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잠깐손님으로왔다가는풍경에영원히머무는,
열번을나고죽는동안에도이어지는것들에대해서
소설집《빛을걷으면빛》,장편소설《두고온여름》등을발표하며한국문학의가장새롭고신선한빛으로떠오른성해나작가의《우리가열번을나고죽을때》가위즈덤하우스의단편소설시리즈위픽으로출간되었다.소설은건축학과4학년‘재서’와‘이본’의시선을통해경주산내면의오래된고택으로,느긋한경치를빌려잠깐쉬었다갈수있는풍경으로안내한다.
방학을맞이한재서와이본은‘문교수’의서머스쿨에참가하게된다.문교수는캐드와스케치업같은3D프로그램이일반화된시대에80~90년대에나유행하던연필제도를고집하는사람이다.한학기내내등고선만그린재서는뜻밖에도이수업에서A플러스를받는다.최고점을받고도성적이의서를낼만큼자기의심이많고,확신도부족한재서와는달리이본은무엇이든똑부러지게해내는우등생이다.한걸음한걸음을의심하며내딛는‘숙제’재서와한마디를해도비범해보이는‘귀감’이본,달라도너무다른두사람은문교수의과제를하러경주로떠난다.
경주에서그들을기다리고있던건지어진지이백년된낡은고택이었다.두번의지진을겪으며무너졌던지붕과비효율적인동선,기둥과보를연결하는접합부의실금까지…….집을고쳐서다시쓰기를원하는의뢰인권정연씨의의사와는달리두사람의의견은“기둥이랑보는무너트리고주요구조부를철근으로재시공”(66쪽)하는것,‘재건’으로기운다.문교수는실측과연필제도를권유했지만시간에쫓긴재서와이본은고택의기존도면을참고해캐드로옮긴결과를제출한다.문교수의싸늘한비판을받고그제야고택이놓인풍경,경주라는도시를찬찬히둘러본다.
소설은한채의집을지어올리듯꼼꼼하고빈틈없는문장들로‘잠깐들렀다가는손님’인재서와이본뿐만아니라그자리에서운명처럼살아가는권정연씨모녀와첨성대길라잡이할아버지,마을사람들까지샅샅이짚어낸다.집그자체보다,사랑하는사람에게가장아름다운경치를빌려주고,“잘살거라,속으로비는”(85쪽)‘짓는마음’에대해이야기한다.
‘단한편의이야기’를깊게호흡하는특별한경험
위즈덤하우스는2022년11월부터단편소설연재프로젝트‘위클리픽션’을통해오늘한국문학의가장다양한모습,가장새로운이야기를일주일에한편씩소개하고있다.구병모〈파쇄〉,조예은〈만조를기다리며〉,안담〈소녀는따로자란다〉,최진영〈오로라〉등1년동안50편의이야기가독자들의사랑을받아왔다.위픽시리즈는이렇게연재를마친소설들을순차적으로출간하며,이때여러편의단편소설을한데묶는기존의방식이아닌,‘단한편’의단편만으로책을구성하는이례적인시도를통해독자들에게한편한편깊게호흡하는특별한경험을선사한다.위픽은소재나형식등그어떤기준과구분에도얽매이지않고오직‘단한편의이야기’라는완결성에주목한다.소설가뿐만아니라논픽션작가,시인,청소년문학작가등다양한작가들의소설을통해장르와경계를허물며이야기의가능성과재미를확장한다.
시즌150편에이어시즌2는더욱새로운작가와이야기들로가득하다.시즌2에는강화길,임선우,단요,정보라,김보영,이미상,김화진,정이현,임솔아,황정은작가등이함께한다.또한시즌2에는작가인터뷰를수록하여작품안팎으로다양한이야기를들려주며1년50가지이야기축제를더욱풍성하게펼쳐보일예정이다.
위픽시리즈소개
위픽은위즈덤하우스의단편소설시리즈입니다.‘단한편의이야기’를깊게호흡하는특별한경험을선사합니다.이작은조각이당신의세계를넓혀줄새로운한조각이되기를,작은조각하나하나가모여당신의이야기가되기를,당신의가슴에깊이새겨질한조각의문학이되기를꿈꿉니다.
책속에서
원래그렇게에고가약한가?
무슨뜻인지한참생각하고있는데문교수가다시뜻모를말을이었다.
그게건축하는동안도움이될것같긴한데,발목도잡을것같고……아무튼이번여름이거기한테는큰숙제가되겠어.(14쪽)
재서,재서는내숙제예요.
누군가의숙제와귀감.시기심도상대와동등할때에나느낄수있을텐데,이본보다늘한발,아니두발은더늦다보니이제시기는옅어지고무기력에휩싸일때가더많았다.(25~26쪽)
내설계도가시안에서머물지않고결안이되어시공될수있을까.평생평면속에서못벗어나는건아닐까.(45쪽)
이자리에서나는‘차경’을배웠다.경치를빌린다는뜻의차경은건축학과에서‘과제’다음으로자주쓰이는단어중하나였다.그뜻을제대로이해할수없었는데,뭉게구름이방향을바꾸며흘러가고,나무는계절마다색을달리하고,겨울에는눈이조용히쌓이는이창가자리에서풍경은소유가아니라잠시빌리는것이며그누림이건축에서중요하다는것을알게되었다.(50~51쪽)
비름이말이야.잡초지만신통해.영양분을끌어모아서농사를돕거든.땅에서난것들은다쓸모가있어.쓸모를찾는건그땅에머무는사람들이고.(75~76쪽)
사람의수명을백년이라가정할때,우리가열번을나고죽어야비로소천년이흐르는셈입니다.참으로아득한세월이지요?이탑은그보다더긴세월을버텨주었어요.흔들리기도하고기울어지기도하면서요.대견하지않습니까?(88쪽)
허물고새로짓는게내입장에서도더맘편해요.언젠간이사하고싶을수도있고,팔고싶을수도있으니까기왕이면새집이낫기도하고요.근데이제는그러고싶지않아요.여기가손볼데는많아도……우리아빠가지은집이잖아요.(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