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목간총람 (양장본 Hardcover)

한국목간총람 (양장본 Hardcover)

$63.00
Description
학계 최초의 한국목간총람으로, 낙랑 목간, 백제와 신라, 고려와 조선의 목간 천이백여 점을 망라하였다. 자료를 시대별, 국적별, 출토유적별로 나누고, 유구의 성격, 목간출토 상황과 점수, 그리고 내용에 대한 개요와 판독문, 제원 등을 상세 정리하였다.
목간의 출토 상황을 정리한 도표와 지도 및 도면은 물론 최신 연구를 망라한 참고문헌을 제시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아울러 난립 상태인 각종 목간 번호를 이해하기 쉽도록 보기표를 제시하였으며, 목간의 연표 및 참고문헌 등을 부록에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이 수행 중인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원류와 지적 네트워크 연구」의 1단계 연구성과로서, 이와 동시에 출간되는 『중국목간총람』 『일본목간총람』과 더불어 세계 최초의 목간총람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윤재석

尹在碩
중국고대사전공,현경북대학교사학과교수,인문학술원장겸인문한국플러스지원사업(HK+)사업단장,中國社會科學院簡帛硏究中心객원연구원,河北師範大學歷史文化學院객원교수겸학술고문

논저『睡虎地秦墓竹簡譯註』(소명출판사,2010),「東アジア木簡記錄文化圈の硏究」(『木簡硏究』第43號,2021),「秦漢《日書》所見“序”和住宅及家庭結構再探」(『簡帛』第8期,2013),「秦漢初의戶籍制度」(『中國古中世史硏究』第26輯,2011),韓國·中國·日本출토論語木簡의비교연구(『東洋史學硏究』第114輯,2011),「睡虎地秦簡日書所見‘室’的結構與戰國末期秦的家族類型」(『中國史硏究』第67期,1995)등

목차

발간사
서문
원색사진
일러두기
한국목간분포현황

Ⅰ.낙랑(樂浪)
개요
1.평양석암리194호분출토죽간
2.평양남정리116호분출토목독
3.평양정백동3호분출토목간
4.평양락랑동1호분출토목간
5.평양정백동364호분출토간독

Ⅱ.백제(百濟)
개요
1.부여구아리319번지(중앙성결교회)출토목간
2.부여관북리출토목간
3.부여궁남지출토목간
4.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5.부여쌍북리뒷개유적출토목간
6.부여쌍북리현내들유적출토목간
7.부여쌍북리56번지(사비한옥마을)유적출토목간
8.부여쌍북리102번지(쌍북아파트)유적출토목간
9.부여쌍북리173-8번지(119안전센터)유적출토목간
10.부여쌍북리184-11번지(부여사비119안전센터)유적출토목간
11.부여쌍북리280-5번지(신성전기창고)유적출토목간
12.부여쌍북리201-4번지(농업시설)유적출토목간
13.부여쌍북리328-2번지(단독주택)유적출토목간
14.부여석목리143-16번지유적출토목간
15.금산백령산성출토목간
16.나주복암리유적출토목간
17.정읍고사부리성출토목간
18.부여동남리216-17번지(개인주택)유적출토목간

Ⅲ.신라(新羅)
개요
■왕경출토목간
1.경주월성해자출토목간
2.경주월지(안압지)출토목간
3.경주황남동376번지유적출토목간
4.경주傳인용사지출토목간
5.경주국립경주박물관미술관출토목간
6.경주국립경주박물관남측부지(영남권수장고동쪽부지)유적출토목간
7.경주황룡사남측도로(남측담장외곽정비사업부지)유적출토목간
8.경주傳황복사지출토목간
■지방출토목간
9.함안성산산성출토목간
10.경산소월리유적출토목간
11.하남이성산성출토목간
12.서울아차산성출토목간
13.김해양동산성출토목간
14.김해봉황동유적출토목간
15.인천계양산성출토목간
16.부산배산성출토목간
17.창녕화왕산성연지출토목간
18.남원아막성출토목간
19.안성죽주산성출토목간
20.익산미륵사지출토목간
21.장수침령산성출토목간
22.대구팔거산성출토목간

Ⅳ.고려(高麗)
개요
1.태안대섬침몰선(태안선)출수목간
2.태안마도1호선출수목간
3.태안마도2호선출수목간
4.태안마도3호선출수목간
5.울산반구동유적출토목간

Ⅴ.조선(朝鮮)
개요
1.태안마도4호선출수목간
2.여주파사성출토목간

Ⅵ.신안선(新安船)
개요
1.신안도덕도신안선출수목간

부록1.한국목간연구논문목록
부록2.한국출토목간일람표
부록3.한국목간연표
부록4.목간번호조견표

출판사 서평

이책은경북대학교인문학술원HK+사업단‘동아시아기록문화의원류와지적네트워크연
구’의1단계사업의성과로간행되는동아시아목간총람중한국목간편이다.여기에수록된목간은2021년말까지발굴과사후조사등을통해알려진것들을대상으로했으며,낙랑의간독자료부터백제와신라(통일신라포함),고려와조선시대및원대(신안선목간)의자료까지포함하여시대순과국가별로38개유적에서출토한1,100여점의목간들을대상으로서술하였다.

목간은公私의의지혹은정보전달등을목적으로나무조각[木片]에문자를기록한것이다.고대동아시아지역에서書寫재료로서나무를이용하는방법은중국에서기원하였다.중국에서는竹簡·木簡을비롯한붓과먹등의文房具類가戰國時代의유적에서확인되고있으며,秦漢시대에이르러국가행정의전반에걸쳐서광범위하게사용되다가이후종이의개량과보급에따라점차서사재료로서의주도적지위를잃게되었다.이렇듯나무를서사재료로이용한문자문화의전통은매우오래되었지만,고대한국의문자사용과목간문화의기원및전개는아직까지해명되지않은부분들이많다.
고대한국에중국의간독문화가본격적으로유입된계기는前漢武帝가古朝鮮을멸망시키고한반도서북부에郡縣을설치한이후라고생각된다.樂浪을비롯한군현의설치는중국내지에서와같은문서행정에기반한군현제적지배를관철시키겠다는의지였으며,처음한사군을설치할때군현의屬吏를遼東郡에서충원하였다는것은군현지배를뒷받침하는간독의문서행정시스템을바로도입하기위해서였다.평양의채협총출토목간과,정백동364호분출토樂浪郡戶口簿木牘·『논어』編綴竹簡,낙랑유적에서출토한封泥와印章,문방구류등의문자유물의존재는이같은의도가현실에서구현되었음을의미한다.
낙랑군의간독과문자유물의존재는고대한국에중국의간독문화가그대로유입되어수용되었음을의미하는것으로보이지만,현재까지알려진한국의목간자료에서볼때중국간독문화와한국목간문화사이에는커다란차이가존재하고있다.우선한국목간에서죽간이확인되지않는다는점을들수있으며,중국의간독이지배적인서사재료로사용되었던시기와한국의고대목간이유행하던시기의차이를지적할수있다.나아가한국의목간과중국의간독은형태나내용적인측면에서도많은차이를보이고있다.이러한현상은한국의목간문화가중국의간독문화를수용하면서도나름대로변용시켜소화하였음을말해준다.

고구려는중국군현과의직접마주하며교류하는관계속에서성장하였기때문에언어와문
자를통한교류가이른시기부터진행되었다.기원전82~75년경貊人의공격으로蘇子河방면으로옮겨간玄?郡은압록강중상류지역의여러집단들과지속적인관계를유지하였는데,주변집단들은현도군의치소에나아가조복과의책을받았으며고구려領(令)이그名籍을주관하였다고한다.고구려는漢군현세력과의교류속에서한자를사용하는문서행정을경험하였을것이다.초기의문서행정은사람이나물품의이름과그수량및날짜정도를표기할수만있어도가능하다.『魏書』동이전고구려조에諸加들이가신처럼임명한使者·?衣先人의이름을모두왕에게보고하였다는것도초기문서행정의양상이었다고생각되며,이과정에서서사재료는목간이사용되었음은분명하다.이와같은흐름은중국군현이나고구려와의관계속에서성장해가던백제및신라에서도비슷한양상으로전개되었을것이다.이미백제의경우漢城시대인근초고왕대에書記의제도를갖추어나가기시작했으며,北魏에보낸蓋鹵王의국서나編戶小民의기록에서한성백제후반기에는이미일정수준의행정적문자문화를향유하였던것으로보인다.신라또한麻立干期고구려와밀접한관계를경험하면서문자와법령에의한국정운영을목도했을것이며5~6세기경주지역을벗어나새로운지배영역을확장하는과정에서문자를활용하여국가를경영하게되었다.이과정에서종이도쓰였을것이지만,행정일선현장에서의주된서사재료는‘목간’이었던것으로추정된다.현재알려진백제와신라의목간중가장이른시기의것은6세기능산리목간(백제),월성해자·성산산성목간(신라)등인데,죽간은전혀확인되지않는다.

지금까지살펴본것처럼처음중국의간독문화가유입된한반도서북부의자연환경적요인
과고대사회가정치사회적으로미성숙했던환경은죽간이배제된‘목간’의문화를수용할수밖에없었으며,이러한현상은한국고대목간문화의기원적특징이라고지적해두고싶다.결국중국의간독문화에서죽간문화가배제된목간문화의수용은이후고대한국목간문화의흐름에서중요한의미가있으며,나아가일본목간문화의기원과전개에도많은영향을주었을것으로생각된다.특히죽간이배제된목간의문화는고대한국의특징적인단독간문화로발전하는데,다면체와원주형목간은한국고대목간의특징이라할수있다.이들은보다많은내용을서사할필요가있는문서목간이나장부·전표등의기록목간등에사용되었다.문서의授受관계가확인되는문서와기록류의목간을크게문서목간으로분류할수있는데,다면·원주형목간은주로문서목간이필요한곳에서사용되었다.나아가글자를연습하기위한목적으로쓰이기도했으며,다면혹은원주형목간에형태상의변형을더하여주술용도의목간으로사용하기도했다.

현재까지알려진목간이6세기이후의자료라는점과,이시기는종이가이미함께사용되었던紙木竝用期라는관점에서紙木竝用期에접어들면서그이전시기에사용되던편철간이사라지고,다면·원주형목간이편철간이나종이의대용으로널리사용되었다는주장도있다.서사재료의변화와종이의문서행정이제도화되면서목간의정형화·규격화가이루어지지않은채다면·원주형목간은7세기후반이후문서의서사재료로서의지위를상실하면서부차적인서사재료로활용되었다.나아가고대한국의다면·원주형목간은백제와신라목간에서도미묘한변화와차이점이확인되고있다.백제목간은6세기의능산리목간단계에서는다면·원주형목간이어느정도광범위하게사용되었지만,7세기단계가되면특히기록류의문서목간에서는가늘고긴長方板形의양면목간이다면·원주형목간을대체하고있는현상이확인된다.이시기백제의문서목간은장방판형목간의사용이어느정도규격화및정형화되어다면·원주형목간을대체해갔다.궁남지출토서부후항목간과부여쌍북리출토좌관대식기목간이이를반영하는대표적인목간이라고할수있다.그러나신라에서는7세기에도다면·원주형목간이문서목간의다수를차지하고있는점에서백제의목간과는다른양상을보인다.나아가꼬리표목간의형태와서사기법에서도약간의차이가확인된다.백제의꼬리표목간은글자를쓰는윗부분에홈을새기는경향이있었으나,신라의경우주로아래쪽에홈을새긴꼬리표목간이대부분이다.이러한경향은통일이후가되면신라에서도목간의윗부분에홈을새기는방향으로꼬리표가주로제작되었다.또7세기백제꼬리표목간에는아래위모두홈을새기는꼬리표목간이확인되기도한다.
이같은현상은백제와신라의목간문화가국가간의문자문화의기원과전개과정에서의차
이와특징이반영된것이다.고대한국의목간문화는중국간독문화의영향에서출발하였지만정치사회적·자연적환경의차이로말미암아고대한국의목간문화로발전하게되었으며,그내부적으로도여러가지요인으로말미암아지역적·국가적차이를보이면서전개되었음을의미한다.이러한사실은7세기이후의자료들이알려지고있는고대일본의목간들과비교했을때역사적으로의미있는사실을확인하게된다.일본또한한국과마찬가지로죽간은확인되지않는데,이는곧고대한국의목간문화가직접적으로영향을주었다.나아가고대일본의대표적인문서목간의형태는단책형이라고불리는얇은장방판형목간인데,그형태는7세기백제의문서목간과매우유사하다.꼬리표목간또한백제의그것과유사한점들을확인할수있는점에서고대일본의목간문화에직접적인영향을주었던것은7세기이후백제의목간문화였다.

이렇듯고대한국의목간문화는고대중국에서기원한간독문화의영향을받으면서독자적이며특징적인목간문화를전개시켰으며,고대동아시아지역목간문화의수용과변용및전파의문제를고려할때매우중요한역사적위상을지닌다고말할수있다.
고대한국에서7세기중후반이후신라가삼국의통일을완수하면서목간의시대는종이의
시대로점차변모한다고생각된다.목간의시대에서종이의시대로의전환은문서행정의변화와긴밀히연관되어있는데,통일신라의관제가정비기를거쳐완성기에도달하면서문서행정상에도일대혁신이이루어졌다.이사실은통일이후675년(문무왕15)百司와州郡에銅印을주조해나누어주었던것에서알수있다.모든관부와지방의주군에이르기까지印章을나누어주었다는사실은중앙과지방행정과정에서종이문서에捺印하는정책의시행을의미하며,이는종이문서의전국적인사용을의미하기때문이다.그러나모든문자생활의현장에서서사재료가종이로변화했던것은아니다.경주안압지·황남동출토의꼬리표와기록목간,김해출토논어목간,경주전인용사지와창녕화왕산성출토呪術목간의존재는통일이후에도목간이광범위하게사용되었음을알려주기때문이다.나아가신라下代인眞聖女王때의居陀知설화에서도목간은등장하고있다.이러한사실은문서행정의주요영역에서는서사재료가목간에서종이로변모하였지만,문자가요구되는다양한장면에서는각각의용도에걸맞는서사재료의특질이고려되어선택적으로사용되었음을의미한다.최종적인종이문서나장부를만들기위한중간집계나기록들,물품의이동·보관등에서는문자기록의내구성이요구되는목간이이용되었고,주술이나의례의이미지를형상화할때에도목간이주로활용되었다.

목간은고대국가내부적으로문자의사용이시작되면서주도적인서사재료로사용되다가,7세기이후본격적인종이의문서행정이전개되면서서사재료의주도적인지위가목간에서종이로공식화되었다.그리고목간은나무라고하는재질상의특징을활용하는용도로점차한정되어갔다.목간은고대국가전시기에걸쳐문자문화의중요한서사재료로활용되었으며,종이의시대에이르러서도그재질상의특징에걸맞게고대국가내부적으로다양한장면에서사용되면서고대의역사와문화를담아내는역할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