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꿈만 꾸자 (조온윤 시집)

자꾸만 꿈만 꾸자 (조온윤 시집)

$12.00
Description
“그래도 우리에겐 시절이 있잖아
시절을 말하면 웃게 되잖아”

시간은 달고, 시절은 짧고, 시인은 쓰지
총천연색 시로 꾸는 우리들의 지난날
문학동네시인선의 231번째 시집으로 조온윤 시인의 『자꾸만 꿈만 꾸자』를 펴낸다. 2019년 문화일보를 통해 등단, 첫 시집 『햇볕 쬐기』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시집이다. “슬픔을 어르는 손길을 줄게”라는 첫 책의 ‘시인의 말’에 값하듯, ‘따듯한 결기’라고 불러보아도 좋을 특유의 태도를 이번 시집에서 역시 우직하게 펼쳐 보인다. 온윤(溫潤). 시인의 이름에도 스며 있는 이 ‘따스함’과 ‘부드러움’은 그가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선이자 시적 자세이기도 한 바, 어둡고 축축한 사각에 빛과 볕을 고루 건네고자 하는 그의 마음씀씀이는 신작 『자꾸만 꿈만 꾸자』에 이르러 더욱 넉넉해져 시인의 손길이 닿는 곳곳에 부드러운 온기가 머문다.
더불어 문학동네시인선 200번 기념 시집에서 건넨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는 소음 속에서 침묵하는 존재들이 나누는 손짓”이라던 그의 답변을 함께 떠올려본다. 헤아려보건대, 조온윤의 고요하고도 따스한 시편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며 널리 가닿은 시선과 손길, 그리고 세계의 “슬픔”도 “소란”도 모르는 체하지 않는 애씀에서 말미암은 것이리라. 평론가 양경언의 말을 빌리자면, “조온윤의 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면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세심히 살핌으로써 세상의 드러나지 않았던 일부를 존중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사납고도 어지러운 지금의 세계를 차분히 그리고 담대히 상대할 수 있도록 돕는다”(‘해설’에서).
저자

조온윤

저자:조온윤
2019년문화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햇볕쬐기』가있다.공통점동인이다.

목차


시인의말

1부공간과자간
아키비스트/생각하는문진/장서각의나날/어떤일이일어난미래/건설적인미래/도서관불안/균형감각/역사상설전시/공간과자간/꿈아카이브/그림자송년회/깊이에의연구

2부가지런한사물들
분실물보관소의밤/유령의집/설맹/우리시절동호회/미래도시계획/우리는이다음을원한다/사라진기역에대한유월의그리움/자꾸만꿈만꾸자/생일과소원/모조햇빛/사유지/한밤의공줍기

3부새벽의회고
여름비행/임시교사/음악실/괄호/육면체의시간/비와현실/달항아리/도슨트/영원서리/중심찾기/소리헤엄/백일몽/탁란가족

4부종이에쓰인꿈
사랑파도기계/눈의여행/두루미/그림자목소리/영원한빵이론/쓸모없는선물교환식/삼인행/사인용식탁/종이집/림보/사람책/사랑의분류/시조새/회문의자서전

해설|어진선물
양경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그때너는네몸에비해지나치게가벼워보였어
너덜거리는너의영혼이허공으로날아갈까봐
나는목놓아울었어
이봐,나를보라고
치렁치렁한외투와모자를벗어조그만못에걸어놓듯
필요하다면이작은내게로시선을걸쳐두라고

슬픔의냄새가밴품이썩편안하지만은않지만
아무렴어때?
네가몸을돌려이윽고나를내려다보았을때
겨드랑이에손을넣어눈높이까지나를들어올렸을때
내가너의누름돌이라는걸알았어

너는홀연날아가지않기위해나를데려왔구나
매일밥을먹으며튼튼하고무거운몸을가지자
_「생각하는문진」부분

시집의제목‘자꾸만꿈만꾸자’는그러한조온윤의사려깊음이담긴,앞에서부터읽어도뒤에서부터읽어도한결같아‘의미의훼손’이없는회문(回文)이다.나아가이문장은일어난일을일어날일로,일어날일을일어난일로여기며삶을살아가자는청유이자,“도처에고통이가득하고끝이예견된삶일지라도”“현실의중력에서벗어나잠시나마꿈속을다녀오”(‘인터뷰’에서)길바라는희망이담긴응원의말이기도하다.시인도우리도때로는“홀로이지구만한외로움을짊어지고버티”(「영원서리」)듯생을살아가지만,이부담과무게는“지친나머지다른세상으로날아가버리지않게끔무게를더해주는누름돌”이자“행복의문장에머무르게끔귀퉁이를눌러주는문진”(‘인터뷰’에서)으로화할수있음을조온윤의시는말해준다.
『자꾸만꿈만꾸자』의4부구성속에는세계의배면에산재한고통,소외,결락에맞서는어질고우아한전면전의시편들로가득하다.그중“조용해서눈에띄는백자”(「달항아리」)는몫없고말없는이에주목하는시인이가닿은시선의끝이기도하지만,그의시를설명하는단하나의문장같기도하다.1부‘공간과자간’에는도서관,전시관등활자와이미지가고요히쌓이는곳을배경으로전개되는시편들을모았다.필연적으로과거와미래가,삶과죽음이포개어진그곳에서시인은“아무도펼치지않는/외롭고두꺼운/사전”(「역사상설전시」)을펼쳐그들의면면을굽어살피고,“더없이사랑하는이가근미래와미래를지나/머나먼노래가되어자유롭길바”(「장서각의나날」)라마지않는다.2부‘가지런한사물들’은세계의사각에서들려오는수런거림에귀기울이는시간이다.“실은쓸쓸함을잊기위한혼잣말”을하는“사랑에게버림받은유기물”(「분실물보관소의밤」),“잠든사이너의마음을꺼내어씻겨두는/유령집사의목적없는헌신”(「유령의집」),“밤새흘린땀과빛의결정”(「한밤의공줍기」)의목소리를비롯하여,이번시집의또다른축이라고도할수있을‘돌아갈수없는한시절’에그때는미처비추지못했던빛을쐬어조명하는시「우리시절동호회」「모조햇빛」등을담았다.

여럿이서만날수없는세상이되어
생활흠집이난낯빛을화면에띄우고
카메라가까이에잔을대고건배하며
서로의오래된실패담으로서글퍼지네

그래도우리에겐시절이있잖아
시절을말하면웃게되잖아
아무도타인의맞닿음을무서워하지않고
아무도미래를모르지않았던시절을
_「우리시절동호회」

3부‘새벽의회고’에는반려의존재에게어깨를빌려주는마음과,나를닮은너를보는나의상념과생활의풍경을모았다.“괄호안에든말은/소리내어읽어야할까”(「괄호」)염려하는신중한존재들이“침묵을설명하기위해서는/침묵을깨트릴밖에없”(「달항아리」)다고,“틀리는이들만이사랑을키우”(「탁란가족」)는법이라고비로소입을뗄때,시인의아끼고아낀말을건네받은우리의내면은“한낮이자루째쏟아내는백금색빛”(「여름비행」)으로빛난다.4부‘종이에쓰인꿈’은‘사람’이라는‘책’에바치는헌사와‘삶’이라는‘꿈’을어떻게꾸면좋을지제안하는시편들을담았다.비록우리는“손을대면너무쉽게찢어지는꿈/한낱종이에쓰인꿈”(「종이집」)을꾸는미약한존재이지만,“새책같이그사람을아”(「사람책」)끼고,“마음을빌려주고돌려받는반복”(「사랑의분류」)을멈추지않는다면,“아주작은점으로수렴하지만사라지질않”고“영원히존재하는”(「영원한빵이론」)사랑과삶을꿈꾸고또나눌수있다고시인은전한다.

나의기일은일기에담을수없다는것도알아
그렇지만자비로운신에게허락을구해
거꾸로돌아가
첫행을다시쓸수있다면

첫울음을터뜨린그에게
내가말했지

야이삶은좋은삶이야
_「회문의자서전」부분

끝으로,조온윤의시가나직하고어진목소리를지녔다고해서매끈하게조탁된세계의표면만을,바람에가까운풍경만을선보이는것이아니라는점을강조하고싶다.그는슬픔을모르거나잊은자가아니라,그것을너무나잘알기에,직시라는명목으로그저슬픔과고통을재생산하는데그치지않고,가까스로의‘이다음’을그려낸것이라덧붙여두고자한다.그가건네는이온화한시편들은폭설이지나간아침,밤새누군가가나를위해눈을쓸어둔반듯한길과참닮았다.“소리내지않아도/그뜻을알며/끄덕이지않아도/그답을아는/친구”(「괄호」),그런사려깊은친구를찾고있다면우리는지금조온윤의시를읽어야한다.

조온윤의시가지금까지말하건대,우리자신의양심에따라지금보다나은다음으로가려는용기를잃지않는다면,또한나의‘혼자’는내곁의빈자리를포함한것임을이해하면서어제와오늘과내일,이곳과저곳에함께있는이들을아껴보살피면“좋은삶”은얼마든지쓰일수있다.외로웠던종이에창문을내는꿈을자꾸꿀수있다.
그러니“첫행을다시쓸수있다면”,나는이글을다음과같이시작하겠다.우리가언젠가닿고싶은세계가우리자신의어진수행으로쓰이는시를선물받았다고.그런선물을건넨이에게우리는기꺼이‘시인’이란말을선물한다고._양경언,해설에서

시인의말

좋은꿈을꾸었어요,원한다면
다른것과맞바꿀수있어요
이책을매몽문서로삼고
꿈값은꿈바깥에서
함께있는시간들로받겠습니다

2025년봄
조온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