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 그들이 사는 세상 - 푸른사상 교양총서 22

로열패밀리, 그들이 사는 세상 - 푸른사상 교양총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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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왕실의 영광과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간 욕망의 역사
김장수 교수(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로열패밀리, 그들이 사는 세상』이 푸른사상 교양선 22로 출간되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지배한 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왕실의 영광과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간 그들 욕망의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저자

김장수

저자:김장수
한양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베를린자유대학교역사학부에서석사및철학박사를취득했다.저서로는『DiepolitischeTatigkeitF.Palackys(팔라츠키의정치활동)』『Koreaundder‘Westen’von1860bis1900(1860년부터1900년까지의조선과서방세계)』『DieBeziehungenKoreaszudeneuropaischenGroßmachten,mitbesondererBerucksichtigungderBeziehungenzumDeutschenReich(한국과유럽강대국들과의관계,특히독일제국과의관계를중심으로)』『프란티셰크팔라츠키의정치활동』『독일의대학생활동및그영향』『서양의제혁명』『비스마르크』『중유럽민족문제』(공저)『유럽의절대왕정시대』『주제별로들여다본체코의역사』『주제별로살펴본서양근대사』『체코역사와민족의정체성』『슬라브정치가들이제시한오스트리아제국의존속방안』『후스로부터시작된종교적격동기(1412~1648)』『19세기독일통합과제국의탄생』『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최초의여왕마리아테레지아』『독일통합의비전을제시한프리드리히2세』『1848독일혁명』등이있다.프란티셰크팔라츠키의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와19세기오스트리아제국의민족문제를다룬많은논문도있다.현재가톨릭관동대학교역사교육과명예교수이며한국세계문화사학회(구한국서양문화사학회)명예회장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책머리에

유럽을양분한최고의가문,그흥망성쇠의역사
1.프로이센의호엔촐레른가문
2.오스트리아의합스부르크가문

아들을낳아야한다
1.세번결혼한레오폴트1세와상호계승약관
2.여성상속순위까지확정한국사조칙

혈육인가정적인가
1.탈출하는왕자들
2.사상최악의부자지간
3.여왕의아들로산다는것
4.비운의황태자

왕가의결혼은다르다
1.베를린의쇼윈도부부
2.공주의첫사랑
3.전통에희생된황후

동성애스캔들
1.프리드리히2세와프레데르스도르프
2.프리드리히2세와알가로티
3.이사벨라와마리아크리스티네

근친혼의비극
1.선천성유전병이있는페르디난트
2.조피프리데리케의야심

더화려하게,더장엄하게
1.우아한상수시궁전
2.영광의상징,쇤브룬궁전

독특한출산과장례의식
1.출산과정의공개
2.시신의일부라도영원히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독일제국의탄생이전,호엔촐레른의프로이센과합스부르크의오스트리아는독일권에서강력한주도권을행사해왔다.비슷한시기두가문에서는국가적위상을크게증대시킨위대한군주도등장하는데,프로이센의국왕프리드리히2세와오스트리아의여왕마리아테레지아가대표적이다.이책은유럽사속왕실의영광과권력을이어가기위해두가문이추구한욕망의역사속으로독자들을안내한다.
저자는유럽을지배해온두가문의흥망성쇠를통해각가문의흥미로운특징이나왕실의전통을확인하고자했다.왕조나국가의정치외교적활동보다는왕실의특이한가족사를중점적으로살펴본것이다.예를들어프로이센의프리드리히2세는유년시절부터부친과심각한갈등을겪은후,국외탈출을시도하다가잡혀친우가처형당하는것을지켜보아야했다.마리아테레지아의정략결혼상대로어린시절낙점되었던프란츠1세는그녀의남편이되기위해자신의영토를양보해야만했다,결과적으로여왕의부군으로서신성로마제국의황제가되었으니손해는아니었을것이다.마리아테레지아의며느리이사벨라는남편보다시누이를더사랑했다는것이사후에밝혀져충격을주기도했다.
유럽사뒤편에숨겨진흥미로운사연들과그흔적을따라가는것은서양사가낯설고어색한독자들에게도재미있는경험이될것이다.

책속에서

카를6세는남자후계자가없을경우를대비하여국사조칙을발표했지만,이를통해왕국의통합을굳건히하려는의도도있었다.그런데카를6세는국사조칙을바로공포하지않고당분간비밀로남겨두었다.이는아들이태어나기를기다렸기때문이다.카를6세는당시유럽의군주들과마찬가지로전쟁이일어나면자신의후계자가군대를이끌고전선에나서야한다고생각했지만,국사조칙으로그의장녀가오스트리아왕위를계승하면그런일이불가능할것이었다.따라서그는결혼하고부터가능한한빨리아들을얻기위해노력했고주치의들이여기에동원했다.
(40쪽)

1757년프레데르스도르프는프리드리히2세에게사직서를제출했다.그의건강이오랫동안나빴던것이큰이유였던것같다.프리드리히2세와동성애이상의관계를유지한프레데르스도르프는미모의여인이그아름다움을잃은후어떻게행동해야하는지도잘알고있었다.프리드리히2세는상수시(Sanssouci)궁전의자신침실곁에프레데르스도르프를위한침실도마련해두었고실제로프레데르스도르프는이침실을사용하기도했다.이것을통해프레데르스도르프가프리드리히2세의동성연인이라는주장이제기되었고,그것에동의하는역사가들도적지않다.
(169쪽)

마리아테레지아의뜻에따라프란츠1세의장례식은합스부르크가문의전통장례절차에따라진행되었다.그것이바로시신분리매장이다.장기를적출하여따로보존하고관에는시신만안치하는것이다.
8월20일프란츠1세의시신에서부패하기쉬운장기들을끄집어낸후빈곳은밀랍으로채워졌다.시신의표면에는소독약을발랐다.시신에서끄집어낸혀,심장,내장,눈,뇌같은장기들은에틸알코올에담갔다가저장용기에바로옮겨납땜질을하고,나중에은병에담겼다.시신분리예식에참여한크벤휠러(Khevenhuller)는더운날씨때문에프란츠1세의시신이예상보다빨리부패했고그래서심한악취속에서작업을해야만했다고술회했다.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