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정치 (임영숙 시조집)

들판 정치 (임영숙 시조집)

$12.00
Description
생의 비밀이 담겼을 법한 멀고도 아득한 詩의 행간 속에서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자 마주한 적 없는 아름다운 전언을 만난다
저자

임영숙

경기용인에서태어나대학에서국문학을대학원에서미디어문예창작을전공했다.아이들을가르치는일을16년간하다이직했다.2014년《나래시조》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풀잎의흔들림이내게건너왔으니』,『들판정치』가있으며,〈나래시조젊은시인상〉,〈한국시조시인협회신인상〉등을수상했다.현재계간《나래시조》편집주간을맡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꽃의전언13
물에담긴화성14
들판정치16
귓속에서심장뛰는소리가들려요17
물집18
꿈의몸짓19
그거리20
그녀의여름21
끝나지않는시간22
꽃피는그늘24
나무의대화법25
크레센도26
도솔암가는길27
백색소음28
백색왜성처럼29
염화미소30
오월,마음의풀밭31
자귀나무꽃필때32
추암마을에서33
편집의일과34
휘파람언어35

2부
궁평항39
유리구슬40
낮달행로41
녹슨철조망42
등이멀다43
먼,독대44
바다의문45
반란46
벽속에새긴문47
벽화로그려진하루48
볏붉은,미인초근49
복제된사랑50
수레끌며오던길마저지우면서51
시간의뜀틀52
악의꽃53
여름꽃54
이태원비가55
천칭저울56
편경사57
협궤열차58

3부
기억의시간61
끝없는미장아빔62
꽃을이끌고가야지64
도심속기린65
매복사랑66
맨발로건너온너67
별의예68
빛이쏟아지는69
사월참척70
서성이는사람들71
성수처럼72
소소클럽73
악공74
어른이된다는것은75
우리들의해시태그76
얼룩말노래78
일제히,초록79
초성넝쿨80
플라스틱꽃82

4부
길위의작은행성85
도시는늙지않는다87
밀밭평원88
발라라이카89
불안의형국에서90
비의장막91
새의언어92
손가락피아노93
수중세계를품다94
시베리아횡단열차95
우리의봄은지나갈뿐인가96
유리도시97
초록품은환경교과서98
탄소발자국99
탄타로스의갈증100
플랫폼101
해102
허공포옹103
고립된해방104

해설|꿈의몸짓과생명의시학_차성환105

출판사 서평

꿈의몸짓과생명의시학
-임영숙시조집「들판정치」


계간《나래시조》편집주간을맡고있는임영숙시인의새시조집『들판정치』가작가기획시선(SijoCollections)33번으로출간되었다.저자임영숙시인은2014년《나래시조》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풀잎의흔들림이내게건너왔으니』,『들판정치』가있으며,〈나래시조젊은시인상〉,〈한국시조시인협회신인상〉등을수상했다.

시의근원을찾아가는내밀한모험
이번에펴낸임영숙시조집『들판정치』는시조의현대적감각을개성있게드러낸총79편의가편이수록되었다.임영숙의시조는전통적인시조의문법을기본으로하지만그틀을자유롭게넘어서는운율감을큰특징으로한다.이운율상의보법(步法)은사물에대한깊이있는사유를바탕으로꽃과바다와같은자연의완상(玩賞)에서부터현대문명에대한비판에이르기까지자유자재로운용되면서우리시조의현대적감각을개성있게드러내고있다.그만이가지고있는이호흡은언뜻정형시라고눈치채기어려울정도로들숨과날숨,밀물과썰물처럼자연스러운리듬을만들어내고자신의사유와정서를효과적으로담아낸다.임영숙시인은타자와의교호交互작용을통해사랑의일을배우게된다.그의시조는자신의내밀한기억과상처를들여다보는일에서출발해타자의아픔을어루만지고공명(共鳴)하는일로나아간다.그렇게임영숙의시조는하나의소리에서기원했을것이다.

기울인왼쪽귀에외계인이사나봐요.
집중하면할수록,조용하면할수록
두두두심장뛰는소리
어둠속에들려요

며칠을품고있어도나올생각없는지
심장소리안고,맥박소리달고
달팽이이비인후과에
달팽이의사만나요
-「귓속에서심장뛰는소리가들려요」부분

시인은갑자기이명증(耳鳴症)이생긴모양이다.며칠동안“왼쪽귀”에서“심장소리”와“맥박소리”가뚜렷하게들리기시작하고증상은나아지지않는다.그것은마치내“왼쪽귀에외계인”이살고있는것과같은낯선체험이다.결국시인은“달팽이이비인후과에/달팽이의사”를만나러가게되는데이를묘사하는장면에서마치동시조와같이재밌는상상력과발랄한문체를유감없이보여준다.이명증은귓속기관의이상으로생기는병이아니라‘나’아닌이외의것이내안에거주하면서‘나’에게어떤신호를보내고있기때문이라는진단은의미심장하다.“누구의타전인지”모르는,내안의“동굴속”에서내가모르는또다른목소리가들려온다.그“모스부호같은말들”의의미를해석하는것이시인의임무일것이다.그리고그“동굴속”에는“또다른기척”이들려오기시작한다.시는일상어와는다른문법을가지기에내가내안의다른이질적인목소리를갖게된다는것은곧시인의증표와같다.이명증이란현실세계에서는고쳐야할병이지만시인에게는시의나랏말을,그방언의세계를맞이할수있는고통스럽지만기꺼이즐거운증상이다.임영숙시인은자기내면의“심장”과“맥박”에서솟구치는“소리”에귀기울이면서스스로몸의리듬을,그리고시의리듬을찾는다.그것은시의근원을찾아가는내밀한모험이기도하다.

각자의울음을끌어안고살아가는생의숙명

꿈처럼들꽃처럼세상에피고지며
어릴적세상밖을걸어가신당신이

한세상이끌고있다
그늘속에피는꽃
-「꽃피는그늘」전문

인간이세상에나와서최초로듣는소리는부모의목소리일것이다.아이는부모에게서말을배우고세상의이치를깨우친다.아마도시인의유년에는“아버지”와“어머니”가나누는“안방의말소리”가세상을이해하는하나의척도였을것이다.“새벽마다두런두런기도소리”와함께“아버지의잦은기침,어머니의신경통”이어린‘나’를잠들지못하게했던듯하다.그때들었던유년의‘소리’는지금은사라지고없지만평생의기억속에남아있는소리일것이다.시인의몸에새겨진문신과같은언어일것이다.그리고‘당신’은“꿈처럼들꽃처럼세상에피고지며/어릴적세상밖을걸어가”셨다.세상에는빛과어둠,명암이있고꽃이피고지듯이삶과죽음이서로갈마드는것이우주의이치이다.시인은‘아버지’에대해다음과같이추억한다.“아버지운동화속눅눅한이끼냄새/한평생절뚝거리며땀에젖은시간이다//굵어진종아리에내력돋는푸른힘줄/휘어진등짐따라둥근어깨무거우면/불거진핏줄을따라근력들이자란다”(「천칭저울」).“이른아침,아버지풀짐지고오신다/휜등에가득담겨환해진논둑길이/기울진어깨에실려/출렁출렁따라온다”(「오월,마음의풀밭」).쉽지않는삶을살다간아버지를애도하는시편들이먹먹하다.생이감당하기힘든노동에시달리는육친의이미지는고통스럽고애잔하다.생生이있는빛의자리에서물러나죽음의자리인“그늘속에피는꽃”은일찍세상을떠난‘아버지’를암시하고있다.‘소리’를가진존재는사라지지만그‘소리’는기억속에살아남아있다.그‘소리’는“꿈처럼들꽃처럼세상에피고지”는소리일것이다.그리고“노도속아버지의삶/흙속에묻힌생”(「끝나지않는시간」)이세상에남긴것은“울음조각”(“울음조각넘나들며서성이는아버지”-「편경사」)이었다.그것은‘아버지’가세상과싸우고부딪히면서만들어내는소리이다.“울음”은죽음으로사라질수밖에없는뭇생명들이근원적으로품고있는소리이다.‘아버지’가“그늘속에피는꽃”이듯이우리도처에는한순간에피었다지는무수한생명의‘꽃’들로가득하다.그들은모두각자의울음을끌어안고살아가야하는생의숙명을타고난다.

혹주먹솟아나도
잘라내지말아줘요
지면위로뿌리올려버티고있는것은
무언의남겨진말을외치는까닭이죠

방어기능상태조차잘라내려한다면
흔적없이가는길,그시간기다려요
선자리울음새기며
뿌리깊이내려요
-「나무의대화법」부분

시인은“숲속길”에있는‘나무’와마주하게된다.‘나무’가어디가아픈지“깊고작은숨을고르”는소리를들었기때문이다.시인은아직다자라지않은‘나무’가그만생장을포기하고스러질까봐,그걱정스러운마음을부드럽고간곡한청유형의서술어로담아낸다.「나무의대화법」은‘나무’뿐만아니라‘나’또한피고지는존재라는사실을일깨워준다.우리의생이“바람에흩어”져사라지고“흔적없이가는길”이예비되어있다고하더라도“우리”가함께피어있다는사실은큰위로를준다.우리의생을쉽게포기하지말고서로의“울음”에귀기울이고함께보듬어살아갈것을노래하고있다.

어두운그늘에서고통받는이들에대한연민과공감
또한임영숙시인은우리사회의어두운그늘에서고통받는사람들에대한연민과공감으로나아간다.“이태원좁은골목”에서“서로가밀어내다떠밀려휩쓸리고만”“사람들”(「이태원비가(悲歌)」)과“세월호수학여행길”이“찬비되어내린날”에“동호와정대가맞잡은젖은두손”(「사월참척(慘慽)」)을기억한다.일본군위안부희생자를기리기위한‘평화의소녀상’,그“금이간석고상”을지키기위해“그날의빗속을헤쳐/광장에선소녀들”(「기억의시간」)의연대를지켜본다.우리가일상에서쉽게외면했던힘없는자들의모습을다시바라보게만든다.“일용할양식앞에남루를걸친사람/어둠의역서성대는외로운그림자들”(「서성이는사람들-수원역무료급식소」)의처지를안타까워하고“퇴근길전철안사람들사이를/지팡이짚고서성이는/눈먼아이”가“오늘도바람결에휘파람날려가며/간절히호소하는기도송”(「휘파람언어」)에가슴아파한다.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밤낮없는포탄소리”에“폐허속흔들리며//국경선/꽉끌어안고//오열하는/노란꽃”(「불안의형국에서-해바라기」)을바라보며“빼앗은자,빼앗긴자서로총을겨누고총소리멈추기위해떠나는사람들”인“돈바스난민”(「밀밭평원-우크라이나의난민」)의슬픔을읽어낸다.
우리의현실은문명과자본이공모하여온갖착취와개발에몰두하는바람에점차인간성이박탈된디스토피아의세계로치닫고있다.현대인은“크레인/로봇춤괴성”이들리는“시멘트/계획도시”의한복판(「도심속기린」)에서살아간다.“도시외곽”은“공장지대”와“굴뚝기둥”,“시멘트/미세먼지”로채워지고사람들은“오염된공기들이켜폐속이타들어간다”(「탄소발자국」).“AI로봇/사차원가상현실”이만들어낸“홀로그램”(「허공포옹-홀로그램」)에중독된사람들은진정한만남의의미를상실한채가짜행복에둘러싸여살아간다.“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이엉켜있”는“플랫폼문어발세상”에놓인“노동자”의“하루”(「플랫폼」)는암울하기만하다.임영숙시인은이러한날카로운현실비판을통해자본과문명의속도를쫓지말고존재가가진본연의소리에깊이천착해야한다는것을역설하고있다.곧자신의울음과타자의울음을듣는것이생명의회복이고인간성의회복이다.
임영숙시인은타자의울음소리에귀기울이고그생의무게를가늠하는자이다.그의시에는꽃과나무와같이지상에서하늘로솟은수직의이미지가두드러지게나타난다.지상에발을딛고서있다는사실하나가삶의고통을꿋꿋이이겨낸존재의현현(顯現)에다름아니라는것을증명하고있다.꽃과마찬가지로인간을포함한뭇생명은있는그대로손쉽게주어진것이아니다.각자세상에날때자기몫으로받은울음을오랜시간안으로삭이고삭이면서비로소피어날수있는것이다.

들판엔저마다의향기로대화하는데
포자처럼떠도는말,내귀를간질인다

나,이제투표할래요
꽃,나무,강,바다에게
-「들판정치」부분

“들판”에멋대로“피고지는꽃들”은“민초들의날샌파동”이자“난장(亂場)”과같다.그리고“들판”에맺힌“열매들”은이무수한“울음들”이모여맺힌결실이다.“들판”에모여있는모든생명들은“저마다의향기로대화”를하고‘나’는그“포자처럼떠도는말”에귀기울인다.세상에아무리보잘것없는미물이라고하더라도그들의삶자체가각자의“울음”으로쌓아올린“혁명”이라는것을.그리하여우리의생은기적이고혁명이다.이처럼임영숙시인은존재의슬픔과울음을감별한다.“마음속중심을찾아/나를채우는소리”(「해금」)에집중한다.“자기만의빛으로/고요의중심에서”(「별의예(禮)」)“울음인지노래인지몸속에서튕겨나온/무성한소리가키우는모호한말”(「얼룩말노래」)을받아적는다.세상에는“바람의결을따라떠도는소리”(「백색소음-폭설이내리는풍경속에내가있다」)들로가득차있고그울음소리를받아적는것이곧시인의임무이다.

차성환시인(문학평론가)는해설에서“『들판정치』에는세상의꽃과울음이가득하다.꽃과울음의시학이라할수있겠다.울음은존재가감당해야할숙명이며바로이울음을통해존재는성숙해지고한송이의꽃으로피어난다.울음없이는꽃도없다.고해(苦海)와같은이세상에서로의울음을돌보고보듬는다면우리의존재는생이뜨거울때피는꽃처럼내내아름다울것이다.서로에게빛나는꽃과울음이될것”이라고평한다.

생의비밀이담겼을법한임영숙시인의멀고도아득한행간속에서,우리가미처가닿지못한그리움이자마주한적없는아름다운詩의전언을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