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카르타고와충돌하다
로마,시킬리아를확보하다―제1차카르타고전쟁
소아시아와쉬리아고원과이집트로둘러싸인가나안Ganaan(‘들판’이라는뜻을가짐.희랍인은‘자주색땅’또는‘구릿빛사람들의땅’이란뜻의‘페니키아’라고부름)에정착한페니키아인(이탈리아인은‘포에니인’으로부름)은무역에더없이유리한땅이던가나안에서무역을발전시키고동서를연결하기위해열정을쏟아부었다.‘신新도시’라는뜻의카르타고Carthago는바로이지역에서발전한페니키아도시들중다른식민도시를압도한도시였다.
쉴새없이서부로쏟아져들어오는희랍식민지의물결에완전히밀려나지않기위해적극적인방어가필요했던페니키아인들은카르타고의주도아래희랍인의전진을막아낸다.로마건국200년까지이어진이런중요한성과덕분에지중해남서부지역은페니키아인이장악할수있었고,성공을이끈카르타고는페니키아민족을이끌패권은물론리뷔아와지중해일부를장악하려는계획까지세우게된다.
반면주변지역을점차군사적으로제압하고정치적으로통합하여연방체의통일이탈리아를완성한로마(《몸젠의로마사》제2권)는시킬리아의로마연방편입을꾀한다.그러나시킬리아에는오랜시간시킬리아를양분했던카르타고와쉬라쿠사이가도사리고있었다.로마는메사나를에워싼싸움을계기로이두세력중카르타고와전쟁에돌입한다.제1차카르타고전쟁이발발한것이다.
전쟁은로마의승리로끝났다.비록시킬리아에서의승리를발판삼아나선아프리카원정에서패배의쓴맛을보기는했지만,로마는여러차례해전에서카르타고에승리를거두며마침내카르타고의시킬리아이양과전쟁배상금지불합의를이끌어냈다.이로써로마는전이탈리아를로마화하게된다.
불세출의명장한니발,로마침공에나서다―제2차카르타고전쟁(한니발전쟁)
로마건국513년(기원전241년)에있었던로마와의강화조약으로카르타고인은평화를얻었다.그러나동지중해에서서지중해에이르는해상노선독점이무너지면서카르타고무역정책전체가붕괴되는아픔을겪어야했다.국가의존립이로마의재량에좌우될위험이상존하게된것이다.이는카르타고가다시금전쟁준비에들어가도록재촉했다.
용병의반란을진압한카르타고의장군하밀카르바르카스는히스파니아(이베리아반도)로진출,카르타고제국을건설했다.이베리아반도의모든공동체를카르타고의속주로만든것이다.히스파니아에서상상을초월할정도로신속하고강력하게세력을확장한카르타고는히스파니아의군대를하밀카르의장남한니발에게맡긴다.한니발은취임직후(로마건국534년,기원전220년봄)개전을결정하고공격준비에박차를가했다.그러던중로마의동맹시사군툼이카르타고의속국인토르볼레타를침략하자로마건국535년(기원전219년)봄로마와동맹한도시를포위공격했다.제2차카르타고전쟁의발발이었다.
불세출의명장한니발을맞설로마장군은없었다.알프스를넘어감행한이탈리아침공작전은한니발의천재성과추진력을증명한다.노장파비우스막시무스의고집스러운지연전술이로마의유일한대처방법이었다.한니발은무력시위를벌이며이탈리아반도를돌아다녔다.로마의무기력함을보여주면로마연방이스스로해체될것이라는정치적판단이있었다.하지만전쟁이장기전양상을띠면서천재전략가는고립되었다.경제적이득이보장되기만하면투쟁보다굴종을택하던카르타고인들은한니발을지켜보기만할뿐이었다.
트레비아전투,트라시메누스호수전투,칸나이전투등에서의찬란한승전에도불구하고결국한니발의로마침공은실패로끝났다.로마의게릴라전법은전선을교착상태로몰아넣었고,푸블리우스스키피오의히스파니아원정은카르타고의거점도시신카르타고를함락시키고이베리아반도전체를점령하는성과를낳았다.전황이점차불리해지면서결국카르타고로귀환한한니발은카르타고애국당파의정전협정무력화에반발하며침공한스키피오와자마에서전투를벌이게된다.그러나자마전투는카르타고군의전멸로끝나고,한니발은몇사람만데리고하드루멘툼으로도망치는신세로전락한다.
카르타고전쟁후로마의변화
카르타고전쟁을겪으면서로마는이탈리아반도밖의영토를획득한다.따라서국가체제와군사제도의변경이불가피했다.집정관을대신할대리자가해외영토에행정관으로파견되었고,전쟁중에임기가종료되어자주교체되는집정관직의불합리를극복할군사령관제도가도입되었다.그리고해군도창설되었다.원로원은현명하며유능했다.시대가요구하는변화와혁신을받아들이기위해스스로변모하고쇄신했다.그들은전례가없다는또는법체계가흔들린다는이유를들면서,더는목적대로기능하지않는제도와장치를유지하려는어리석은일관성을고수하지않았다.초법적인임시조치였을지라도시간을두고법체계내에서그것을소화해내는유능함을보여주었다.
제4권에서는카르타고전쟁의연장선에서로마가마케도니아와갈등을빚으며희랍세계까지세력권을확장하는과정과,카르타고전쟁및마케도니아전쟁과정에서생겨난로마의국가체제변화양상이종합적으로서술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