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12.00
Description
“새를 만난 적 없는 새에게”
만난 적 없는 낯선 언어와의 마주침


육호수의 첫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육호수는 “사물의 뉘앙스를 건져내는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이다. 등단작 「해변의 커튼콜」을 포함해 총 34편의 시와 부록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언어로 유년 시절의 상처와 성장을 다룬다. 시집 곳곳에 성경 구절이 인용되고 지상과 천국의 풍경이 겹친다. 신성성을 모티프로 한 여러 시편들에서 엿보이는 비딱한 언어들은 기도 바깥의 세상으로 몸을 내밀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다. “새를 만난 적 없는 새에게”라는 시인의 말처럼, 독자들은 만난 적 없는 낯선 언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소년기의 죄와 상처의 성장을 기록하다


밖에 나서지 못하고 불 꺼진 식탁에 앉아
콩 조림을 세었다
콩알만큼의 어둠을 방 안에 심었다

더 나빠져야지 내일은
조금도 비켜 가지 말아야지
―「나는 방을 감추는 사람입니다」 부분


육호수의 시에는 죄를 짓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 아이는 “호랑거미의 통통한 배에 플라스틱 총알을 쏘”기도 하고 “어항에 고춧가루를 쏟아버리고 울”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의 죄를 모르지 않는다. 그 아이는 “내가 깬 유리병을 대신 치우는 사람에게/용서를 빌 뻔”하는 아이다. 꿈에서 귀신들이 자신을 울리는 까닭에 대해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또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그렇기에 “더 나빠져야지”라고 말한다. 흔히 ‘나쁘다’고 낙인 찍힌 아이들이 더 과장되게 나쁘게 구는 것처럼 말이다.
죄의 기준점은 판단하는 이들마다 다르다. 비단 인간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분명히 나쁜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만으로도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다들 죄를 지은 채이기도 하다. 선함도 악함도 모르던 아이들은 잘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선함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들은 유년의 상처가 된다. 몸의 상처는 대개 시간이 흐르면 치유되지만, 잘못을 통해 생긴 유년의 상처들은 아이가 자라나도 치유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도 함께 자란다. 우리가 유년의 기억에 오랫동안 매여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다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꿈속의 나는 여전히 “일곱 살로 깨어”난다. 어쩌면 이러한 상처들이 꿈속에서 일곱 살로 깨어난 시인이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쓰게 만드는 원인이지 않을까.


그러나 일곱 살의 나는
시를 못 써서

의자에 앉아 한꺼번에
나이를 먹어야 했다

꾸역꾸역
울음이 쏟아졌다
―「일곱 살의 그림자가 나를 따라 들어오고」 부분


눈 한 송이 만큼의 기적 같은 시


잘못을 통해 생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용서를 구하고 받는 일이다. 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용서를 빌면 되지만, 지은 적도 없는데 타고나는 죄는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 용서를 비는 손과 기도를 올리는 손의 형상이 비슷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목자의 아들 혹은 독사의 자식”으로서 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기도와 메아리 사이” 어디쯤에서 울려 퍼진다. 시집 곳곳에서 성경의 구절이 인용되고, 현실과 천국의 풍경이 서로 겹치는 것은 육호수 시의 특징 중 하나다.


살점 없는 십자가를 왜 바다에 던지나
―「해변의 커튼콜」

벗은 몸으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그 열쇠로 우리 집 문을 열 수는 없었어
―「끝났어, 모두에게 동등한 여름 방학」

옥탑에서 천사는 멸치 똥을 뗀다
삼십 분 안에 사랑에 빠져야 하는 멜로 영화 주인공의 눈빛으로
종종 아래를 내려다본다
지상의 주민이 되고 싶어…
―「양들의 눈에 비친 습지」


육호수의 첫 시집을 순례의 시집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그는 <부록>에서 파울 클레의 그림에 등장하는 천사 중 하나인 ‘건망증이 심한 천사’에게 편지를 띄운다. 그는 편지를 통해 “이 세상의 고통이 저 거미줄만큼 가늘어질 순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축복을 오늘 오후의 빛 속에 전부 가둘 수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마음을 놓아버린 곳에서 언제나 길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아포리아와 마주하게 된다. 그의 시 곳곳에는 유년에 심긴 어둠의 씨앗들이 번성해 있지만, 그럼에도 마냥 어둡지는 않다.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눈부신 빛 쪽을 향해 있으며, 종종 따뜻하다. 그의 시선이 계속해서 천사에 가닿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시가 누군가에게 “눈 한 송이만큼의 기적”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죽은 시인의 수를 다 합한 것보다 살아 있는 시인의 수가 더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인으로서 세상에 새로운 시집을 내놓는 까닭일 것이다.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언어들


육호수의 시는 경쾌하게 방황한다. 사뿐사뿐 방황할 줄 아는 언어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육호수의 시에 가서는 아침 햇살에 비치는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무게를 지닌다. 그래서 가벼운데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생채기가 유년을 떠나서도 계속 자라는 광경을 보여준다. 유년의 성장, 상처의 성장, 이 모든 것을 껴안고 있는 기억의 성장을 육호수의 시에서 새삼 목격한다. 매 시편 성장하는 그 기억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고 가벼운 발놀림도 있다. 진중한 질문도 있고 비딱한 반문도 있다. 방황하는 자의 어수선한 입이 있는가 하면 신성을 묻고 또 묻는 자의 간절한 귀도 함께 있다. 이처럼 정반대의 풍경이 하나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나니, 그것이 곧 육호수의 시선이자 그의 시 세계다. 감각과 사유의 절묘하고도 기묘한 균형감을 이 신예 시인의 시에서 또 한 번 맛보고 오래 음미할 것으로 믿는다.
―김언(시인) 추천사.


저자 소개

육호수
1991년생.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여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자

육호수

2016년대산대학문학상에시,2022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평론이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으로『나는오늘혼자바다에갈수있어요』가있다.

목차

1부

나는방을감추는사람입니다
미아
루어
물길
비둘기미신
Insaeculasaeculorum
끝났어,모두에게동등한여름방학
콤포스텔라

2부

해변의커튼콜
포교
양들의눈에비친습지
부처의눈에비친부처
파종
철야
고해전일
고해당일
살을씻어먹으면
소돔의밤
스노우볼
나는오늘혼자바다에갈수있어요
맛체바
나의어린신이집을나간날

3부

일곱살의그림자가나를따라들어오고
장롱속에서
실험관찰
기항지
난간이허리춤에오는나이
어젯밤방안을들여다보던
빨간눈동자는다어디로갔을까?
누나일기
호랑이해야합니다남극의사실입니까
순진한의인화
…GroundControltoMajorTom
낙원의개

부록|건망증이심한천사에게

출판사 서평

“새를만난적없는새에게”
만난적없는낯선언어와의마주침


육호수의첫시집『나는오늘혼자바다에갈수있어요』가아침달에서출간됐다.육호수는“사물의뉘앙스를건져내는감각이탁월하다”는평을받으며2016년대산대학문학상을수상,작품활동을시작한신인이다.등단작「해변의커튼콜」을포함해총34편의시와부록으로구성된이번시집은어두우면서도경쾌한언어로유년시절의상처와성장을다룬다.시집곳곳에성경구절이인용되고지상과천국의풍경이겹친다.신성성을모티프로한여러시편들에서엿보이는비딱한언어들은기도바깥의세상으로몸을내밀고자하는시인의의지다.“새를만난적없는새에게”라는시인의말처럼,독자들은만난적없는낯선언어와마주하게될것이다.

소년기의죄와상처의성장을기록하다

밖에나서지못하고불꺼진식탁에앉아
콩조림을세었다
콩알만큼의어둠을방안에심었다

더나빠져야지내일은
조금도비켜가지말아야지
―「나는방을감추는사람입니다」부분

육호수의시에는죄를짓는아이가등장한다.그아이는“호랑거미의통통한배에플라스틱총알을쏘”기도하고“어항에고춧가루를쏟아버리고울”기도한다.아이는자신의죄를모르지않는다.그아이는“내가깬유리병을대신치우는사람에게/용서를빌뻔”하는아이다.꿈에서귀신들이자신을울리는까닭에대해“무언가잘못했기때문”이라고생각하는아이다.자신이잘못했다는,또는잘못되었다는것을아는아이는그렇기에“더나빠져야지”라고말한다.흔히‘나쁘다’고낙인찍힌아이들이더과장되게나쁘게구는것처럼말이다.
죄의기준점은판단하는이들마다다르다.비단인간이아니더라도생명을가진존재들에게위해를가하는일은분명히나쁜일이지만,어떤이들은물건을망가뜨리는것만으로도잘못했다고말하기도한다.종교적인관점에서는태어날때부터이미다들죄를지은채이기도하다.선함도악함도모르던아이들은잘못했다는말을듣는것을통해처음으로자신의선함을의심하기시작한다.
그리고그러한잘못들은유년의상처가된다.몸의상처는대개시간이흐르면치유되지만,잘못을통해생긴유년의상처들은아이가자라나도치유되지않는다.오히려상처도함께자란다.우리가유년의기억에오랫동안매여있는이유일것이다.그래서다자라성인이된이후에도꿈속의나는여전히“일곱살로깨어”난다.어쩌면이러한상처들이꿈속에서일곱살로깨어난시인이책상앞에앉아시를쓰게만드는원인이지않을까.

그러나일곱살의나는
시를못써서

의자에앉아한꺼번에
나이를먹어야했다

꾸역꾸역
울음이쏟아졌다
―「일곱살의그림자가나를따라들어오고」부분


눈한송이만큼의기적같은시

잘못을통해생긴상처를치유하는방법중한가지는용서를구하고받는일이다.사람에게지은죄는사람에게용서를빌면되지만,지은적도없는데타고나는죄는누구에게용서를빌어야할까.용서를비는손과기도를올리는손의형상이비슷한것은이때문일것이다.
“목자의아들혹은독사의자식”으로서죄를저지르고용서를구하는시인의목소리는“기도와메아리사이”어디쯤에서울려퍼진다.시집곳곳에서성경의구절이인용되고,현실과천국의풍경이서로겹치는것은육호수시의특징중하나다.


살점없는십자가를왜바다에던지나
―「해변의커튼콜」

벗은몸으로천국의열쇠를쥐고있었는데
그열쇠로우리집문을열수는없었어
―「끝났어,모두에게동등한여름방학」

옥탑에서천사는멸치똥을뗀다
삼십분안에사랑에빠져야하는멜로영화주인공의눈빛으로
종종아래를내려다본다
지상의주민이되고싶어…
―「양들의눈에비친습지」

육호수의첫시집을순례의시집으로부를수도있겠다.그는[부록]에서파울클레의그림에등장하는천사중하나인‘건망증이심한천사’에게편지를띄운다.그는편지를통해“이세상의고통이저거미줄만큼가늘어질순없을것입니다.이세상의축복을오늘오후의빛속에전부가둘수도없을것입니다.”라고말한다.그리고“마음이마음을놓아버린곳에서언제나길이다시시작되었다”는아포리아와마주하게된다.그의시곳곳에는유년에심긴어둠의씨앗들이번성해있지만,그럼에도마냥어둡지는않다.세상을보는그의시선은눈부신빛쪽을향해있으며,종종따뜻하다.그의시선이계속해서천사에가닿는것은이때문이다.
그의시가누군가에게“눈한송이만큼의기적”이되기를희망한다.그것이“죽은시인의수를다합한것보다살아있는시인의수가더많은도시”임에도불구하고그가시인으로서세상에새로운시집을내놓는까닭일것이다.

사금파리처럼빛나는언어들

육호수의시는경쾌하게방황한다.사뿐사뿐방황할줄아는언어다.아무리어두운기억도육호수의시에가서는아침햇살에비치는사금파리처럼빛나는무게를지닌다.그래서가벼운데가볍게보아넘길수없는생채기가유년을떠나서도계속자라는광경을보여준다.유년의성장,상처의성장,이모든것을껴안고있는기억의성장을육호수의시에서새삼목격한다.매시편성장하는그기억에는어두운그림자도있고가벼운발놀림도있다.진중한질문도있고비딱한반문도있다.방황하는자의어수선한입이있는가하면신성을묻고또묻는자의간절한귀도함께있다.이처럼정반대의풍경이하나의시선에서이루어지나니,그것이곧육호수의시선이자그의시세계다.감각과사유의절묘하고도기묘한균형감을이신예시인의시에서또한번맛보고오래음미할것으로믿는다.
―김언(시인)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