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자서전 : 전격 교체된 대한민국 초대 헌병사령관 (양장)

장흥자서전 : 전격 교체된 대한민국 초대 헌병사령관 (양장)

$33.00
Description
초대 헌병사령관의 증언으로
재조명되는 김구 암살 사건!
“긴밀히 진행된 친일파들의 ‘6월 공세’”
이 책은 대한민국 초대 헌병사령관 장흥 장군이 퇴역 후 자필로 남긴 국한문 혼용 자서전을 언해한 것이다. 그동안 자서전의 존재나 일부 내용만 신문에 소개되었으나,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들의 결심으로 책 전권이 세상의 빛을보게 되다.
장흥은 백범 선생 서거 후 처음으로 숙청된 공직자였다. 살인자 안두희를 수사해야 할 헌병사령관 자리를, 총참모장 채병덕의 요청으로 헌병에 몸을 숨긴 친일파 전봉덕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암살 음모 세력의 본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어렴풋이나마 지켜볼 수 있었던 인물의 자서전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비록수집하고 기록한 자료가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소실되어기억만으로 기술된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광복 후 좌우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정국 속에, 곳곳에 뿌리내린 친일파들이 독립운동 세력을 어떻게 와해시켰는지, 장흥은 1949년 6월 몰아친 친일파의 ‘6월 공세’를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저자

장흥

저자:장흥張興,1903.1.20(음)~1983.2.6(양)
1903년1월20일,고양군원당면성사리에서태어났다.1925년에상해로건너가한국청년동맹회에가입,활동했다.여운형의추천으로황포군관학교에입학했으며,졸업후중국군에입대했다.중국군헌병사령부경무처상위(上尉),헌병제8단제2영소교영장(少校營長),중교영장(中校營長)등으로복무하며독립운동가들의신변을보호하는활동을했다.광복후에는광복군참모로전임되어교포들을안전하게귀국시켰다.대한민국정부수립후에는헌병사령관,국군6사단장,경남·전남·강원병사사령관,국방부병무국장,제3관구부사령관,육군군사감등을역임하고1959년4월퇴역했다.1968년3월1일,애국지사포장을받았다.1990년에는건국훈장애국장(1977년건국포장)이추서되었다.

해제:한홍구
성공회대학교석좌교수이다.역사와현실을접목한역사대중화를위해활동하고있다.국가정보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민간위원을지냈으며,(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이사로활동하고있다.2015년부터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책임편집인을맡고있다.
저서로『유신』(2014),『사법부』(2016),『한일우익근대사완전정복』(공저,2021)등다수가있다.

목차


해제(한홍구)
전봉덕을지워버린≪월간조선≫의장흥자서전
백범암살이후의권력암투
최악의빌런신성모와88구락부
친일경찰의헌병으로의피신
국회프락치사건은남로당아닌김구지지세력제거
신성모:반역수준의무능과무책임
??(전격교체된대한민국초대헌병사령관)장흥자서전??발간의의미

[과거의거울로미래를비추다]

서언

1부나의회고:망명시절
1.장씨의기원
2.문중의정황
3.동네정황
4.동네청년정황
5.내가정의정황
6.망명한동기
7.망명초기정황
8.중국에거주하는교포정황
9.군대에투신한전후
10.사관학교생도시절
11.황포사관학교졸업후
12.고급군관단에재입교하여훈련을마친후
13.헌병부대장직을사임한후
14.결혼문제
15.중·일양국전쟁전후의경위
16.천진사변경위
17.중일전쟁의선포
18.종군작전중가족을상해로보내다
19.김구주석께서저격당하신사건
20.한구와장사를함락당한후의상황
21.그리웠던아내와,생후처음보는장녀한옥을만나다
22.한인사병탈출사건
23.적군이투항선언을선포한후행동
24.중국공산당의시말
25.군대내의공산당활동정황
26.광동성공산당폭동과한인학생들
27.공산당토벌부터선전포고까지
28.대일항전중공산당의성장
29.국공전쟁의결과
30.대공전쟁의패인은무엇인가?
31.중국이반공전쟁에서실패한이유
32.모든실패는정신전선의붕괴에기인한다

2부나의회고:환국후
1.귀국후행적
2.이승만의남한공산화저지
3.대한민국국군첫헌병사령관으로취임,전봉덕의등장
4.소위국회‘프락치’사건과나와의관계
5.백범김구암살의전말
6.암살조사자가된흉악한친일분자전봉덕
7.이승만대통령과김구선생의관계
8.6·25전쟁전의국제정세
9.6·25전쟁전의군간부정황
10.6·25전쟁당시정황
11.6·25전쟁당시정계동향
12.6·25전쟁시의정계요인들의말로
13.군에서퇴역한과정
14.결론

부록1
가보에기입된나의약력사본
우석장흥장군행장
전역하는날홀로읊어봄
태상경파종문회취지문

부록2:흩어진기록을수집했다.
추도문(김구)
추모사(이시영)
조사(이범석)
기술
진술
이력서
상례및제례에관한준칙
유묵전시당시작성한계획서서론
약력
유적비문초안

아버님을기리며(장석위)
자서전원문

출판사 서평

김구선생의측근,장흥이기록한역사의순간들!

그리고선생님!단한가지부끄럽고죄송하고통분한것이있습니다.해방한지이제겨우20년남짓밖에안되었는데어느결엔지독립정신,독립사상등독립두자붙은것이면사람이고노선이고모두다멸시받고구박받는세대가된그것입니다.선생님,이나라이세대가왜이같이되었는지모르겠습니다.이렇게된것생각하면그때진작돌아가신것오히려선생님께는다행일지도모르겠습니다.그러나다시한편생각하니만일선생님이더오래계셨다면감히독립정신,독립노선을업신여기는세대가될수있을것입니까?_?추도문:1968년6월22일백범선생19주기?,191~192쪽

현재한국은극심한역사전쟁에시달리고있다.뉴라이트관련인사가독립기념관,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진실화해위원회를비롯해정부각기관의장으로기용되면서친일파들의명예회복을위한기도가점점노골화되는형국이다.“김구테러리스트”라는말이버젓이활개를치고,김구선생의증손자김용만위원의말처럼국가보훈부에서는“안중근,이봉창,윤봉길의사의거,봉오동·청산리대첩등대표적인독립운동을제외하고,김활란,김성수등대표적인친일인사들이활동했던사건을선정”하는지경에이르렀다.

이책은1925년상해로망명해황포군관학교에서교육을받고중화민국국군에입대해독립군들의신변보호에힘썼으며,광복후에는교포들의무사귀국을위해활동했고,귀국해서는대한민국국군으로평생을조국에바친한인물의자서전이다.대한민국초대헌병사령관장흥은자신이경험하거나지근거리에서전해들은역사적순간을기록으로남겼다.독립운동가이자김구의측근으로서이렇게상세한자서전을남긴사례는드물다.게다가김구선생암살사건이후그것을모의한세력에의해헌병사령관자리에서전격교체된인물이남긴자서전이라는점만으로도이책은큰가치를지닌다.

신성모-채병덕-전봉덕,88구락부,한민당...흉악한친일파무리들의계획적인음모!

1949년6월27일백범김구선생이암살된다음날,장흥은신성모의명함에면직문구가적힌인사명령장을받고경질되었다고한다.신성모의명령으로그를대신해헌병사령관자리를차지한인물은,채병덕의도움으로반민특위의칼날을피해헌병에몸을숨긴일제고등경찰출신전봉덕이었다.
장흥은이자서전에서백범선생암살의배후로한민당이새로구성한88구락부,서북청년회,국방장관신성모를지목한다.백범선생을원수같이여기던친일파집합단체가각요직을점유하려는음모를꾀해안두희를교사하여이런비극을조작해냈다는것이다.그는암살사건이후그공로로대가를받은이들을다음과같이적기도했다.

정보국장백선엽은이사건을한독당자가지란으로조작해낸공로로서육군준장으로승진하여육군제5사단장으로영전하였고,서북청년회회장문봉재(文鳳才:문봉제(文鳳濟)를오기한것이다)는치안국장으로있다가교통부장관까지영전하였고,범인안군은사건직후에석방되어원계급인육군중위로서육군소령으로약진하여다시군에복귀하였다가국회에서문제화되어국방장관신성모와참모총장채병덕양군에게책임을추궁하게되므로인하여부득이다시군에서추방하는동시에군용장유공장(醬油工場)을경영케해주어생활을보호하여주었다._110쪽

장흥이자서전에서여러번강조한“흉악한친일파무리들의음모”는80여년이지난현재에도계속진행중이다.이책의출간을계기로역사에반하는무도한역사전쟁이종식의길로나아갈수있기를기대해본다.

흩어진퍼즐을맞춰역사적의미를부여하다!

역사학자한홍구교수는책속에흩어진조각들을하나하나맞춰이자서전의가치를찾아냈다.

신성모를정점으로한친일·반공세력이백범김구를중심으로친일반민족행위자청산을주장하는공동의적을향해똘똘뭉쳐싸워‘승리’한것이라할수있다._11쪽

자서전본문을통해6월공세의흐름을읽을수있지만,항목을달리하다보니개별사건으로만인식될수도있다.한홍구교수는그틈을메우며각사건이어떻게큰흐름을이루어한국현대사를왜곡시켰는지「해제」를통해집중조명한다.

1949년6월에집중적으로진행된‘6월공세’는①반민특위에대한공격,②국회프락치사건,③백범김구암살등크게세부분으로구성되었는데,그중①반민특위에대한공격은서울시경국장김태선의지휘하에반민특위의집중적인조사대상이된친일경찰이담당했고,②국회프락치사건은일제고등경찰출신헌병부사령관전봉덕이,③백범김구암살은만주군출신포병사령관장은산이담당했다.이모든공작의정점에는국방장관신성모가있었다._18쪽

그는6월공세뿐아니라자서전에담긴다른단서도찾아내역사의빈칸을채워나간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에서전봉덕의행적을추적하면서풀지못한숙제의하나는전봉덕은헌병사령관을지낸뒤신성모가국무총리서리를겸하게되자국무총리비서실장에올랐다.처음에는이경력이연속된것으로알았으나기록을자세히검토해보니전봉덕이헌병사령관을그만둔것은1949년11월27일이고,국무총리비서실장이된것은1950년4월27일로5개월의공백이있었다.필자는국회프락치사건과백범암살의실행에서결정적인공을세운전봉덕이왜군에서밀려나5개월간야인생활을하게되었는지몹시궁금했는데,그의문이이책을통해깨끗이풀려버렸다._10쪽
독립운동가가직접기술한몇안되는기록중하나인이책이김구선생암살사건을다시공론의장에올리는역할뿐아니라,역사의빈칸을채우는사료로서오롯이자리매김하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