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의문은 질문의 사생아
[기쁨의 슬픔]은 한명희 시인의 네 번째 신작 시집으로, 「이불 속을 드나드는 새소리」 「아주 잠깐 찾던 이름처럼」 「달리는 사막」 등 61편이 실려 있다.
한명희 시인은 2009년 [딩아돌하]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나무는 저기압에 가깝다] [마이너리거] [아껴 둔 잠] [기쁨의 슬픔]을 썼다.
한명희는 서정시의 오랜 전통을 허문다. 한명희에게 정서적 동화작용은 거짓으로 다가온다. 그가 볼 때 어떤 대상도 주관성에 동화되지 않는다. 주체가 대상을 자신과 동일시할 때, 대상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 한명희의 시들은 서정시의 오랜 문법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그가 볼 때 독자에게 자신과 동일한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것은 착각이다. 어떤 꼬심에도 독자는 현혹되지 않는다. 독자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공감이란 동일한 감정의 일시적 소유에 지나지 않는다. 한명희는 독자에게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볼 때 예술의 역할은 공감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 Brecht)가 ‘소외 효과(alienation effect)’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명희는 독자가 자신의 시에 아무 생각 없이 매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한명희의 시들은 관객(독자)들을 무대(텍스트) 밖으로 자꾸 밀어낸다. 그는 독자가 수동적 소비자가 되어 공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려면 시인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막고 독자를 텍스트 밖으로 계속 밀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그가 배열한 문장들을 보고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한명희는 예술이 도달해야 할 곳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본다. 예술은 일방적인 명령의 전달도, 수동적인 감동・감화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자의 딴지 걸기가 발생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한명희의 시에서 돋보이는 것은 부정의 도저한 힘이다. 그는 서정성을 지운 자리에 삭막하게 사물화된 현실을 배치하고 그것을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그의 문법에 의하면 진정한 서정성은 그것을 부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온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쓴다면, 그것은 야만”이라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을 염두에 두면, 또 다른 비극의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것 역시 야만이거나 허영일 수 있다. 한명희는 서정적 공감이 아니라 비판적 질문을 유발하면서 ‘서정 이후의 서정’을 찾고 있다. (이상 오민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한명희 시인은 2009년 [딩아돌하]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나무는 저기압에 가깝다] [마이너리거] [아껴 둔 잠] [기쁨의 슬픔]을 썼다.
한명희는 서정시의 오랜 전통을 허문다. 한명희에게 정서적 동화작용은 거짓으로 다가온다. 그가 볼 때 어떤 대상도 주관성에 동화되지 않는다. 주체가 대상을 자신과 동일시할 때, 대상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 한명희의 시들은 서정시의 오랜 문법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그가 볼 때 독자에게 자신과 동일한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것은 착각이다. 어떤 꼬심에도 독자는 현혹되지 않는다. 독자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공감이란 동일한 감정의 일시적 소유에 지나지 않는다. 한명희는 독자에게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가 볼 때 예술의 역할은 공감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 Brecht)가 ‘소외 효과(alienation effect)’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명희는 독자가 자신의 시에 아무 생각 없이 매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한명희의 시들은 관객(독자)들을 무대(텍스트) 밖으로 자꾸 밀어낸다. 그는 독자가 수동적 소비자가 되어 공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려면 시인은 독자의 감정이입을 막고 독자를 텍스트 밖으로 계속 밀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그가 배열한 문장들을 보고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한명희는 예술이 도달해야 할 곳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본다. 예술은 일방적인 명령의 전달도, 수동적인 감동・감화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자의 딴지 걸기가 발생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한명희의 시에서 돋보이는 것은 부정의 도저한 힘이다. 그는 서정성을 지운 자리에 삭막하게 사물화된 현실을 배치하고 그것을 끝까지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꿈꾼다. 그의 문법에 의하면 진정한 서정성은 그것을 부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온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쓴다면, 그것은 야만”이라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을 염두에 두면, 또 다른 비극의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것 역시 야만이거나 허영일 수 있다. 한명희는 서정적 공감이 아니라 비판적 질문을 유발하면서 ‘서정 이후의 서정’을 찾고 있다. (이상 오민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기쁨의 슬픔 (한명희 시집)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