의우정처럼사적이고위대한,다양한예술적연대와공동체의존재를상상하게한다.
세잔탄생200주년을맞는2025년,200년시간을넘어지금,여기에서다시만나는세잔과졸라의대화는-서로달랐기에,또함께였기에더욱빛났던-그들의우정과예술,삶의의미를새롭게성찰하게만든다.
“친구여,(...)자네는내청춘의전부라네.내기쁨과고통의모든순간에관여하고있지.우리의정신은우정속에서함께성장했고,오늘,시작하는우리는서로의몸과마음을관통하며존재하기에서로를신뢰하지.”(세잔에게,파리1866년5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