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4(양장본 Hardcover)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4(양장본 Hardcover) (양장본 Hardcover)

$37.00
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십이(山谷詩集注卷第十二)
1.죽지사.2수【발문을붙이다】(竹枝詞.二首【幷跋】)
2.꿈에이백을만나죽지사삼첩을읊조렸다(夢李白誦竹枝詞三疊)
3.원명이검남에서헤어지며준작품에화답하다(和答元明黔南贈別)
4.여수령의마포에쓰다【지명】(題驢瘦嶺馬鋪【知命】)
5.무산에이르니송무종이말을보내오면서꺾은꽃과술을보내왔기에【지명】(行次巫山,宋懋宗遣騎送折花廚醞【知命】)
6.무종의송별시에차운하다.2수【지명】(次韻懋宗送別.二首【知命】)
7.유문학에게장난스레답하다【지명】(戲答劉文學【知命】)
8.외질이광조를예전에보았을때는오히려더벅머리의아이였는데,지금사직이보내온짧은시를보니사랑할만해서차운하다【지명】(外姪李光祖往見尙垂髫,今觀寄嗣直小詩,已可愛,因次韻【知命】)
9.남릉파에오르다【지명】(上南陵坡【知命】)
10.작은원숭이가우는역에쓰다【지명】(題小猿叫驛【知命】)
11.말위에서바로읊조려건시이령에게드리다【지명】(馬上口號,呈建始李令【知命】)
12.부당역에차운한장시주의짧은시를보고그시에차운하다【지명】(次浮塘驛,見張施州小詩,次其韻【知命】)
13.시주가먼저장십구사군에게보낸작품에장차차운하다.3수【지명】(將次施州先寄張十九使君.三首【知命】)
14.장중모와헤어지면화답하다.2수【지명】(和張仲謀送別.二首【知命】)
15.청강의주부조언성에게차운하여답하다【지명】(次韻答淸江主簿趙彥成【知命】)
16.송무종이기주오십시를보내왔기에.3수【지명】(宋懋宗寄蘷州五十詩.三首【知命】)
17.소약란의회문금시의그림에쓰다(題蘇若蘭回文錦詩圖)
18.양명숙이지은작품에차운하다.4수(次韻楊明叔.四首)
19.다시차운하다【병인】(再次韻【幷引】)
20.검남으로귀양가서지내다.10수(謫居黔南.十首)
21.검남의가사군에게주다(贈黔南賈使君)
22.우사와운학에차운하다.2수【진나라장협의「잡시」에서“허공에날아오르니마치솟는연기같고,거센비내리니마치엉킨실같구나”라고했다】(次韻雨絲雲鶴.二首【晉張恊詩,騰空似湧煙,密雨如散絲】)
23.빈로를따라죽순을캐다【황빈로는문호주의처조카인데,「산곡제발」에보인다】(從斌老乞苦筍【黃斌老,文湖州之妻侄,見於山谷題跋】)
24.황빈로가그린횡죽에차운하다(次韻黃斌老所畵橫竹)
25.황빈로가묵죽12운을보내왔기에차운하여사례하다(次韻謝黃斌老送墨竹十二韻)
26.앞의운자를사용하여자주가나를위해풍우죽을그린것에사례하다(用前韻,謝子舟爲予作風雨竹)
27.다시앞의운자를사용하여자주가그린대나무를읊조리다(再用前韻,詠子舟所作竹)
28.자주가그린두그루대나무와두마리구욕을장난스레읊조리다(戲詠子舟畵兩竹兩鸜鵒)

산곡시집주권제십삼(山谷詩集注卷第十三)
1.빈로의「병기독유동원」이란작품에차운하여답하다.2수(次韻答斌老病起獨游東園.二首)
2.또화답하다.2수(又和.二首)
3.또빈로의「병유견민」이란작품에답하다.2수(又答斌老病愈遣悶.二首)
4.황빈로의「만유지정」이란작품에차운하다.2수(次韻黃斌老晚遊池亭.二首)
5.사응지에게장난으로답하다.3수(戲答史應之.三首)
6.야족헌에쓰다【서문을붙이다】(題也足軒【幷序】)
7.영주조원대사의차군헌에써서보내다(寄題榮州祖元大師此君軒)
8.이임도가콩죽을나누어준것에사례하며답하다(答李任道謝分豆粥)
9.지명동생이융주로떠나기에주다(贈知命弟離戎州)
10.조카사가지명을따라배를타고왔기에【사의자는유심이고어릴적자는한십으로지명의둘째아들이다】(姪㭒隨知命舟行【㭒字惟深,小字韓十,知命第二子】)
11.문소격이보내온작품에삼가차운하여답하다.2수(次韻奉答文少激紀贈.二首)
12.문소격추관의「기우유감」이란작품에차운하다(次韻文少激推官祈雨有感)
13.이임도의「만음쇄강정」이란작품에차운하다(次韻李任道晚飮鎖江亭)
14.거듭차운하고이중남옥에게편지를겸하다.3수(再次韻兼簡履中南玉.三首)
15.임도의「식여지유감」이란작품에차운하다.3수(次韻任道食茘支有感.三首)
16.요치평이푸른여지를보내왔는데융주의최고였고왕공권이여지로만든푸른술을보내왔는데또한융주의최고였다(廖致平送綠茘支,爲戎州第一,王公權茘支綠酒,亦爲戎州第一)
17.양리도가은가를보내왔기에사례하다.4수(謝楊履道送銀茄.四首)
18.석장경을태학추보로전송하다(送石長卿太學秋補)
19.소격의「감로강태수거도엽상」의작품에차운하다(次韻少激甘露降太守居桃葉上)
20.차경정【서문을붙이다】(借景亭【幷序】)
21.장난스레가안국에게주다【안국은미산사람으로자는복례이다】(戲贈家安國【安國,眉山人,字復禮】)
22.양군전이술을보내왔기에차운하다(次韻楊君全送酒)
23.양군전이봄꽃을보내왔기에차운하다(次韻楊君全送春花)
24.양경산이술그릇을보내왔기에사례하다(謝楊景山送惠酒器)
25.사언승이봄꽃을보내왔다(史彦升送春花)
26.석각이그린「상초옹」의그림에쓰다(題石恪畵嘗醋翁)
27.응지에게사례하다(謝應之)

산곡시집주권제십사(山谷詩集注卷第十四)
1.붓을달려왕박거사가지팡이를준것에사례하다(走筆謝王朴居士拄杖)
2.왕거사가무늬있는돌을보내왔기에장난스레답하다(戲答王居士送文石)
3.양명숙과전별하면서차운하다.10수(次韻楊明叔見餞.十首)
4.석칠삼의육언시에차운하다.7수(次韻石七三六言.七首)
5.만주태수고중본과하룻밤자면서잠공동을유람하자고약속했는데,저녁비가새벽까지이어지기에장난스레짓다.2수(萬州太守高仲本宿約游岑公洞,而夜雨連明戲作.二首)
6.만주의하암에서쓰다.2수【서문을붙이다】(萬州下巖.二首【幷序】)
7.또하암에서장난스레짓다(又戲題下巖)
8.무산현에서자미두보의운자를사용하여장난스레짓다【두보의「무산제벽」이란작품이바로이작품의운자로,“파땅동쪽에서오래동안병에누워있다가,올해힘겹게고향으로돌아왔네”로시작하는작품이바로이것이다】(戲題巫山縣用杜子美韻【老杜有巫山題壁詩,卽此韻,所謂臥病巴東久,今年强作歸.是也】)
9.왕관복과홍구보가진무기를알현하고지은장구에화답하다(和王觀復洪駒父謁陳無己長句)
10.옛구리병을왕관복이보내주었기에(以古銅壼送王觀復)
11.병속에일어나형강정에서본것을읊조리다.10수(病起荆江亭卽事.十首)
12.송자현에있는추영년이고죽의샘물과등국및연자탕을보내왔기에.3수(鄒松滋寄苦竹泉橙麴蓮子湯.三首)
13.황여적의작품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黃與迪)
14.앞의운자에차운하여황여적이그린대나무다섯폭을은혜롭게보내왔기에사례하다(次前韻謝與迪惠所作竹五幅)

산곡시집주권제십오(山谷詩集注卷第十五)
1.장난스레주공무와유방직,전자평에서편지를써서보내다.5수(戲簡朱公武劉邦直田子平.五首)
2.익수네번째동생의작품에차운하다【황우익의자는익수로시어사소의셋째아들이다】(次韻益修四弟【黃友益,字益修,侍御史昭之第三子也】)
3.협주의술을익수가보내왔기에다시앞의운자를이어짓다(以峽州酒遺益修,復繼前韻)
4.익수네번째동생이석병을보내왔기에사례하다(謝益修四弟送石屛)
5.왕관복의도미국을보내왔기에장난스레답하다.2수(戲答王觀復酴醿菊.二首)
6.왕자여가능풍국을보내왔기에장난스레답하다.2수(戲答王子予送凌風菊.二首)
7.왕자여가감람을보내주었기에사례하다(謝王子予送橄欖)
8.야자소관을자여에게보내다(以椰子小冠送子予)
9.양강국에게드리다(呈楊康國)
10.또강국에게장난스레드리다(又戲呈康國)
11.마형주의작품에차운하다【마성의자는중옥이다】(次韻馬荊州【馬城,字中玉】)
12.중옥사군이만추에천녕절도장을열었기에화답하다(和中玉使君晩秋開天寧節道場)
13.외딴마을로들어가이재노인과이교노인을뵙고장난스레전자평에게보내어편지를겸한다.3수(入窮巷謁李材叟翹叟,戲贈兼簡田子平.三首)
14.마옥중의작품에차운하여답하다.3수(次韻答馬中玉.三首)
15.중옥의「조매」라는작품에차운하다.2수(次韻中玉早梅.二首)
16.중옥이「수선화」라는작품에차운하다.2수(次韻中玉水仙花.二首)
17.왕충도가수선화오십가지를보내왔는데,흔연히마음에들어이를위해시를읊조리다(王充道送水仙花五十枝,欣然會心,爲之作詠)
18.오군이수선화와더불어두개의큰나무를보내왔기에(吳君送水仙花幷二大本)
19.유방직이조매와수선화를보내왔기에.4수(劉邦直送早梅水仙花.四首)
20.단돈신이감자를보내왔기에사례하다(謝檀敦信送柑子)
21.이보성에게보내다(贈李輔聖)
22.고중본을기쁘게도서로보며화창하다(和高仲本喜相見)
23.난족병을장난스레읊조리다.2수(戲詠煖足瓶.二首)
24.문선이형에게장난스레드리다【황우문의자는문선이고시어사소(昭)의둘째아들이다】(戲呈聞善二兄【黃友聞,字聞善,侍御史昭之第二子】)
25.문선의작품에차운하다(次韻聞善)
26.문선이형의9수의절구에사례하며답하다(謝答聞善二兄九絶句)
27.장난스레문선에게올리다(戲呈聞善)
28.자첨의「화죽석」에쓰다【조자식의집안에소장되어있는데,‘전천수동파죽’이라고쓰여있다】(題子瞻畫竹石【趙子湜家本云,題全天粹東坡竹】)
29.장난스레미원장에게주다.2수(戲贈米元章.二首)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