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6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6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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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서문
향실사씨가산곡외집시에주한것에쓴서문(薌室史氏注山谷外集詩序)

산곡외집시주권제일(山谷外集詩注卷第一)
부(賦)
1.유명중의묵죽부【원우연간에관사에서짓다】(劉明仲墨竹賦【元祐間館中作】)
2.방목정부(放目亭賦)

시(詩)
1.계곡가에서읊조리다【서문을덧붙이다】(溪上吟【幷序】)
2.청강인【이때나이열일곱이었다】(淸江引【時年十七】)
3.숙부성모의「영영천곡」이란작품에차운하다(次韻叔父聖謨詠嬰遷谷)
4.십구숙부대원의작품에차운하다(次韻十九叔父臺源)
5.숙부의조정(叔父釣亭)
6.암벽아래에서맘껏읊조리다.5수(巖下放言.五首)
7.같은해급제한부군의에게부치다(寄傅君倚同年)
8.덕보동생에게답하다(答德甫弟)
9.원발동생에게주다【거침없이말하다】(贈元發弟【放言】)
10.청명(淸明)
11.하조성이호연당을지었는데,그뜻을펼침이대단히훌륭하여자못세상을뛰어넘어날아가고자하는말이있었다.건물을지은반방사가육기를타고천지사이에서노닐기를바라는마음에호연사2장을지어보낸다(何造誠作浩然堂,陳義甚高然,頗喜度世飛昇之說.築屋飯方士,願乘六氣遊天地間,故作浩然詞二章,贈之)
12.서유자의사당(徐孺子祠堂)
13.부모님을생각하며여주에서짓다(思親汝州作)
14.언화의작품에차운하여장난스레답하다【원주에서“언화는나이마흔에벼슬을버리고두문불출했다”라고했다】(次韻戱答彦和【元注云,彦和年四十,棄官杜門不出】)
15.같은해급제한배중모에게차운하다【이때중모가무양위였다】(次韻裴仲謀同年【時仲謀爲舞陽尉】)
16.유민탄(流民歎)
17.활주의외숙의작품에차운하여보내다(次韻寄滑州舅氏)
18.장중모의집앞에서도미주를땅에쏟았기에【중모의이름은순이다】(張仲謀家堂前酴醿委地【仲謀名詢】)
19.등봉의왕회지가「등루」라는작품을보내왔기에화답하다(和答登封王晦之登樓見寄)
20.손불우가보내온작품에화답하다(和答孫不愚見贈)
21.자다가일어나(睡起)
22.집에돌아와큰형에게드리다(還家呈伯氏)
23.시진숙의스물여섯운에차운하다(次韻時進叔二十六韻)
24.황종선에게부치다(寄黃從善)

산곡외집시주권제이(山谷外集詩注卷第二)
1.설락도가남양으로부터도성에들어가면서유숙하기에,모여술을마시고시를지어전별했다【섭현은대개남양에서도성으로들어가는길에있다.또한황정견이지은「송설락도지운향」이란작품에서“황산의섭현에서담장마주하고살았네”라는구절이있다.그러니이작품은섭현에있을때지은작품이다】(薛樂道自南陽來入都留宿會飮作詩餞行【葉縣蓋南陽入京之路.又有送薛樂道知鄖鄕詩,有黃山葉縣連墻居之句,此詩當是葉縣作】)
2.강남의토풍을장난삼아읊조리다(戱詠江南土風)
3.바둑2수를지어임점공에게드리다(奕棋二首,呈任公漸)
4.효순이납말을보내왔기에사례하다(謝曉純送衲襪)
5.눈보라를만나신채에서자는데갑자기우울해졌다(衝雪宿新寨忽忽不樂)
6.숭덕군이거문고타는것을듣다(聽崇德君鼔琴)
7.곽명보가영미에서재를짓고서나에게시작품을써달라고했다.2수(郭明甫作西齊于潁尾,請予賦詩.二首)
8.교대되는장화보에게술을권하다(勸交代張和父酒)
9.평여를지나다가이자선이그리웠다.이때이자선은병주에있었다(過平輿,懷李子先,時在幷州)
10.금사화와도미화를공수에게보내다(以金沙酴醿送公壽)
11.공수가그리워부치다(寄懷公壽)
12.무릉(武陵)
13.신음재에서자다일어나다섯수를지어세필에게드리다【왕세필의이름은순량이며,산곡의매부이니,이른바왕랑이다】(呻吟齋睡起五首呈世弼【王世弼名純亮,山谷妹夫,所謂王郞者】)
14.자고가보내온십운에삼가답하다(奉答子高見贈十韻)
15.자고를불러이십이운의작품을짓고더불어상보세필에게편지로보내다(招子高二十二韻兼簡常甫世弼)
16.사자고의「독연명전」이라는작품에차운하다(次韻謝子高讀淵明傳)
17.왕세필의「기상칠형선생」이라는작품의운자를사용하여삼가화운하다(奉和王世弼寄上七兄先生用其韻)
18.오언이번양으로돌아가기에전송하다【작품가운데있는‘삼견추기상’이라는구절은대개북경에있었던3년을말한다】(送吳彦歸番陽【詩中有三見秋氣爽之句,蓋在北京三年矣】)
19.2월정묘일에희우가내렸다.오체로북문유수문로공을위해짓다【『실록』을살펴보니,희녕7년황정견은판하양이되었고문언박은판대명부가되었었다】(二月丁卯喜雨,吳體爲北門留守文潞公作【按實錄,熙寧七年,判河陽,文彦博判大名府】)
20.이우사가시를지어매화를노공에게보내왔다.나는비록이우사를만난적이없지만,그사람됨을생각하면서노두가원차산에게화운한시의예를이용하여차운한다(李右司以詩送梅花至潞公,予雖不接右司,想見其人,用老杜和元次山詩例,次韻)
21.외구가왕정중삼장이조서를받들어남병을살피고돌아오는길에회양에이르러역마를버리고배를타고지나는것을보고기뻐하며지은작품에차운하다.3수(次韻外舅喜王正仲三丈奉詔相南兵,回至襄陽,捨驛馬就舟見過.三首)
22.정중삼장이형산에서돌아와복명하면서,역마를버리고외구사증을지나다가화답하여준작품에차운하다(次韻正仲三丈自衡山返命,舍驛過外舅師厚贈答)

산곡외집시주권제삼(山谷外集詩注卷第三)
1.자첨의「춘채」에차운하다(次韻子瞻春菜)
2.윤달에하상에서동년이백이자진을방문하였는데,자진이시로사례하기에그시에차운하다(閏月訪同年李夷伯子眞於河上子眞以詩謝次韻)
3.이자진이하상에서초대하면서시를보냈는데자못하상의풍경을자랑하기에장난삼아답하면서애오라지한번웃어본다(戱答李子眞河上見招來詩頗誇河上風物聊以當嘲云)
4.이자진의「독도유시」에화답하다(和答李子眞讀陶庾詩)
5.위소주를본떠서병인일14수를짓다【서문을함께싣다】(丙寅十四首效韋蘇州【并序】)
6.공정에게차를빻으라고재촉하다(催公靜碾茶)
7.앞의운자를사용하여공정에게장난치다(用前韻戲公靜)
8.술을대하고노래하여사공정에게답하다(對酒歌答謝公靜)
9.결명을심다(種決明)
10.세필과함께지어제남에있는백씨에게보내고더불어육구사부에게올리다(同世弼韻作寄伯氏在濟南兼呈六舅祠部)
11.백씨가제남에도착하여시를보내왔는데,자못태수가거처하는곳에호산의승경이있다고했다.이에같은운으로화운하다【제남은제주이다.이공택이활주통판으로있었고악주를다스렸는데,호주로옮겨갔다가다시제주로옮겨졌다】(伯氏到濟南寄詩頗言太守居有湖山之勝同韻和【濟南卽齊州.李公擇自滑州通判知鄂,徙湖,又移齊】)
12.이육제의「제남군성교정」의시에차운하여보내다【이육제는덕수이다】(次韻寄李六弟濟南郡城橋亭之詩【德叟】)
13.『시경』의「먼동이트도록잠을못자고부모님두분을생각하노라」를운으로삼아덕수이병이에게부치다(用明發不寐有懷二人爲韻寄李秉彛德叟)
14.사후를모시고백화주에서노닐다가범문정사당아래에서다리뻗고앉아서양담이사안을생각하며「생존화옥처,영락귀산구」라를시를읊고통곡한것이생각나열수를짓다(陪謝師厚遊百花洲槃礴范文正祠下道羊曇哭謝安石事因讀生存華屋處零落歸山丘爲十詩)
15.백화주에서의잡제(百花洲雜題)
16.대나무아래에서술잔을들고(竹下把酒)
17.저물녘누각에올라생각하다(砌臺晚思)
18.사후의「접화」에화답하다(和師厚接花)
19.사후의「재죽」에화답하다(和師厚栽竹)
20.사후가빗속에낮잠을자다가강남의누룩으로빚은술이그리워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師厚雨中晝寢憶江南餅麴酒)
21.사후께서원추리를읊은시에차운하다(次韻師厚萱草)
22.외숙이병으로복관에사배(謝拜)하지못하고서비내리는여름날에잠들다일어나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謝外舅病不能拜復官,夏雨眠起之什)
23.사후께서지은「병간」에차운하다.10수(次韻師厚病間.十首)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