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집 (양장본 Hardcover)

집 없는 집 (양장본 Hardcover)

$13.00
Description
여태천 시집 『집 없는 집』이 민음의 시 332번으로 출간되었다.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해 시집 『스윙』으로 2008년 김수영 문학상을,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로 2021년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여태천 시인이 시력 25년을 맞이한 올해 펴내는 다섯 번째 시집이다. 한국 시단에 ‘이방인’의 등장을 알린 첫 시집 『국외자들』부터 삶의 허무를 야구라는 대중적 스포츠로 들여다본 『스윙』을 지나 일상적인 슬픔을 통해, 슬픔 안에서 삶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구한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에 이르기까지. 여태천의 시는 먼 곳에서 시작해 점차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집 없는 집』에 이르러 우리의 일상적이고도 가장 내밀한 장소에 도착했다.
『집 없는 집』에서의 ‘집’은 개인의 편안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태어나고 자라는 장소이자 훗날 죽어 묻힐 묘지, 참회하며 기도하는 교회이자 언젠가 도달한 저승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동안 결코 떨칠 수 없는 ‘몸’이자 ‘이름’이다. 즉 한 사람이 사는 동안 주체로서 존재하고자 분투하는 모든 시공간, 그러나 결코 그 한 사람이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는 무한한 시공간이다. 바로 그 무수한 ‘집’들을 시인은 ‘친구’와 오래오래 걷는다. 여러 모양의 ‘집’들을 하나하나 거치며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순간들을 생각하는 이 여정은 마치 꿈길 같다. 그러나 그 여정은 곧 꿈 밖으로 내쳐진다. 우리가 사는 집, 병원, 교회, 횡단보도, 꽉 막힌 고속도로, 오래된 골목 한가운데로. 시인은 이 모든 곳을 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걷는다. ‘함부로 모아 본 적 없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 꿈에서 깨어나도 꿈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자

여태천

저자:여태천
2000년《문학사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국외자들』『스윙』『저렇게오렌지는익어가고』『감히슬프지않을수있겠습니까?』가있다.김수영문학상,편운문학상등을수상했다.동덕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전공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1부

네가가난한이집의영혼을말리는동안13
집으로가는길16
다크나이트18
집아닌집20
생각의집21
별들의집22
겨울의집24
시간의집26
늙은천사의집28
묘비명30
텅빈지옥32
밤이면어느희망의집에서33
어쩌다그집에선36
불빛환한집38
그후로오랫동안그집에서는40
집을위한엘레지43
집으로돌아오는길47

2부

어제까지의시51
밥을먹다말고52
손님은언제오는가54
피도눈물도없이56
횡단보도58
갇힌사람60
도망갈곳이없다62
한강철교―최정례의「개미와한강다리」에부쳐64
악마의생활난67
다시,바다에서70
어떤사람들은73
나는걷는중이지만76
이것또한지나가리라고78
숨쉬지않는시81

3부

포비아―아침85
포비아―저녁86
포비아―진심88
포비아―기원90
포비아―문턱92
포비아―패밀리94
포비아―그림자96
포비아―이웃98
포비아―목줄101
포비아―페이스워크103
포비아―일인용105
포비아―고해성사107
포비아―있다110
포비아―에니그마112
포비아―희망114
포비아―망각116

작품해설?김수이(문학평론가)117
추천의글?안태운(시인)146

출판사 서평

안개로지은집과친구
어떤사물의마지막예가사라지면
그것과더불어그범주도사라진다는것을
사랑하는이의이름처럼
-「다크나이트」에서

『집없는집』의1부는‘집’에대한꿈같은형상들로가득하다.1부에모인시의제목인‘생각의집’,‘별들의집’,‘겨울의집’,‘시간의집’,‘늙은천사의집’,‘불빛환한집’,‘희망의집’등이보여주듯『집없는집』의‘집’은구체적인삶의면면보다희미하고추상적인형상으로제시된다.그형상은주로안개나먼지,얼음과흙처럼부서진잔해의이미지로거듭그려졌다가지워지는데,그래서여태천의‘집’은차라리‘폐허’에가까워보인다.
폐허는사람에의해만들어졌으나사람이떠난후오직시간만이남은장소다.존재했던모든것이시간의힘으로흔적조차사라진후에오직‘사라졌다는사실’만이선명한곳.바로그곳을여태천의시는‘집’으로삼는다.이제이름조차기억할수없는사람과사물,사라진존재들의‘집’이다.그리고시인은기꺼이그폐허의일부가된다.‘친구’도소환한다.친구는나를데리러온저승사자같기도,속내를알수없는영원한타인같기도,나보다나를잘아는나의영혼같기도하다.정체를알수없는이친구와함께여태천의시는점차폐허가되어갈삶의모든순간을한걸음한걸음통과한다.

존재보다구체적인생활
자식은아무리크게해도알아듣지못하는노인이원망스럽다.언제고세상이답답하지않은적있었을까.노인도자식도저녁이면악마가된다.누구나일분이면악마가된다.
-「악마의생활난」에서

『집없는집』에서폐허를꿈처럼거니는초연함은1부에서그친다.2부부터는생활의면면이구체적인물성과냄새로불현듯이펼쳐지기때문이다.식어가는음식,이발소의점점희미해져가는간판과무뎌진가위,우산없이비를맞는이의젖어가는몸은그자체로무섭도록매정한시간의흐름을보여주는일상의장면들이다.그리고우리는그러한장면을마주할때마다속절없이붙들린다.육신만큼이나무겁고구체적이며지리멸렬한먹고사는일,‘생활’을자각하게되는것이다.
생활은전화벨소리처럼불쑥끼어들어나를흔든다.옆구리를훅찌르는칼처럼나를갑자기붙들고길을물어보는모르는사람이나,치매앓는부모가나를알아보지못하고느닷없이지르는비명처럼.생활은우리가표정을감출새도없이“누구나일분이면악마”가될수있다는사실을보여준다.그끝에16편의‘포비아’연작시가고해성사처럼이어진다.‘아침’에깨어나‘저녁’에잠들때까지,‘일인용’의고독을느낄때도,‘가족’과‘이웃’에게부대낄때도,‘있음’이라는자명한사실과‘진심’에도불안을느낀다는것에,그무엇으로도불안을멈출수없다는사실에공포를느끼며.시인은쓴다,시간의잔해같은‘기억곳곳의어둠’을들여다보며.두려움을이기기위해두려움보다무섭게,쓴다.무섭게쓰는동안시인은“무서움”이된다.기억곳곳의어둠마저품는거대한‘집’이된다.

추천사

이글자들은어디서왔을까.그것이궁금했다.문득걸어나와서존재하는듯한,살아있는사람으로부터가아니라,그저글자로서움직이고있는듯한.흡사영혼의몸같은걸읽으면서는,그글자들이또각또각집으로들어오는듯도하고집인지집아닌지헤매는듯도하고결국그집을그자체로놓아두기위하여일부러집을떠나는듯도하다.그러니까그대로두기위하여.나는이시집을안개의처음과끝처럼느낀다.만졌다가만질수없음으로퍼져나가는,만질수없다가만짐으로머물러있는.그리하여불현듯되울리는안개의말이라
-안태운(시인)

책속에서

늦었네.

겨우한뼘햇살이드는창가에서서
두손을말리며너는
피곤한듯눈을감고있었지.
그게마지막인사인줄몰랐네.
-「네가가난한이집의영혼을말리는동안」에서

친구여,때가되면말할게.
저많은글자들이어디서왔는지를

때를놓쳐끼니를걸렀을때
몰빵하느라길을잃었을때
문득그런생각이들었어.
사람들이질병때문에죽듯이
생각때문에죽기도하겠구나.
-「묘비명」에서

혼자남은식탁에서식어가는음식을
누군가를기다리듯물끄러미바라본다.

살아있는것들이죽어가도모를시간이다.
-「밥을먹다말고」에서

당신은매일아침두려움을벗어나려애쓰고
당신은매일저녁두려움에대해쓴다.
놀랍도록당신은무섭게쓴다.
쓰는동안당신은무서움이된다.
늦은밤쓰기를멈추고화들짝놀라는
당신이있다.
정말저무서움을내가썼단말인가하고깜짝놀라는
당신이있다.
-「포비아-있다」에서

손톱을깎다가손거스러미를그냥두는것처럼
남겨지는시간이있다.

내일이면한번지나가면다시
돌아오지않을어제가온다.
-「포비아-망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