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놀러 와 (박설희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 (박설희 시집)

$12.00
Description
존재의 경계에서 건네는 초대장
일상과 사회, 역사적 맥락의 응답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으며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한 박설희 시인의 시세계는,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신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생명과 죽음, 자연과 인간, 역사와 공동체, 일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폭넓은 시선을 세밀한 시적 언어로 엮어내고 있다. 시인은 한 생명이 떠나고 또 다른 생명이 오는 경계 위에서 우리 삶의 근원과 의미를 절묘하게 응시한다.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왔다”는 시인의 말에서 보이듯, 존재의 순환, 삶과 죽음의 교차, 그 사이를 머무는 간절함 등 인류 공동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박설희 시인은 침묵 속에서 다가오는 심장, ‘기척들’이란 표현을 통해 삶의 미세한 움직임과 자연의 소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내면의 고요와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의미의 초대를 건넨다.

박설희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와 밀도 높은 서정성에 있다. 시인은 일상과 자연, 가족을 언어의 재료로 삼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순간을 시적 공간으로 소환한다. 동시에 산문적인 흐름과 내레이션, 대화체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서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시적 언어를 완성한다. 이러한 특징은 시를 단순한 정서의 고백을 넘어 독자와의 내밀한 교감, 그리고 사유의 확장을 지향하게 한다.

시집 전체에 흐르는 정서 중 하나는 노동, 공동체, 역사적 상처 등 사회적·시대적 문제의식이다. 「법과 편」 「명령」 등에서는 1960~70년대 노동자와 민중의 삶, 그리고 전태일의 일기를 인용하는 등 역사적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발언과 연대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또한 「지바현 능소화」와 같이 한일 간의 역사, 억울하게 흘린 피의 기억, ‘이 자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에서 보이듯, 사회적 비극과 인간의 내면이 뚜렷하게 맞물려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와』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역사와 노동, 공동체와 자연을 넘나드는 입체적 시선으로 현대인의 깊은 내면을 어루만진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일상적 경험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의미, 사회적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독특한 이미지와 언어 실험, 그리고 공감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메시지는 각계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박설희

저자:박설희
강원속초에서태어나2003년《실천문학》으로등단했다.
시집『쪽문으로드나드는구름』『꽃은바퀴다』『가을을재다』,산문집『틈이있기에숨결이나부낀다』등이있다.

목차

1부
다되어가/컵,지워지는/진창의노래/눈/척도/종/완전한어둠/교착膠着/오늘의불협화음/명령/법과편/향기점占/11월/떡!하니

2부
지구를굴린다/겨울들판에서/눈의부족/첫물/바보숲명상란/물속의사생활/문어/아로니아밭/수척해진이유/모래의시간들/수박/만월/체위에관한단상/카니발

3부
환희/묵,묵/관管/바퀴/식욕유/터/길위에서/지바현능소화/반쪽짜리자화상/곰배령/아버지의손가락/경주남산/천년의아침을내다보다/입

4부
초대/비탈에기대다/방/지나가는비/목/끝내괄호를닫지못하고/그림자혹은/거품/한개촛불앞이었다/무서운사람/늦게도착한/노을진자리/꽃의심장에도달하려면/돌멩이하나/들판에서

해설-진창길을헤쳐가는‘눈의부족’의노래|임동확(시인)

출판사 서평

진창길을헤쳐너른들판으로
나아가는우리의합창

박설희시인의이번시집에서상당한비중을차지하고있는농업적이고생태학적상상력도이와맞물려있다.일차적으로박시인은우리가살고있는세계의하나인“한강”“강물”속에“당뇨약”에“중독된”“등굽고/비늘이흐물”한“물고기가늘어나고있”(「물속의사생활」)는사실에주목한다.동시에해발“오백미터,천미터,천오백미터”에서자생하던“구상나무자작나무가문비나무”등이전지구적인기후이상으로“더이상발디딜곳이없”(「수척해진이유」)어진현실을폭로하고고발한다.그러면서여기에“너무늦게도착한”깨달음의“시간”일망정인간과자연사이에새로운협력과동반의관계로전환할“준비”(「늦게도착한」)가되어있어야한다는시대적요구와주장을담아낸다.

박설희시인의시적태반은단연‘진창’이다.과도한물기로질퍽질퍽해져걷거나활동하기에불편한땅과같은오늘의현실이그시적기반이다.유감스럽게도그렇다.우리는평소서로우애하며사이좋게지내다가도마치‘진흙탕에서싸우는개들’(泥田鬪狗)처럼먹다남은뼈다귀같은사소한이해관계또는생각의차이때문에금세돌변해상대방을증오하거나죽기살기로서로물어뜯기에바쁘다.격랑이일어나기라도할라치면평소잔잔하고평화스럽게보이던맑은호수밑바닥에가라앉아있던진흙탕물이수면으로용솟음치듯이언제든진흙벌같은시커먼혼란과갈등이재현될수있는곳이,지금우리가살고있는이곳이다.
구체적으로박설희시인에게그런‘진창’은스스로가적당히견디고극복할만큼의시련과고난을주는땅의하나가아니다.그것은“아버지의자전거뒤”에서떨어져“헛돌고있는바퀴를바라”볼수밖에없었던“도랑”(「바퀴」)과같은속수무책의망연자실한현실을의미한다.그런가하면“한번”문“닭꼬치”먹이를“끝까지놓지않는”“자라”처럼,이른바“수저를입에문이후”시작된인간의“뜨거”운욕망과탐욕이“가장나중까지식지않는”(「목」)삶의아수라장을의미하기도한다.

박설희시인은이처럼모든시인들이도달하고자하는궁극적인지향점이라고할수있는,그렇다고해도쉽게얻어질리만무한,명실상부한말과실재또는이름과자신의본성과의일치를꿈꾸는시의길을염탐하고있다.시인은결코만만치않을앞으로의시적장도를예고해“너른들판에서혼자비와우박을온몸으로맞”(「들판에서」)고있는채.아니면아마도영원히해결할방도없는진창의진실에닿기위해“괄호를열”었지만,“끝내”그“괄호를닫지”(「끝내괄호를닫지못하고」)못한채.“돌”과“칼”을“삼키”어야할지도모르지만“그시간”들을넉넉히“다견뎌”내고말,“정말무서운사람”(「무서운사람)」박설희시인에게큰박수와응원을보낸다.

시인의말

한생명이가고
한생명이왔다

침묵속에서
사뿐사뿐다가오는
심장을두근대며다가오는
기척들

마음이간절해지는곳들에

책속에서

“올해첫물이에요”
비닐봉지에꽁꽁싸맨
감자몇알과상추를내민다
까맣게그을린손등과얼굴로

비닐봉지를푸는데
씨를뿌리며흥얼거린노랫소리들린다
잎과줄기가피어나리라는부푼가슴,
긴열기견디고스며드는어스름이고여있다

울컥,쓰나미처럼밀려드는첫물의시간들

풋내나는걸음걸이
두근거리는심장
시디시어입에침이고이는
떫고까끌거리는
첫입학,첫사랑,첫키스,첫월급,첫출산
첫죽음까지
­「첫물」부분

우리집에놀러와

감자밭가장자리를지나
시냇물돌징검다리건너
조팝꽃쪼르르피어있는오솔길

혼자오지말고
근처를어슬렁거리는고양이
심심한구름을데려와
정처없이나풀거리는나비
맑고서늘한새소리와함께와

사심私心은두고와
가볍게가볍게

첫번째갈림길을만나
소나무우거진숲으로
백걸음쯤걸으면
네키의열배나되는바위가졸고있지
­「우리집에놀러와」부분

성남씨가침대에누워서천장을바라보고있다
안보이는눈을껌벅거리며순녀씨가귀를세운다
소란씨는휠체어에서뒤틀린몸을버티며간신히눈을맞춘다
이동차량이안잡힌대준씨는줌화면으로얼굴을보인다

시창작첫수업
내시선이이리저리방황한다
가지가앙상한은행나무가교실안을기웃거린다

은행나무는사람보다먼저직립했다
나무의체위를보며사람들도직립을꿈꾸었을까

물속에서서자는고래의체위를
날면서자는새들의체위를그려보다가
내앞에놓인시를더듬더듬읽는다
­「체위에관한단상」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