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3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3 (양장본 Hardcover)

$36.00
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팔(山谷詩集注卷第八)
1.왕병지가보내준옥판지에차운하다(次韻王炳之惠玉版紙)
2.왕병지가석향정을준것에사례하다(謝王炳之惠石香鼎)
3.유통수가왕문통에게보낸시에차운하다(次韻柳通叟寄王文通)
4.장천각을전송하며등자운으로짓다(送張天覺得登字)
5.서문장이도성문에이르러보낸시에차운하다.2수(次韻徐文將至國門見寄.二首)
6.박사왕양휴가밀운룡을갈아보내니동료열세명과마시면서장난삼아짓다(博士王揚休碾密雲龍同事十三人飮之戲作)
7.황면중이달인쌍정차를찾기에답하면서아울러양휴에게편지삼아보내다(答黃冕仲索煎雙井并簡揚休)
8.다시면중에게답하다(再答冕仲)
9.장난스레진원여에게답하다(戲答陳元輿)
10.원여에게다시답하다(再答元輿)
11.면중의진사시권에차운하다(次韻冕仲考進士試卷)
12.왕성미의세아들이광문생에들어가다(王聖美三子補中廣文生)
13.유경숙의「문조하첩보기제장」에차운하다.4수(次韻游景叔聞洮河捷報寄諸將.四首)
14.유경숙의「월보삼첩」에화답하다(和游景叔月報三捷)
15.최백이가잔치자리에서지어서인하여떠나는이에게준시에차운하다.2수(次韻崔伯易席上所賦因以贈行.二首)16.자첨의운자와같은운자로단련사(團練使)조백충에화답하다(同子瞻韻和趙伯充團練)
17.조백충이글쓰기를배우지말라고권한것에장난스레답하며아울러석자택의조롱에변명하다(戲答趙伯充勸莫學書及爲席子澤解嘲)
18.사경숙이겨울죽순과옹땅의연유와향수리세물건을보내준것에사례하다(景叔惠冬笋雍酥水梨三物)
19.다시경숙에게답하다(再答景叔)
20.황기복의시에차운하여보내준시에화답하다(次韻㡬復和答所寄)
21.숙부이중에게올리다.3수(寄上叔父夷仲.三首)

산곡시집주권제구(山谷詩集注卷第九)
1.고시국에서손원충박사와대숲사이에서창을마주하고있다가밤에원충의글읽는소리를들으니성조가비장하였다.이에「죽지사」세장을지어화답하였다(考試局與孫元忠博士竹間對窗,夜聞元忠誦書,聲調悲壯.戲作竹枝歌三章,和之)
2.백시이공린이예부시원에서말그리는것을보고짓다(觀伯時畫馬禮部試院作)
3.백시가그린가려운곳긁어대는호랑이그림에쓰다(題伯時畫揩痒虎)
4.백시가그린물고기를바라보는승려그림에쓰다(題伯時畫觀魚僧)
5.백시가그린흙먼지속에넘어진말그림에쓰다(題伯時畫頓塵馬)
6.백시가그린엄자릉이여울에서낚시하는그림에쓰다(題伯時畫嚴子陵釣灘)
7.백시가그린소나무아래의도연명의그림에쓰다(題伯時畫松下淵明)
8.예부시원을나오니왕재원이고맙게도매화세종을보내왔는데모두뛰어나게아름다웠다.이에장난스레화답하였다.3수(出禮部試院,王才元惠梅花三種,皆妙絶,戲答.三首)
9.왕립지가보낸시를받고서매화꽃이이미다졌다고알려왔기에그운자에차운하여장난스레답하다(王立之承奉詩,報梅花已落盡,次韻戲答)
10.요화를달라고요청하다.2수(乞姚花.二首)
11.왕중지소감이요화를읊은것을본떠서그운자를사용하여짓다.4수(效王仲至少監詠姚花,用其韻.四首)
12.두가보에게보내다.2수(寄杜家父.二首)
13.왕재원사인이모란을주면서시를요구하다(王才元舍人許牡丹求詩)
14.왕사인에상원홍을꺾어서보내준것에사례하다(謝王舍人翦狀元紅)
15.진계상이황주산중의연리송을보내준것에장난스레답하다.2수(戲答陳季常寄黃州山中連理松枝.二首)
16.자첨이이치를전송하며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子瞻送李豸)
17.송무종이3월14일서지에행차하니도성사람들이모여서구경하였다.한림공도나가서놀았는데,그때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宋楙宗三月十四日到西池,都人盛觀,翰林公出遨)
18.한헌숙공만시.3수(韓獻肅公挽詞.三首)
19.자첨이붉은혁대를왕선의에게보내면서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子瞻以紅帶寄王宣義)
20.송종유의「적완가」를듣고서(聽宋宗儒摘阮歌)
21.문하후성에서포지사로돌아와누워노홍초당도를구경하다(自門下後省歸臥酺池寺,觀盧鴻草堂圖)
22.자첨이포지사벽에작은산과마른나무를그린그림에쓰다.2수(題子瞻寺壁小山枯木.二首)
23.자첨이그린메마른나무그림에쓰다(題子瞻枯木)
24.자첨의「백시가그린호두적에장난스레글을쓰다」란작품에화답하다(和子瞻戲書伯時畫好頭赤)
25.태초연간에잡은대완의호랑이등뼈의천마를백시가그린것에대해읊다(詠伯時畫太初所獲大宛虎脊天馬圖)
26.풍봉세가잡은대완의상룡을백시가그린것에대해읊다(詠伯時畫馮奉世所獲大宛象龍圖)
27.죽석과목우를그린그림에쓰다【서문을함께싣다】(題竹石牧牛【并引】)
28.백시의천육표기도에쓰다.2수(題伯時天育驃騎圖.二首)
29.이모이부인의묵죽.2수(姨母李夫人墨竹.二首)
30.자첨과자유가「게적도」에쓴시에차운하다.2수(次韻子瞻子由題憩寂圖.二首)

산곡시집주권제십(山谷詩集注卷第十)
1.조자방의「잡언」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曹子方雜言)
2.자첨이왕자립에게화답한「풍우패서옥유감」이란작품에차운하다(次韻子瞻和王子立風雨敗書屋有感)
3.소덕을희롱하며(嘲小德)
4.장비감이양을보내준것에장난삼아답하다(戲答張秘監饋羊)
5.왕정국이문에쓴두절구에장난삼아답하다(戲答王定國題門兩絶句)
6.서릉과유신의만체를장난삼아본떠‘청인의원망’을짓다.3수(淸人怨戲效徐庾慢體.三首)
7.장인손신노에게바치다.2수(呈外舅孫莘老.二首)
8.천단의영수장을신노에게보내다(以天壇靈壽杖送莘老)
9.유청노도인의「한야」에장난삼아답하다.3수(戲答俞淸老道人寒夜.三首)
10.비서성에서겨울밤숙직하며이덕소를그리며(祕書省冬夜宿直寄懷李徳素)
11.추워진뒤에야송백을안다(歲寒知松柏)
12.동관에서보지못한책을읽다(東觀讀未見書)
13.갈옷을입고주옥을품었다(被褐懷珠玉)
14.변방관문을두들겨와서공물을바치다(欵塞來享)
15.형돈부를그리며(憶邢惇夫)
16.진소장과조적도의증답시에차운하다(次韻秦少章晁適道贈答詩)
17.진소장이술을달라고요청한것에대해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秦少章乞酒)

산곡시집주권제십일(山谷詩集注卷第十一)
1.이헌시.6수【서문을붙이다】(頤軒詩.六首【幷序】)
2.사찰에서자고일어나다.2수(寺齋睡起.二首)
3.꿈을기록하다(記夢)
4.원명과함께홍복사를지나다가장난스레쓰다(同元明,過洪福寺,戲題)
5.조심도가소매를구하기에장난스레답하다.2수(戲答晁深道乞消梅.二首)
6.매화를조심도에게보내며장난스레지어보내다.2수(以梅餽晁深道戲贈.二首)
7.손자실이소장에게쓴작품에차운하여적재에게부치다(次韻孫子實題少章,寄寂齋)
8.손자실에차운하여소유에게보내다【다른판본에는‘용기적재운’이라고되어있다.〇진관의자는소유이고고우의군인이다】(次韻孫子實,寄少游【一本云,用寄寂齋韻.〇秦觀,字少游,高郵軍人】)
9.장난스레진소유의벽의쓰다(戲書秦少游壁)
10.진소의에게보내다(贈秦少儀)
11.소장이한림소공을따라여항에가기에전송하다(送少章從翰林蘇公餘杭)
12.정인의벽에적다.2수(題淨因壁.二首)
13.6월17일낮잠을자다(六月十七日晝寢)
14.북창에서(北窓)
15.조자충이죽부인시를보여주었다.죽부인은시원하게잠을자게해주는대나무로만든물건으로,팔과다리로껴안으니부인의일과는같지않은듯하다.그래서내가‘청노’라고이름붙였고더불어짧은시를지었다.2수(趙子充示竹夫人詩,蓋涼寢竹器,憩臂休膝,似非夫人之職.予爲名曰靑奴,幷以小詩取之.二首)
16.범촉공에대한만사.2수【촉공의휘는진이고자는경인이다.동파소식이그를위해묘지명을지었는데,지금그묘지명의내용을가져다가이시의의미를밝힌다】(范蜀公挽詞.二首【蜀公諱鎭,字景仁,東坡爲作墓誌,今采掇以證此詩】)
17.종실공수에대한만사.2수(宗室公壽挽詞.二首)
18.성을나와나그네를전송하고옛벗인동평후조경진의무덤을지나다(出城送客,過故人東平侯趙景珍墓)
19.황영주에대한만사.3수(黃潁州挽詞.三首)
20.낙수현군여씨에대한만사.2수(樂壽縣君呂氏挽詞.二首)
21.숙부급사에대한만사.10수【급사의이름은염이고자는이중이다.『실록』에전이있다】(叔父給事挽詞.十首【給事名廉,字夷仲.實錄有傳】)
22.적주각【원주에서“예전에진류에있으면서일찬당에서잠을잤는데,이때‘적주각’이라는글씨를써서적주각으로삼게되었다”라고했다】(寂住閣【元注云,陳留宿一????堂,因書爲寂住閣】)
23.심명각(深明閣)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