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SF

키워드로 읽는 SF

$18.00
Description
“SF, 다른 세계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키워드로 읽는 SF」는 열세 개의 키워드로 읽는, 주로 외국 SF에 대한 글들을 모은 SF 비평집이다. 열세 개의 키워드는, “이웃, 눈물, 빈손, 씨앗, 존재, COVID-19, 촉수, 꼭두각시, 석유, 빛, 괴물, 우지, 먼지 등이다. 이 책은 「SF는 공상하지 않는다」(2019)에 이은 필자의 두 번째 SF 비평집이다.
「키워드로 읽는 SF」에 대한 구상은 저자가 SF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에 저자는 SF가 다른 삶과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강력한 문학 장르라는 사실에 매료된다. 대체로 2010년 이전에는 SF에 대한 독서 대중의 관심이 지금과 비교해 현저히 낮았고 관련 비평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저자가 주로 한국어로 번역된 SF 고전을 비평의 텍스트로 삼았던 점도 그러한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다. 문학비평가로서 저자가 주로 기대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적인 비판 이론의 고갱이를 SF 작품들이 선취하고 있다는 확신을 발견하는 과정도 저자의 선택에 한몫했다.
「키워드로 읽는 SF」는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그 시간적 분기점은 2020년이다. 2020년 벽두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펜데믹이 한두 달이면 종식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점차 멀어지다가 급기야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살아온 세계는 사라져갔고, 팬데믹과 기후 변화는 우리가 처한 세계가 새로운 세계임을 깨우쳐 주었으며, 그 깨달음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새롭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한다. 그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들이 인간을 초과해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에게 재앙으로 되돌아오는 세계이며,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긴 존재자들이 인간의 사후에도 존재하게 되는 세계이며, 또한 인간인 누군가가, 즉 그의 후손이 여전히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그 세계인 것이다.
다른 세계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 즉 세계는 오직 인식된 세계라는 인식=세계의 원환(圓環)에 갇힌 세계 바깥의 ‘거대한 외계’(퀑탱 메이야수)를 사유하고 그 안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는 방법론이 절실했던 시기에 저자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와 그 변종인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사변 소설 「사이클로노피디아」, SF 공포 영화 〈서던 리치〉,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등을 SF로 읽는다. 괴물의 존재론에 관심을 보였으며, 반출생주의를 비롯한 멸종의 담론에 매혹된다. 이른바 사변적 실재론과 인류세 담론이라는 연장들이 저자의 방법론적 사유 노트에 새로이 담겼다.
「키워드로 읽는 SF」의 1부가 주로 다른 세계와 존재, 곧 더 나은 세계와 존재 방식에 대해 상상하고 있다면, 2부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와 존재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글 한 편마다 핵심어를 제시하고 ‘키워드로 읽는 SF’라고 책의 제목을 정한 것은 SF 장르의 잠재력이라고 할 만한 사고 실험의 장점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

복도훈

저자:복도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문예창작학과부교수.『문학동네』(2005년봄호)에평론을발표하면서문학평론가로도활동하고있으며,현대문학상(2007)을수상했다.저서로『눈먼자의초상』,『묵시록의네기사』,『자폭하는속물』,『SF는공상하지않는다』,『한국창작SF의거의모든것』(공저),『키워드로읽는SF』등이있고,역서로『성관계는없다』(공역)가있다.

목차


책머리에7

제1부
이웃:너무멀거나지나치게가까운15
─스타니스와프렘의『솔라리스』
눈물:“빗속의내눈물처럼”59
─『안드로이드는전기양의꿈을꾸는가?』와<블레이드러너>
빈손:변증법적유토피아교육극95
─어슐러K.르귄의『빼앗긴자들』
씨앗:“한번더!”129
─킴스탠리로빈슨의『쌀과소금의시대』
존재:“존재하기위해서,존재속에계속남기위해서”169
─마지피어시의『시간의경계에선여자』

제2부
COVID-19:오드라덱의웃음203
─세계종말의비평
촉수:밤의공포보다긴촉수237
─러브크래프트와코스믹호러
꼭두각시:“생육하지말고너희이후로땅이고요하게하라!”261
─토머스리고티의『인간종에대한음모』
석유:『사이클로노피디아』와H.P.러브크래프트279
─레자네가레스타니의『사이클로노피디아』
빛:X구역을살아가기299
─알렉스가랜드의<서던리치:소멸의땅>
괴물:이성이잠들면괴물이깨어난다323
─이충훈의『자연의위반에서자연의유희로』
우지:불로장생의꿈339
─길가메시서사시에서좀비아포칼립스까지

ㅣ후기ㅣ먼지:어느사변적외계지질학자의명상361

발표지면371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2019년이한국SF역사에서뜻깊은해라는것은한국문학의독자라면누구나알고있는사실이다.수많은SF작품이출간되었으며,드물게베스트셀러의자리를차지했다.이전과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학술대회와강좌등이열렸으며,한국SF가해외에본격적으로소개되었다.SF전문출판사들이생겨났으며,각종SF공모전이생겨났다.문예지는SF를비중있게다루기시작했으며,학술지는동시대의한국SF를연구대상으로삼았다.그런데SF에등장하는특정한미래시점을의미심장하게취급하는경우가종종있고,나또한예외는아니다.

조지오웰의『1984』(1948)에서전체주의적디스토피아가도래하는1984년,1984년에개봉된[터미네이터]1에서인공지능스카이넷이인류에게핵전쟁을벌이는1997년그리고[블레이드러너](1982;1993)의2019년등등.나는[블레이드러너]에그려진미래가앞으로2019년이되면정말실현될지도모른다고,영화를처음보던1993년스무살무렵에생각했다.인간과대화를하는인공지능이탑재된플라잉카가하늘을날고,감성과지성을가지고눈물을흘리는안드로이드가만들어질거라고.물론SF를본격적으로읽기시작하고나서야SF는미래를예언하는것이아니라가능한미래를상상하는일임을알게되었다.
-(「책머리에」에서)

책속에서

SF작품인『솔라리스』의특별한의의가있다.한마디로SF에서‘과학’은협의의과학기술이아니라인간의지식과학문에서유추될수있는것으로현실을반영할뿐만아니라그것을창의적으로재구성하는‘인지’로,‘소설’은창의적이고도역동적인인지를통해기존의현실에대한‘낯설게하기’를수행하는것으로이해할필요가있다.그리고이러한인지와낯설게하기의긴밀한상호작용에서솔라리스와하레이라는전적으로새로운(novum)비인간존재가탄생했다.솔라리스와하레이라는외계‘이웃’은근본적으로인간과그의인식적탐구,과학의범주모두를당혹스러울정도로낯설게만든다.이러한창의적인인지적낯설게하기로생성된서사의새로움이SF를다른장르와구별짓게만드는주된헤게모니일것이다.
---p.56~57

그러나우리는오드라덱의이야기를우리가그안에서이해할수있는의미보다더욱깊은의미를찾기위한일종의추리소설로간주했다.단지우리가이해하지못하기때문이아니라정확히이해할수없기에계속해서읽어야하며,최종해석의과녁에서엇나가는추리소설로.그것은어쩌면비평의물음에대해문학이건네주는경고어린웃음이지않을까싶다.피조물을당연하게여기는태도를조심하라.그것의창조주를의심하라.문학텍스트를당연한것으로여기는태도를조심하라.그것의강력한양면성에주목하라.작품이우리의이해력에저항할수있도록최대한허용하라.나아가「가장의근심」은화자,서술,결말,배경등에대한문학(소설)의규범과그러한규범을그대로따르는비평에대해서도경고하는것같다.예를들면문학으로불러들인객체를주체(주인공과작중인물)의인식론적·정서적범주로환원하거나다만그결과(효과)로만기술해왔던사례는얼마나많은가.왜근대소설의많은형태는인간의행동과사유,감정을유일한행위자로승격시키는한편으로얼마나많은비인간들,객체들을추방해왔던가.
---p.233~234

『인간종에대한음모』는러브크래프트의공포소설에대한탁월한비평이라고해도좋은책이다.러브크래프트는단편「크툴루의부름」에서우리의잘난체하는과학과우쭐대는지식이얼마만큼무지의거대한대양한가운데의배처럼초라하게떠다니고있는지를,그리고대양의밑바닥에는인간의탄생이전부터존재해왔으며표류하는인간의운명에절대적으로무심한초차원적인존재자가여전히거주하고있는지를상상했다.이것이인간이발견한공포이며,이러한공포는인간의의식이자신과세상을향해갑자기비명을지르면서홀연히마주하게된참담한진실이다.그러니까과학을발명하고,문명을일구고,자연을정복하고,다른피조물의지배자로군림하게된것은자연의돌연변이인인간의의식덕택이지만,그는의식때문에자신을둘러싼세계가얼마만큼위협적이고,파괴적이며,또한인간의운명에궁극적으로무관심한존재인지를알게되었다.의식이란자신의자아가마치허상처럼달빛에위태롭게흔들거리는끝없이밑빠진우물이고,그아래로한없이낙하하는공허이다.
---p.269