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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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벌어진 성상파괴와 신들을 둘러싼 경쟁
이 책은 조선시대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된 종교개혁의 역동적인 과정을 살펴본다. 조선은 유교를 통해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조선이 건국되는 시점에서 시작돼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진행되었다. 이 책은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종교사를 살펴본다. 우선 풍부한 이미지를 사용하던 고려시대의 종교가 어떻게 유교화 과정에서 성상파괴적 종교문화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아본다. 산신이나 불상만이 아니라 유교 전통에서 성인으로 받드는 공자상마저 철거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의례 개혁의 중심부인 명나라보다 오히려 변방의 나라 조선에서 더 철저하게 성상파괴를 실천한 이유는 무엇일까? 1부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조선에서 진행된 유교화가 의례적, 실천적, 물질적인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치밀하게 살펴본다.

2부에서는 민속종교의 현장에서 유교화와 무속 배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중앙 권력과 한양에서 무속을 배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근대 국가의 통치력은 도성을 벗어나면 힘을 미치지 못했다. 민족종교의 무대에서는 예학의 논리가 먹히지도 않았고, 음사라고 비난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신들과 소통하고 죽은 자들을 위한 의례에서 무당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유자들은 무당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에 맞서는 무당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 대결은 수백 년 뒤 군사정권 시절 ‘미신 타파’로까지 이어진다. 2부에서는 무당과 유생의 지난한 대결 과정을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이 책은 조선시대 종교사를 폭넓은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전근대 한국 종교문화가 형성되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종교문화가 구성된 기반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

한승훈

저자:한승훈
서울대학교종교학과를졸업하고같은과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취득했다.현재원광대학교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HK연구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로재직중이다.비교종교학적인관점에서동아시아종교사를연구하고있다.
저서로『혁명을기도하라』(문주,2012),주요논문으로「미륵·용·성인」(『역사민속학』33,2010),「개벽(開闢)과개벽(改闢)」(『종교와문화』34,2018),「종교자료로서의심문기록」(『종교문화비평』37,2020)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부:조선의성상숭배와성상파괴
1.산위의성상들
종교부재와종교과잉
한국종교의‘프로테스탄트적’경관
이미지의고려종교
신으로섬기던왕건상
천자가보낸도사
교황이자카이저가되고자한주원장
신들에게가족은있는가
표준화된신들
신상에서신주로
유생들의성상파괴운동
승려가파괴한성모상

2.이단의신상
왕가의불교신앙
불상에절할수없다
불교를좋아한양무제와영락제
마르고썩은부처의뼈
석가모니의누런얼굴
이적을일으키는불상
목이잘린불상
돌아앉은불상
귀신들린불상
땀흘리는불상
신주와불상
신주에대한성상파괴
피흘리는십자가상

3.유교의성상
청년김종직과성주공자묘
공자의사당과부처의궁전
떠돌이공자가황제가되기까지
성령과잡귀
소상의문묘
신주의문묘
중국사신들이본조선의공자상
100년동안의더러운풍습
바라보기에존엄한공자상
가정제의의례개혁
땅에묻힌공자상

2부:무당과유생
4.유교의무속정복
유교화와기독교화
종교개혁으로서의조선건국
기우제의무당들
원혼을달래는국가의례
공식종교와민속종교라는두개의무대
한양에서추방당한무당들
대궐안의무당들
무당에대한처벌

5.‘요사한’무당과‘영웅적’지방관
만들어진무속전통
기자에서단군으로
유교경전속의무당
신령한무당과천한무당
사악한무당들
아전과무당
서문표모델
함유일의패배와안향의승리
영웅적지방관들의시대
모욕당한신의복수

6.신과망자를둘러싼투쟁
민속종교의무대에서의유생들
귀신을부리는선비들
귀신을퇴치하는무사들
오금잠신과삼척성황신
신을고발한허균
지리산성모와김종직
꿈속에서신과만나는선비들
조상의신을모실자격
제사와굿사이
선비들의임사체험
진짜무당과가짜무당

맺음말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권위주의는유교탓,기복주의는무속탓?

조선의유교화과정에서벌어진억압과저항,
유교와무속의이중구조가만들어진배경을탐구한다

건국과함께시작된조선의종교개혁과성상파괴
흔히한국의제도종교는‘유교적’인권위주의와‘무속적’인기복주의라는특징을갖고있다고말한다.목사나승려를극진히섬기는가부장적종교문화는유교탓이고,수능시험이치러지는학교앞에서합격을비는모습은무속의영향이라는것이다.과연그럴까?
저자는이런시각에대해인과관계가거꾸로되어있다고설명한다.오늘날한국종교문화의모습은전통의잔재가아니라는것이다.그렇다면어떤역사적과정을거쳐한국종교문화는오늘날과같은모습을갖게됐을까?

이책은조선시대에장기적이고지속적으로전개된종교개혁의역동적인과정을살펴본다.조선은유교를통해새로운지배체제를구축하고자했다.이프로젝트는조선이건국되는시점에서시작돼왕조가멸망할때까지진행되었다.저자는정치,사상,사회,문화전영역에서이루어진이과정을유교화라고부른다.
유교화는유럽의기독교화에대응되는표현이다.기독교화는그리스도교를거부하는이단과이교를정복해나간과정이다.이교도군주들을개종시키고,개인을기독교화하기위해마녀사냥,종교재판등폭력적인과정이오랫동안진행되었다.
유교는그리스도교처럼개종이나배타적인소속을강요하지않았다.유자를자처하면서도불교와도교식의례나수행을양립할수있었다.
하지만송나라의신유교가한반도에들어오면서상황은달라진다.유교가국가의제도와의례체계에집중되어있었다면,신유교는범위를대폭확장해불교와도교의영역이던수양론과우주론까지포괄했다.이제유자는불교나도교의체계를빌리지않고도수행을통해성인의경지에도달할수있게되었다.여말선초유생들은이전과는확연히다른정체성을갖기시작했다.
종교사의관점에서조선건국은신유교를통한유교화의개시이기도했다.이책에서저자는유교화의의미를조금다른각도에서바라본다.유교화는사상적,제도적문제만이아니라문화전반을개조하려는종교개혁에가까웠다.

유교의나라조선에서유생들은왜공자상을파괴했을까?
유교화는공식종교와민속종교라는두개의무대에서다른방식으로진행되었다.
1부에서는풍부한이미지를사용하던고려시대의종교가어떻게유교화과정에서성상파괴적종교문화로바뀌게되었는지를알아본다.조선전기까지만해도산신이나성황신의신상을진흙이나나무,금속으로만들어서모셨다.신에게는가족도있어서상으로만들어함께모시고제사를지냈다.그런사당이전국곳곳에있었다.그런데오늘날이런장소나의례는거의찾아보기힘들다.조선시대거의전기간에걸쳐이미지로가득했던신들의거처가파괴되거나다른것으로대체되었기때문이다.
유생들은불교도배척했다.개인적으로는불교를좋아할수도있고,가족들은불교의례를이어갔을수도있다.그러나유교국가의왕궁안에불상이있어서는안되었다.
“16세기에이르러유생들은불상을파괴하고,신당을불태우고,신상을부수어내다버렸다.성상파괴주의의귀결은유교의가장신성한대상인공자상의철거였다.개성과평양에남아있던유서깊은공자상은국가에의해제거되었다.상을섬기는것은불교와같으며,그것은오랑캐의풍습이라는논리였다.”
산신이나불상만이아니라유교전통에서성인으로받드는공자상마저철거하게된동기는무엇일까?의례개혁의중심부인명나라보다오히려변방의나라조선에서더철저하게성상파괴를실천한이유는무엇일까?1부에서는이런질문에대답하기위해조선에서진행된유교화가의례적,실천적,물질적인차원에서어떤방식으로이루어졌는지를치밀하게살펴본다.
유교화의또다른목표는무속타파였다.우선공식적인국가의례에서무당이배제되었다.그리고무당은한양밖으로추방되었다.하지만가뭄이나왕족의질병같은문제가생기면무당에게의지해야했다.제도적영역에서무속을완전히배제하는일은간단치않았다.결국조선후기에이르면공식종교영역에서무속적인요소는대부분사라진다.마침내유교가공식종교를장악하기에이른다.

누가귀신을다루는데더유능한가?
신과죽은자를둘러싼무당과선비의팽팽한대결
2부에서는민속종교의현장에서유교화와무속배제가어떻게이루어졌는지를살펴본다.유생들은무당이란음사를일삼고백성을속이는천박하고미개한존재라고여겼다.
공식종교의장에서무속을배제하고추방하기는했지만,한동안유교와무속은한동안공존했다.가뭄이심할때기우제에무당을동원하는정도로무속은제한적으로만존재했다.유교예제가정비되어감에따라점차무속적요소는추방되었다.
같은시기민속종교의장에서벌어진양상은달랐다.중앙권력과한양에서무속을배제하는데는성공했지만,전근대국가의통치력은도성을벗어나면힘을미치지못했다.지방에서벌어진무속탄압은지방관과재지사족이주도했다.유자들은지역에서문화적지배력을강화해나가고자했다.하지만이영역은무당과술사같은민간종교전문가들이장악하고있었다.바로여기에서치열한경합이벌어졌다.유자들에게는법적,물리적강제력이없었다.한쪽이월등하게우세하지않다보니공식종교무대에서일어난유교화보다훨씬길고지루하게이어졌다.
“지방관이무속을타파하는방법은조정에서이루어지는논의와는질적으로달랐다.제도적인논의의장에서무속을다루는일반적인방식은경전의전거와과거의전례를통한정도(正道)와권도(權道)사이의저울질이었다.그러나지방관이지역민들을설득하는상황에서는이런식의이론적,예학적인논의는거의이루어지지않는다.두드러지는것은힘의과시다.무속의타파는대담하고신속하고폭력적일수록성공할가능성이높았다.그런신성모독을일으킨관리가귀신의보복을받지않는다는것은그들의권능이무당의귀신보다우위에있다는확실한증거가되었다.”
민족종교의무대에서는예학의논리가먹히지도않았고,음사라고비난하는것도의미가없었다.신들과소통하고죽은자들을위한의례에서무당은압도적인우위를점하고있었다.유자들은무당이차지하고있는지위를빼앗기위해치열하게경쟁했다.이에맞서는무당의저항도만만치않았다.유생들은무속을타파하고자시도했지만,민중의생활속에서무속은유교로는대체할수없는종교적기능을담당했다.이것이유교와무속의이중구조라는독특한한국종교문화의구도를만들어냈다.2부에서는무당과유생의지난한대결과정을생생하게펼쳐보여준다.

이책은조선시대종교사를폭넓은자료를통해보여주고있다.이책을통해우리는전근대한국종교문화가형성되고변화해가는모습을알수있을뿐만아니라오늘날한국의종교문화가구성된기반을이해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