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항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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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수남

저자:정수남
1984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소설「접목」이당선되어등단.
작품집으로「분실시대」「별은한낮에빛나지않는다」「타성의새」「아직도그대는내사랑」「시계탑이있는풍경」「길에서,길을보다」「앉지못하는새」「아주이상한가출기」「생명의기원」등이있으며,장편소설로「행복아파트사람들」중편소설「개들의전쟁」,시집으로「병상일기」「너,지금어디있니?」산문집으로「시한잔의추억(1)(2)」과어린이글짓기책으로「소설가정수남선생과함께떠나는365일글짓기여행(1)(2)」이있다.자유문학상과,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문학저널창작문학상,전영택문학상,경기문학상,이범선문학상,시선소설문학상을수상하였고,현재‘정수남문학공작소’와파주중앙도서관에서문학을가르치고있다.한국문인협회,국제PEN클럽한국본부회원으로활동하고있으며,창작21작가회상임고문,한솔문학고문,고양작가회의고문을맡고있다.

목차


1부_아내의이름

아내의이름/너,지금어디있니?/아직은아니야/사랑법/행복/아들의전화번호/내가그리는바다는/아내의운동화/요즘나는울면서산다/행복이라는것은/착각/이사/어느여름날오후/꽃샘추위/내가두려운것은/황혼을바라보며/거울이나에게/지하철에서/둘이있어도우리는혼자다/폭염/의자가있는자리/아내는강이다/삼계탕

2부_사랑한다는것은

나도아플때가있어요/아내의일흔아홉번째생일/자전거타기/꽃/된장찌개를끓이며/아내는거짓말쟁이/너,살아났구나/인연/소꿉장난/나의기도/그대이름은/아직모르겠니?/사랑한다는것은/무좀약을바르며/나도만나고싶다/나는누굴까/문/아내의음악소리/형님산소에서/우리집과‘우리집’/몰라/내몸이나를떠나겠다고위협한다/내아내는화가다!

3부_내가웃는까닭은

아내는시한폭탄/모과가웃는다/내가웃는까닭은/공원에서/어느날밤에/이루의하루/여름날/카톡이왔다/아내의시간여행/내가누구지?/아내의다리/꿈(1)/꿈(2)/꿈(3)/감사할제목/부부의힘/친구의한마디/나무/아버지산소에서/로또복권/가족사진/아버지말씀/의류수거함

4부_아내의시간

결혼기념일/팔월/기역,니은,디귿/목/돌멩이하나/아내의구두를닦다/농담같은/아내의시간/딱,두번/아내는일류배우다/치매환자/나이팔십은/희망사항(1)/희망사항(2)/아내의핸드폰/남성을보다/아내도때로는나처럼울까/오늘하루도/분리수거의날/버스에서본여자/아내의엄마/무제/라면한컵도

해설
긴슬픔과깊은아픔을이겨내기위하여_이승하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시가찾아와나를벗긴다.
어제도그제도벗겼다.

그런데벗고,벗고,또벗으니까
지금까지보이지않던내가보이기시작했다.
내가보이니까그동안분실했던웃음이다시나를찾아왔다.
그웃음이나에게세상을이길힘을주었다.
고맙다.

아내가이시를읽고
희망을놓지않았으면좋겠다.

책속에서

<아내의운동화>

빗소리가고즈넉한오후
신발장에서
그대를기다리며졸고있던
하얀운동화가문득
투덜거리는소리를듣는다

신을사람이찾지않아
몇년동안혼자외로웠다는
왜꺼내주지않느냐는

꽃핀봄날
몇년만에비맞으며
자기도바깥구경하고싶다는

그래도그대는
일어날줄모른다

운동화가그토록기다리는그대는
아무것도모른채
빗소리를자장가삼아
코를골고있다

바깥은목련이
하얗게웃고
개나리진달래가
새봄을노래하는데

<황혼을바라보며>

노을진하늘을바라보다가
붉은빛이너무아름답다고생각하다가
문득우리마지막도저랬으면하다가
아직은좀더살아야지입술을깨물다가
어려워도좀더살아야지가슴을치다가
아내의숨소리를듣는게
행복하다고느끼는저녁

<아내는거짓말쟁이>

아내는거짓말쟁이이다!

편안하냐고물으면
아내는말없이머리를끄덕거린다
허공을바라보는눈빛이
정말편안한것같다

꼭쥐면금방부서져내릴것같은팔다리,
모든것다내주고
이제는텅빈것뿐인데도

까맣게타버려서
이제는가슴에재만남았을텐데도

오늘도
편안하냐고묻자
아내는또머리를끄덕거린다
말없이허공을바라보는눈빛이
정말편안한것같다

아내는거짓말쟁이가분명하다!

그대이름은
안경너머해맑은눈망울이유난히빛나던
그대이름은
푸른그리움이다

달라는것다내어주고
한점바람에도오소소,떨고있는
빈들에홀로남은허리꺾인수숫대다

다가가면
말없이미소지으며살포시안아주는
그래도끝끝내입을다물고있는
그대이름은
하늘에서내려온투명한이슬이다

영원을헤매는
그대의눈빛과
그눈빛에그을린나의아픔이하나가되는
긴입맞춤할적마다
내몸에는어느새그대의문신이새겨진다

아직도
날마다
내안에서끝없이불타오르는
그대이름은
대보름날시뻘겋게타오르는달집이다

<몰라>

몰라는우리끼리통하는아내의별명이다.누가언제부터그렇게불렀는지는알수없지만우리는모두그렇게부른다.우리가그렇게불러도아내는싫어하지않는기색이다.그소리를들을적에도그냥맥없이허공을쳐다보며피식,웃는다.

요양보호사가다녀갔느냐고,점심은먹었느냐고,낮에목욕은했느냐고,물어도아내의대답은늘‘몰라’다.어떻게그것도모르냐고물어도대답은또‘몰라’다.몰라,몰라,몰라,몰라…….묻고,묻다가지쳐서우리는그만아내따라맥없이웃고만다.그럼아내도뭐가좋은지우리를따라또피식,웃는다.

거실유리창너머로보이는바깥을손가락질하며저기가어딘줄아느냐고,빨리나아서한번가봐야하지않겠냐고말해도아내는머리를흔든다.몰라,몰라,몰라,몰라…….살아온시간을모르겠다는건지,살아갈시간을모르겠다는건지,바람이빠져나가듯몰라,몰라할적마다나도그만모르겠다는생각이든다.

내가웃는까닭은
내가자꾸웃는까닭은
참았던울음보가터질것같기때문이다

웃고,웃고,웃다보면
울어야할일을까맣게잊을것같기때문이다

울기시작하면멈출것같지않아
울음도그만아껴둬야한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아내의다리
아내의다리는세개입니다
세상사람들은모두두개인데
아내는세개를가지고있습니다

두개만있어도
세상사람들은
어디든걷고뛰고
맘대로계단도오르는데
아내는
한개가더많은데도
맘대로걷지못합니다

운동하자고,
운동하지않으면평생걷지못한다고,
잔소리를퍼부어야겨우일어나
달팽이처럼느리게,
느리게흔들흔들걷기시작합니다
오른쪽다리가앞서면
그뒤를왼쪽다리가천천히따라가면서
열번을채우기위해안간힘을씁니다

열번씩열번을채우라고해도
겨우세번하고는주저앉습니다

그런까닭에
세상사람들보다하나더가진
아내의다른다리는
10년이지났는데도
늘새것처럼반짝거립니다

나는그다리가
하루빨리헌것이되었으면좋겠습니다

희망사항(1)
이나이에그런게필요있겠어?
그래도굳이말하라면,글쎄나는그냥……

그냥,옛날처럼아내가차려주는밥상이나한번받아봤으면
그냥,아침출근할때일찍들어오세요,하는소리한번들어봤으면
그냥,한번이라도아내의손잡고그때처럼남산에올라가봤으면
그냥,맑은목소리로부르는아내의노랫소리한번들어봤으면

그냥,그게전부야
정말이야,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